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나와 상대방, 즉, 피아(彼我)간의 채권(credit)과 채무(debt)를 정확히 인식하고, 정확하지 않거나 불공정하게 상대방의 빚을 크게 주장하는 착각과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기도문의 다섯 번째 기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를 영어 성경(NIV)으로 보면 ‘죄’나 ‘죄지은 자’ 대신에 빚(채무, debt), 빚진 자(debtor)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이 주기도문의 내용을 ‘우리에게 죄지은 자’가 아니라 ‘우리에게 빚진 자’로 읽으면 우리의 직장 생활에 더 뚜렷하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본문 중)

이병주(기독법률가회 대표, 법무법인 디라이트 변호사)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의 빚을 탕감해준 것처럼, 우리의 빚을 탕감해 주시옵고….

Forgive us our debts as we also have forgiven our debtors.

(마태복음 (마태복음 6:12)

 

다툼과 미움의 원인: 서로 본전이 안 맞는 것

 

돈내기로 하는 카드나 화투 게임이 끝나고 나면 항상 본전(本錢, 밑천) 계산이 맞지 않습니다. 돈을 땄다고 하는 액수의 합계가 돈을 잃었다고 하는 액수의 합계보다 항상 작습니다(이것을 ‘본전 이론’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각자 본전 계산이 다르기 때문인데, 보통 돈을 딴 사람은 고의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실제로 딴 돈보다 적게 땄다고 하고, 돈을 잃은 사람은 실제로 잃은 돈보다 더 잃었다고 억울해 합니다.

이처럼 본전이 안 맞는 현상, 즉,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 자신의 몫을 달리 생각하는 현상은 거의 모든 재산권과 권리와 분배의 문제에서 발생합니다. 현실 속에서 경제생활과 직장 생활을 하는 우리들은 신비(神秘)할 정도로 항상 자기의 몫을 타인의 생각보다 더 크게 계산합니다. 이것은 직장 상사와 부하 사이, 기업주와 노동자 사이는 물론, 심지어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사고방식이자 행동 양식입니다.

현실 세상의 경제적, 법적 분쟁에서 이해 당사자들은 서로의 몫을 두고 다투면서, 모두가 억울해 하고 상대방을 미워합니다. 다툼의 원인에는 서로 본전, 즉, 자기 몫에 대한 계산이 다르다는 점이 크게 작용합니다. 민사 재판에서 원고와 피고가 싸울 때, 원고는 자기의 정당한 권리의 몫을 100 중 80이라고 생각하고, 피고는 자기의 몫을 100 중 60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둘 다 억울해 하고 자기가 절반 이상 정의롭다고 생각합니다. 원고와 피고가 생각하는 각자의 권리의 몫을 더하면 100이 아니고 140이 됩니다. 이 초과분의 거품 40만큼 원고와 피고는 서로를 향해 분한 마음을 품습니다.

원고는 피고를 ‘자기의 정당한 몫이 20뿐인데 60이라고 주장해서 내 정당한 몫 80 중 40을 빼앗아가려고 하는 나쁜 놈’이라고 생각합니다. 피고는 원고를 ‘자기 몫이 40뿐인데 자기 몫이 80이라고 부풀려서 내 몫 60 중 40을 빼앗으려고 하는 나쁜 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원고가 보기에는 피고가, 피고가 보기에는 원고가 십계명 중 열 번째 계명, ‘네 이웃의 것을 탐하지 말라’(출애굽기 20:17)를 위반하는 죄인이 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원고와 피고 양자 모두 상대방에 의해서 부당하게 40만큼의 자기 몫을 빼앗길 위기에 놓인 억울한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분쟁에서 산술적인 진실과 정의, 즉 ‘양쪽의 몫을 더하여 100이 되는 상황’은 희박합니다. 노름판에서 본전이 서로 안 맞는 것처럼, 세상의 분쟁은 모두 사람들의 본전이 맞지 않기 때문에 생깁니다.

직장 상사와 후배 직원 간에 벌어지는 분쟁과 다툼과 상처의 발생 원인도, 마찬가지로 본전이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직장의 초년병 직원들은 같이 일을 하는 선배나 직장 상사가 업무를 두고 짜증을 낼 때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직장 상사가 미워지고, 사무실이 나쁜 장소로 보입니다. 하지만, 직장 상사나 선배들의 계산과 입장은 전혀 다릅니다. 후배 직원이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일을 해내지 못하면 선배 직원은 무척 괴로워집니다. 착한 선배 직원들은 제대로 성질도 못 내고 후배 앞에서 괴로운 표정을 짓게 됩니다. 이때 그 상대인 후배 직원은 자기 인격을 무시당한 것 같은 모멸감을 느끼고, ‘저 인간은 제대로 가르쳐 주지도 않으면서 성질만 낸다’고 생각하며 선배나 직장 상사를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이 사람도 미워지고 저 사람도 미워지고, 내가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느끼기 시작합니다. 이런 상황은 직장 상사나 선배들에게는 인생을 걸 만큼 괴로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직장 초년의 후배 직원에게는 인생의 치명적 위기로까지 느껴질 수 있고, 사무실 생활이 매우 힘들어지기 시작합니다. 심한 경우에는 지옥을 따로 상상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직장 생활이 괴로워지고, 직장에 출근하는 것이 매일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슬프고 힘겨워집니다.

 

『직장에서 믿음으로 사십니까?』 표지, ⓒ아바서원.

 

채권과 채무, 권리와 의무의 정확한 계산이 필요하다

 

우리는 나와 상대방, 즉, 피아(彼我)간의 채권(credit)과 채무(debt)를 정확히 인식하고, 정확하지 않거나 불공정하게 상대방의 빚을 크게 주장하는 착각과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기도문의 다섯 번째 기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를 영어 성경(NIV)으로 보면 ‘죄’나 ‘죄지은 자’ 대신에 빚(채무, debt), 빚진 자(debtor)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이 주기도문의 내용을 ‘우리에게 죄지은 자’가 아니라 ‘우리에게 빚진 자’로 읽으면 우리의 직장 생활에 더 뚜렷하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상대방의 빚(채무)을 탕감해 주는 것은 내 것, 내 채권과 권리를 버리는 일이므로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상대방의 채무나 잘못을 용서해 줄까 말까 고민하기 전에, 우선 ‘과연 이 상황에서 상대방이 빚진 자(채무자)인지, 아니면 내가 빚진 자(채무자)인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따져보아야만 합니다. 만일 알고 보니 두 사람 중 채무자(debtor)는 상대방이 아니고 바로 나 자신이었다면, 굳이 존재하지도 않는 상대방의 빚(잘못)을 용서해 주려고 기를 쓰고 애를 쓸 필요가 없습니다. 화를 낼 필요도 없게 되니까, 인생이 훨씬 단순해집니다.

회사에서 동업자들 간의 갈등은 동업자 간에서 상대편의 이익을 침범할 때 생기고, 직장 상사와 초년병 사원 간의 갈등은 보통 업무 수행의 질이 낮거나 마감 시간이 잘 맞지 않을 때 생깁니다. 직장 초년병 시절 내가 한 일이 조금 꼬이고 직장 상사가 나에게 신경질을 내면, 인상을 쓰는 직장 상사를 ‘저 나쁜 놈, 나에게 못되게 구는 놈, 나에게 빚진 자’로 생각할 필요 없이, ‘이번에는 내가 일을 조금 잘 못했구나, 다음번에는 잘해야지’하고 나 자신을 빚진 자(debtor)로 생각하고 나 자신의 빚(debt)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것이 더 간명하고 정확합니다. 만일 내가 진 빚(채무)을 인정하지 않고 상대방의 빚(채무)만 너무 깊이 묵상하면, 우리는 인간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용서의 벽’에 부딪히고, 상대방에 대한 미움과 증오로 몸부림치게 됩니다.

우리는 영화 <밀양>에서 여주인공 이신애(전도연 분)가 자기 아들을 해친 살인범을 무리하게 용서하려다가 지독한 시험에 빠지는 장면을 봅니다. 그리스도인은 열심히 하나님을 믿고 열심히 용서해야 하겠지만, 나의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을 너무 믿으면 안 됩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세상일에서나 믿음의 일에서나 모두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한계를 무시하고 나의 믿음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무리한 일을 하다가 시험에 빠지는 우(愚)를 범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도 잘난 척하지 말아야 하지만, 믿음에서도 잘난 척을 말아야 합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린도전서 10:12).

 

※ 이 글은 저자의 신간, 직장에서 믿음으로 사십니까?』 (아바서원, 2021.5)로부터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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