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는 로스의 신약성경 번역 단계에서는 한문 성경의 상제(上帝)의 대응어로서의 ‘하느님’(heavenly Lord)을 수용하였고, 1904년 전후에 헐버트, 게일, 언더우드 등의 신학적 작업으로 하늘성+유일성+위대성의 뜻을 가진 유일신+삼위일체신인 기독교의 ‘하ᄂᆞ님’으로 신조어를 창출했다. 동학은 ‘한울님’으로, 나중에 대종교는 ‘한얼님’으로 변용하여 수용했다. 19세기까지 통용되던 ‘하느님’이 20세기에 와서 ‘하나님’(개신교), ‘한울님’(천도교), ‘한얼님’(대종교)으로 분화 발전했다. 하나님 용어는 철자법 변화에 따른 표기도 중요하지만, 의미 변화가 더 중요하다.

옥성득(UCLA 한국기독교학 교수)

 

아래 사진에서 보듯이, 놀랍게도 조선 시대 시인 박인로(朴仁老, 1561-1642)의 시문집인 『盧溪集』(노계집)에 두 번, “태평사”와 “노계가”에 한글로 ‘하ᄂᆞ님’이 나온다. 현재까지 문서로 확인할 수 있는 하ᄂᆞ님이 등장하는 최고(最古) 오래된 문서이다. 이는 하나님 용어 역사에서 중요한데, 몇몇 인터넷 블로그에 두 번째 경우만 올라가 있지만, 그 판본을 밝히지 않고 있다. 나는 그 원본과 판본 연대를 확인하지 못해서 저서 『한국기독교형성사』에 넣지 않았다.

 

원문

그런데 “한국고전번역원” 온라인 페이지에서 1831년 판 원본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천운순환을 아옵게다 하ᄂᆞ님아 우아방국하샤 만세무강 눌리소셔 (太平詞)

일생에 품은 뜻을 비옵니다 하ᄂᆞ님아 (蘆溪歌)

박인로는 천지 운행과 한 나라의 부강을 주관하는 상제나 염원을 비는 대상인 하느님의 뜻으로 하ᄂᆞ님을 사용했다.

 

박인로, 『盧溪集』 제3권. 3a (244c) “태평사”(太平詞)의 마지막 부분.

 

박인로, 『盧溪集』 제3권, 22b (254b), “노계가”(蘆溪歌) 말미.

 

조심할 점

 인터넷에 노계집의 “노계가”에 나오는 하ᄂᆞ님을 인용하면서 그 원문을 보여 주고 있다. 이를 잘못 읽으면 1630년대에 하ᄂᆞ님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처럼 오독할 수 있다.

노계집은 박인로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00년에 간행한 3권 2책의 시문집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고전번역원이 인터넷에 원문을 제공하는 판본은 1831년에 발간된 규장각본이다. 노계집의 목판본은 1800년, 1831년, 1904년, 1959년 등 네 가지 판본이 있다. 1904년 판본은 1831년 판본에 내용을 약간 첨가했다. 1959년 판본은 초간의 훼손된 부분을 개각하고 새로 발견된 『立巖歌 7수 및 『고금가곡 중 그의 저작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각(補刻) 추가한 것이다.

따라서 노계집의 시가를 인용, 분석할 때 그것이 1630년대 철자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1831년 판본을 이용한다면 1830년대의 한글 철자법, 혹은 1800년경의 철자법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 중요성은 무엇인가?

캐나다 UBC 한국종교학 교수 도널드 베이커(Donald Baker)는 다음 두 가지를 주장했다. (1) 로스 이전에 한국에서는 ‘하ᄂᆞ님’을 사용한 용례가 전혀 없으며, 프랑스 선교사들도 언급한 적이 없다. (2) 따라서 로스의 ‘하느님/하나님’이나 게일의 ‘하ᄂᆞ님’은 개신교 선교사들이 만들어낸 신조어(新造語)이다.

그러나 1831년에 간행된 『盧溪集』에는 두 번이나 ‘하ᄂᆞ님’이 등장한다. 따라서 19세기에 하ᄂᆞ님은 유학자들도 사용하는 용어였다. 베이커 교수는 자료를 많이 보지 않고 섣불리 판단했다. 한국인들은 옛날부터 상제, 천, 하느님을 섬기고 그에게 기도했다.

나는 다른 증거로 1869년 불한사전의 ‘Ciel’(하ᄂᆞᆯ) 항에 나오는 ‘하ᄂᆞᆯ님’의 예를 들었다. 프랑스 선교사들도 하ᄂᆞ님을 알고 있었지만, 미신적 기도와 연관된다고 하여 배격했다. 프랑스 선교사들이 한국 전통 종교를 배격하는 근본주의적 타종교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옥성득, 『한국기독교형성사』(2020), 108.

 

 

위의 두 가지 용례로 보면, 19세기에 하ᄂᆞ님은 유교의 상제(上帝)나 천(天)과 동일한 뜻으로 사용되거나, 무교의 최고신으로서 기도의 대상이었다. 곧 하느님으로서의 하ᄂᆞ님은 한국인들이 예전부터 섬기고 사용해 오던 신명이지, 개신교 선교사들이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듯이 발명한 것은 아니다. 19세기 조선인들은 유교인이나 무교인이나 하느님/하ᄂᆞ님을 알고 섬겼다.

여러 블로그에 “노계가”에 한 번 ‘하ᄂᆞ님’이 나온다며 그 페이지를 캡처해서 올려놓았는데, 일부 학자들이 그 연대를 확인하지 않고 논문에 인용하고 있다. 연대 확인, 판본 확인, 원문 확인 등은 논문을 쓸 때 가장 기초적인 작업이므로 놓치면 안 된다. 동학의 『용담유사』도 1860년대 필사본 원본이 없으므로, 이후 1880년대부터 나오는 목판본들이나 연활자본의 간행 연대를 확인해야 한다. 신약성서 학자들이 본문 비평을 하듯이, 한국사나 한국기독교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본문 비평 작업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결론

19세기 조선 유학자의 문집과 프랑스 선교사의 사전에 하ᄂᆞ님이 등장한다. 개신교는 로스의 신약성경 번역 단계에서는 한문 성경의 상제(上帝)의 대응어로서의 ‘하느님’(heavenly Lord)을 수용하였고, 1904년 전후에 헐버트, 게일, 언더우드 등의 신학적 작업으로 하늘성+유일성+위대성의 뜻을 가진 유일신+삼위일체신인 기독교의 ‘하ᄂᆞ님’으로 신조어를 창출했다. 동학은 ‘한울님’으로, 나중에 대종교는 ‘한얼님’으로 변용하여 수용했다. 19세기까지 통용되던 ‘하느님’이 20세기에 와서 ‘하나님’(개신교), ‘한울님’(천도교), ‘한얼님’(대종교)로 분화 발전했다. 하나님 용어는 철자법 변화에 따른 표기도 중요하지만, 의미 변화가 더 중요하다. 노계집에 나오는 19세기의 ‘하ᄂᆞ님’이 20세기에 어떻게 발전하는지 아는 것은 한국 종교사 이해에 중요한 한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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