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은 영화 「미나리」로 최고의 배우이자 할머니란 이름의 대명사가 됐지만 모든 할머니가 윤여정 같지 않을 것이다. 사실 윤여정도 이혼 후 자녀들을 홀로 키워야 했다. 경력 단절을 겪고 슬럼프도 오고 짜증도 나고 뜻대로 안 되는 날들이 생기곤 했을 것이다. 분명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당당함을 잃지 않았을까. (본문 중)

이정일(작가, 목사)

 

가끔 예능을 보다가도 줍줍하는 경우가 있다. 우연히 보게 된 「아이콘텍트」(2020년 9월, 채널A), 금보라 씨가 후배의 고민을 듣고 있다. 눈맞춤 방에서 금보라는 후배 연기자의 인생 고민에 공감한다. 늙어가는 게 두렵고 고민이 많을 나인 걸 알기 때문이다. 신이는 1978년생이다. 마흔이 넘었다. 한데, 금보라는 이렇게 말해 준다.

 

나는 오늘도 전성기야. 인생의 전성기란 네가 숨 쉬고 있는 그 순간이 전성기야. 네가 살아 있는 게 전성기야. 작품 많이 찍고 광고 많이 하는 게 아니라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가 전성기야.

 

금보라는 무엇이든 물어 보면 명쾌한 답을 주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금보라에겐 계산하지 않은 솔직함, 느낀 대로 말하는 당당함이 있다. 나는 이것을 배우 윤여정에게서도 보고 있다. 윤여정은 재치 있고 솔직한 입담, 진정성 있는 조언에 겸손함까지 갖춰 20, 30세대가 이 멋진 실버에 빠졌다. 다들 윤여정처럼 나이 들고 싶어 한다.

 

 

당당함은 어디서 올까

 

윤여정은 영화 「미나리」로 최고의 배우이자 할머니란 이름의 대명사가 됐지만 모든 할머니가 윤여정 같지 않을 것이다. 사실 윤여정도 이혼 후 자녀들을 홀로 키워야 했다. 경력 단절을 겪고 슬럼프도 오고 짜증도 나고 뜻대로 안 되는 날들이 생기곤 했을 것이다. 분명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당당함을 잃지 않았을까. 윤여정의 말이다.

 

돈 때문에 작품을 안 가리고 전부 다 했다. 단역도 물론 다 했다. … 돈이 없으니까 더러워도 했다. 내 새끼 둘 먹여 살려야 했기 때문에 열심히 했다.

 

오로지 생계 목적으로 연기했지만 당당할 수 있는 비결은 생각의 시선에 있다. 누구나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때론 작은 선택이 힘들 수 있다. 작을수록 자존심이 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주 조금씩이라도 앞으로만 나갈 수 있으면 괜찮다. 윤여정도 단역도 마다하지 않는 그 단계를 안 거쳤다면 지금의 자기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그에겐 당당함이 있다. 그것은 아마도 자신이 무엇을 제일 잘하는지 알기 때문일 것이다. 유튜버 중에 액티브 시니어들이 있다. 박막례나 밀라논나 같은 경우다. 간장 비빔국수 레시피나 패션 감각은 엄청나다. 채널의 구독자가 각각 131만, 80만이다. 이들은 꼰대 같지 않다. 도전하고 소통한다. 윤여정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낡았고 매너리즘에 빠졌고 편견이 있다. 살아온 경험 때문에 많이 오염됐다. 이 나이에 편견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그런데 어른들이 젊은이들에게 ‘너희들이 뭘 알아?’라고 하면 안 된다.

 

윤여정이나 다른 시니어들이 아름다운 것은 생각이 여유롭기 때문이다. 이들은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의 문이 열린다는 걸 알고 있다. 인생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터득한 지혜를 가졌기에 여유롭다. 그러니 자신에게 당당하다. “나 67살이 처음이야. 내가 알았다면 이렇게 안 하지”(2014년 tvN 꽃보다 누나). 그래서 아름답다.

윤여정의 어록은 이미 트위터 등에 회자하고 있다. “주인공이 아니면 ‘안 해’는 바보짓이다.” “나는 나답게 너는 너답게 살면 된다.” “너 하고 싶은 거 해. 난 네가 행복하면 돼.” “난 못생기지 않았다. 시크하다.” 이런 조언이 유달리 와닿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을 통해서 빚어진 말이기 때문이다.

 

영화 <미나리> 스틸컷.

 

 

윤여정처럼 살려면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1)

 

이 말을 한 사람은 프랑스 작가이지만 그 의미를 깨닫게 한 건 한국 배우이다. 윤여정의 어록을 찾아서 보니 2030세대가 그에게 반할 만했다. 윤여정은 자신이 생각한 대로 살았다. 다들 멋진 말들을 SNS에 올리지만, 그 말을 몇 사람이나 삶으로 살아낼까. 나도 이런 고민을 하게 된다. 김남주 시인도 시 「어떤 관료」에서 같은 고민을 한다.

 

관료에게는 주인이 따로 없다!

봉급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다!

개에게 개밥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듯2)

 

시인은 위의 시에서 일제 말기엔 면 서기로, 미군정 땐 군 주사로, 자유당 시절엔 도청 과장으로, 공화당 시절엔 서기관으로, 민정당 시절엔 청백리상을 받은 공무원에 대해서 말한다. 그는 반평생을 국가와 국민에게 봉사한 성실한 사람이다. 하지만 시를 읽다 보면 그게 아이히만의 모습이었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삶, 생각 없이 산 삶, 그래서 악은 평범하다.

프랑스엔 뷔페식당이 드물고 국어 교과서도 따로 없다는 걸 알고 낯설었던 기억이 난다. 음식에 대한 자부심과 자유로운 사고 때문일 것이다. 반면 우리는 한번에 여러 가지를 맛보고 싶어하고 표준화된 걸 좋아한다. 그래서 그쪽 사람들은 참 재미있게 산다는 생각이 든다. 누가 뭐라든 자신들이 생각한 대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게 부럽다.

김남주 시인을 보면서 배운다. 인간은 평범하게 살면 안 된다는 걸. 정치나 경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답을 찾지 말고 선택을 해야 하는가 보다. 한데 무슨 선택을 하든 욕을 먹는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한 대로 살아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게 아름답다는 걸 배우 윤여정이 보여준다.

 


1) 폴 부르제가 그의 소설 『한낮의 악마』(1914)에서 한 말이다.

2) 시 「어떤 관료」 중 일부. 이 시는 김남주의 시집 『조국은 하나다』(남풍신서, 1988)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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