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은행 감독 기구인 바젤은행감독위원회(BCBS)는 은행들이 투자하는 자산별로 해당 자산이 갖는 리스크에 따라 위험 가중치를 부여하는데, 가상 화폐에는 역대 최대 수준인 1,250%라는 위험 가중치 부여를 제안했습니다. 바젤위원회는 은행이 보유한 실물 금의 경우 0%, 담보물이 있어 상대적으로 안전한 주택 담보 대출에는 20%, 위험 자산인 투기적 비상장 주식엔 400%를 부과했는데, 이에 비하면 가상 화폐가 얼마나 위험한 자산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본문 중)
한기수(연세대 명예교수, 경영학)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 이후 우리나라의 경제는 불황에 빠졌고 실업률은 증가하며 교회를 비롯한 모든 모임은 침체하였습니다. 특히 자영업자들과 젊은이들이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반면에 부동산 시장, 특히 아파트 시장은 급등세를 이어가며 젊은이들의 내 집 마련의 꿈을 앗아가고 성실히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을 좌절하게 하였으며, 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는 온 국민을 분노와 허탈감에 빠지게 하고 사회적 공정에 대해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게 했습니다. 이 와중에 가상 화폐 시장은 급등락을 반복하고 있고, 청년층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이 부동산 시장에서의 좌절과 허탈을 보상받으려는 듯 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가상 화폐 투자는 과연 괜찮은 일일까요? 아래에서는 가상 화폐가 무엇인지, 가상 화폐 시장의 실태와 특성은 무엇이며, 그리스도인은 가상 화폐 투자와 관련하여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를 살펴봅니다.
가상 화폐란?
가상 화폐란 분산된 원장[distributed ledger(장부)]에서 공개키 암호화로 거래정보를 안전하게 전송하고 공동으로 관리하는 기술을 적용하여 거래하는 디지털 자산입니다. 분산 원장 기술에는 블록에 데이터를 담아 체인 형태로 연결한 뒤, 수많은 컴퓨터에 이를 동시에 저장하는 블록체인(blockchain)과, 그물처럼 거래를 연결하는 방향성 비순환 그래프(DAG: directed acyclic graph)가 있습니다. 가상 화폐는 암호화 기술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암호 화폐라고 부르기도 하며, 우리나라의 특정금융정보법은 ‘가상 자산’이라 칭하고 있습니다. 가상 자산이라고 명명한 배경에는 가상 화폐의 화폐 교환 기능을 부정하려는 의도가 있습니다. 한국블록체인협회 및 국내 다수의 거래소도 가상 화폐를 가상 자산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향후 이 용어 사용이 일반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2009년 1월 최초의 가상 화폐인 비트코인(Bitcoin)의 첫 블록이 만들어진 이후, 수많은 가상 화폐가 생겨났습니다. 비트코인 외의 다른 가상 화폐들은 비트코인의 대안적 코인(alternative coin)이라는 의미에서 알트코인(altcoin)이라 부르며, 대표적 알트코인에는 이더리움(Ethereum), 리플(Ripple), 라이트코인(Litecoin) 등이 있습니다.
가상 화폐의 특성
가상 화폐는 분산 원장 기술, 암호화 기술, 디지털 기술의 사용으로 인해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갖습니다. 첫째로, 가상 화폐는 분산성과 안전성이 있습니다. 기존의 거래는 단일 주체가 단 하나의 원장에 기록하는 중앙 관리 형태였습니다. 그러나 가상 화폐에 사용되는 분산 원장 기술은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모든 참여자가 모든 거래에 대해 전자식 사본을 보유하며, 새로운 거래가 발생할 때마다 암호학적 증명으로 다른 참여자들의 사본과 동기화됨으로써 거래 기록이 분산됩니다. 이것은 기록을 변경하거나 조작할 수 없도록 보호해 줌으로써 원장의 안전성을 높여 줍니다. 기록을 조작하기 위해서는 모든 참여자의 기록을 함께 변경해야 하는데 이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가상 화폐는 익명성과 보안성을 갖고 있어서 누가 얼마를 주고받았는지 거래 당사자 외에 다른 사람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범죄 집단들이 이를 테러 자금 거래, 탈세, 마약 밀매, 무기 구매, 도박, 불법 자금 융통, 돈세탁 등에 악용하는 사례도 많아, 국가들이 공동으로 이에 대처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셋째로, 가상 화폐는 주식과 달리 P2P 거래(개인 간 직거래)가 가능하며 발행의 자율성이 있습니다. P2P 거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둔 P2P 거래소를 통해 거래 당사자 간에 직접 이루어지며 다른 참여자들이 부여한 평점으로 거래자의 신뢰성을 검증하고 보장합니다. 가상 화폐 발행은 최초 발행 과정에서 발행 회사가 관련 기술과 청사진을 담은 가상 화폐 공개(ICO, Initial Coin Offering)를 제시하긴 하지만, 실제로 발행을 통제하는 기구는 없으며 최초 개발 시 미리 정의된 알고리즘에 의해 발행이 통제됩니다. 가상 화폐 발행의 자율성은 윤리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가상 화폐의 신뢰성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고, 실제로 시장에서 그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가상 화폐 시장의 실태
올해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가상 화폐 열기가 뜨겁습니다. 2020년 1년 동안 1회 이상 거래한 투자자는 120만 명이었는데, 2021년 1분기에는 511만 명으로서 426% 증가하였습니다. 2021년 1분기에 4대 가상 화폐 거래소(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에 신규 계좌를 개설해 투자를 시작한 사람은 249만 명(중복 포함)이었는데, 이 중 20, 30대가 158만 명으로 63.5%를 차지했습니다.1) 젊은 층의 가상 화폐 투자 열기는 5060 세대로 확산해 노후 자금까지 투입되고 있습니다. 어느 거래소의 경우, 50대 이상 투자자가 6개월 새 10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가상 화폐 시장이 붕괴하면 수많은 청년과 중장년층이 감당키 어려운 손해를 볼 수 있는 위험한 상황입니다.2)
투자 과열 분위기에 2021년 1분기 4대 거래소의 거래 규모(1,486조 2,770억 원)는 지난해 연간 거래액(357조 3,449억 원)의 4배 이상 급증했으며, 1분기 코스피 거래액(1,206조 2,137억 원)도 앞질렀습니다.3) 내재 가치가 의심스러운 가상 자산 거래액이 실물 자산을 토대로 국가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주식 시장 거래액을 훌쩍 뛰어넘은 것입니다.
가상 화폐 시장은 가격 제한 폭이 없고 365일 24시간 운영됩니다. 가상 화폐 가격 변동 폭은 매우 커서 단타로 매매하는 투기 성향도 심해지고 있습니다. 2021년 1분기 4대 거래소의 투자자 1인당 월평균 거래 횟수는 125.8회였습니다. 주말, 공휴일, 밤낮 가리지 않고 하루 4차례 이상 가상 화폐를 사고판 셈입니다. 한 대형 증권사의 주식 투자자 1인당 월평균 거래 횟수가 25.8회인 것과 비교하면 가상 화폐 투자자의 단타 성향은 5배 수준으로 높았습니다.4)
국제 은행 감독 기구인 바젤은행감독위원회(BCBS)는 은행들이 투자하는 자산별로 해당 자산이 갖는 리스크에 따라 위험 가중치를 부여하는데, 가상 화폐에는 역대 최대 수준인 1,250%라는 위험 가중치 부여를 제안했습니다. 바젤위원회는 은행이 보유한 실물 금의 경우 0%, 담보물이 있어 상대적으로 안전한 주택 담보 대출에는 20%, 위험 자산인 투기적 비상장 주식엔 400%를 부과했는데, 이에 비하면 가상 화폐가 얼마나 위험한 자산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5)
2021년 4월 22일 기준, 전 세계 암호 화폐 거래소에 상장된 가상 화폐 수는 약 9,500개에 이릅니다.6)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가상 화폐의 대표 주자인 비트코인 거래량은 전체 거래의 6%에 불과하고, 나머지 94%는 알트코인을 거래하고 있습니다. 또한, 거래 가상 화폐 중 3분의 1은 전 세계에서 오로지 한국에서만 거래되는 이른바 ‘김치코인’입니다. 세계 어디에도 이렇게 알트코인이 난립하는 나라는 없습니다.7) 부실 가상 화폐가 문제가 되자 각 거래소는 수십 개의 가상 화폐를 상장 폐지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이를 보유했던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보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게다가, 정부의 규제와 감독이 없어 매년 수천억 원의 사기 사건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2021년 5월, 피해 금액 3조 8,500억 원, 피해자가 7만 명에 달하는 대규모 가상 화폐 사기 사건을 적발했습니다. 최근 4년간 가상 자산과 관련한 범죄 피해 금액까지 합하면 5조 5,000억 원에 달합니다.8)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할 것인가?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권면합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디모데전서 6:9-10)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2)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린도전서 10:23, 31)
앞에서 설명한 가상 화폐 시장의 실태는 그 시장이 얼마나 투기가 판치는 곳인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투기적 성격이 강한 선물 시장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윤강로 KR인베스트먼트 회장은 최근 가상 화폐 열풍에 대해, “투자나 투기 거래의 범위를 벗어난 투전판·도박 수준”이라고 진단했습니다.9)
일반인조차도 가상 화폐 시장이 투전판이요 도박판이라고 진단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이 가상 화폐 시장에 뛰어드는 것이 적절할까요? 가상 화폐 시장의 참여는 “이 세대를 본받아” 속히 “부하려 하고” “돈을 사랑하는” 탐욕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가상 화폐에서 이익을 얻으려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이웃에게 덕을 세우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일까요?
그리스도인이 가상 화폐 시장과 거리를 두어야 할 또 다른 이유는 가상 화폐 채굴에 사용되는 엄청난 전력량 때문입니다. 현재 가상 화폐 중 시가 총액 1, 2위를 차지하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채굴하는 데 사용되는 전 세계 전력량은 19.23TWh(테라와트시)인데, 이는 1,700만 인구의 나라 시리아의 총 전력 소비량을 훌쩍 넘어서는 수치입니다.10) 실질적인 가치 창출이 거의 없으면서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고 환경을 훼손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환경을 돌보는 선한 청지기가 되어야 할 그리스도인은 환경을 훼손하는 일을 막는 역할을 해야 하며,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가상 화폐 거래에 참여하지 않는 것입니다.
맺음말
지금까지의 논의는 현재의 우리나라 가상 화폐 시장을 두고 논의한 것이었습니다. 가상 화폐와 관련된 환경은 급변하고 있습니다. 블록체인과 같은 분산 원장 기술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사회에 가치를 창조하고 혁신을 일으킬 것으로 촉망받고 있고, 가상 화폐는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을 견인하고 있습니다. 블록체인 기술은 가상 화폐 외에도 식품의 유통 경로 추적, 전자 계약서 및 디지털 콘텐츠 관리, 건강 여권, 포인트 통합 시스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되고 있습니다. 또한, 미래에 메타버스(metaverse)라는 생활형 가상 세계가 전개되면 가상 화폐가 그 세계의 화폐로 사용될 잠재력이 있습니다.
한편,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미국, 중국 등 많은 나라의 중앙은행들은 가상 화폐의 교환 기능을 부정하며, 별도로 디지털 화폐(CBDC,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발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가상 화폐가 현실에서 디지털 화폐로 사용될 가능성은 그리 커 보이지 않습니다. 또한, 정부는 사회적 압력에 의해 가상 화폐와 시장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2021년 3월에 개정된 특정금융정보법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60여 개나 난립하고 있는 거래소도 9월 이후에는 특정금융정보법의 신고 요건에 의해 네댓 개만 남고 모두 폐쇄될 수도 있습니다. 향후 가상 화폐 시장이 정부의 감독과 규제를 통해 지금과 같은 투전판·도박판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건전한 투자 대상이 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1) 동아일보, “[단독]탈출구 찾는 청년들 ‘영끌 베팅’… 가상 화폐 1분기 신규 투자 63%가 2030”, 김자현, 이상환, 2021. 4. 21.
2) 조선일보, “[사설]코인 시장 세계 최악 투기판 만든 정부, 하는 일이 뭔가”, 2021.05.11.
3) 동아일보, 위의 글.
4) 같은 글.
5) 매일경제신문, “은행, 코인 10만 원 살 때 10만 원 쌓아야… ‘투자 말라는 뜻'”, 김혜순, 진영화, 신혜림, 2021. 6. 11.
6) 매일신문, “비트코인·알트코인·블록체인…암호 화폐가 도대체 뭐야?”, 홍준헌, 2021. 4. 22.
7) 조선일보, 위의 글.
8) 뉴스토마토, “피해 금액 3조 8,500억 원 … 대규모 가상 화폐 사기 발생”, 박한나, 2021. 5. 26.
9) 조선일보, “가상 화폐는 투전판, 전체의 3%만 살아남을 것”, 최형석, 2021. 06. 04.
10) 아이굿뉴스, “가상 화폐 투기는 극단적 물신주의와 한탕주의의 발로”, 한현구, 2018.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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