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교회에서 쓰는 말들이 사회와 유리하는 현상을 걱정하고 있는데, 민주 사회의 중요한 도구인 회의의 운영에서 교회가 최소한 사회 통념에 뒤떨어지지 않아야 하겠기에, 회의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이해, 회의 진행 관련 용어들, 기초적인 회의 준칙을 간단하게라도 한번 정리해보고자 합니다.(본문 중)
전재중(변호사, 법무법인 소명 대표변호사)
잘못된 교계의 회의 관행
이사장: 그러면 제1호 안건, “2021년 사업 계획”을 부의하겠습니다. 이미 자료를 배부하여 드렸습니다만, 이사님들 질문이나 의견을 말씀해 주십시오.
A이사: 원안대로 받기로 동의합니다.
B이사: 재청합니다.
이사장: 동의와 재청이 있으므로 가부를 묻기로 하겠습니다. 가하시면 ‘예’로 답하시기 바랍니다.
이사들: 예.
지난 연말, 한 사회복지법인 이사회의 장면입니다. 교계 단체 회의에서 흔히 보는 장면인데, 이렇게 결의한다고 하여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회의의 일반 규칙에 어긋난 점이 있고, 젊은 세대가 보기에는 너무 어색합니다. 우선 위 장면에서 틀린 부분을 지적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회의 자료에 이사장이 부의(附議)한 안건이라고 통보한 내용은 이미 의안으로 성립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안 성립에 관한 동의(動議), 재청(再請)은 필요가 없으며 전혀 무의미한 절차입니다. 둘째로, 의안이 성립되면 다음에는 토론을 해야 합니다. 토론도 없이 바로 가부를 묻는 것은 특별히 모여서 회의를 하는 일의 의미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사실, 위 복지법인의 이사장은 32년 동안 변호사로 일한 저였고, 이사들도 목사님, 교계 기관장, 교계 언론인 등이었습니다. 며칠 후, 저는 또 다른 교계 지성인들이 모인 총회에 참석했는데, 의장이 “재청, 삼청이 있었으므로 이 의안은 확정된 것으로 하겠습니다”라고 선언하는 것을 보았고, 이건 문제다 싶어 제가 현장에서 지적하여 의결 절차를 다시 거치도록 하였습니다. 왜 이런 이상한 회의 진행이 교계에서 관행처럼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실무 법률가로서 일반 회사나 다른 사회단체에서 회의를 할 때에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도, 교회나 교계 단체의 회의에 참석해서는 좀 이상하다 싶어도 고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많은 이들이 교회에서 쓰는 말들이 사회와 유리하는 현상을 걱정하고 있는데, 민주 사회의 중요한 도구인 회의의 운영에서 교회가 최소한 사회 통념에 뒤떨어지지 않아야 하겠기에, 회의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이해, 회의 진행 관련 용어들, 기초적인 회의 준칙을 간단하게라도 한번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회의 규칙에 관한 실정법적 근거
우선 회의를 어떻게 진행하여야 하는지에 대하여 어떤 법적인 근거-이것을 법원(法源)이라고 합니다-가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회의의 성립이나 의결의 효력 문제는 모두 민사에 속하므로 민법이 적용되는데, 민법 제1조는 “민사에 관하여 법률에 규정이 없으면 관습법에 의하고 관습법이 없으면 조리에 의한다”라고 정하고 있습니다. 국회나 지방자치단체의 회의 절차는 법률(헌법, 국회법, 지방자치단체법 등)이 규정하고 있지만, 일반 단체의 회의에 대하여는 특별한 법률이 없으며1) 관습법이 형성되어 있지도 않기 때문에, 결국 ‘조리’가 회의에 관한 법원(法源)이 됩니다. 조리(條理)란 ‘사물의 이치, 법의 일반 원리’라는 의미인데 법률 실무에서는 흔히 경험칙, 사회 통념, 신의성실의 원칙 등으로 표현합니다.
결국 회의를 어떻게 진행하여야 한다는 성문화된 법령은 없으므로, 회의에 관한 건전한 상식과 사회 통념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데, 역사적으로는 1,000여 년간 영미 의회에서 형성되어온 회의 규칙을 집대성한 “로버트 토의절차 규칙”(Robert’s Rules of Order, 초판 1876: 줄여서 RR이라 합니다)이 현재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기준이라 할 수 있으므로 참고할 만하고, 국내에서는 한국회의법학회(1999. 4. 설립)가 RR을 요약한 ‘한국표준회의규칙’(2003. 10. 15)을 작성하여 공표하였습니다. 물론, 이는 참고 자료일 뿐이므로, 법적으로 문제가 될 때 이 규칙이 판단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고, 회의에 관한 일반적인 조리에 따라 판단하게 됩니다. 따라서 현재 법원에서 다투고 있는 회의 관련 분쟁에서도 특정 법률이나 규칙의 해석이 아니라, 회의에 관한 일반적인 이치, 사회 통념, 그리고 관련 판례 등을 판단기준으로 하여 사안마다 법관이 판단합니다.
회의 진행 단계에 따른 유의점
회의의 진행은 ‘의안의 성립’ ⇒ ‘심의, 찬반 토론’ ⇒ ‘의결’ 등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므로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1) 의안의 성립 단계
문제가 되는 동의, 재청, 삼청 등의 용어들은 바로 이 의안의 성립에 관한 것들인데, 현실에서 오해가 가장 많은 부분입니다. 대부분 회의(총회나 이사회)에서 의안의 성립은 의안 제출권자인 이사회나 이사장, 또는 일정 수 이상의 이사나 회원 등이 회의 전에 의안을 제출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회의에서는 의안의 성립을 위한 별도의 절차가 필요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회의장에서 하는 대부분의 동의, 재청은 물론이고, 의안 채택 순서 등도 사실 불필요한 절차들입니다. 의안이 제출됨으로써 이미 안건으로 성립된 의안에 대해서는, 의장이 부의(혹은 상정)할 것인지 결정할 여지가 없고, 의안을 채택할 것인지 또다시 결의할 이유도 없기 때문입니다(대법원 96다29786 판결).
여기서, 논란이 되는 ‘동의’(動議)의 개념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동의(動議)란 단체의 중요한 사항에 대하여 단체의 총의에 의한 결의를 받고자 제출하는 제안을 말합니다. 이것은 영미 회의 규칙에서 ‘Motion’이라는 용어를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한자 일으킬 동(動)자를 사용하여 동의(動議)라고 한 것인데, 찬성을 뜻하는 동의(同意)와 발음이 같아 혼동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동의(動議)는 일상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말이며, 회의 중에 ‘동의합니다’라고 말하는 분들은 대부분 동의(同意, 즉, 찬성)의 뜻으로 말하고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진작부터 동의(動議)라는 말 대신에 ‘제안’(提案)으로 바꾸자고 하시는 분들이 있었는데, 저도 그 의견을 전적으로 지지합니다. (이하에서 동의라는 말은 모두 同意가 아닌 動議를 의미합니다.)
동의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건 제출 권한이 있는 이사회나 이사장에 의한 의안의 제출이고, 의안 제출의 경우 그 자체로 의안으로 성립하기 때문에 실제 회의장에서는 동의를 할 일이 거의 없습니다. 현장에서 동의를 하여야 할 경우는 사실상 ‘폐회하자’는 정도일 것입니다.
임원 선임이나 자산 매각 등 단체의 중요한 결정이 필요한 안건의 동의를 ‘주된 동의’(Main Motion)라고 하고, 그것에 부수하는 동의를 ‘부수 동의’(Incidental Main Motion)라고 하는데, 부수 동의에는 휴회, 의장 불신임이나 임시 의장 선임, 회기 연장, 폐회 등이 있습니다. 주된 동의는 주로 회의 전에 의안을 제출하는 방법으로 하지만 부수 동의는 회의 현장에서 하게 되는데, 누가 이러한 부수 동의를 하면 이것을 의제로 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한 후, 의제로 결정되면 토의에 넘기게 됩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동의를 하였다고 이를 전부 안건으로 삼아 토론하고 의결을 하여야 한다면 회의는 혼란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로버트 토의절차 규칙” 등에서는 이러한 부수 동의가 의안으로 성립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참석자 1명이 추가(Second)로 뜻을 같이하여야 한다고 보았는데, 그것이 ‘재청’(再請, Second)입니다. 요컨대 재청은 동의된 내용을 정식 안건으로 처리해 달라는 의사 표시입니다. 따라서 처음부터 복수의 참석자가 동의를 할 경우 재청은 필요가 없습니다.
(2) 심의 토론 단계
안건이 의안으로 성립되면, 이제 심의와 찬반 토론에 들어가야 합니다. 중요한 결정을 회의 방식의 모임에서 결정하도록 한 취지는 함께 모여 자유롭게 토론하는 과정에서 기존 의견이 바뀌기도 하면서 최선의 안에 도달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회의에서 공정하고 충분한 토의는 매우 중요하므로 찬반 양측에 최소한 한 번 이상의 토론 기회를 허용하여야 합니다. 토의 절차 없이 의결했다 하여 항상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하자 있는 회의 절차임은 분명합니다. 회의에 비회원을 대리 참석시키지 않는 이유는, 비자격자는 단순 심부름은 할 수 있지만 토론에 참여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3) 의결 단계
의결을 어떤 방식으로 하여야 하는지를 정한 규칙은 없습니다. 조리(條理)에 비추어 전체 회원의 의사를 묻는 적절한 방법이면 폭넓게 허용됩니다. 따라서 흔히 하듯이 반대하는 사람이 있는지 묻고 박수를 치는 것으로도 의결이 가능합니다(서울중앙지법 2001가합18662 판결). 그러나 참석자 중에서 반대의 의사를 명백히 표시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 전체 참석자들에게 찬성 반대의 의사를 묻고 표를 세는 방법으로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수원지법 여주지원 2019가합10681 판결).
그리고 의사를 물을 때는 동음이의어로서 혼란을 주는 ‘동의’(動議/同意)라는 말은 가능한 한 피하고,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를 묻는 것이 좋겠습니다. ‘가하시면 예하시오’라는 관행적 회의 용어는 한국교회 초기에 선교사들이 들여온 미국교회 회의 규칙을 번역하면서 1920년대부터 사용하여 온 것으로 추측되는데, 명백히 비문(非文)이므로 이제는 피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추천 서적
한국회의법학회, 『표준회의 진행법 교본』(법률신문사, 2018).
헨리 로버트 3세, 『회의진행법 입문』(Robert’s Rules of Order Newly Revised in Brief), 김찬희 옮김(대한기독교서회,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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