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라도 학교 폭력에 대응하는 우리 사회와 교육계의 초점이 ‘가해자에 대한 공정한 처벌’에서 ‘피해자의 온전한 회복’으로 옮겨져야 한다. ‘어떻게 하면 가해자에게 엄격한 벌을 내려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일벌백계의 본보기로 삼을까’라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신, ‘어떻게 하면 가해자로 하여금 자신이 저지른 폭력이 피해자의 삶에 큰 상처를 주었는지를 직시하게 하고, 그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사과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인가’로 관심의 초점을 옮겨야 한다.(본문 중)

정병오(기윤실 공동대표, 오디세이학교 교사)

 

최근 스포츠계와 연예계를 중심으로 ‘학투’(학교 폭력 미투, 유명인에게 당한 학교 폭력 경험을 폭로하는 캠페인)가 급속도로 퍼져 가고 있다. 폭로되는 사건들은 10년 전이나 20년 전에 일어난 일이지만 피해자는 지금도 고통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가해자는 유명인으로 인기를 누릴 뿐 아니라 여러 방송을 통해 ‘착하고 따뜻한 사람’으로 알려지고 있으니 가해자가 그것을 보고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최소한 가해자의 악한 실체를 폭로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기에 피해자의 ‘학투’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학투로 드러나는 학교 폭력 상처의 문제는 빙산의 일각임을 잘 알고 있다. 지금의 부모 세대가 학교에 다닐 때부터 오늘날까지 폭력의 양상은 달라졌지만 학교 폭력은 멈춘 적이 없었다. 당연히 그로 인한 피해자들의 고통도 계속되어 왔다. 그런데 자신에게 폭력을 가한 가해자가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와 같은 유명인일 경우에는 그 실체를 폭로하여 가해자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는 복수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해결할 수 없는 상처와 분노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우리 사회는 왜 이 문제를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했고, 피해자들은 학투와 같은 방법으로밖에 정의를 호소할 수 없는 것일까?

 

 

30년 전, 내가 초임 발령을 받았던 남자 중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2학년 남학생 4명이 같은 반 친구 한 명을 집단 폭행했다. 이유는 그 친구의 행동이 ‘재수 없게 느껴진다’는 것이 다였다. 가해 학생들은 성적도 비교적 좋으면서 적당히 일탈도 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은 소위 “잘 나가는” 아이들이었다. 이 아이들이 보기에 고지식할 정도로 착하고 고집스러울 정도로 자기 스타일을 유지하는 피해 학생이 답답해 보이고 싫었던 것이었다. 그 사건은 피해 학생 부모에 의해 곧 드러났고, 가해 학생들은 학교에서 ‘교내 봉사 1주일’이라는 징계를 받았다. 그것으로 모든 문제가 끝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피해자의 입장에서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가해 학생들이 징계 위원회에서 눈물까지 흘리며 반성하고 사과를 하는 듯했지만, 그것은 징계 위원들을 향한 것이었고 피해자를 향한 마음은 아니었다. 이들은 1주일 동안 수업에 참여하지 못하고 화장실 청소 등 교내 봉사를 하면서 피해자를 향한 미움을 키워갔다. ‘재수 없는 그 친구 때문에 우리가 이런 꼴을 당하고 있다’는 그들의 생각은 피해자를 향한 눈짓과 표정에서 여과 없이 드러나곤 했다. 피해자로서는 이런 가해 친구들과 함께 학교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피해 학생은 이런 마음의 고통을 당하면서 악몽을 꾸기 시작했고, 마음의 병을 얻어 오랜 기간 고생을 했다.

이후 가해 학생들과 피해 학생은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가해 학생들은 자신들의 학교 폭력 가해 사실과 그로 인해 징계를 받은 일을 쉽게 잊어버리고 학교생활을 잘 감당했다. 공부도 잘해서 명문 대학에 진학했다. 하지만 피해 학생은 피해 사실을 잊지 못하고 계속 눌려 지냈다. 가끔 나를 찾아와 상담할 때면, “학교에서 이전에 자신을 가해했던 학생들을 볼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때려 죽이고 싶은 분노가 올라와 견딜 수 없어요. 그럴 때마다 며칠은 잠을 자지 못해요”라고 고백하곤 했다. 고등학교 학업도 겨우 감당하고 삼수까지 하면서 힘겹게 대학에 진학했다.

학교 폭력에 대한 법적 대응은 내가 교직 생활을 처음 시작한 때에 비해 갈수록 엄격해지고 있다. 이러한 엄격한 법적 조치는, 학교에서 행해지는 물리적, 언어적인 모든 형태의 폭력이 장난일 수 없고 범죄임을 일깨워 주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모든 강화된 법적 조치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고, 피해자의 회복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그러다 보니, 가해자는 엄격한 처벌을 받지만 피해자는 여전히 그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다. 그리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엄격해지고 가해 사실이 아이의 진로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가해자와 가해 부모들은 어떻게 하든 가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이를 법적인 다툼으로 가져가려는 경향도 생겨나 피해자들의 고통이 더 증가하는 부작용도 발생하고 있다.

다른 범죄 피해자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특별히 학교 폭력 피해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가해자의 진정한 반성과 사과다. 그렇게 해서 자신에게 다시 이러한 폭력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나아가 자신을 가해했던 친구들과 다시 사이좋게 지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일단, 피해자가 가해자의 보복이 두려워 학교 폭력 사실을 잘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이를 드러내고 가해자가 처벌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이로 인해 가해자가 반성과 사과를 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미움을 키우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피해자는 가해자의 보복을 두려워해야 하고, 자신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공포에 떨어야 한다. 그리고 폭력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데 오랜 시간과 에너지를 쏟으면서 삶의 다른 부분들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라도 학교 폭력에 대응하는 우리 사회와 교육계의 초점이 ‘가해자에 대한 공정한 처벌’에서 ‘피해자의 온전한 회복’으로 옮겨져야 한다. ‘어떻게 하면 가해자에게 엄격한 벌을 내려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일벌백계의 본보기로 삼을까’라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신, ‘어떻게 하면 가해자로 하여금 자신이 저지른 폭력이 피해자의 삶에 큰 상처를 주었는지를 직시하게 하고, 그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사과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인가’로 관심의 초점을 옮겨야 한다.

현재 연예계와 스포츠계를 중심으로 학투를 전개하고 있는 피해자들의 공통적인 호소는 가해자의 진정한 사과를 받고 싶다는 것이다. 이러한 호소는 이들뿐 아니라 지금까지 학교 폭력 피해 트라우마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많은 피해자들의 절규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는 지금이라도 학교 폭력 문제와 관련된 “진실과 화해 위원회”1)를 만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이 위원회를 통해 학창 시절에 학교 폭력을 당했던 경험으로 인해 지금도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위원회가 최대한 그때 그 가해자를 찾아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하도록 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이 피해자들을 학교 폭력의 트라우마에서 구해 주는 길이며, 가해자들도 과거 자신들의 죄악에서 벗어나는 길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는 학생들 사이에서 크고 작은 갈등들과 다양한 형태의 학교 폭력들이 발생했을 때, 가해자가 그 일에 대해 진정으로 반성하고 피해자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도록 돕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일 것이다. 감사하게도, 우리 사회에는 지난 10여 년 동안 이러한 움직임들이 학교 안과 밖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다음 글에서는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 학교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형태의 갈등과 폭력의 문제 상황에서 피해자는 물론이고 가해자까지 회복의 길로 이끌 방안을 살펴보겠다.


1) 오랜 세월 소수인 백인이 흑인을 지배하면서 ‘아파르트헤이트’라는 분리 정책을 통해 흑인을 차별하고 인권을 침해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1994년, 흑인 정당인 ANC가 집권을 하고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그동안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백인에 의해 저질러진 흑인에 대한 수많은 인권 침해와 범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만들었다. 여기에서 피해자는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하고, 가해자는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고백한 후 심사를 통해 사면 절차를 진행했다. 그리고 피해자에게는 물질적 보상과 명예회복을 시켜주었다. 이 과정은 이 위원회의 초대 위원장이었던 투투 주교가 쓴 『용서 없이 미래 없다』(홍성사 역간, 2009)라는 책에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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