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각 과목당 2/3 이상을 출석해야 하고, 성취 기준의 40% 이상을 충족해야 그 과목의 학점을 취득할 수 있다. 둘 중 어느 하나라도 기준에 미달하면 미이수로 보아 I(Incomplete) 학점을 부여하게 된다. 대학에서 F를 받으면 학점을 얻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데, 고등학교는 A~E 학점은 학점을 취득한 것으로, I 학점을 미이수로 간주한다. (중략) 고교학점제에서 미이수에 해당하는 I 학점을 받을 경우, 학교에서 제공하는 대체 프로그램에 참여만 하면 자동으로 E 학점을 부여해서 이수한 것으로 간주한다.(본문 중)
김영식(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
고교학점제란?
지난 2월 17일, 교육부가 “고교학점제 종합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신청해서 수업을 듣고, 수업의 성취 기준을 충족하여 학점을 취득하며, 정해진 학점 수를 취득하여 졸업을 하게 하는 제도이다. 대학의 수강 신청-이수-졸업 시스템을 고등학교 실정에 맞게 운영하는 것으로 보면 이해가 쉽다.
고교학점제가 본격화되면 학교 현장에는 여러 모양의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우선 고2부터는 모든 과목을 선택 수강하여 학점을 취득하게 된다. 졸업을 위해 총 192학점을 취득해야 하는데, 1학점은 50분 수업 기준으로 16회에 해당한다. 종전 1단위 수업이 50분씩 17주로 진행된 것에서 1회 정도 줄어든 모습이다. 졸업 최소 학점인 192학점을 취득하려면 주당 평균 32시간의 수업을 들어야 한다. 이 역시 종전 주당 34시간에서 2시간 정도 줄어든 것이다. 대학생이 한 학기에 보통 18학점(주당 18시간 수업)을 이수하는 것과 비교해 보면, 선택형 교육과정을 운영하기에 주당 32시간은 여전히 부담이 될 것이다.
이수와 졸업 방식에도 변화가 일어난다. 지금은 해당 학년 출석 일수의 2/3 이상만 채우면 성적과 상관없이 진급과 졸업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고교학점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각 과목당 2/3 이상을 출석해야 하고, 성취 기준의 40% 이상을 충족해야 그 과목의 학점을 취득할 수 있다. 둘 중 어느 하나라도 기준에 미달하면 미이수로 보아 I(Incomplete) 학점을 부여하게 된다. 대학에서 F를 받으면 학점을 얻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데, 고등학교는 A~E 학점은 학점을 취득한 것으로, I 학점을 미이수로 간주한다. 다만, F학점을 받으면 재수강이나 대체 과목을 별도로 수강해서 D 이상의 학점을 취득해야 하는 대학과 달리, 고교학점제에서 미이수에 해당하는 I 학점을 받을 경우, 학교에서 제공하는 대체 프로그램에 참여만 하면 자동으로 E 학점을 부여해서 이수한 것으로 간주한다. 교육부 계획에서는 보충 이수 프로그램을 제공하되, 이수의 기준은 대폭 낮춰 놓은 셈이다.
전통적인 담임 제도와 역할에도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기존에는 담임교사의 주 역할이 학급 관리, 생활 지도, 상담 등이었다면, 고교학점제하에서는 진로와 선택과목, 교육과정 이수 문제 등에 대한 상담이 주요한 역할이 된다. 이를 위해서 담임의 숫자를 늘려서 교사 1명이 10~15명 정도만 맡는 소인수 담임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고교학점제의 필요성
고교학점제가 왜 필요한가를 생각해 보면 이 제도가 제대로 도입되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된다. 고교학점제를 도입하려는 이유는 크게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교실 수업을 미래 교육에 맞는 질 높은 수업으로 변화시키려는 것이다. 미래 교육에서는 학생 개개인의 고유성과 개별성에 맞추는 교육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개별 학생의 다양한 진로와 적성, 흥미 등을 고려하는 과목 선택권은 교육을 위한 기본 전제인 셈이다. 각기 다른 진로와 적성을 가진 학생들에게 똑같은 교육을 받게 하는 것은 미래 교육이라고 하기 어렵다. 나아가, 학생들에게 선택할 수 있게 하되 선택한 과목을 책임 있게 공부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수업의 질을 보장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고교학점제가 이루어지는 학교는 학생들이 희망하는 교과목을 개설하려 최선을 다하고 있고, 단위 학교가 개설하기 어려운 과목은 주변 학교와 공동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대학이나 지역 사회와 연계한 교육과정을 통해 선택과목의 폭을 넓혀주고 있다.
둘째, 고교 교육이 모든 학생들에게 의미 있는 진로 교육이 되도록 보장해 주기 위해서다. 현재 고교 교육은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에게만 유의미하다. 대학을 가지 않는 학생들에게는 의미가 없다. 상당수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교실에서 엎드려 자는 이유가 그 시간이 별 의미가 없어서다. 그러나 대학 진학을 원하지 않고, 수능 시험을 준비하지 않는 학생들이라도 고교 교육은 필요하다. 이 학생들도 고교 교육을 통해 자신의 진로를 준비할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의 삶을 가꿔가기 위한 배움과 성장을 지원받을 권리가 있다. 그러므로 고등학교 교육이 보편적으로 모든 학생들에게 의미가 있도록, 고등학교에서 공통 과정과 선택 과정을 제공해 각자에게 맞는 배움과 성장을 추구할 기회를 주려는 것이다.
셋째, 책임 교육의 실현을 위해서다. 현행 고교 교육은 정해진 성취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학생도 다음 단계로 진급을 시킨다. 그러나 고교학점제 안에서는 자신의 수준에 맞는 과목을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선택한 과목에 대해 최소한의 성취 기준을 이수하지 못했다면 보충 프로그램을 통해서 이수하도록 돕는 노력을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책임 교육을 실현하자는 것이다.
해결해야 할 과제
그러나 고교학점제 도입을 위해서는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먼저, 실제 개별 학교들이 학생들의 선택 폭을 얼마나 보장해 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다양한 선택과목 개설보다 개설된 교과의 수업 질을 높이는 것에 초점을 두는 것이 더 낫다는 의견도 있다. 기독 대안학교인 별무리학교(충남 금산)는 소수의 학생이 희망하거나, 학생이 먼저 과목 개설을 제안하고 지도 교사가 동의한다면 과목을 개설할 수 있다. 1인 수강 과목도 개설이 가능하다. 그러나 일반 공교육 기관에서 이와 유사한 조건으로 과목 개설이 가능할 것인지, 개설된 교과의 수업 질은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현실을 고려해서 도입 초기에는 현재 수준에서 선택과목의 폭을 넓히되, 수업의 질을 높이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도입 초기 혼란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대입 수능 시험이 여전한 상황에서는 다양한 선택과목을 개설해도 학생들이 다양한 교과를 선택하기도 어렵고, 당장 가르칠 교사를 확보하기도 쉽지 않다. 다양한 과목에 대한 강조보다는 기존 교사에 맞춘 교과 개설을 기본으로 하되, 교육과정 틀 안에서 과목을 다양화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내실 있고 안정적으로 고교학점제를 정착시키는 방법이 될 것이다.
가령, 단계별 교과인 영어, 수학 교과의 경우, 수준에 따라 여러 단계의 과목을 개설하게 하는 다양화 전략에 초점을 맞춘다. 각 교과 당 최소 수준 과목을 두어 기초 레벨의 수업만 들어도 되는 학생은 최소 수준 과목만 이수하도록 하고, 고급 수준의 수업은 필요한 학생들은 추가로 과목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당장 어려운 수준의 수학 과목을 듣지 않아도 되는 학생들은 기초 수학 정도만 들어도 되게 함으로써,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는 학생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주제에 따라 분류할 수 있는 교과(국어, 사회, 과학 등)는 ‘현대 문학 감상’, ‘사회 탐구 방법’, ‘한국 독립 운동사’ 등 특정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루는 과목을 다수 개설하도록 방향을 잡으면 된다. 생소한 과목을 많이 개설하는 것보다 익숙한 과목을 주제나 수준에 따라 세분화하거나 융합하여 다양하게 개설하는 전략이 초기 고교학점제를 정착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두 번째로, 미이수와 재수강 제도의 본격 도입을 둘러싼 논쟁도 해결 과제다. 학생의 선택권을 확대하는 것과 함께 수업 참여에 대한 일정 수준의 책무성을 요구하려면, 미이수 제도와 재수강 제도를 대학처럼 제대로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현재 교육부 안은 미이수제는 도입하되 재수강제는 유보하는 방안인데, 미이수자에게는 대체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참여만 하면 학점은 취득할 수 있게 한다. 가령, 수학 과목에서 미이수 학점을 받았어도, 최소 성취 기준 충족 여부와 상관없이 학점을 취득할 수 있는 것이다. 고등학교 단계에서 학점을 취득하지 못해 졸업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을 아직은 학생이나 학부모가 받아들일 준비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마련한 장치다. 일면 이해가 되지만, 고등학교 3학년 학생에게 선거권도 주어지는 상황에서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는 태도를 요구하지 못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 유급이나 중도 탈락에 대한 우려 때문에 미이수 제도를 도입하지 못한다면, 선택과 책임이라는 고교학점제 의미를 처음부터 포기하고 시작하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이수제 뿐만 아니라 재수강제도 도입해서 학생들이 과목 선택에 대한 자기 책임을 다하게 하자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이 경우 학교들이 미이수한 학생을 위한 책임 있는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일도 수반되어야 한다.
세 번째, 고교학점제에 맞는 대입 정책 없이 고교학점제는 성공하기 어렵다. 오지선다형으로 출제되는 현행 대입 수능 시험은 학생에게 많은 과목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국, 영, 수 과목을 기본으로 수강하고 사회, 과학 과목의 일부만 선택하는 정도여서, 학생들이 수능 시험을 준비하려면 다양한 과목을 선택하는 것보다 수능 시험 준비에 유리한 과목을 집중적으로 선택하게 될 것이다. 이는 고교학점제의 취지와 배치되는 결과다. 대입 수능 형식을, 고교 과정의 최소 학력을 테스트하기 위한 졸업 자격 고사를 시행하고 입시는 학교생활기록부의 교과 이수 현황을 토대로 면접 등을 실시하는 안, 다양한 선택과목 이수의 결과를 종합해서 서술할 수 있는 교과선택형 논술형 평가로 바꾸는 안 등을 검토하여 어떤 대입 제도가 고교학점제와 어울릴지 결정해야 교육도 살고 고교학점제도 살 수 있다.
고교학점제는 기존의 우리 교육이 일부 학생들을 교육과정에서 소외시키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제안된 제도다. 모든 학생들은 고등학교 교육을 통해 자신만의 배움과 성장을 성취할 수 있도록 지원받아야 한다. 획일화된 입시 교육의 오랜 병폐를 극복하고 모든 학생들이 배움의 참된 기쁨을 누리면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도록, 고교학점제를 제대로 설계해서 학교 현장에 정착시킬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지혜를 모아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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