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는 농사에 가장 요긴한 동물이었고 제물로도 사용되었으므로 구약성경에는 빈번하게 등장한다. 에스겔 1장과 계시록 4장에서는 하나님의 보좌를 옹위한 생물들의 모양 중에 사람, 사자, 독수리와 함께 소가 등장한다. 또, 예수님 당시의 성전에서는 제물로 사용할 소와 양과 비둘기를 매매했으며(요 2:15). 예수님의 말씀 속에도 농사에 쓰는 다섯 겨리의 소가 등장한다(눅 14:19). 이 글에서는 초기 한국교회 역사 속에 등장하는 소와 관련된 장면 세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본문 중)

옥성득(UCLA 한국기독교학 교수)

 

소는 농사에 가장 요긴한 동물이었고 제물로도 사용되었으므로 구약성경에는 빈번하게 등장한다. 에스겔 1장과 계시록 4장에서는 하나님의 보좌를 옹위한 생물들의 모양 중에 사람, 사자, 독수리와 함께 소가 등장한다. 또, 예수님 당시의 성전에서는 제물로 사용할 소와 양과 비둘기를 매매했으며(요 2:15). 예수님의 말씀 속에도 농사에 쓰는 다섯 겨리의 소가 등장한다(눅 14:19). 이 글에서는 초기 한국교회 역사 속에 등장하는 소와 관련된 장면 세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한 겨리로 동역하는 소들: 유교, 도교와 기독교의 관계

만주에서 활약하며 한국어로 성경을 번역했던 선교사 존 로스(John Ross, 1842-1915)는 Mission Method in Manchuria(1900)에서 유교와 기독교의 관계를 한 겨리(두 마리)의 소에 비유했다. 예수교가 유교의 도덕을 배척하지 않고 더불어 동아시아인의 영성을 밭갈이하고 파종하는 동역자가 되어야 한다는 이미지를 제시한 것이다. 로스는 네비어스(John Livingston Nevius, 1829-1893)의 3자 방법을 만주에 적용하되, 네비어스보다도 중국 전통 종교인 유교와 도교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했다. 로스는 도교가 강한 만주에서 활동하면서 도교 사원의 주지들과 교제했다. 요한복음 1장을 놓고 나눈 서면 대화에서 한 도교승은 요한복음 1장의 말씀(道), 빛(光), 흑암(黑暗), 은혜(恩惠), 진리(眞理) 등의 개념이 도교와 흡사하다고 말했다. 이런 종교 대화의 한 결과로, 로스는 1890년 선양교회를 건축할 때 건물 하반부는 서양 벽돌 양식으로 짓고 탑처럼 올라가는 상단 부분은 도교 사원 양식을 차용하여 독특한 반양반중 양식의 예배당을 만들었다. 만주에서 도교와 공존하면서 동시에 도교를 성취하는 길로서 기독교를 제시하려 했던 로스의 토착화 신학이 반영된 것이다.

마페트(Samuel Austin Moffett, 1864-1939)는 로스로부터 배워 리(Graham Lee, 1861-1916)와 길선주와 동역하면서, 한옥 건물과 도교의 영성으로 평양 선교 지부를 세계에서 가장 토착적이면서 가장 큰 선교지부로 만들었고, 역시 로스의 영향을 받은 게일(James Scarth Gale, 1863-1937)은 이창직 등과 동역하면서 가장 토착적인 조선어 풍으로 성경을 번역하는 학자 선교사가 되었다.

 

한 겨리의 소

 

소 대신 쟁기를 끈 사내들

다음은 존스(George Heber Jones, 1867-1919) 선교사의 소책자 『Korea』(1907)에 한국교회의 ‘자급’의 한 예로 소개된 일화인데, 이후 미국 교회와 선교계에서 널리 회자된 유명한 이야기이다.

평양 선교 지부에서 … 건장한 한 농부가 예수교인이 되었다. 그는 그 마을의 첫 개종자였고, 자신의 집을 첫 예배 처소로 제공했다. 얼마 후 마을 교회가 크게 늘어 더 이상 집에서 모일 수 없었고, 새 예배당을 지었다. 그러나 갚아야 할 빚을 졌다. 갚을 돈이 없었다. 작은 무리의 교인들은 이미 낼 수 있는 돈을 다 헌금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농부 영수에게는 팔 수 있는 것이 하나 남아 있었다. 바로 쟁기질에 쓰는 황소였다. 그는 장날을 택해 시장에 나가서 소를 팔았고 교회 빚을 갚았다. 이듬해 봄 선교사가 그 마을을 방문했고, 영수를 찾았다. 논에서 쟁기질을 한다는 말을 들은 선교사는 걸어서 들판 쪽 길로 갔다. 그런데 보이는 장면은 이것이었다. 쟁기를 잡고 있는 사람은 그 가족의 아버지인 나이 든 백발의 노인이었고, 갈아엎은 두렁을 따라 황소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영수와 그 동생이 있었다. 올해는 두 사람이 쟁기를 끌면서 그 논 전체를 갈아야 했다.

 

노련한 소가 앞서가는 조선의 쟁기질, 엽서, 1910년경

 

1905-10년 한국교회가 급성장할 때 한국교회의 특징은 ‘자급’하고 ‘자전’하는 토착 교회의 형성이었다. 교회의 재정적 자급을 위해 교인들은 소를 팔고 대신 몸으로 쟁기질을 했으며, 쌀을 팔아 헌금하고 대신 겨울 내내 귀리를 먹기도 했으며, 여자들은 금비녀나 금가락지를 팔았다.

지난 40년간 급성장한 한국 개신교회의 그늘에는 분투하고 신음한 80%의 미자립 교회들이 있다. 교회들 중 20%만 중형 대형으로 성장해 나갔고 수많은 교회들이 사라지거나 미자립 상태로 남아 있다. 교회 분포에도 ‘파레토 법칙’(Pareto principle, 80 대 20 법칙)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그러나 1910년대까지, 혹은 해방 이전까지, 한국교회는 그 반대였다. 소를 팔고 몸으로 쟁기를 끄는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1910년 에든버러선교대회는 80%가 자립하여 건강하게 성장하는 한국교회를 보며 찬사를 보냈다. 당시 출판된 모트(John Raleigh Mott, 1865-1955)의 책도 그것을 지적하며, 한국이 아시아에서 첫 기독교 국가가 될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100년 후 다시 에든버러에서 열린 선교대회에서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80%가 미자립 교회라는 부끄러운 사실을 차마 이야기할 수 없었다. 팬데믹으로 생존에 허덕이는 작은 교회들을 살리는 운동이 일어나야 할 때이다.

 

종을 나르는 소

한국교회와 소의 관계를 보여 주는 다른 한 장면은 1909년 전주서문교회 종을 나르는 황소의 모습이다. 다윗 시대에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나르던 두 마리의 소를 떠올리게 한다(사무엘하 6장). 웃사의 죽음이라는 비극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궤가 예루살렘으로 옮겨지자 다윗은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전주서문교회 교인들도 새 예배당의 종각에 종을 달고 그 종소리를 들었을 때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목에 작은 종을 달고 교회의 큰 쇠 종을 끌었던 황소도 전주성에 종소리가 울려 퍼질 때 춤을 추었을 것이다.

 

전주에서 교회로 종을 나르는 황소와 교인들, 1909년 [PHS]

올해는 신축년(辛丑年), 희생과 순종과 멸사봉공의 상징인 소의 해이다. 소에서 얻은 백신(우두)으로 천연두 역병을 이기고 뭇 생명을 살렸듯이, 소 같은 이들이 동역하며, 헌신과 순종과 인내로 묵묵히 한국교회를 되살리는 새해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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