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코로나19로 인해 택배 물량이 증가하면서 택배 노동자들의 노동 강도는 세지고 있다. 2020년 택배업에서 발생한 산업 재해는 총 1,055건이며 이 중 16명의 노동자가 과로로 숨졌다. 서울노동권익센터 설문 조사에 따르면 4대 보험(고용보험, 건강보험, 국민연금, 산재보험) 중에서 택배 노동자들의 산재보험 가입률은 10%에 불과하다. 이러다 보니 다쳐도 치료를 제대로 받을 수 없다. 또한, 자영업자 신분이기 때문에 노동 관련 법/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본문 중)

우상범(한양대 겸임교수, 경영학)

 

리키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로 다니던 건축 회사가 어렵게 되자 실업자가 된다. 그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건설 일용직으로 일하다가 안정적인 생활을 되찾기 위해 택배 일을 시작한다. 택배 업체 관리자는 리키에게 이 일은 배송 수수료를 받는 자기 사업을 하는 것이며 사장님(정확히는 자영업자)이 되는 일이라고 말한다. 리키는 많은 돈을 벌어 집을 장만하고 대출금도 갚을 꿈을 꾼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리키는 하루 14시간(새벽 06:30에 출근하여 밤 21:00에 퇴근), 주 6일을 일했다. 졸면서 위태롭게 운전하고, 심지어 차 안에서 소변을 보면서까지 택배를 배송하지만, 수입은 생각만큼 많지 않았다. 결국 그는 좀 늦게까지 일하더라도 더 배송을 많이 하여 수수료 수입을 늘리려고 기를 쓰고 일한다. 그의 아내도 직장인이지만 일한 만큼만 돈을 받는 시급제 간병 노동자라서 월급이 많지 않다. 맞벌이로 지내며 자녀에게 신경을 쓰지 못하자 하나둘 문제가 발생한다. 고등학생 아들은 학교를 결석하기도 하고, 물건을 훔치다 경찰서에 가는 등 비뚤어져 간다. 또한 혼자서도 잘하던 착한 딸도 수면 불안을 겪고 오줌을 지리는 등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 부부는 이런 자녀들이 걱정되지만 많은 대출금 때문에 맞벌이를 포기할 수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리키는 택배 배달 도중 강도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한다. 얼굴과 몸을 크게 다친 그는 아내와 함께 병원에 간다. 엑스레이 검사 결과를 기다리던 중에 택배 업체 관리자의 전화를 받게 된다. 관리자는 강도에게 도난당한 택배 물품 배상을 위해 1,500파운드(약 220만 원)를 물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부부는 일하다 강도를 만나 병원에 왔는데 회사가 돈 얘기만 한다고 택배 회사 관리자에게 화를 낸다.

다음날, 폭행을 당해 손을 다치고 눈은 뜰 수 없을 만큼 부었지만, 리키는 또다시 이른 아침부터 가족들 몰래 출근 준비를 한다. 대체 기사를 구하지 못할 경우 감당해야 할 하루 100파운드(약 15만 원)의 벌금과 벌점, 그리고 택배 차량을 위한 대출금 상환 걱정으로 정신적 압박감을 이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시동을 걸고 출발하려는 순간, 아들이 막아서고 뒤이어 아내와 어린 딸이 나와 리키를 말린다. 리키는 자신이 일하지 않으면 온 가족이 길거리로 나앉게 되므로 어쩔 수 없다고 가족의 만류를 뿌리치고 택배 회사로 차를 몰고 간다. 핸들을 잡고 한없이 눈물을 흘리며….

이 이야기는 영국의 택배 노동자의 생활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영국의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미안해요, 리키」(Sorry, We Missed You, 2019)의 내용이다1). 제72회 칸 영화제에 「기생충」과 함께 경쟁 부문에 노미네이트될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고작 3만 6천 관객의 흥행 실적에 그쳤다.

영국처럼 우리나라에도 수많은 ‘리키’가 존재한다. 2020년 현재, 우리나라에서 택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약 5만 4천 명 정도이며 연평균 8%씩 수가 증가하고 있다. 택배 시장 규모도 7조 원 정도로 성장했고, 연간 처리하는 택배 물량도 2013년 15억 개에서 2019년 28억 개로 거의 2배 증가했다.

 

<그림1> 우리나라 택배 물량 및 택배 노동자 현황(자료: 정부 관계 부처 합동 보도자료)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서울시 택배 노동자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영화 「미안해요, 리키」가 보여 주고 있는 영국의 택배업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2) 택배 노동자들의 일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보통 집에서 새벽 06:00에 출발하여 07:00시 정도에 사무실에 도착하여 4시간에 걸쳐 무급으로 택배를 분류한다.3) 분류 작업이 끝나면 오전 11:00부터 본격적인 배송을 시작한다. 밤늦게까지 배송을 하지 않기 위해 급하게 이동한다. 시간을 아끼려고 점심은 김밥이나 빵으로 택배 차 안에서 대충 해결한다. 오후 18:00에 배송이 마무리되면 반품이나 편의점 등의 택배 등을 수거하는 집하 작업에 들어간다. 보통 일찍 퇴근하면 20:30이며 늦으면 22:00를 넘기기도 한다. 이러다 보니 평균 수면 시간도 5-6시간에 불과하다.

택배 노동자들의 일과를 기준으로 노동 시간만 계산해도 13시간 30분이 된다. 근무 시간을 보면 성수기(추석 명절 등 택배 물량 집중 시기)와 평상시 모두 6일 근무가 보편화 되어 있으며, 성수기의 경우 7일 근무를 하는 경우도 증가하고 있다. 이렇게 근무하면 한 달에 320시간을 근무하게 되고, 연평균으로 따지면 3,800시간을 일하게 된다. 우리나라 노동자 연평균 노동시간이 2,069시간이며, OECD는 1,764시간인 것을 고려하면, 살인적인 근무 시간이 아닐 수 없다.

 

<그림2> 택배 노동자의 일과(자료: 서울노동권익센터(2017), “서울지역 택배기사 노동실태조사”)

 

이들 택배 노동자들이 처리하는 택배 물량은 집하 및 배송 건수를 합쳐서 평상시에 250건 정도이며 성수기에는 370건이 넘는다.4) 그러나 현재 택배 물품 1건당 배송 수수료는 800원으로 2002년 1,200원보다 오히려 400원 감소했다. 택배 물량이 많아졌지만, 배송 수수료가 감소하면서 노동자들의 실질 소득은 줄어들었다. 이렇게 해서 버는 월평균 소득은 450만 원 정도지만, 대리점 수수료나 차량 유지비 등으로 약 100만 원 정도가 빠지면, 실질 소득은 약 350만 원 정도이다. 얼핏 액수만 보면 적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택배 노동자들의 처우가 나쁘지 않고 일할 만하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평상시 하루 14시간, 주 6일(성수기에는 7일)을 근무하는 것에 비하면 그렇게 많다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월수입만 보고 쉽게 택배 일에 뛰어드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퇴직한 노동자들과 인터뷰 할 기회가 있었는데, 상당수 남성은 큰 고민 없이 택배 일을 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림3> 택배 노동자의 1일 택배 처리 물량(자료: 서울노동권익센터(2017), “서울지역 택배기사 노동실태조사”)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택배 물량이 증가하면서 택배 노동자들의 노동 강도는 세지고 있다. 2020년 택배업에서 발생한 산업 재해는 총 1,055건이며 이 중 16명의 노동자가 과로로 숨졌다. 서울노동권익센터 설문 조사에 따르면 4대 보험(고용보험, 건강보험, 국민연금, 산재보험) 중에서 택배 노동자들의 산재보험 가입률은 10%에 불과하다. 이러다 보니 다쳐도 치료를 제대로 받을 수 없다. 또한, 자영업자 신분이기 때문에 노동 관련 법/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택배 노동자들의 연이은 과로사와 열악한 노동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작년 12월에 국회, 정부, 노동자, 택배 업체 등 이해 당사자들로 구성된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을 위한 사회적 합의 기구’가 만들어졌다. 여러 차례 회의를 통해 올해 1월에, “과로사 대책 1차 합의문”이 발표되었다. 합의문에는 택배 분류 작업 명확화, 택배 기사의 작업 범위 및 분류 전담 인력의 투입, 택배 기사가 분류 작업을 수행하는 경우 수수료 지급, 택배 기사의 적정 작업 조건, 택배비·택배 요금 거래 구조 개선, 설 명절 성수기 특별 대책 마련, 표준 계약서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합의문대로 분류 작업에서 택배 노동자들의 부담을 줄여 준다면 새벽 출근을 막고 밤샘 배송이 사라져 노동 시간도 크게 줄일 수 있다. 이는 노동자가 가족과 보낼 시간이 많아진다는 의미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돈이다. 별도 분류 인력 투입과 배송 수수료의 현실화 등은 택배 업체의 수익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택배 업체들이 사회적 합의문을 그대로 따를지 미지수다. 지난 설을 앞두고도 업체가 분류 인력을 투입하지 않아 노동자들이 한차례 파업을 계획한 적이 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되는 거 아닌가?’ 과연 그것이 열악한 현재 택배업 상황에서 최선일까? 택배 노동자들에게는 세 가지 정도의 대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현재의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 환경을 참으면서 택배 일을 계속하는 것이다. 둘째, ‘절이 싫어 떠나는 중’처럼 다른 일을 찾아 택배 일을 관둘 수 있다. 마지막으로, 현재의 택배업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집단적 목소리를 냄으로써 더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택배업 규모는 날로 성장하고 있고 택배 노동자들의 수도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 택배업의 발전과 택배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과연 어떤 방법이 최선일까?

밤늦게까지 배송하느라 고생하는 한국의 모든 ‘리키’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혹시 파업 때문에 배송이 좀 늦어진다 해도, 당신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목소리에 응원을 보내고 싶다.

 


1) 켄 로치는 영국 출신 영화감독이다. 칸 영화제의 경쟁 부문에 역대 최대인 14회나 후보에 올랐으며 칸 영화제의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2회 수상한 영화계의 거장이다.

2) 고용노동부가 2020년에 택배 노동자 약 1,8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결과도 서울노동권익센터의 설문 조사 결과와 거의 비슷했다.

3) 택배 노조는 무급으로 분류작업 하는 것이 택배 노동자들의 배송 시간을 밤늦게까지 지연시키며, 무엇보다도 노동자들의 과로사를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 된다고 주장한다.

4) 집하는 접수된 화물을 택배 기사가 수거하는 것으로 편의점 택배가 이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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