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목회자가 되려면 지속적으로 자기 점검을 해야 한다. 자기 점검이란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여 자기 상태를 살펴보며, 자신의 고통과 아픔, 결핍과 상처에 정직하게 반응하는 것을 말한다. 자신을 돌볼 수 있어야만 타인의 아픔을, 그저 일로서가 아닌 가슴으로 안을 수 있다. (중략) 그런데, 건강하지 못한 목회자의 열정과 열심, 그리고 헌신적 행위가 보상 추구라는 잘못된 뿌리에 기초할지라도, 교회 안에서는 종종 뛰어난 ‘믿음’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이를 ‘중독’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본문 중)

곽은진(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상담학 교수, 기윤실청년상담센터WITH 공동소장)

 

건강한 목회자가 되려면 지속적으로 자기 점검을 해야 한다. 자기 점검이란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여 자기 상태를 살펴보며, 자신의 고통과 아픔, 결핍과 상처에 정직하게 반응하는 것을 말한다. 자신을 돌볼 수 있어야만 타인의 아픔을, 그저 일로서가 아닌 가슴으로 안을 수 있다. 자신으로부터 소외된 목회자의 마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결핍과 공허를 채워줄 대체물, 즉, 사람, 물질, 권력, 인정 등을 추구하게 된다. 인간의 욕구는 본능적으로 충족의 원리를 따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건강하지 못한 목회자의 열정과 열심, 그리고 헌신적 행위가 보상 추구라는 잘못된 뿌리에 기초할지라도, 교회 안에서는 종종 뛰어난 ‘믿음’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이를 ‘중독’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믿음과 중독의 경계가 어디쯤일지는 잘 모른다. 다만, 중독이 끼치는 최악의 영향은 자기기만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게 만드는 것임은 알고 있다.

중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나 삶의 영역은 많지 않다. 더욱이 우리 사회는 어느 정도 중독된 열정과 열심을 발휘할 때 능력과 가치를 인정해 주기에, 중독을 인식하거나 경계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중독 행위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라는 절대적 가치를 만나면, 때로 그 영향력이 우리가 쉽게 감당할 수 없는 영역까지 미치게 된다. 마음의 결핍이나 트라우마가 교묘한 도피, 속임수, 타협, 또는 이타주의나 타인을 돌보는 행위로 위장하므로, 우리는 자신의 심리적 장애나 한계, 연약함을 부정하며 갖가지 방어 기제로 스스로 속이고 속는다. 이것은 교회 내에 견고한 권위주의, 전체주의, 형식주의 등 교묘히 위장된 우상숭배의 다양한 형태들이 존재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중독의 유혹으로부터는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은혜 안에 있어야만 한다. 목회자나 다른 지도자도 예외일 수 없다. 중독자들이 매일 되새기는 단어가 하나 있다. “오늘 하루만”이다. 그리스도인의 삶도 매 순간 ‘오늘 하루’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삶이다.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 점검을 하며, 중독과 믿음의 경계를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의지해 분별해야 한다.

인간의 모든 선택에는 분명한 동기와 목표가 존재한다. 목회자가 된 것이 부르심에 대한 순종 때문이든, 아니면 자신의 욕구 결핍에 대한 보상 때문이든, 선택의 배후에는 각자의 욕구 충족과 바람이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과정에서 각 사람에게 부여하신 선택권을 존중하신다. 그러나 목회자가 된다는 것, 혹 되었다는 것이 내면의 치유가 온전히 이루어졌거나 완성되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영적 지도자로 부름을 받았다면, 치유와 변화 그리고 성장을 위해 자기를 점검하는 일이 그 응답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좋은 목회자가 되기 위해, 자신의 행동 배후의 내적 동기를 정직하게 성찰하고 직면하며, 드러나는 문제를 책임 있게 다루고 치유 과정을 경험해야 한다. 이때 치유는, 성화와 마찬가지로, 단번에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되는 과정이며 동시에 궁극적 목표로 이해해야 한다. 치유와 변화는 하나님 임재의 경험 안에서 일어나기에, 치유를 추구하는 것은 영적으로 깨어있음을 추구하는 것이다. 자기를 보지 못하는 목회자가 영적으로 깨어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것이 자기 이해와 인식 그리고 통찰을 강조하는 이유이다.

목회자의 자기 인식 또는 치유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그것이 구원과 회복을 몸소 경험하고 실천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구원(Heil, 독일어)-치유(healing)-건강(health)은 모두 동일한 어원에서 나온 말이다. 목회자가 자신을 알아가는 것, 내면에 대한 통찰과 치유의 경험을 가지는 것은 목회자 자신에게도 유익하지만, 또한 그것을 넘어서는 가치를 지닌다. 자기 점검을 통해 목회자가 자신의 역량 발휘나 목회 사역을 방해하는 심리적, 환경적 장애물을 인식하게 되면, 내적 성장이 일어나고 영적인 성숙에 깊이가 더해진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경험하는 치유는 삶의 본질, 관계의 본질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하므로 목회자의 가장 큰 자원이 되고 여러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주는 경험이 된다. 반대로, 직면해야 할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거나 부인하게 되면, 결국 하나님을 대신하는 대상, 물질이나 권력을 추구하는 중독으로 이끌리게 된다. 목회자가 자기 인식과 치유의 과정을 배우고 경험하게 되면, 그 기초 위에서 목회자는 영적 목자로서 성도를 돕고 이끌 수 있는 궁극적 실천 목회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성도를 돕기 위해, 그들보다 먼저 더 철저히 자신을 점검하고 인식하고 치유해야만 할 의무를 지닌다.

영적으로 깨어 있는 것은 민감함과 관련이 있고, 이는 몸의 감각이나 감정을 민감하게 느끼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자신의 몸을 잘 돌보지 않거나, 정서적 감각을 무시하거나 왜곡하여 받아들이게 되면,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도 섬세한 지혜와 분별력을 발휘할 수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 그러므로 목회자가 자신의 몸, 감정과 소통하지 못하고 그것을 돌보지 않는다면 결코 영혼의 내적 경험에 민감할 수 없다. 자기 인식이나 이해가 부족한 건강하지 못한 목회자는 종종 성경을 왜곡하거나 성경 해석에서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된다. 또한, 목회자의 말씀 선포나 이해, 분별과 지혜 등은 목회자 자신의 영·혼·육이라는 거름망을 통해 전달된다. 인간은 영·혼·육의 온전한 연합으로 창조되었으므로 그 어느 영역도 간과하거나 소외시켜서는 안 된다. 온전함은 전체의 균형을 포함한다.

목회자는 자신의 모습 속에서, 또는 스스로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서, 자기 자신을 어떻게 느끼고, 반응하고, 경험하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목회자 스스로 자신에게 지금 현실의 내 모습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 중에 존재하는 모습이고, 나의 연약함이 주님의 은혜와 강함이 나타나는 통로가 됨을 인정하도록 계속 요구해야 한다. 다시 말해, 목회자가 자신의 결핍이나 상처에 정직하면, 그 자리를 대신할 그 무엇도 필요하지 않다. 하나님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목회자가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을 끊임없이 공급받는 비결이다.

요약하자면, 목회는 목회자 자신의 자기 통찰과 이해, 그리고 치유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져야 한다. 자신의 내적 결핍의 자리가 다른 것들로 채워지지 않도록, 잘못된 동기와 욕구로 목회에 왜곡된 방법을 동원하지 않도록, 자신의 연약함을 사랑의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 목회자는 자신을 점검하는데 그 누구보다 민감하고 엄격해야 한다. 그것은 당위나 위장된 모습이 아닌, 목회자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돌보는 것이다. 자신을 아는 만큼 타인을 돕고 이해할 수 있다. 나를 알지 못하면 타인을 도울 수도 이끌 수도 없다. 자신을 온전히 자각하고 볼 수 있는 것이야말로 사랑의 경험이며 치유이다. 그러므로 목회자 한 사람의 정직한 자기 인식은 그 어느 사역보다 가치 있는 일이며, 성도와 하나님을 위한 가장 소중한 봉사이다.

 

목회자의 자기 인식과 이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영적 분별의 명제들을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깨어있음’과도 관련이 있는 것들이다.

(1) 목회자 자신의 자기 이해와 통찰의 성숙은 하나님 인식의 성숙을 의미한다.

(2) 목회자 자신의 몸, 생각, 그리고 감정은 하나님을 드러내는 통로이다.

(3) 목회자는 자신의 내적 동기, 감정과 생각에 정직하게 반응해야 한다.

(4) 목회자가 정직하게 무능감을 수용하면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날 기회가 된다.

(5) 목회자는 목회 사역에서 결과와 함께 과정의 가치와 의미를 고려해야 한다.

 

교회개혁실천연대 기획포럼 “신앙인가 중독인가” – 상담적 관점에서 바라본 목회자와 종교중독(곽은진) – 강의 영상 보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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