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걷기가 영감의 원천이 될 수 있는 걸까? 나의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걷기는 안정됨과 활동적임의 중간에 있는 특수한 상태이기 때문인 것 같다. 가만히 앉아 사색을 하면 피로감과 졸음이 몰려와 사색을 방해한다. 많은 활동이 필요한 격한 운동이나 노동은 그 행위 자체에 집중을 해야 하기에 사색할 기회를 포착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걷기는 사색에 적합한 아주 절묘한 정신 상태를 유지시켜준다.(본문 중)

모은우1)

 

우리 집에서 직장까지는 3.76km, 걸어서 출근하면 55분 정도가 걸린다. 출퇴근에 왕복 2시간 가까운 시간을 사용하는 셈이다. 하지만 나는 회사에 취직한 날부터 지금까지 대부분의 날을 도보로 출퇴근하고 있다. 사실 출퇴근으로 매일 두 시간을 걷는 건 남들이 보기엔 지칠 만한 일이지만, 나에겐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진다. 대학생 시절엔 등하교 시간이 4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전부 걷기로 채워진 시간이었다. 그때에 비하면 걷는 양이 훨씬 줄어들었다.

원래부터도 걷기에는 익숙했지만, 내가 걷기를 더욱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건강 때문이다. 대학생이 되고 처음에는 교통비를 아끼려고 하루 4시간을 걸어서 다녔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해서 학교 기숙사에 들어간 후에는 달라졌다. 기숙사에서 지내면서 걷는 양이 극도로 줄어들었고, 친구들과 자주 술자리를 가지며 단기간에 체중이 30kg이 넘게 늘었다. 그 결과 어느 날 허리 디스크가 생겼고,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저린 상태로 오래 고생을 했다. 디스크를 집어넣는 시술을 받았지만 고통은 더 심해질 뿐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의사 선생님의 권유로 다시금 많이 걷는 생활로 돌아갔다. 그랬더니 참 신기하게도 나를 괴롭히던 그 지긋지긋한 허리 통증이 점차 줄어들었다. 그리고 디스크 발병 후 10년째인 현재, 통증은 사라지고 건강한 상태가 되었다.

이런 일 이후로, 나는 ‘돈이 있어도 웬만한 거리는 차를 타지 않고 걸어서 다닌다’는 원칙을 세웠다. 이런 원칙을 듣고 어떤 이들은 출퇴근하는 도보 이동 시간이 아깝다고 말하기도 한다. 자가용을 이용하면 왕복 20분 거리인데, 차라리 돈으로 시간을 사서 그 시간을 의미 있게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말이다. 하지만 관점을 바꾸어 볼 수도 있다. 걷는 시간을 줄여서 아낀 한두 시간을 늘 의미 있게 사용하면 좋겠지만, 많은 경우 여러 가지 의미 없는 시간 때우기로 채워지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나의 출퇴근 시간은, 좀 길긴 하지만, 전부 운동 시간으로 채워져 있다. 2,500년 전에 살았던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최고의 운동은 걷기이고, 최고의 양약은 웃음이다’라는 말을 남기지 않았던가. 지금보다도 사람들이 더 많이 걸었을 것이 틀림없는 2,500년 전에도 최고의 운동이 걷는 것이라는 말을 남길 정도이니, 걷기의 효능은 시대를 초월하는 것이 틀림없다.

 

 

걷기는 또한, 바쁜 현대인들에게 차분히 사색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걷고 있을 때는 멍한 정신 상태로 이동만 하는 것이 아니다. 걷기는 사색하기에 최적인 상태를 만든다. 위대한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진정으로 위대한 사상들은 모두 걷다가 잉태되었다”라는 말을 남겼다. 나는 그 말에 절대적으로 공감한다. 회사에서 내가 맡은 기획팀 일에는 늘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그런데 돌아보면, 좋은 기획들이 걸어서 출퇴근하며 진지한 사색에 잠겼을 때 생겨난 적이 많았다. ‘소요학파’를 세운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산책로를 거닐면서 제자들을 가르치기를 즐겼다고 한다. 소요학파의 소요(逍遙)라는 말이 ‘정한 곳이 없이 슬슬 거닐어 돌아다니는 것’을 의미한다. 『순수이성비판』을 쓴 임마누엘 칸트는 날마다 항상 같은 시간에 산책을 해서 행인들이 칸트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시계를 맞추었다는 것도 유명한 이야기이다. 『사회계약론』과 『에밀』을 집필한 장 자크 루소는 어떤가? 그 역시 걷기에 미쳤던 사상가인데, 그는 “나는 걸을 때만 사색할 수 있다. 내 걸음이 멈추면 내 생각도 멈춘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어째서 걷기가 영감의 원천이 될 수 있는 걸까? 나의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걷기는 안정됨과 활동적임의 중간에 있는 특수한 상태이기 때문인 것 같다. 가만히 앉아 사색을 하면 피로감과 졸음이 몰려와 사색을 방해한다. 많은 활동이 필요한 격한 운동이나 노동은 그 행위 자체에 집중을 해야 하기에 사색할 기회를 포착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걷기는 사색에 적합한 아주 절묘한 정신 상태를 유지시켜준다. 걷는 행위 자체가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고 전신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 또, 걸으면서 눈앞에 펼쳐지는 넓은 세상과 다양한 풍경을 바라보게 되면, 자신의 고집이나 아집, 고정 관념들이 하찮게 느껴지며, 더 넓은 생각의 바다를 향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선물이다. 그러나 이렇게 좋은 걷기를 현대인들은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 걷기는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기본적인 기능이지만, ‘편리’라는 명목으로 그 기능을 거부하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가 본래 지니고 있던 축복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건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래서 나는 걷기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불편’을 감수하기로 결정했다. 그 불편함은 인간을 인간답게 돌려놓으며, 현대인들이 잊고 있던 자연의 축복을 즐길 수 있게 해 준다. 따라오는 건강은 덤이다.

 


1) 다이룸협동조합에서 기획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차별과 편견을 뛰어넘어 모두의 개성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문화 다양성 인식 개선’을 목표로 오늘도 열심히 걷고 있는 걷기 예찬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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