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노동 잔혹사를 막기 위한 방법은 이미 우리 사회가 알고 있는 것들이다. 먼저, 근본적으로는, 모두가 함께 돌봄에 참여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돌봄은 반드시 여성만 담당해야 할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남녀를 막론하고 양육을 위한 육아 휴직을 허용하고, 유연 근무제를 장려하는 등의 적극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 (본문 중)
황선영(정치하는엄마들 권리회원, 서울대학교 정책학 박사)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작은 아씨들>의 초반 장면에 둘째 딸 조가 자신이 쓴 자전적 소설을 편집자에게 가져가는 장면이 나온다. 편집자는 원고를 흥미 있게 읽지만, 출판을 위한 조건을 단호하게 덧붙인다. “주인공이 여자라면 결혼이거나 죽임을 당하거나 둘 중 하나여야죠.” <작은 아씨들>의 시대적 배경은 19세기 미국, 남북전쟁이 한창인 시기이다. 이 편집자의 한마디는 그 시대가 여성의 역할을 어떻게 규정했는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여성들의 의무는 사회의 유지를 위해 결혼을 해서 집안을 꾸리고 아이들을 돌보고 가사에 종사하는 것이었다. 소설에서 여성이 비극의 주인공으로 소모되어 전체 소설의 극적인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것처럼, 여성은 그저 사회의 장식품이나 부속품처럼 여겨졌다.
그 이후로도 오랜 기간 동안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젠더적인 관점에서 볼 때 여성의 역사는 차별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성들이 남성과 동등하게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인 참정권을 얻은 시기는 20세기 초인 1928년, 불과 100년 전이다. 여성이 노예, 아동과 더불어 정치의 장에서 배제되어 왔던, 민주주의의 시초라 불리는 그리스 시대부터 따진다면, 배제의 기간은 더 아득하다. 그리스 시대에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동등하게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지만, 여성은 그 권리를 인정받지 못했다. 이처럼 오랜 기간 동안 여성은 가정 내에서 가사와 돌봄을 주로 맡으며 그림자 노동을 수행하는 존재로 인식되어 왔다.
그렇다면 21세기인 지금은 여성의 지위가 어떠한가? 노동권과 참정권조차도 정당히 얻지 못했던 과거에 비하면 여성의 권리 보장에 괄목할 만큼 변화가 일어났다고 볼 수도 있다. 대다수의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고등 교육을 받고 취업 전선에서 경쟁하는 사회가 되었다. 그뿐 아니다. 여성들이 정치와 행정 분야에서 요직을 차지하는 비율도 높아졌다. 2020년 기준, 국회의원 여성 비율은 19%이고, 장관 중 여성 비율은 33.3%로 역대 최고 수치를 기록했다(통계청, 2020a). 여성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등장하고, 정부 부처와 기업의 주요 요직에 여성 임원이 배치되고 있다. 국가고시 등 임용률에서도 여성들의 성과는 남성들보다 높은 편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일부 여성들이 써 내려간 신화는 대다수의 여성들이 발을 담그고 있는 노동 현장에서는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마치 견고하지 못한 땅 위에 쌓은 모래성처럼 어김없이 허물어지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을 통계적 수치로 좀 더 상세히 들여다보자.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율은 남성들의 경제 활동 참여율보다 월등히 낮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3월 기준 여성의 경제 활동 참가율은 52.7%로, 남성의 경제 활동 참가율인 72.6%와 비교했을 때 20%P 정도 낮은 수치이다.1) 그나마 경제 활동에 참가하던 여성들도 경력을 오래 유지하지 못한 채 경력이 단절되는 비율이 높다(통계청, 2020b). 2020년 상반기 기준, 경력 단절 여성2)은 150만 6천 명으로 전체 15~54세 기혼 여성 전체 중 17.6%를 차지하고 있다(통계청, 2020b).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경제 활동 참가율이 낮고 경력 단절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는 가장 주된 요인은 출산과 육아에 대한 책임이 여성에게 주로 전가되는 것이다. 경력 단절 여성들은 경력 단절 사유로 육아를 가장 높은 비율(42.5%)로 꼽았고, 결혼(27.5%)과 임신과 출산(21.3%)이 그 뒤를 이었다(통계청, 2020b). 시대는 급속히 바뀌고 있지만 돌봄의 당사자는 여전히 여성으로 간주되고 있음을 알려 주는 대목이다. 이 같은 결과를 방증하듯 결혼과 출산으로 자녀 양육의 책임을 지고 있는 30~39세의 여성이 경력 단절이 된 비율이 69만 5천 명(46.1%)으로 가장 높고, 40~49세가 58만 명(38.5%)으로 그다음으로 높다(통계청, 2020b). 이로 인해 여성의 경력 단절 비율 곡선을 연령대를 따라 그렸을 때, 오랫동안 M자형을 이루어왔다. 더욱 큰 문제는, 경력 단절 이후에 여성이 재취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요원하며, 혹시 취업하더라도 비정규직이나 임시직같이 질 낮은 일자리로 밀려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곧 임금 수준에 반영되므로, 2019년 기준 여성 임금 근로자의 시간당 임금은 남성의 69.4%에 불과하다(통계청, 2020a).
>돌봄의 책임, 남성들에 비해 낮은 임금 수준, 불안정한 노동 지위는 여성들이 일자리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주된 원인이다. 코로나19는 이 같은 여성의 고용 중단의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코로나19 발발 이후, 여성에게 가해지는 고통은 상대적으로 더욱 가혹했다. 전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등과 같은 공적 돌봄 기관이 문을 닫거나 운영을 축소하였다. 그 결과 코로나가 막 확산되기 시작했던 시기에 여성 고용률은 급강하기 시작했다. 2020년 2월과 4월 사이 여성 고용률은 2.7%P 감소하였고 이 같은 수치는 동 기간의 남성 고용률 감소 폭에 비해 1.5배 높은 것이다(전기택, 2020). 이 수치는 코로나19 이후 돌봄이 재가족화되고 여성화되기 시작한 불행한 결과이다. 실제 코로나19 발생 이후 서울 시민의 돌봄 현황을 조사한 결과에서 영유아와 아동 돌봄 공백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어머니의 돌봄 시간을 늘렸다는 응답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김송이·황선영, 2020).
출산과 육아로 인한 여성의 경력 단절 문제와 질이 낮은 일자리로의 이동 현상은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초저출산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3) 많은 청년 여성들이 기성세대가 겪고 있는 결혼과 육아로 인한 노동 단절과 어려움을 목도하고 있다. 이들은 여성들이 여전히 전통적인 성 역할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오히려 경제 활동과 돌봄의 역할을 이중으로 부여받고 있음을 알고 있다. 또한, 그 과정에서 많은 여성들이 어렵게 진출한 사회 활동을 접고 경력이 단절되고 있으며, 질이 낮은 일자리로 떠밀려 가고 있다는 것도 안다. 그 결과 20대 여성들은 20대 남성들과 비교해서도 결혼과 출산을 더 강력하게 거부하고 있는데, “우리가 선택한 출산 파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여성의 노동 잔혹사를 막기 위한 방법은 이미 우리 사회가 알고 있는 것들이다. 먼저, 근본적으로는, 모두가 함께 돌봄에 참여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돌봄은 반드시 여성만 담당해야 할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남녀를 막론하고 양육을 위한 육아 휴직을 허용하고, 유연 근무제를 장려하는 등의 적극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 사회적 돌봄 제도의 수준을 전반적으로 한층 더 높여야 한다. 그동안 어린이집, 유치원 등 영유아를 위한 돌봄이 양적으로 확대되어 왔지만, 서비스의 질과 안전의 측면에서는 여전히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그동안 사회적 돌봄 기관을 민간을 중심으로 급속히 확대해 온 결과이다. 국공립 비율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돌봄의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제도적 노력을 좀 더 적극적으로 기울여야 한다. 특히, 영유아 돌봄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초등학생 돌봄을 적극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돌봄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제고하고, 돌보는 이들에 대한 돌봄이 세심하게 제공되어야 한다. 돌봄은 주님께서 주신 한 생명을 귀하게 키워 내는 과정이다. 돌봄에 걸리는 그 긴 시간만큼 누군가의 강력한 희생이 동반되어야 한다. 돌봄을 하는 사람들은 싹을 틔우는 거름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기에, 체력적, 정신적으로 소진될 수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돌봄을 누구나 할 수 있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로 취급해 왔다. 그렇기에 가정 내 돌봄을 제공하는 양육자를 무급 노동자로 간주하고, 기관에서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들에게는 낮은 급여를 제공했다. 금전적 문제는 겉으로 드러난 결과일 뿐, 그 이면에는 돌봄의 가치를 다른 일들에 비해 낮게 보는 관점이 깔려 있다. 그 자체로 귀한 생명을 길러 내는 행위인 돌봄의 가치를 높이고 함께 돌봄에 동참하며, 돌봄을 하는 사람들의 소진을 막기 위한 돌봄을 제공해야 한다.
* 이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정치하는엄마들’의 입장을 대표하지는 않음을 밝힙니다.
1)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2021) 중 “성별 경제활동인구 총괄”.
2) ‘경력 단절 여성’의 정의는 “15~54세 기혼 여성 중 현재 비취업인 여성으로서 결혼, 임신 및 출산, 자녀 교육, 가족 돌봄의 사유로 직장을 그만둔 여성”이다(통계청, 2020b).
3) 2019년 기준 합계 출산율은 0.92명으로 역대 가장 낮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합계 출산율은 “여성 1명이 평생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나타낸 지표로서 … 출산력 수준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이다(통계청, 2020c).
<참고문헌>
김송이·황선영. (2020). 젠더이슈 ‘코로나19 우리동네키움센터 운영실태와 정책과제’.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전기택. (2020). 이슈브리프 ‘코로나19 확산과 여성 고용’. 이슈브리프 여름호.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통계청. (2020a). 2020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 통계청.
통계청. (2020b). 2020년 상반기 지역별 고용 조사(부가항목) 경력 단절 현황. 통계청.
통계청, (2020c), e-나라지표 합계 출산율.
통계청. (2021) 「경제활동인구조사」 중 성별 경제활동인구 총괄 자료.
<좋은나무>글이 유익하셨나요?
발간되는 글을 카카오톡으로 받아보시려면
아래의 버튼을 클릭하여 ‘친구추가’를 해주시고
지인에게 ‘공유’하여 기윤실 <좋은나무>를 소개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