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파도타기> 영화<미나리> 살아남기 위한 떠남, 미나리
진느(조혜진 청년운동본부장)
계획에 없던 사직원을 제출했다. 평생 직장이란 개념이 없는 시대라고 한다. IMF 이후 안정에 대한 욕구가 커지며, ‘철밥통’으로 불리우는 공무직 지원이 내내 높은 경쟁률을 기록하고 있지만, 한편으론 안정이 다가 아니라 생각하는 MZ세대의 이탈율은 높다고 한다. 한 번도 영리하게 ‘이직처’를 정하고 사직을 결정한 적이 없는 나는, 급작스런 떠남과 새로이 뿌리 내릴 곳을 찾아 헤매는 여정의 길에서 개인적이고도 시대적인 고민에 빠진다.
영화<미나리>는 개봉 후 일찌감치 영화관에서 보았다. 화제를 모으기 전이었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연출작이나 <남매의 여름밤>류의 가족 영화를 좋아하기에 선뜻 보았다. 여느 관람객들의 리뷰처럼 부드럽게 이어지지 않는 연출과 회수하지 못하고 흩뿌려진 상징들 때문에 ‘깔끔하지 못한 느낌’이 아쉬웠지만, 이 또한 이민자의 삶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아역 배우의 귀여운 연기와 유명 배우의 오스카상 수상으로 유명해졌지만, 나에겐 극을 이끄는 중심에 있는 아빠 ‘제이콥’이 눈에 띈다. 아무래도 전통 가부장제를 바탕으로 한 한인 가족의 자전적 이야기이기에, ‘정이삭’ 감독이 자신의 뿌리와 유년을 기억할 때에 아버지가 극의 중심이 될 수 밖에 없었으리라 추측해 본다. 아버지의 결정, 아버지의 꿈, 아버지의 좌절. 그 흐름에, 이민자 마냥 낯선 세상에 정착하고 생존해야 하는 청년인 나의 길이 오버랩된다.
나는 ‘나의 삶’을 살지만 ‘나의 것만은 아닌 삶’을 산다. 가족적 사고를 하는 한국식 문화 속에 있기에, 안정을 포기하고 선택한 나의 삶이 그 자체로 괜찮다는 평가는 나만의 만족으로 완전하지 않다. 가족의 인정이 있을때에야 비로소 완전해진다. 나의 진로 선택과 그에 따른 사회적 지위, 커리어적인 성패, 연봉 및 근무 환경은 늘 나만의 것은 아니었다. 이직 때마다, 감내해야 하는 많은 일들 중에서도 부모님의 걱정과 잔소리는 무시할 수 없는 과제로 크게 다가온다. 3년 전의 퇴사 때에는 부모님에게 이 사실을 숨기려고 20여 일을 명예퇴직한 가장 마냥 가짜 출근을 하기도 했다.
새로 이사와서 살게 된 바퀴달린 트레일러 집을 본 가족들의 표정이 뾰루퉁할 때, 남다르게 가슴이 덜컹한 것은 이러한 경험 때문이리라. 내민 손을 거절하고 트레일러에 오르는 아내의 반응은 싸늘하기까지 하다. 뜨뜻미지근한 반응에 제이콥은 더욱 과장되게 새로운 삶을 소개한다. 이 땅 만큼 농사를 지을거라고. 의욕이 가득찬 어조와 높은 흥이지만, 내면에 숨겨진 불안감이 엿보여서 처연하다.
한창 자라는 두 자녀와 아내. 그리고 고국에 있는 장모님. 부양 가족만 생각하여 안정적인 생계를 꾸려가자면, 내내 병아리 감별사로 사는 것이 나았을 것이란 것을 모두가 안다. 깨끗하고 인프라가 좋은 도시에서 살고 싶다는 아내의 말은 합리적이다. 모두가 반대하는, 모두에게 영향을 주는 선택을 강행한 이의 목소리가 격정적이다. “애들도 아빠가 뭔가를 해내는 걸 한 번은 봐야할 거 아냐?”
나의 퇴사를 바라보는 부모님의 반응도 합리적일테다. ‘우리 때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참으며 다녔어. 1년 반, 2년 반마다 직장을 갈지 않았어. 최대한 견디려고 노력을 해보고, 그것도 안되면 이직처가 결정되고 관둬야지 대책없이 관두는 게 어디있어?’
하지만 10년을 병아리 감별사로 지내며, 병아리 똥구멍만 쳐다보는 기계같은 작업을 한다면 새로운 삶에 대한 욕망이 꿈틀대지 않을까. 굴뚝의 검은 연기를 볼 때마다 ‘쓸모가 있는 수컷’이 되어야 하는 강박이 자라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을까.
일터에서도 ‘나답게, 생명답게’ 존재하고 싶다. 부양할 가족도 없고 경력이 단절된 적도 없기에, 내 한 몸만 건사하면 되는 청년의 배부른 소리라는 의견도 있을테지만. 조직의 목적, 조직이 나에게 부여한 역할에 충실한 삶만큼, 직무를 통한 자아 실현, 사무실 내 조직문화를 통한 존중과 성장, 업무와 일상의 균형을 통해 나를 잃고 싶지 않다. 일터는 생계를 보장해줬지만, 지속적으로 존재적 결핍을 유발하며 생명을 위협했다면, 새로운 꿈을 꿀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의지와 정신 승리만으로 상황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현실은 그렇다. 직접 샘을 파려는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어렵게 키워낸 작물들은 판로를 찾기가 쉽지 않다. 호기롭게 빨리 이직할 수 있다고 날렸던 자신감은 탈락의 고배들이 쌓여가며 겸손해진다. 그럴 때면, 내 선택이 틀렸나? 자신이 없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최근 청년운동본부 차원의 느슨한 커뮤니티 모임인 잇슈On을 시작했다. ‘K-사원의 근무일지’란 이름이 붙은 이 모임은 직급, 나이, 권한, 연봉 등의 영역에서 상대적 약자인 청년들이 당면한 여러 가지 문제를 공유하고, 건설적인 개선 아이디어를 모으는 것이 목표다. 다채로운 직종의 청년들이 모였고, 감사하게도 구성원들이 기질 및 상황과 관계없이 개인의 이야기를 잘 꺼내주어 모임이 풍성했다. 즐겁고 힘이 되는 시간이었지만, 한 편 마음이 무거웠던 것은 대부분의 ‘최근 관심사’가 ‘이직’이라는 것이었다. 이직을 선택하는 삶이 치러야 하는 값을 알기 때문에, 의문이 많은 현재의 삶을 쉽게 박차고 떠나지 못한다.
분명 한 자리에서 인내하는 것을 통해 열매를 볼 사람도 있을게다. 정답이 무엇이든, 내가 되기 위해 몸부림치던 날들을 통해 나는 발견된다. 낯선 토양에서도 잘 자라난 미나리처럼, 좌충우돌 가운데에서도 인생은 계속되고, 외할머니와 티격대던 ‘데이빗’이 아카데미에 진출한 감독으로 자라기도 한다. 본토 아비 친척집을 떠나, 하나님이 이끄시는 땅으로 갔던 아브람의 모험을 통해 성경의 서사가 시작되었듯, 나를 나로 지으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방법으로 익숙하고 안정된 곳을 떠난 것은 나의 서사를 의미있게 할 거라 믿어본다. 비록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도달하지 못했고, 나는 이 퇴사로 인해 경제적 손실과 커리어적 단절, 부모님의 불신 등의 값을 치러야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되기를 택한 이 몸부림을 통해 더 깊은 뿌리를 가진 생명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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