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는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어린이에게 이야기를 다시 돌려주어야 한다. 학교에서 이야기가 생겨야 하고, 집에서도 이야기가 전해져야 한다. “오늘 숙제 다 했니? 학원은 갔다 왔니? 옆집 누구는 공부 잘한다더라!”가 아니라, 아이 마음에 남을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 부모는 자녀에게 이야기를 만들어 주고, 교사는 학생들이 이야기를 간직하게 도와주어야 한다. 우리가 어른이 되었을 때, 어린이 때를 돌아보며 ‘추억’으로 기억할 이야기, 따뜻한 이야기를. (본문 중)
권일한(삼척남초등학교 교사)
방정환과 환등기
방정환 선생은 어린이들에게 어린이날을 선물한 분으로 유명하다. ‘색동회’를 만든 분으로도 기억된다. 이 외에는 무얼 하셨는지 아는 사람이 적다. ‘어린이’라는 말을 처음 쓴 분이 방정환 선생이다. 너무 일찍, 33세에 돌아가셨다. 방정환 선생은 왜 어린이날(당시에는 5월 1일)을 만드셨을까? ‘어린이를 좋아하셨기 때문’이라는 정답 뒤에 숨은 ‘이야기’를 찾아보자.
1908년, 열 살인 방정환은 한 미술가로부터 환등기(영사기)를 선물로 받았다. 가정에 텔레비전이 보급되기 50년도 더 전, 화면에 실제 사람이 등장해서 움직이는 모습이 얼마나 놀라웠을까! 방정환은 아이들을 모아 놓고 영상에 나오는 장면을 이야기로 만들어 재미나게 들려주었다고 한다. 이후에는 어린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화 구연’에 집중하였다. 환등기 켜놓고 이야기하면서 보았던 아이들 모습에 마음을 빼앗겼을 것이다. 1923년에 순수 아동 잡지 <어린이>를 창간한 것도 어린이에게 이야기를 주기 위해서였다. 그해 5월 1일에는 ‘색동회’를 조직하여 어린이를 위한 활동에 적극 나섰다.
방정환 선생은 이야기를 좋아했을 뿐 아니라, 어찌나 재미있게 이야기를 했던지 듣는 사람을 마음대로 울리고 웃겼다고 한다. 1921년,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되었을 때는 감옥에서 죄수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선생이 풀려나게 되자 죄수들이 “선생님이 가시면 그동안 즐거웠던 감옥 생활이 이제 지옥이 되겠지요!”라고 말했다고 한다.1) 선생이 날마다 들려주는 이야기는 감옥조차 즐거운 장소로 바꾸었다.
방정환 선생은 이야기를 사랑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선생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옛날 옛날에~
어린이는 이야기를 듣고 자란다. 예로부터 어린이는 ‘옛날 옛날에~’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이야기는 보지 못하는 세계를 꿈꾸게 했다. 갈 수 없는 세상에 가고 싶은 마음을 심어 주었다. 옛날이야기에서 콩쥐는 소와 두꺼비의 도움을 받아 행복해진다. 계모에게 시달리던 신데렐라도 왕자를 만난다. 이야기를 들으며 어린이는 ‘나도 행복해질 거야!’라고 기대한다. 옛날 옛날의 이야기가 앞날에 빛을 비춘다.
어린이에게 들려주던 이야기는 어른에게도 꿈을 주었다. 백설 공주는 처음 만난 난쟁이의 도움을 받고, 호랑이에게 쫓긴 오누이는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을 잡고 살아난다. 힘들고 어렵게 사는 우리에게도 구원의 동아줄이 내려올 거라는 믿음이 일제 강점기를, 어두운 독재 시기를 견뎌내게 하지 않았을까! 우리가 뉴스를 보며 분노하는 건, 우리가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다.
어린이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어려움을 만나도 착하게 살면 행복해진다는 내용이 많다. 꿈을 꾸고 노력하면 이루어진다는 내용이다. 이런 이야기를 계속 들으며 가치관이 만들어진다. 어린이가 자라면서 꿈이 바뀐다 해도, 이야기를 통해 전해진 가치는 마음에 그대로 남는다. 착하고, 성실하고, 바르게 살아가라는 가르침은 살아남는다.
어릴 때 우리는 미래를 꿈꿨다. 우리는 대통령이 되고 싶었고, 우주로 날아가기를 바랐다. 나이가 들면서 꿈이 현실에 자리를 잡았고, 어느 한 자리에 내려앉으면 거기서 할 일을 찾았다. 작은 카페 주인, 나만의 집, 글 쓰는 삶…. 그곳이 어디든 어릴 적 들었던 이야기처럼 성실하게 살면 된다고 믿었다.
꿈을 재단 당하는 어린이
지금은 예전과는 좀 다른 이야기를 듣는 어린이가 점점 많아진다. ‘옛날 옛날에~’ 이야기들의 자리를 ‘앞으로 언젠가~’ 이야기들이 차지했다. ‘호랑이 살던 옛날’ 이야기가 ‘앞으로 대학 갈 때’ 이야기로 바뀌었다.
“그 점수로 대학은 가겠니?”
“이렇게 하다가 나중에 어떻게 살겠니?”
옛날이야기에는 이런 말이 없다. 할머니가 옛날이야기 해 주다가 갑자기, “너, 그렇게 하면 왕자를 못 만난다!”라고 협박하는 셈이다. 할머니들은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호랑이 살던 옛날’의 이야기는 어린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지만, ‘그 점수로는 대학 못 간다’는 이야기는 어린이를 위협한다. ‘대학 가려면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는 말은 꿈을 재단해 버린다.
어린이는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어린이에게 이야기를 다시 돌려주어야 한다. 학교에서 이야기가 생겨야 하고, 집에서도 이야기가 전해져야 한다. “오늘 숙제 다 했니? 학원은 갔다 왔니? 옆집 누구는 공부 잘한다더라!”가 아니라, 아이 마음에 남을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 부모는 자녀에게 이야기를 만들어 주고, 교사는 학생들이 이야기를 간직하게 도와주어야 한다. 우리가 어른이 되었을 때, 어린이 때를 돌아보며 ‘추억’으로 기억할 이야기, 따뜻한 이야기를.
이야기해 줄게. 들어 볼래?
권정생 선생님은 작고 약하고 하찮은 것들을 이야기 속으로 불러 모았다. 강아지 똥, 다리 저는 아이, 지렁이, 똘배, 앉은뱅이, 거지를 이야기에 불러내어 우리에게 소개했다. 강아지 똥은 사람들이 치우지 않아 갈등을 일으키는 존재가 아니라, 사랑과 희생의 이야기 주인공이 되었다.2) 아이들이 기다린 이야기다.
게임에 빠져들고 핸드폰에 마음을 빼앗긴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면 어떻게 될까? 내가 올해 만난 아이들(6학년)이 너무 가벼워 보여 『가벼운 공주』(조지 맥도널드 지음)를 읽어 준다. 가벼운 공주는 고민이라곤 하지 않는다. 딱 우리 반 아이들 같다. ‘해야 하는 일’은 뭐든 귀찮아 하고 ‘하고 싶은 일’을 물으면 ‘게임!’이라고 말하던 아이들이, 귀 기울여 이야기를 듣는다. 이야기에 빠져든다. 책을 읽어 주면 가벼운 아이들도 조용해진다.
코로나로 이야기가 줄었다. 만나는 사람이 줄었다. 가는 곳도 줄었다. 이야기가 줄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어린이날에 어린이가 만들 이야기가 줄어들었다. 그래서 더욱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 “읽어라, 써라, 공부해라, 문제 풀어라!” 강요하지 말고, 이렇게 말하자.
“이야기해 줄게. 들어 볼래?”
1) 김진향, 『책 먹는 아이들』(푸른사상, 2005).
2) 권정생, 『강아지똥』(세종문화사,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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