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파도타기] 예능<유 퀴즈 온 더 블럭> 보통 청년 인 더 블럭
진느(조혜진 청년운동본부장)
건강 관리 차 야식을 먹지 않은 지가 꽤 되었지만, 그 밤은 참을 수가 없었다. TvN의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스핀오프인 “난리났네 난리났어”의 첫 화는 무려 떡볶이 여행 컨셉이었다. 제 1 난리 : 쌀 떡볶이집, 제 2 난리 : 밀 떡볶이집, 제 3 난리 : 즉석 떡볶이집으로 이어지는 떡볶이 먹방에 정신이 혼미해진 나는 밤 9시가 넘은 시간에 냄비에 물을 올렸다. 요리엔 젬병이지만, 집엔 마침 라면처럼 손쉽게 조리하는 떡볶이 ‘밀키트’가 두어 봉지 남아있었다. 낮에 부모님이 배달 중국 음식을 시켜드시고 남은 군만두도 있었다. 삶은 달걀까지 만들고 야끼만두를 대체할 군만두를 넣어, 제대로 만든 떡볶이로 야밤에 파티를 벌였다. 좀처럼 얼굴이 붓지 않는 체질인데, 다음 날 아침 화상회의에선 띵띵 부은 얼굴을 공개해야만 했다.
문화 콘텐츠를 좋아하지만, 유독 예능을 잘 안 보는 편이다. 화제의 장면 정도만 vod로 다시 보고, 주요 콘텐츠는 연예 기사로 확인한다. 가볍고 유쾌한 분위기가 싫은 건 아니지만, 그들만의 즐거운 시간을 관망만 하는 것은 왠지 허탈하달까. 개성있는 출연진, 캐주얼한 의상, 일상적인 토크 등의 요소가 친근하게 다가오며 경계심을 해제시키지만, 어느새 살며시 소외되어 있달까. 나는 예능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참여자로서 함께 놀고 싶지, 관찰자이고 싶지 않다.
일반 사회 생활에선 소외되는 일이 워낙 부지기수다. 외모가 빼어난 사람, 학벌이 높은 사람, 인맥이 화려한 사람, 경제력이 있는 사람, 성과가 특출난 사람들이 주목받는다. 이런 세상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소외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배제되지 않기 위해 애쓰기보다 고유한 나 자체의 정체감을 기억하며 생명력을 유지하려고 한다. 비록 사회의 논리 안에서 우위를 선점하지 못하는 존재일지라도, 나는 나대로 고유하다는 단단한 믿음을 지켜본다.
헌데 때론 예능을 시청하면서 느끼는 비슷한 소외감이 의외로 기독교 내부에서 느껴진다. 세상에서 주목받지 못했더라도 기독교 세계관 안에서의 나는 예수님이 찾아 헤맨 한 마리 양이자, 여인이 등불을 들고 샅샅이 뒤진 한 드라크마 같은 존재인 줄 알았는데 말이다. 공동체 내 유력한 어른과의 친목, 세속적인 번영과 성공의 성취, 높은 학식과 전문 지식을 가진 이들이 그냥 주목받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이들로 포장되어 주목받을 때, 내가 소소하게 올려드리던 영광들은 순식간에 그림자가 되었다. 비록 칸 영화제 출품작의 여자 주인공이 되지도, 한류 열풍을 이끄는 K-POP 아이돌은 되지 못했더라도 예능 프로그램에서 같이 웃고 떠드는 사람은 되는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구경꾼에 불과했던 어떤 순간들은 좀 더 흔적을 남겼다.
나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안전하게 소속되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나의 공동체가 ‘그들만의 리그’였을 때가 있었다. 불려다니며 ‘우수 사례’가 되어 마이크를 잡았던 이들의 간증을 빙자한 성공담 앞에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헌신한 사람들은 잊혀져 갔고 나는 양도 받은 적도 없는 대리 소외감을 느꼈다. 그들 중 몇은 이후의 삶에서 스스로 ‘우수 사례’가 아님을 증명해내기도 했는데, 굳이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더라도 이런 분위기 자체는 늘 달갑지 않다.
후에 나는 기독교 안에서 세속 가치로 사람을 평가하고 주목하는 일과 아무도 몰래 싸우기 시작했다. 믿음이 진실하고, 일상이 단정하며, 헌신이 빛나는 사람을 세워주고, 아끼고, 사랑했다. 그들이 교회 안에서만은 누군가를 빛내주느라 그림자로 전락하는 일은 없어야만 했다. 그리고 원했다. 나도 그렇게 사랑받길. 내 빛을 누군가 알아주길.
예능을 즐겨보지 않는 내가 최근 흥미를 갖고 꾸준히 보게 된 예능이 있다. 유재석, 조세호가 출연하는 “유 퀴즈 온 더 블록”이다. 현재는 코로나 19로 인해 포맷이 조금 바뀌긴 했지만, 본래는 메인 MC인 유재석과 조세호가 길을 걷다가 우연히 만난 시민과 인터뷰를 하고 함께 퀴즈를 푸는 식으로 진행된다. 공식 프로그램 사이트에선 ‘유재석과 조세호가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직접 찾아가 소박한 담소를 나누고 깜짝 퀴즈를 내는 길거리 토크&퀴즈쇼 프로그램’ 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일명 ‘자만추’1)를 통해 일상을 사는 중인 시민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자만추를 통해 만나게 되는 인물 중엔 ‘동네 미용실 할머니’도 있고, 사무실에서 잠시 나온 ‘과장님’도 있고, 하교하던 ‘초등학생’도 있다. 외모가 빼어나지 않은 사람, 말투가 방송용이 아닌 사람, 인격이 고상하거나 침착하지 않은 사람이 태반이다.
하지만 전문 방송인들이 아닌 이들과 대본 없이 진행하는 이 대화는 신선하고, 유쾌하고, 감동적이다. 배움을 주고 인상을 남긴다. 물론 프로페셔널 MC의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역량이 큰 몫을 차지하겠지만, 방송에 나오는 평범한 시민의 얼굴은 빛이 나고, 이야기는 몰입감이 있다. 지인 중에 누군가는 진짜 행복해보이는 유재석 때문에 이 프로그램을 본다고 했다. 숱한 A급 방송인들과 즐겁게 방송을 해왔을 유재석은 이 프로그램 내내 다른 프로그램에서 보인 바 없는 함박웃음을 짓는다. 때로는 내가 이 방송에 출연을 하게 된다면 무슨 표정으로 어떤 말을 할지. 내 답변에 유재석은 어떤 환한 미소를 지어줄지 상상하게 된다. 평범한 사람인 나도 주연이 될 수 있다는 열린 가능성이 이 예능에 나를 참여시킨다. 실제로 방송에 출연하게 될 확률은 희박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나를 주변인으로 전락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게 핵심이다.
이런 매력 때문에 “유 퀴즈 온 더 블록”은 꾸준한 시청율 상승을 보였고, 예능으론 드물게 스핀오프2)버전을 만들기도 했다. 방송에 잠깐 나온 평범한 이들의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어하는 시청자들을 위해 ‘사람과 함께하는 여행’ 이라는 컨셉으로 나온 “난리났네 난리났어”가 그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 타이틀이 지어진 과정도 특별하다.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했던 부산세관 공무원이 어느 영화에 나오는 ‘난리났네 난리났어’라는 대사를 성대 모사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수줍어 보이는 공무원이 평소에 연마한 자신만의 개인기가 있다며 성대 모사를 비장하게 선보였는데, 웃음 포인트가 여럿 있어서 MC들도 뒤집어지고 시청자들도 뒤집어졌다. 성대모사의 출처인 영화 자체는 인지도가 높지만, 그 대사는 아무도 기억 못 하는 장면이라는 것. 인상에 남을 정도의 특출난 어조도 아니라는 점, 나름의 음성과 말투의 변조를 시도했지만, 아마추어적인 감성이 묻어있었다는 것 등이 그 이유이다.
나도 그 성대모사 장면을 몇 번이나 다시보기 했다. 관료주의적인 문화에서 ‘정확성’을 갖고 일하는 세무 공무원이, 난데없는 진지함으로 쏘아올린 웃음 주머니는 무거운 내 일상을 밝혀주었다.
그리고 그 대사를 타이틀로 ‘큰 자기 유재석과 아기자기 조세호의 자기들 마음대로 떠나는 사람 여행!’이라는 컨셉의 예능이 탄생했으니, 나같은 취향의 사람에겐 이건 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 밤에 나는 떡볶이 여행을 함께했다. 방송에 나온 떡볶이 업체가 PPL인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평범한 사람’의 여행에 초대를 받은 것이다. 한 사람이 여행의 콘텐츠라니! 이 얼마나 성경적인가. 또, 특출한 사람의 성공한 사무실을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동네길을 걸어다니는 유느님이라니! 소외와 배제에 익숙해진 청년에겐, 복음 비스무레한 소식처럼 다가온다.
청년은 우리 사회에서 대부분 주변인이다. 우리는 눈에 띌 만한 성공과 타이틀을 가지지 못했다. 아직 못 가진 이도 있을테고, 영영 못 가질 사람도 있다. 그런 이들을 주목하고, 핵심 인물로 대우해주고, 안전한 소속감을 제공하고, 그들이 가진 빛을 알아주고 함박웃음을 터뜨려주는 것. 기독교 공동체가 청년과 함께 자만추하는 환대를 회복했으면 한다. 나도 나를 여행하고픈 이가 있다면, 내가 아는 인생 떡볶이집 3개 정도는 제공할 수 있다.
1) ‘자연스런 만남 추구’의 줄임말.
2)오리지널 영화나 드라마를 바탕으로 새롭게 파생되어 나온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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