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십 때나 지금이나 잘 사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 좋은 차를 보면 눈을 떼지 못한다. 어린애 같은 생각도 한다. 넌 좋겠다, 여유가 있어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가난해지셨음에도 나는 가난이 대물림될까 봐 조급해진다. (본문 중)

이정일(작가, 목사)

 

언제부터인가 ‘백 세 인생’을 말한다. 아흔이 넘었어도 정정한 분이 많다. 내가 아는 최고령자는 드라마 <도깨비> 속 인물이다. 김신(배우 공유)은 나이가 939살이다. 그는 아담보다 9살이 많다. 하지만 그가 생을 마칠 때 천년도 찰나처럼 느껴질 것이다. 스무 살이 될 때까지가 지겹지 스무 살이 지나면 시간은 총알처럼 날아간다.

인생 백 년도 몇 억 년을 버틴 암석에 비교하면 새 발의 피다. 한데 그런 짧은 시간도 우리는 서둘러 산다. 서두르지 않아도 짧을 인생을 우리는 조급함으로 더 짧게 만든다. 작은 손해에도 예민하다. 정채봉 시인은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5분만 온대도 원이 없겠다고 했는데1), 우리가 바라는 행복의 조건들이 너무 많다.

다리만 뻗고 잘 수 있어도 행복한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가난을 같이 겪으며 자랐지만 번듯하게 자리를 잡은 친구들이 마냥 부럽다. 시인 황지우도 그런 시절을 보낸 것 같다. 그도 아내가 일간지에 콩나물을 싸 들고 막다른 골목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시에 썼다.2) 그러면서 주소가 길면 가난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어떤 이에게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덧나는 상처다. 아파트값이 폭등하기 전까진 그래도 내 집 마련이라는 꿈을 붙잡고 살았는데, 이젠 이것도 헛것이 되었다. 그래도 꿋꿋이 살아내자고 다짐하지만, 삶이 막막하게 느껴진다. 그런 날엔 내가 사는 집 주소가 긴 것도 신경이 쓰인다. 그때마다 시가 살짝 마음을 만지는 게 느껴진다.

 

우리를 살게 하는 힘 

 

성경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십 때나 지금이나 잘 사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 좋은 차를 보면 눈을 떼지 못한다. 어린애 같은 생각도 한다. 넌 좋겠다, 여유가 있어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가난해지셨음에도 나는 가난이 대물림될까 봐 조급해진다.

표지가 닳을 정도로 성경을 읽었음에도 사는 게 조급하다. 그럴 때면 시편 73편을 묵상하거나, ‘우리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나 자신에게 묻는다. 모범 답안은 알고 있다. 가난해도 행복하다고 느끼며 살면 밝은 가난이고, 가난해서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어두운 가난이 된다.

삶을 살게 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희망, 사랑, 행복, 기쁨, 즐거움 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게 행복이라면, 할리우드 배우들이나 부자나 권력자가 가장 행복할 것이다. 이게 맞는다면 대한민국이 OECD 국가 중 자살률 세계 1위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잘살게 된 건 분명하지만 많이 지쳐 있다.

 

 

시가 주는 위로

 

살면서 조금씩 깨우친 게 있다. 그중 하나는 몸이든 마음이든 우리는 어딘가 조금씩 아픈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모양으로든 위로가 필요하다. 지치고 외로울 때, 시도 밥심처럼 느껴진다. 시가 할머니나 엄마의 사랑에 비할 바 안 되지만, 시가 주는 위로가 있다는 걸 안다. 우리가 지쳐 그걸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이문재의 시 「봄날」이 있다. 시인은 대학 본관 앞에서 좌회전하는 중국집 배달 청년이 급브레이크를 밟는 모습을 목격한다. 갑자기 멈추어서 오토바이가 넘어질 뻔했다. 한데 시인이 놀란 건 그다음이다. 배달 청년은 휴대 전화를 꺼내더니 이제 막 피기 시작한 목련꽃을 찍는다. 찰칵, 찰칵. 그 모습을 보며 시인이 말한다.

 

계란탕처럼 순한

봄날 이른 저녁이다

 

함민복의 시 「눈물은 왜 짠가」도 읽고 나면 힘이 된다. 나는 이 시를 읽고 한참 동안 허둥댔다. 어머니는 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온다. 그런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설렁탕집으로 들어가신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지 더위를 안 먹는다고.

복효근의 시 「무심코」를 읽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부부가 말이 없다. 싸운 것이다. 서먹하니 마주한 식탁에서 남자가 명이나물 한 잎 젓가락으로 집어 드는데 끝이 붙어 있다. 그걸 본 아내의 젓가락이 다가와 떼어준다. 무심코 한 행동이다. 아내도 싸운 것을 잊은 것이다. 순간 훈훈해진 남자는 ‘영화나 한 편 볼까’, 말할 뻔했다.

삶은 경이롭다. 나는 그런 순간 중 하나를 시를 통해서 본다. 힘내라는 말이 위로가 되지 않을 때 나는 무심코 시를 읽고 있는 나를 본다. 산다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다. 하지만 수건 한 장을 덮고도 잘 자는 아이를 보면, 산삼 먹은 듯 힘이 난다. 백창우의 시를 읽을 때도 그런 느낌을 받는다.

 

그래도 세상은 꿈꾸는 이들의 것이지

개똥 같은 희망이라도 하나 품고 사는 건 행복한 거야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고 사는 삶은 얼마나 불쌍한가3)

 

시를 보고 있으면 정말로 위로는 쉬운 것임을 느낀다. 다들 지친 나를 보고 눈치를 보며 머뭇거릴 때, 시가 나를 말없이 안아줄 때가 있다. 그럴 땐 미움도 안으면 따뜻해진다는 게 이해가 된다. 시를 읽다 보니 마음은 비우는 게 아니라 채우는 것 같다. 시로 채우는 삶은 행복해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1) 정채봉의 시,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2) 황지우의 시, 「手旗를 흔들며」.

3) 백창우의 시, 「소주 한잔 했다고 하는 얘기가 아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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