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희망을 이야기하며 우리가 바라는 바는 세상이 바라는 바와 달라야 합니다. 남의 죄를 열심히 지적하며 분노하기 전에, 나의 죄도 그만큼 큰 것을 돌아보며 더욱 애통하며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님 한 분만을 더욱 사랑하고자 하며, 그렇게 살지 못하는 나와 공동체의 삶을 뉘우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근심하고 의분하는 신앙인과 신앙 공동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 나라의 의와 어긋나 있는 거리와 각도만큼, 우리의 애통함이 더욱 깊고 절절해지기를 원합니다.(본문 중)

임성빈(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기윤실 자문위원)

 

예년과 달리 하나님 앞에서 크게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평소 같았다면 복된 성탄의 계절을 보내고 기대와 희망으로 새로운 한 해를 맞았겠지만, 오늘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위기의 때를 위해, 세상의 희망, 소금과 빛이 되라고 신앙인들과 그 공동체인 교회를 불러주셨으나, 그 부르심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이 부끄럽고 참담합니다. 과연 오늘 우리는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절망스러운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중 어떤 이들은 현실의 모순을 변혁하려는 동력을 적개심과 분노에서 얻습니다. 심리학자 리처드 월터스(Richard Walters)는 인지적 혹은 행위적 요소들의 차이에 근거하여 분노를 세 가지로 구분합니다. ‘격분’(Rage)과 ‘분개’(Resentment)는 분노의 파괴적인 표현입니다. 그중에서도 격분은 ‘폭력적으로 분출되는 분노’인 반면에, 분개는 ‘보복을 겨냥하지만 억제된 감정’을 뜻합니다. 월터스는 많은 신앙인들이 ‘격분’을 죄로 간주하기에, 격분하기보다 ‘분개’를 많이 한다고 말합니다. 감정은 자제하되 눈에 보일 정도의 정의는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격분과 분개는 둘 다 자기중심성의 지배를 받으며 사람들에게 손상을 입힌다고 주장합니다. 한편, 거룩한 분노라고 부르기도 하는 ‘의분’(Indignation)은 공의와 사랑에 기초를 둔 분노의 건설적인 표현이라고 말합니다. 의분은 사랑에 근거하여 공의를 추구하며, 악을 파괴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사람들을 보호하려 애쓰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순과 교회의 모순, 즉, 죄가 횡행하는 사회적 현실을 보며 우리는 분노합니다. 때로는 격분하고 때로는 분개합니다. 하지만 공의와 사랑으로 세상을 변혁하려는 의분을 가지고 있는 신앙인들, 나아가 그 의분을 삶 가운데서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이들은 매우 적습니다. 신앙인의 관심은 마땅히 어떻게 더 공의로운 세상을 만들 것인가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분노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의분, 곧 거룩한 분노인지 지속적으로 물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물음을 갖고 삶을 반성할 때,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마태복음 5장 4절의 말씀은 큰 도전과 또한 격려를 줍니다. 일반적으로 애통함은 ‘슬퍼하고 가슴 아파함’을 뜻합니다. 대체로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잃었을 때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에 비하여, 성경이 말하는 애통함은, 우리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을 잃어버림으로 인해 슬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이 애통함은 슬픔 중에서도 매우 깊은, 근본적 슬픔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이 애통함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의가 이 땅에서 시행되지 않기 때문에 의인이 느끼는 영적인 슬픔입니다. 사탄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심지어 교육과 종교의 영역에서도 거짓과 폭력, 왜곡과 참소의 문화를 만들어 내며 이 세상에서 활개를 치고 전횡합니다. 이에 비하여, 진실과 평화와 정의의 하나님 나라는 우리의 눈앞에 분명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현실을 보며 느끼는 슬픔이 바로 애통함입니다.

 

 

신앙인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최대의 난제는 아마도 “왜 악인은 이 세상에서 번성하는데 의인은 고난을 받느냐?”,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시느냐?”라는, 이른바 신정론의 문제일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을 직시하고 애통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증언합니다. 하나님이 애통하는 자들을 지켜보고 계시며, 결국에는 위로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몰라도 하나님이 그 애통을 알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를 포착하여 유진 피터슨은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라는 말씀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습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다고 느끼는 너희는 복이 있다.

그때에야 너희는 가장 소중한 분의 품에 안길 수 있다.

(마태복음 5:4, 메시지 성경)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애통하는 사람, 애통하는 공동체가 될 수 있겠습니까? 세상은 몰라주어도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과 공동체가 어떻게 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물음에 성경은 이렇게 답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심령이 가난해져야 한다’(마 5:3)고 말입니다. 심령이 가난하여야, 자기와 자신이 속한 집단의 경험, 철학, 이익, 욕망을 절대시하거나 이념화하여 강변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가난한 마음으로 설 때, 비로소 자신의 죄악과 무능을 느끼고 깨닫게 됩니다. 그것에 대하여 슬퍼하게 됩니다. 바로 이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회개를 허락하여 주십니다. 회개는 자신의 죄와 세상의 죄에 대한 통절한 인식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며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애통하는 신앙인, 애통하는 교회는 불의한 현실과 타협하는 자들과는 구별됩니다. 애통하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죄와 세상의 죄에 대한 통절한 반성이 있고, 그러한 통절한 죄 인식은 회개를 동반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회개는 우리를 불의한 현실에 안주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라.” (고린도후서 7:10)

애통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회개는 우리로 하여금 온전한 ‘구원을 향하여’ 나아가게 합니다! 근심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단지 세상 근심을 하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하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물론 세상 근심도 쉽지는 않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위하여 근심하는 사람은, 더 많은 것을 얻고 더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부지런히 뛰어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근심의 결국은 영생이 없는 사망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근심하는 이들은, 비록 그들의 삶 역시 만만치 않고 때로 피곤하여 넘어지지만, 결국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2021년, 희망을 이야기하며 우리가 바라는 바는 세상이 바라는 바와 달라야 합니다. 남의 죄를 열심히 지적하며 분노하기 전에, 나의 죄도 그만큼 큰 것을 돌아보며 더욱 애통하며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님 한 분만을 더욱 사랑하고자 하며, 그렇게 살지 못하는 나와 공동체의 삶을 뉘우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근심하고 의분하는 신앙인과 신앙 공동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 나라의 의와 어긋나 있는 거리와 각도만큼, 우리의 애통함이 더욱 깊고 절절해지기를 원합니다.

“벼랑 끝에 서 있는 자가 복이 있음”을 깨닫고, “우리가 작아질수록 하나님과 그분의 다스림은 커진다”라는 진리를(마 5:3, 메시지 성경) 마음에 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의를 가슴에 새기며, 애통하는 성도, 애통하는 교회가 되며, 이 세상의 모순들을 하나님의 나라와 의로 변혁하려는 거룩한 분노의 삶을 사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세상으로부터는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으로부터 위로받는 삶, 그것이 가장 복된 삶임을 알고 감사하는 우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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