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인류(mankind)가 이토록 다양한 방식으로 여성을 학대하고 괴롭히고 못살게 굴었다니, 정말 기가 막힌다. 이 책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말도 안 되는 폭력의 희생자가 된 이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엄청난 분량의 자료와 기록, 그리고 희생자들의 목소리와 증언이 몸과 영혼을 콕콕 찌른다. 정말 읽기 괴로운 책이다. 더 괴로운 건, 이 책에서 소개하는 이야기가 결코 이상한 나라에서 일어난 이상한 이야기가 아니라, 불과 몇십 년 전까지, 아니 지금도,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도 버젓이 반복되는 이야기라는 점이다.(본문 중)

최경환(과학과신학의대화 사무국장)

일레인 스토키 | 『우리가 멈추지 않는다면』 | 양혜원 옮김

IVP | 2020.7.20. | 440면 | 21,000원1)

 

 

그동안 인류(mankind)가 이토록 다양한 방식으로 여성을 학대하고 괴롭히고 못살게 굴었다니, 정말 기가 막힌다. 이 책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말도 안 되는 폭력의 희생자가 된 이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엄청난 분량의 자료와 기록, 그리고 희생자들의 목소리와 증언이 몸과 영혼을 콕콕 찌른다. 정말 읽기 괴로운 책이다. 더 괴로운 건, 이 책에서 소개하는 이야기가 결코 이상한 나라에서 일어난 이상한 이야기가 아니라, 불과 몇십 년 전까지, 아니 지금도,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도 버젓이 반복되는 이야기라는 점이다. 분노와 무력감과 부끄러움이 교차하면서 복잡한 감정을 일으키는 책이기에, 결코 허투루 읽을 수 없었다. 인류가 저지른 폭력의 내용을 하나씩 정리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것 자체가 속죄와 사죄를 이루는 첫걸음일 것이다. 몇 가지 인상적이었던 내용을 소개해 본다.

인도에서는 결혼할 때, 여자가 남자의 집으로 지참금을 보내야 하는데, 그 액수가 가문의 명예와 연결되기 때문에 대출을 해서라도 큰돈을 마련한다. 그래서 은행 대출의 80%가 결혼 지참금이라고 한다. 신부가 남자 쪽에서 요구한 지참금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살해를 당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있다. 지금도 인도에서는 지참금 문제로 한 시간에 한 명의 여성이 사망한다고 한다. 성 감별에 따른 낙태 문제도 심각하다. 딸은 재산 상속을 받지도 못하면서 나중에 많은 돈을 써야 하기 때문에, 의료 혜택을 누리는 부유한 가정일수록 낙태 시술에 적극적이다. 성비의 불균형은 다시 심각한 사회 문제를 야기하는데, 신붓감을 찾지 못한 남성들로 인해 여성 납치나 미성년 여성의 매매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이다. 여성 차별과 폭력이 결국에는 사회 전체를 악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는다.

주로 아프리카 지역에서 여전히 시행되고 있는 여성 할례는 문명의 충돌로 인해 그 심각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수단이나 케냐에서는 여성의 순결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어린 여성의 성기를 절단하고 훼손했다가 다시 봉합하는 시술을 지속하고 있다. 그 역사와 명목이 무엇이든 지금도 이런 위험한 시술은 계속되고 있다. 문제는 이를 반대하여 저지하려는 외부의 세력과 이를 지키려는 사람들 간의 문화적 충돌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외부인들이 미개한 문화라며 공격할수록 전통을 지키려는 세력은 더욱 고집스럽게 그 기세를 올린다. 문화다원주의 사회 속에서 타문화에 대한 인도주의적 간섭은 상당히 어렵고도 예민한 문제다. 보편적 인권과 문화적 특수성의 대립 문제는 정치철학 분야의 오래된 난제다.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스스로 개선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린 여성의 생명을 보호하고자 하는 보편적 인권의 가치는 많은 이들의 노력과 헌신으로 두꺼운 문화의 벽을 조금씩 허물고 있다. 그렇게 조금씩 관습과 문화와 전통은 시대에 발맞춰 변해 간다.

여성 할례, 아동 강제 결혼, 가족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여성 살해 같은 문화는 어쩌면 특정한 지역, 특정한 전통에만 해당하는 폭력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가정 폭력은 전혀 다르다. 가정 폭력으로 인한 여성 살해는 국적과 나라를 불문하고 전 세계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 가정 폭력이 무서운 이유는 대부분 피해자가 잘 드러나지도 않고, 통계로 잡히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피해자가 직접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을 때나 가서야 가정 폭력을 알아차릴 수 있고, 심지어는 피해자가 죽은 후에 범죄 사실이 밝혀지기도 한다. 전 세계적으로 살해당하는 여성은 절반 정도가 가족에게 살해당하고, 그중 대부분은 가해자가 자신의 파트너라고 한다. 물론 그들은 대부분 남성이다. 가정 폭력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막대하다. 선진국일수록 그 비용이 더 커진다. 폭력적인 사회일수록 병원과 보험회사 그리고 법원에 쏟아붓는 돈이 점점 불어난다.

이렇게 여성 폭력은 단지 여성 개인이 홀로 오롯이 감당해야 할 사적인 문제가 아니다. 이는 사회적 문제이며, 나아가 한 국가의 법과 문화와 경제가 맞물려 돌아가는 구조의 문제다. 결국 이는 공적 문제다. 개인의 노력으로도 고칠 수 없고, 어느 한 단체가 애를 쓴다고 바뀌는 일이 아니다. 지속적인 운동과 캠페인, 지치지 않는 헌신과 수고가 결합할 때, 그리고 시민들이 이를 자신의 문제로 여기고 함께 연대할 때, 비로소 조금씩 개선될 수 있다.

책의 1장부터 9장까지는 이렇게 전 세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젠더 기반 폭력들을 소개한다. 각각의 내용을 전혀 몰랐던 것도 아니고 아예 예상하지 못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모아서 살펴보니 정말 어마어마하다. 사소한 일상의 영역뿐 아니라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여성들은 폭력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고, 심지어 국가가 폭력의 주체가 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런 폭력을 문화적 차이나 종교의 차이일 뿐이라고 여기며 덮으려 하는 시도다. 결국 여성 폭력을 근절하고 막기 위한 법 제정이 중요함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물론 사회 구호 단체라든가 다양한 국제기구가 그동안 큰 역할을 해왔고, 앞으로도 이들의 활동으로 많은 여성들이 도움을 받겠지만, 가장 강력하면서도 실효를 거두는 것은 역시 법 제정이다. 여성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하는 법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상황은 완전히 역전될 수 있다. 법이 제정되려면 정치가 바뀌어야 하고, 정치가 바뀌려면 결국 사람들의 인식과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길고 오랜 싸움이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싸움이다.

이어서 10장부터 13장까지는 앞에서 소개한 내용에 대한 다양한 이론적 분석과 해결책을 소개한다. 사회 문제의 원인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생물학적 결정론이나 사회과학의 도움을 받으면 문제를 좀 더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여성에 대한 폭력을 문명의 기원에 관한 문화적, 인류학적 연구를 통해 살펴볼 수도 있고, 가해자 개인의 심리를 연구해 인지구조나 패턴을 분석할 수도 있다. 가해자의 가족 관계를 분석하거나 권력의 구조적 문제를 연구해 강압의 형태들을 분석하기도 한다. 사회생물학이나 진화심리학의 입장에서 젠더 폭력을 설명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문제의 원인을 추적하다 보면, 인간은 그저 불의한 시스템과 구조의 희생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남자는 원래 그렇게 생겨 먹었다고 여기거나, 남자도 어쩔 수 없는 희생자였다고 핑계를 대는 것이다. 한낱 개인이 사회 구조나 체제를 바꾸기는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결정론적 인간관을 단순히 수용하는 또 다른 편견일 수 있다.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회일수록 강간과 성폭력은 훨씬 빈번하게 일어난다. 여기에 문화적, 종교적 억압이 결합하면, 여성들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젠더 기반 폭력에 노출되고 심지어 그것을 신의 뜻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여성은 이런 문화를 그대로 내면화하게 되어 변화를 두려워하고 오히려 성 평등을 적극적으로 반대하기도 한다. 이런 사회 속에서 남성들 역시 폭력적 지배와 여성에 대한 학대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관행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남성들은 자신도 어쩔 수 없었다며 스스로 핑곗거리를 만든다. 이렇게 가부장제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해를 끼쳐 파괴적이고 수동적인 인간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므로 이런 불의한 문화와 구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남성들 역시 인간성을 상실하고 자신을 파멸의 길로 몰아갈 것이다. 남성은 가부장제 문화 속에서 상황 인지 능력이 떨어지고, 스스로 의지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

우리 남자들은 여자들을 지지하기 위해 변해야 하는 게 아니라, 수 세기 동안 가부장제에 노출되어 금수처럼 변해 버린 스스로를 구해야 한다. (306쪽)


1) Elaine Storkey, Scars Across Humanity: Understanding and overcoming violence against women (London: SPCK,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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