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세월호 가족 곁을 지켰던 분이 대통령이 되었고, 여당이 총선을 통해 국회 의석 대부분을 차지하였으니, 당연히 진상 규명이 잘 진행되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중략)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2017년 5월 새 정부가 들어선 후, 세월호 가족들은 대통령이 제일 먼저 가족들을 만나 주리라 기대했습니다. 8월 16일이 되어서야 초청이 있었고, 그 자리에서 나눈 이야기도 저희가 원하는 구체적인 진상 규명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정부 차원의 사과와 위로가 주가 되었습니다.(본문 중)

박은희(단원고 2학년 3반 유예은 엄마, 화정교회 전도사)

 

“세월호 가족이 왜? 왜 오지?”

2020년 10월, 세월호 가족들이 <진실버스>라는 이름으로 전국을 돌았습니다. 저도 시간을 내어 지역을 방문했는데, 간담회에 참석한 분 중 한 분이 세월호 가족들이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세월호 가족이 왜? 왜 오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늘 세월호 가족 곁을 지켰던 분이 대통령이 되었고, 여당이 총선을 통해 국회 의석 대부분을 차지하였으니, 당연히 진상 규명이 잘 진행되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아마 국민들도 대부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실 것입니다. 아니, 진상 규명은 그렇게 되었어야 맞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2017년 5월 새 정부가 들어선 후, 세월호 가족들은 대통령이 제일 먼저 가족들을 만나 주리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8월 16일이 되어서야 초청이 있었고, 그 자리에서 나눈 이야기도 저희가 원하는 구체적인 진상 규명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정부 차원의 사과와 위로가 주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당시에 선체조사위원회가 활동 중이었고, 2016년 12월 23일 신속 처리 안건으로 지정된 “사회적 참사 특별법”이 연말에는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어 통과될 예정이었기에, 두 위원회(선체조사위원회,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를 통해 세월호의 침몰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기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기소권과 수사권 없이 조사 권한만 있는 두 위원회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선체조사위원회는 침몰 원인에 대해서 내부적인 결함에 의한 침몰이라는 내인설과 내부적 요인 외에도 다른 요인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열린 안 둘 다를 인정하며 활동을 종료했습니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는 수사 권한이 없어서 관련 기관들의 자료나 담당자들을 원하는 만큼 보기가 힘들었고, 코로나19라는 악재까지 겹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열악한 조건 가운데서도 선사와 국정원의 관계, 침몰 원인에 대한 다양한 실험과 새로운 증거들의 발견, 1기 특조위 방해 과정과 가족들의 사찰, 그리고 구조 과정에서의 지휘부의 책임 문제 등 여러 혐의 들을 찾아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거의 모든 것이 멈춘 상황에서도 사참위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대로 흘러서 2020년 연말에는 활동이 종료되었고, 2021년 4월 15일이면 혐의자들에 대한 공소 시효도 만료되는 상황입니다. 무엇보다도 가족들을 힘들게 한 것은, 이러한 상황들을 정부가 모를 리가 없는데, 참사 당시 정황을 파악하는 데 꼭 필요한 해경, 해군, 국정원 등의 자료들은 여전히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박근혜 정부 3년, 문재인 정부 4년

가족들은 이런 사실들을 10월 말부터 <진실버스>를 타고 전국을 돌면서 열심히 알렸고, 국회에서 노숙을 하며 국회의원들에게 ‘사참위 기간 연장’과 ‘공소 시효 정지’를 담은 “사참위법 개정”을 요구했습니다. 가족들의 노력 끝에 많은 국민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국민들이 사참위법 개정을 위한 국민 청원으로 마음을 모아 주어서 “사참위법개정안”이 2020년 12월 22일 국회에서 통과되었습니다. 비록 함께 요구한 ‘수사권이 있는 특검’ 대신 ‘영장 청구권이 있는 특검’으로 바뀌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청와대 기록물 열람’은 좌절되었지만, 다시 희망을 가져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국회에서 해야 할 일을 마친 후, 가족들은 바로 이어서 청와대 노숙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유난히 혹독했던 겨울이었지만, 봄이 되면 이제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1년밖에 안 남기 때문이었습니다. 2019년 11월, 갑자기 검찰이 피해 가족이나 청와대나 여당과의 교감 없이 ‘세월호 특수단’을 만들었을 때, 검찰 개혁의 목소리를 덮으려는 의도가 있는 건 아닐까 걱정하면서도 수사의 권한이 없는 사참위에 도움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우려한 대로 사참위와의 공조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그저 ‘사참위가 있으니, 특수단이 있으니 기다려 보자’라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대통령의 세월호에 대한 무관심을 가족들은 ‘임기 초기니까, 대북 관계로 바쁘니까, 경제가 어려우니까, 코로나로 바쁘니까…’ 이렇게 이해하며 기다렸습니다. 속은 썩어 문드러지지만 일말의 희망과 믿음을 겨우 붙잡고 입에는 재갈을 물고 기다렸습니다. 아이들처럼 계속 기다리다 보니, 박근혜 정부 3년보다 1년을 더 넘겨 문재인 정부 4년 동안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올해 1월,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없던 것을 있게 만들 수 없다”(?)

검찰 총장의 지휘로 시작하여 ‘백서를 쓰는 심정으로 수사에 임하겠다’고 했던 특수단은, 처음에만 사참위나 피해 가족과 소통하는 척하다가, 이후에는 진행 상황을 잘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잊힐 만하면 압수 수색을 했다는 기사를 한 번씩 흘리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처음 시작할 때처럼 갑자기, 1월 19일에 활동 종료 기자 회견을 했습니다. 사참위가 수사 의뢰한 사건들에 대해서 대부분 무혐의 결론을 내고 일부만 기소 처리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한 말이, “없던 것을 있게 만들 수 없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코로나를 핑계 삼아 중요한 인물을 대면 조사가 아닌 서면 조사로 끝낸 경우도 있고, 마땅히 찾아봐야 할 자료들을 찾아보지 않고 내린 결론으로는 너무 뻔뻔한 말이었습니다.

일말의 기대를 갖고 인내하며 기다린 가족들에게, 더구나 전국을 돌고 추운 겨울에 국회와 청와대에서 노숙을 이어 오고 있는 가족들에게는 너무나 잔인한 말이었습니다. 마치 가족들을, 있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생떼를 쓰는 사람처럼 만들었습니다. 아니, 전 국민이 목격했고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은 이 사건을, 시간이라는 안개를 뿌려 놓고 ‘이건 없었던 일이야’라고 최면을 거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 희생된 304명이 이 지구상에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부모들은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이렇게까지 막장 드라마를 찍을 줄은 몰랐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월에는 재판부에서 해경 지휘부에 대해 대부분 무혐의 결론을 냈습니다. 이유는 지휘부가 현장 파악을 제대로 하기 어려웠고, 지휘부가 제대로 지휘를 했어도 현장에서 그대로 따라주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참사 당일, 그들은 여러 통신 채널을 통해 계속 소통을 했고, 2014년에는 123정 정장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며 형을 줄여주었는데, 이제는 지휘부의 책임을 아예 묻지 않겠다고 하니 이런 궤변이 어디 있습니까.

상황이 이런데도, 특수단의 수사 결과를 기다려보고 그때 가서 말하겠다던 청와대는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몇 번을 요구했지만 끝내 응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가족들은 절규했고 결국 삭발을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야 시민들은 ‘이거는 아니다’라는 말을 하며 가족들과 함께 토요일 촛불 피케팅을 해주기 시작했습니다. ‘설마 대통령이 다른 계획이 있겠지’라고 말하며 청와대를 믿어보자고 다독이던 그리스도인들도 조금씩 마음을 바꾸어 사순절을 기점으로 기도회와 단식으로 함께 마음 보태 주고 계십니다.

 

“다시 촛불! 다시 세월호!”

특수단의 수사 종료 기자 회견과 재판의 1심 결과를 보며, 가족들은 많이 좌절했고 많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4월 16일이 다가오는데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저희가 아무리 아프고 힘들어도 그날 그 바다에 버려진 아이들만큼은 아니니까요. 다시 죽을힘을 다해 힘을 내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시민들을 만나러 전국을 돌고, 매주 토요일마다 “다시 촛불! 다시 세월호!” 피케팅을 하고, 7주기 행사들을 준비하고, 특수단의 발표에 항고를 하고, 수십 건의 세월호 관련 재판들을 쫓아다니고, 임시 개관한 광화문 기억관을 지키고, 참사 해역과 팽목 기억관, 제주 기억관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기억할 수 있도록, 모두가 진상 규명의 끈을 놓지 않도록,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직 마음을 보태 주고 계시는 분들이 계셔서 외롭지는 않습니다. 보궐 선거 이후 또 어떤 변수들이 생길지 알 수 없지만, 진실을 찾아가는 이 길에 하나님께서 그리고 하나님이 보내주신 분들이 함께해 주실 거라 믿습니다.

4월 한 달간만이라도 가슴에는 노란 리본을 달거나 가방에 노란 리본을 걸어 주세요. 가족들에게 아이들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무엇보다 기억의 종교인 기독교 신자들께 더욱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4월 11일을 세월호 참사 기억 주일로 지켜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땅이 좀 더 안전하고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세상이 되도록, 이를 위해 속히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이 되도록, 마음 모아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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