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디자인’은 장애인들이 일상에서 겪는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출발했지만, 결국 이름 그대로 모든 사람의 개성과 능력을 드러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중략) 이렇듯 생애 주기 전반에 걸쳐 사람은 반드시 ‘약자’의 삶과 연결된다. ‘모두를 위한 디자인’은 다양한 장애인, 노인, 여성, 어린이뿐만 아니라 일시적으로 장애 상황에 처한 비장애인, 언어 때문에 적응이 어려운 외국인 등 모든 사람들이 서로의 다양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돕는 기반이 되어 준다.(본문 중)

김형신(오디세이학교 교사)

 

교직에 있다가 보니 가끔 다리에 깁스를 한 채 이동하는 학생을 만난다. 쉬는 시간에 땀을 흘리며 부지런히 이동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학창 시절의 좋은 추억이 되겠거니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한 학부모의 하소연을 듣고 나서 그런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깨닫게 되었다. 자신의 아이가 발목을 다쳤는데 학교에는 승강기가 없고 목발을 짚자니 양쪽 팔이 지탱하기 어려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난감하다는 내용이었다. 어떻게 목발을 못 짚을 정도인가 싶어 그 학생을 직접 만나보니, 정말 팔에 심한 통증을 호소하며 이동이 어려워 보였다. 이후 3주의 기간 동안 부모와 상의하며 집으로 별도의 수업 준비물을 보내고 과제물을 회수하면서 학업을 이어 가도록 조치했다.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은 이런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공간이나 제품을 설계하려는 디자인 철학이다. 우리말로 ‘범용 디자인’, 또는 ‘모든 사람을 위한 디자인’이라고 부르는데 미국의 건축가인 로널드 메이스(Ronald L. Mace, 1942-1998)가 용어를 제안하였다. 그 자신이 아홉 살 때 척수성 소아마비에 걸려 휠체어를 이용했고, 대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건물의 계단을 오르내리기 위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성별, 장애, 국적 등에 상관없이 누구나 사용하기에 편리하고 차별 없는 디자인을 추구할 것을 제안했는데 ‘모두를 위한 디자인’의 7가지 원칙을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공평한 사용: 다양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동일한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한다(예: 자동문).

둘째, 유연한 사용: 개인의 취향이나 능력에 무관하게 사용하도록 설계한다(예: 양손잡이용 가위).

셋째, 간단하고 직관적인 사용: 사용자의 사전 경험, 지식, 언어 능력과 무관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한다(예: 비상구 표시등, 화장실 안내 그림, 가구 조립 설명서).

넷째, 인지 가능한 정보 제공: 다양한 사용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예: 신호등 음성 안내 장치, 은행의 현금 인출기의 음성 안내).

다섯째, 실수에 대한 포용력: 사용자가 실수를 하더라도 덜 위험하도록 설계한다(예: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되돌리기’ 기능, ‘자동 저장’ 기능).

여섯째, 적은 물리적 노력: 무의미한 반복 동작이나 무리한 자세 또는 힘을 사용하지 않고도 사용할 수 있게 한다(예: 밀고 당겨서 문을 여는 ‘푸시풀 도어락’, 힘이 덜 드는 ‘레버식’ 수도꼭지).

일곱째, 적절한 크기와 공간: 사용자의 신체 크기, 자세, 이동 능력 등에 상관없이 공간과 제품을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한다(예: 장애인용 화장실).

우리는 이미 유니버설 디자인 원칙에 따라 제작된 시설과 제품을 이용하고 있다. 움직임을 감지하여 문이 열리는 자동문은 휠체어 사용자뿐 아니라 양손에 짐을 들고 이동하는 사람에게도 유용한 시설이다. 은행 현금 인출기의 화면에 맞춰 큰 소리로 흘러나오는 안내 음성은 시각 장애인과 청각 장애인이 은행 거래를 하는 도구일 뿐 아니라 비장애인도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아 실수하지 않도록 해 준다. 몇 바퀴씩 수도꼭지를 돌려 물을 잠그는 대신 막대 손잡이를 들어 올리거나 내리는 동작만으로 물을 사용하는 레버식 수도꼭지는 악력이 약한 노약자나 손이 불편한 사람에게 유용하다. 지하철 손잡이 높이를 서로 다르게 설치하고, 폭이 넓은 개찰구를 만들어 유모차나 휠체어도 쉽게 통과하도록 만든 설계는 상식이 되었다. 특히 학교, 지하철 시설, 박물관 등 사람들이 많이 모여 이용량이 많은 장소에 ‘모두를 위한 디자인’ 원칙을 적용하기 위한 연구와 시도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목격할 수 있다.

 

출처: 서울시

 

‘모두를 위한 디자인’은 장애인들이 일상에서 겪는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출발했지만, 결국 이름 그대로 모든 사람의 개성과 능력을 드러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사람은 누구나 영유아기와 노년기를 거치며 혼자 힘으로는 자유롭게 이동하기 어려운 ‘사회적 약자’의 처지에 놓이게 된다. 어린이나 연로한 부모님을 동반한 보호자가 되기도 하고, 갑자기 몸이 아파서 타인의 도움을 받거나 타인을 돌봐야 할 상황을 만나기도 한다. 해외에 나가 생소한 언어와 문화 때문에 필수적인 시설 이용과 생활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이렇듯 생애 주기 전반에 걸쳐 사람은 반드시 ‘약자’의 삶과 연결된다. ‘모두를 위한 디자인’은 다양한 장애인, 노인, 여성, 어린이뿐만 아니라 일시적으로 장애 상황에 처한 비장애인, 언어 때문에 적응이 어려운 외국인 등 모든 사람들이 서로의 다양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돕는 기반이 되어 준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모두를 위한 디자인’이 필수적인 부문에 모두 잘 적용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대중교통 분야다. 비장애인들은 원하기만 하면 언제나 당연한 듯 버스를 타고 이동할 수 있지만, 휠체어 사용자는 출입 계단이 없는 저상버스만 탑승할 수 있다. 다른 버스에는 탑승 자체가 불가능하다. 저상버스는 다른 교통 약자(장애인, 고령자, 임산부, 영유아를 동반한 사람 등)가 이용하기에도 훨씬 안전하고 편리하다. 휠체어 사용자를 포함하여 다양한 사람들이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저상버스는 ‘모두를 위한 디자인’의 좋은 사례다. 하지만, 지자체에서 적극적으로 예산을 투입하지 않아 정책을 시작한 지 20년이 되도록 전국의 저상버스 도입률은 28.4%에 그치고 있다. 전국 시내버스 10대 중 저상버스는 3대가 채 안 되는 셈이다. 지역별로 보면 서울이 56.4%일 뿐, 그 외 대도시들은 20% 미만으로 편차도 심하고, 심지어 어떤 지역의 버스 노선에는 저상버스가 단 한 대도 마련되지 않은 곳들도 있다. 해당 지역의 교통 약자들의 고충이 심할 것이며, 특히 장애인들은 생존까지도 위협받는 상황이 아닌지 걱정스럽다.

보통 사람들도 일상에서 ‘모두를 위한 디자인’을 실천하는 방법이 있다. 식당 주인이라면, 식당 내 통로와 공간을 살펴 다양한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다. 버스 운전사라면, 시각 장애인 안내견의 탑승에 유연한 태도를 갖춰 시각 장애인이 버스를 이용하는 데 불편하지 않게 할 수 있다. 자전거 이용자라면, 지하철의 휠체어 전용 공간에 자전거를 세워 놓지 않으면 되고, 버스에 탈 때는 교통 약자석을 비워 두면 된다. 비대면 수업을 위해 자료를 만들어야 한다면, 동영상과 이미지 외에 텍스트를 첨가하여 다양한 능력의 사람들이 수업 자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2020년 통계 자료를 보면 장애인의 56.9%는 최종 학력이 ‘중졸 이하’라고 한다. 발목을 다쳐 등교하지 못한 학생처럼,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디자인된 환경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이 밀려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의 일상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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