우리는 공정 논의의 20세기 고전 중 하나인 롤즈(John Rawls)의 『정의론』(1971)을 통해 제3의 길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롤즈는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는 절차를 중시하면서도 자존감이 훼손되지 않을 정도의 차이를 옹호하여 결과를 정의롭게 만들고자 제시하는 자신의 정의론을 ‘공정으로서의 정의’(justice as fairness)라고 명명한다.(본문 중)
목광수(서울시립대학교 철학과 교수)
최근 한국 사회에 ‘공정’(fairness)에 대한 말들이 범람하고 있다. 윤리학과 정치철학 저서에서만 보던 ‘공정’이 우리 사회의 민감한 주제인 입시, 취업, 병역 문제와 관련하여 신문 칼럼과 온라인에서 날 선 논쟁을 일으키는 현상이 낯설다. 치열한 논쟁이 공정 개념에 대한 오해로 인한 것이라면, 개념을 정리하는 것으로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될 것이다. 그런데 공정 개념은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할 정도로 맹렬한 도덕 감정을 야기하는 단어이면서도 다양한 의미로 규정될 수 있다. 그래서 각 진영은 공정 개념을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며 시민들의 도덕감을 자극하고 있고, 시민들은 자신이 이해하는 공정 개념만이 옳다고 믿는다. 이에 서로가 서로를 불공정하다고 거칠게 비판하여 사회 갈등과 분열이 가속화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 적합한 공정이 무엇인지, 어떤 공정 개념을 통해 사회적 이슈를 보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 규명하기 위해서는 공정 개념의 의미부터 차분하게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각 진영이 내세우는 논점의 핵심이 무엇인지 검토해 보자. 편의상 현재의 공정 논쟁 참여자들을 두 진영으로 구분하고자 한다. 하나는 ‘결과-공정’ 진영이라고 명명하고 다른 하나는 ‘절차-공정’ 진영이라고 부를 것이다. ‘결과-공정’은 신분제 사회와 같은 부당한 차별에 대한 저항으로부터 시작하였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라고 외쳤던 고려 시대 노비인 만적처럼, 그리고 봉건제를 타파하려는 혁명가들처럼, 사회적으로 제도화되고 고착화된 차이에 대해 저항하는 운동의 논리가 결과-공정이다.
결과-공정은 다시 비례의 원리에 따른 결과-공정과 보편 평등 원리에 따른 결과-공정으로 나눌 수 있다. 동일한 일을 했는데 누구는 많은 보수를 받고 누구는 적은 보수를 받는 것은 직관적으로 부당하게 느껴진다. 비례의 원리에 따른 결과-공정 진영은, 만약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동일한 일을 한다면, 공정 개념의 성격 가운데 하나인 비례 원리에 따라 동일한 대우를 하는 것이 공정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동일한 대우’가 동일한 임금을 주는 것이라면 공정에 부합할 수 있지만,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비례 원리에 입각한 공정에 해당하는지가 의문시된다. 왜냐하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사회 제도로 정착된 절차에 따른 구분인데,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은 확립된 절차를 훼손하는 불공정, 특히 ‘절차-공정’ 훼손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구분이 임금 차이를 현상적으로 동반하기 때문에 양자를 묶어서 사고하기 쉽지만,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은 ‘평등’ 개념에 부합하는 것이지, 비례 원리에 토대를 둔 ‘결과-공정’과는 거리가 있다.
이처럼, ‘결과-공정’이 비례 원리가 아닌 보편 원리, 즉 인간이라면 누구나 보편적으로 평등한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원리에 토대를 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결과-공정’ 관점에서는 동일한 임금을 주는 것을 넘어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여 평등해지는 결과를 추구하는 것이 공정이다. 보편 원리에 입각한 ‘결과-공정’은 사회적으로 확립된 절차를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절차-공정’과 충돌한다. 물론, ‘절차-공정’을 유지하면서도 보편 원리에 입각한 ‘결과-공정’을 추구하는 경우도 있다. 성경에서 포도원 품꾼의 비유(마태복음 20:1-16)는 모두 동일한 시간의 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각자에게 약속했던(절차-공정) 동일한 임금을 지불하는(결과-공정)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절차-공정’은 개인의 주관적 판단에 따른 행위가 초래하는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 절차를 통해 정의를 구현하려는 시도와 관련된다. 지연과 학연, 인맥 등의 연줄을 통해 혜택이 주어지는 행위를 차별이라고 규정하고, 이를 제도와 절차를 통해 시정하려는 시도이다. 특히, 사회적 신뢰가 낮은 사회에서는 절차를 객관화, 수치화하는 것을 선호한다. 한국 사회에서 정성 평가가 포함된 학생부종합전형을 불공정하다고 비판하고 점수화된 수능이 공정하다고 말하는 것이 그런 사례이다. 오늘날 취업이나 입시에서 고위 관료들의 자녀들이 혜택을 보는 부정이 발생했을 때 일어나는 사회적 분노는 우리 사회의 ‘절차-공정’에 대한 열망을 잘 보여준다. 한국 역사상 처음이었던 대통령 탄핵의 도화선이 된 2016년의 이화여대 학생들의 시위도 입시 비리와 관련된 ‘절차-공정’의 문제에서 비롯했다. 2017년과 2020년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 일부의 정규직화 논란, 2017년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 논란, 2018년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논란, 2020년 공공 의대 건립 논란, 그리고 빈번하게 발생하는 고위 공직자 자녀 특혜 논란, 학생부종합전형과 수능의 입시 논란 등도 ‘절차-공정’과 관련된 분노와 열망의 표현이다.
성경은 대표적인 사회적 약자인 고아와 과부를 도울 것을 여러 곳에서 강조하지만(신명기 10:18, 24:19; 스가랴 7:10; 시편 146:9; 예레미야 49:11; 야고보서 1:27), 고아와 과부를 위한다고 해도 절차를 훼손하는 재판을 하지 말도록 경계한다(출애굽기 23:3, 23:6; 레위기 19:15). ‘절차-공정’은 절차를 통해 자격을 얻은 사람이 혜택을 보는 것은 당연하다는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 실력주의/능력우선주의/능력주의) 사회를 옹호한다. 비례 원리에 토대를 둔 실력주의 사회는 사람들을 승자와 패자로 나누면서, 승자인 실력자들이 가진 특권 의식을 당연시한다. 왜냐하면, 실력주의 사회는 노력에 기여한 만큼에 비례하여 혜택을 향유하는 것이 공정하다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절차를 무시하고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은 무임승차자(free-rider)로 간주되어 용납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신뢰받는 이러한 ‘절차-공정’은 충분히 ‘공정’한가? 현재의 ‘절차-공정’에 내재한 문제는, 해당 절차가 믿을 만하며 제대로 된 것인지에 대해 반성하지는 않고 절차를 원칙화하여 현상 유지를 맹신하고 절대시한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시험 문제가 잘못되었다면 그 시험 문제로 승자가 된 사람이 승자일 수 있는가?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기존 절차가 낳는 결과를 공정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오류가 아닌가? ‘절차-공정’은, 이러한 문제를 지님에도 불구하고 절차를 통한 결과가 정당하다고 주장하기에, 패배한 사람들에게 가혹하고 잔인하다. 패자는 노력하지 않아서 패배했다고 규정되고, 평등한 권리를 보장받을 자격이 없다고 비난받는다. 이런 점에서 ‘절차-공정’은, 비례 원리를 따르는 ‘결과-공정’과는 양립할 수 있지만, 보편 원리를 강조하는 ‘결과-공정’과는 상충한다.
한국 사회에서의 공정 논쟁은 ‘결과-공정’과 ‘절차-공정’ 진영에 의해 주도되고 있고, 양 진영은 이 문제를 어떤 공정을 택할 것이냐는 선택의 문제라고 호도한다. 하지만, 절차와 결과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라면, 양자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이 아니라 절차와 결과 모두를 고려하는 공정을 모색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공정 논의의 20세기 고전 중 하나인 롤즈(John Rawls)의 『정의론』(1971)을 통해 제3의 길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롤즈는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는 절차를 중시하면서도 자존감이 훼손되지 않을 정도의 차이를 옹호하여 결과를 정의롭게 만들고자 제시하는 자신의 정의론을 ‘공정으로서의 정의’(justice as fairness)라고 명명한다.
롤즈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갖게 되는 지능, 건강, 신체, 외모 등의 자연적 우연성과 가정환경, 경제적 여건 등의 사회적 우연성이 인간의 인생 여정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그러한 우연성의 혜택을 내가 독점하는 것이 정의로운지 묻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우연성은 내가 그것을 ‘가질 만하다’(deserve)고 보기 어려운 ‘운’(fortune)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우리 중 누구도 대한민국에 태어나기를 선택하거나 현재의 부모를 택해서 태어난 사람은 없다. 이것은 그냥 우리에게 주어진 ‘운’에 해당하는데 이러한 운으로 인해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는 사회가 정의롭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심지어 롤즈는 노력조차도 어린 시절 좋은 가정환경과 부모의 영향으로 길러진 학습 태도와 관련되었다는 점에서, 노력이 우연성과 무관하지 않다고 분석한다. 이렇게 의문스러운 영향력을 고스란히 반영하여 만들어진 제도와 절차를 공정하다고 할 수 있을지 롤즈는 묻는다.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은 배제한 채 제도와 절차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어 놓고는 그 절차에 따른 결과는 공정하다고 주장하는데, 롤즈는 그 절차 자체가 불공정함을 꼬집어 ‘절차-공정’ 논의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사회적 영향력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모두 참여하여 만든 절차와 제도라야 그것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롤즈는 자연적, 사회적 우연성 자체를 사회 제도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가 공정성의 문제라고 본다. 사회의 기본 구조는 이러한 우연성이 사회 전체 구성원들에게 혜택이 되는 방식으로 재편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재편된 사회에서는, 자신이 가진 사회적, 자연적 우연성을 자신에게 우연히 주어진 ‘운’으로 인식하고, 운이 좋은 사람들은 그러한 운을 통해 얻은 혜택을 나만의 혜택이라고 독점하지 않으며 운이 없는 사람들에게 빚진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다. 롤즈는 자신의 이러한 정신을 담은 차등 원칙에 ‘상호성’과 ‘보상의 정신’과 ‘박애의 정신’이 있다고 말한다. 롤즈는 승자와 패자가 구분되고 승자의 특권이 정당화되는 메리토크라시 사회를 거부한다. 그리고 민주주의적 평등, 즉 사회 구성원들에게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지는 절차 아래, 결과가 자존감을 보장하고 합당한 차이를 인정하는 연대의 사회를 제시한다. 롤즈의 공정 사회는 이런 점에서 ‘결과-공정’의 무조건적 평등 추구를 비껴가면서도 평등이 추구하려던 이상인 서로가 협력하고 존중하는 사회를 모색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9일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취임사가 롤즈의 정의론을 인용했다고 생각한다. 만약 롤즈의 공정 개념을 주목한다면, 절차-공정과 결과-공정의 이분법이 아닌 양자를 통합하는 공정을 추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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