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패자인 트럼프가 영예로운 패배자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첫째는 우편 투표 조작 주장이다. 우편 투표는 남북전쟁 이후로 미국 선거에서 애용하는 투표 방식이다. 트럼프 자신도 우편 투표를 했었고, 우편 투표의 유용성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이번에 우편 투표가 유달리 많은 것은 몇몇 주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을 막기 위해 우편 투표를 격려했기 때문이다. 현직 대통령이 자기에게 불리하다 해서 우편 투표를 부정 선거로 몰아가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 게다가 부정 선거는 대부분 권력 수단을 장악한 여당의 전유물이 아니었던가?(본문 중)

백종국(경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미국의 대통령 선거란?

지난 “11월의 첫째 월요일이 있는 주간의 화요일”, 즉, 11월 3일에 미국의 제46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관례대로라면 늦어도 4일 오후에는 당락의 윤곽이 잡히고 패자는 승자에게 전화를 걸어 축하 인사를 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랬다면 <좋은나무>의 미국 대선 논평도 지난 주말쯤에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패자는 패배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미국의 정부 기관들도 패자의 눈치를 보느라고 정상적인 정권 이양 절차를 밟지 않고 있다. 예전에는 볼 수 없던 풍경인데, 이는 미국 체제의 역사적 쇠퇴를 보여주고 있다.

미국 대통령 선거는 간접 선거이다. 각 주에 기본으로 2명씩 배정되고 나머지는 인구 비례로 배정된 538명의 선거인단을 각 주에서 이긴 정당에 승자독식의 방법으로 배정하여, 선거인단 과반수인 270표를 확보하여야 당선자가 될 수 있다. 혹시라도 선거인단을 두 후보가 269명씩 차지하면 별도의 절차에 따라 당선인이 결정된다. 선거인단 통계의 공식 창구 역할을 하는 AP통신의 최근 보도를 보면, 바이든이 306명, 트럼프가 232명으로 바이든의 당선이 확정적이다.

문제는 패자인 트럼프가 영예로운 패배자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첫째는 우편 투표 조작 주장이다. 우편 투표는 남북전쟁 이후로 미국 선거에서 애용하는 투표 방식이다. 트럼프 자신도 우편 투표를 했었고, 우편 투표의 유용성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이번에 우편 투표가 유달리 많은 것은 몇몇 주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을 막기 위해 우편 투표를 격려했기 때문이다. 현직 대통령이 자기에게 불리하다 해서 우편 투표를 부정 선거로 몰아가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 게다가 부정 선거는 대부분 권력 수단을 장악한 여당의 전유물이 아니었던가?

아마도 패자인 트럼프는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몇몇 주 정부, 연방 상원, 그리고 연방 대법원의 개입을 통해 승패를 뒤집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를 성사시키려는 트럼프 열성적인 지지자들 사이에서 가짜 뉴스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그러나 이미 계수가 끝난 보통 선거에서 몇 가지 결함이 발견된다고 해서 승패를 뒤집을 수는 없다. 미국에는 트럼프 지지자만 있는 게 아니다. 트럼프를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7천2백만 표가 있다면, 그를 지극히 증오하는 7천8백만 표가 있다. 화장실 휴지에 트럼프의 얼굴을 인쇄하여 판매할 정도로 미국에서 트럼프 증오는 깊고 광범위하다. (선거 결과를) 뒤집으면 (미국 체제는) 짜개진다. 미국 체제의 안정성을 추구하는 미국 법원은 현재 트럼프가 제기한 16개 선거 소송 중 14개를 기각하고 있는 중이다.

 

출처: Bloomberg

 

바이든과 트럼프의 선거 공약 비교

미국 정치 체제에서 현직 대통령이 재선 도전에 실패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조지 워싱턴에서 트럼프에 이르기까지 231년간, 재임한 44명의 대통령 중에서 재선 도전에 실패한 사람은 10명에 불과하다. 전후에는 3명인데, 포드, 카터, 아버지 부시이다. 모두 경제적 실패 때문이었는데, 이들에 비하면 트럼프의 경제 업적은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다. 간혹 부정적 요소로 트럼프의 독불장군적 성격을 강조하지만, 사실은 이 성격이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었음에 유의하자. 그렇다면 무언가 다른 요인으로 독불장군 트럼프의 재선 실패를 설명해야 하지 않을까?

먼저 바이든과 트럼프의 선거공약 비교에서 출발해보자. 다행히도 <미국의 소리>(VOA) 방송이 좋은 대조표를 제시해 주고 있다.

 

출처: https://www.voakorea.com 자료에서 재구성.

 

바이든과 트럼프의 선거 공약들을 비교해 보면, 몇 가지 뚜렷한 차이가 발견된다. 국가 이익의 옹호는 공통의 목표이다. 그러나 그 수단으로 바이든은 전통적인 국제주의를, 트럼프는 새로운 민족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바이든은 나름 사회적 약자의 보호를 강조하는 반면, 트럼프는 성장 속도의 상승을 위해 사회적 약자의 배제를 추구하고 있다. 기후, 낙태, 이민, 총기 규제 등에서도 뚜렷한 차이가 발견되는데, 이는 각자의 지지 기반인 유권자 집단의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 트럼프의 지지층이 국제화로 고통 받고 있는 중서부 지역의 중하층 백인 노동자들이라면, 바이든은 전형적인 뉴딜 연합(New Deal Coalition), 즉, 국제화를 추구하는 다국적 기업과 조직 노동자 및 소수 인종의 연합을 추구하고 있다.

<표2>의 주요 지표는 경제적 호황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의 재선 실패가 발생한 이유를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우선, 2019년 GDP 성장률과 코로나바이러스 방역 실패는 일시적이고 우연적이라 치자. 그렇다면 진짜 중요한 것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미국의 양극화 현상이다. 빈곤과 불평등은 OECD 국가 중에서 최악 수준이며, 무역 수지나 대외 부채는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더욱 악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비 지출은 나머지 국가들의 합과 맞먹을 정도로 여전히 막대하다. 사실 국제주의나 민족주의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근본적인 해결이 어려우므로 미국인들은 혼돈 속에서 헤매고 있는 중이다. 제46대 대선은 미국인들이 트럼프의 민족주의가 대안이 아니라고 보고, 다시 바이든의 국제주의를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출처 : Tranding Economics 등 여러 자료에서 통합.

교만, 쇠락, 그래도 역시 미국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현재 진행 중인 미국의 제46대 대통령 선거는 미국이 전후 시대의 교만으로 인해 얼마나 쇠락했는지를 드러낸 선거이다. 미국은 1, 2차 세계 대전을 통해 세계 최강의 국가로 등극하였다. 미국 국내 총생산이 세계 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8.0%(1900년)에서 39.6%(1960년)로 증가하였다. 미국은 1929년쯤 세계 공산품 생산의 43.3%를 차지했고, 전쟁 직후 세계 통화용 금의 5분의 4를 보유하게 되었다. 전쟁에 몰두하던 유럽은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진 빚 119억 달러를 갚기도 전에 새로운 전쟁에 빠져들었고, 1945년이 되면 영국과 캐나다 두 나라가 미국에 진 빚만 두 나라의 1년 국민 총생산을 훌쩍 넘는 62억 달러에 달했다. 전쟁을 하는 국가는 망하지만, 전쟁에 물자를 팔아먹는 나라는 흥한다는 옛 속담이 증명된 사례이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미국은 막대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전후 미국 패권 체제”를 탄생시켰다. 경제적으로는 “브레턴우즈 체제”, 정치적으로는 “냉전 체제”가 그 제도적 장치이다. 목표는 평화롭고 번영하는 자유 민주주의 세계였다. 공동 보증의 국제기구들을 통해 미국의 자본을 빌려주어 자유주의 동맹국들의 경제 부흥을 돕고, 이들이 생산한 상품을 싸게 사들여 국내 소비의 풍요를 보장하며, 소비재 수입에 지출된 달러를 차관 상환으로 환수하는 선순환이 구상되었다. 소련을 공동의 적으로 하여 자유주의 동맹국들을 결속시키되 국제연합에서 거부권을 보장함으로써 대규모 군사 충돌을 억제하였다. 전후 한동안 이 구상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놀라운 성공 안에서 자기 파멸을 촉진하는 교만이 싹트고 있었다.

미국의 교만은 미국 달러를 국제적 기축 통화로 삼아야 한다고 고집할 때부터 시작되었다. 국제 통화의 독립성에 대한 케인스의 간곡한 당부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달러의 기축 통화화를 강행하였다. 이때부터 미국은 달러의 국내 수요와 국제 수요 사이에서 발생하는 상시적 딜레마에 시달리게 되었다. 1960년대 소위 “위대한 사회”의 소비 천국 달성과 베트남전으로 대표되는 국제 경찰 행위로 미국은 흥청망청 막대한 달러를 찍어냈다. 유럽과 일본은 이 틈을 타 상상불허의 속도로 경제 성장을 이룩하였다. 1971년 마침내 미국은 달러의 금 태환 정책 포기를 선언했다. 2000년대에 이르러 미국 국내 총생산의 세계 비율은 25%대로 떨어지고 있다.

미국의 쇠퇴는 상대적으로 결정되었지만, 아직 미국은 이를 수용하려고 하지 않는다. 도리어 안간힘을 다해 자국의 이해관계를 강제적으로 관철하는 일방주의의 모습을 보인다. 국제 사회에서 보여준 트럼프의 방약무인함이 하나의 사례이다. 만일 민주주의와 다양성이라는 미국 문화에 대한 국제적 선망이 아니었다면, 미국의 쇠퇴는 트럼프 훨씬 전에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을 것이다.

미국의 제46대 대통령 선거를 통해 미국의 소프트 파워인 민주주의가 국제적 조소 거리로 전락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내전으로 고통받는 아프리카인들조차도 트럼프의 대선 불복을 조소하고 있는 중이다. 또한 권력 쟁탈을 위한 가짜 뉴스를 퍼뜨리며 사회적 양극화 심화에 따른 절망감을 위로받으려는 미국인들의 모습은, 이제까지는 미국에서 볼 수 없었던 후진국 정치의 추한 모습이다.

그러나 상대적 쇠퇴에도 불구하고 누가 뭐래도 미국은 세계 제1의 생산력과 군사력을 가진 국가로 ‘당분간’ 막강한 힘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 어떤 국가이든 자국의 이익을 위한다면, 세계 제1의 강대국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라고 충고하고 싶다. 부자가 망해도 3대는 갈 것이라는 격언을 미국의 동맹국과 적대국들은 항상 유의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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