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주목할 것은, 사람들은 한자리에 있어도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있고 자기가 할 말만 생각하고 있다. 혹 듣는다고 하더라도 그 말을 있는 그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듣고 싶은 말만 듣거나 자기식으로 해석해서 듣는다. 모든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본문 중)

정병오(오디세이학교 교사, 기윤실 공동대표)

 

학생A: (숨을 헐떡이며 달려와서) 선생님 큰일 났어요.

교사: (놀라며) 무슨 일인데?

학생A: 영수와 철수가 말다툼하다가 영수가 화가 나서 철수를 때리려는 것을 아이들이 말려서 떼어 놓았는데, 철수가 영수를 향해 “때려 봐!”라고 소리치고 있고, 영수는 화가 안 풀려 옆의 책상을 주먹으로 치며 씩씩거리고 있어요. 잘못하다가 싸움이 날 것 같아요.

교사: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영수, 철수 다 이리 와!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영수: 내가 지나가는데 얘가 발을 걸잖아요. 그래서 내가 넘어졌는데 사과 한마디 안 하고 비웃잖아요.

철수: 내가 언제 네 발을 걸었다는 거야. 네가 앞을 제대로 보지 않고 가다가 내 발에 걸려 넘어진 거지. 그리고 내가 언제 비웃었다고 그래?

영수: 네가 다리를 걸었잖아? 그리고 네가 비웃는 걸 분명히 봤어.

철수: 쳇!

영수: 쳇? 봐 또 비웃잖아. 그리고 너는 지난번 체육 시간에 축구할 때도 고의로 태클을 걸어 내가 다칠 뻔했잖아.

철수: 또 우기네. 수비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그런 걸 가지고 뭘 그래?

영수: 뭐라고? 너야말로 이렇게 오리발 내밀 거야? 너 가만히 안 둔다!

교사: 시끄러워! 선생님 앞에서까지 이렇게 싸울 거야?

교사: 철수, 어쨌든 네 발에 영수가 걸려 넘어진 거는 사실이잖아! 그러니까 영수한테 사과해!

교사: 그리고 영수, 철수가 너를 넘어뜨리기 위해 일부러 발을 건 것이 아니라고 했으면 받아들여야지. 왜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고 철수를 때리려고 했어. 이 부분에 대해서는 너도 사과해!

철수: 제가 왜 사과해야 해요? 저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영수: 철수가 분명히 발을 걸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선생님은 왜 철수 말만 믿고 제 말은 안 믿으세요?

교사: 그만해! 너희들 계속 이렇게 있을 거야? 빨리 서로 사과하고 화해해! 그러지 않으면 오늘 방과 후 서로 사과할 때까지 끝까지 남길 거야.

철수, 영수 : (마지못해) 미안해!

교사: 그래 잘했어.

 

학교에서 아이들 사이에서 흔히 일어나는 갈등과 해결 사례다. 어찌 보면 사소한 갈등 같지만 이런 작은 문제들이 쌓이다 보면 큰 갈등이 되고, 자칫 치명적인 싸움이나 폭력 사건이 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는 이 갈등을 해결해야 하는 재판관이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교사는 이 문제를 공정하게 해결해 줄 재판관이 될 수 없다. 교사가 그 갈등의 순간에 그 자리에 없었을 뿐 아니라, 교사가 신이 아닌 이상 두 아이의 마음속 동기나 감정을 다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교사의 판결은 온전한 정의를 이룰 수 없고, 한 아이 혹은 두 아이 모두에게 불만스러운 것일 수밖에 없다.

위 사례에서 겉으로는 두 아이가 서로 사과하고 화해함으로써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다. 서로에 대한 오해가 풀린 것도 아니고, 두 아이 마음속에 있는 상대방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해소된 것도 아니다. 교사의 권위에 눌려 억지로 화해하는 모양은 취했지만, 마음속 풀리지 않은 감정 때문에 이후 교사의 감시망을 벗어난 곳에서 다툼이 생길 수도 있고, 새로운 상황이 발생하면 이전의 감정까지 더해져서 폭발할 수도 있다. 교사를 포함한 공동체에 대한 신뢰도 무너져버렸기 때문에 더욱 위험한 상황이 된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교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니, 두 아이의 입장에서는 이 문제가 어떻게 다루어져야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느낄까? 이러한 크고 작은 갈등은 아이들이 자라면서 수도 없이 부딪혀야 할 문제인데 아이들은 이 과정을 통해 어떻게 갈등 해결 역량을 키워갈 수 있을 것인가? 두 아이의 갈등과 해결 과정을 보는 다른 친구들은 무엇을 배울 수 있을 것인가? 우리의 학교는 어떻게 갈등을 교육적으로 해결해 갈 수 있는 신뢰받는 기관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위 갈등 상황을 아래와 같이 풀어보면 어떨까?

 

 

교사: 지금 영수와 철수 둘 다 화가 많이 나 있는 것 같은데, 그 부분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져볼까 해요. 괜찮겠어요? 그럼 선생님의 진행을 따라서 이야기를 나누면 훨씬 부드럽게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선생님이 진행을 해도 되겠어요?

영수, 철수: 예

교사: 그럼 현재 자신의 마음 상태에 대해 누가 먼저 이야기를 해 볼래요?

영수: 좀 전에 교실 통로를 지나가는데 철수가 내 발을 걸어서 넘어졌어요, 너무 아팠고 무릎과 팔꿈치에 멍도 들었어요. 무엇보다 친구들이 보고 있어서 창피했어요.

철수: 내가 언제 네 발을 걸었다고 그래?

교사: 철수야, 좀 있다가 네가 말할 시간을 줄 테니 지금은 선생님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 줄래요?

철수: 예.

교사: 철수는 지금 무엇을 들었는지 이야기해 줄래요?

철수: 선생님 죄송해요. 제가 지금 제가 할 말을 생각하느라고 영수 말을 하나도 듣지 못했네요.

교사: 그래 그럴 수 있어요. 그럼 영수가 좀 전에 했던 이야기를 한 번 더 해 줄래요?

영수: 좀 전에 교실 통로를 지나가는데 철수가 내 발을 걸어서 넘어졌는데, 너무 아팠고 무릎과 팔꿈치에 멍도 들었어요. 무엇보다 친구들이 보고 있어서 창피했어요.

교사: 철수는 지금 무엇을 들었는지 이야기해줄래요?

철수: 영수가 좀 전에 교실 통로에서 제가 발을 걸어서 넘어졌는데 너무 아팠고 무릎과 팔꿈치에 멍도 들었다고 들었어요.

교사: (영수에게) 이 말이 맞나요?

영수: 앞부분은 맞지만 빠진 부분도 있어요.

교사: 그 빠진 부분을 다시 이야기해줄래요?

영수: 넘어졌을 때 다른 친구들 보기에 너무 창피했어요.

교사: (철수에게) 무엇을 들었나요?

철수: 영수가 넘어졌을 때 친구들 보기에 너무 창피했다고 들었어요.

교사: (영수에게) 이 말이 맞나요?

영수: 예 맞아요.

교사: (영수에게) 더 할 말이 있나요?

영수: 예, 제가 넘어졌을 때 철수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비웃기만 해서 철수에게 너무 화가 났어요.

교사: (철수에게) 무엇을 들었나요?

철수: 영수가 제 발에 걸려 넘어졌을 때 제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비웃기만 해서 저에게 너무 화가 났다고 말했어요.

교사: (영수에게) 이 말이 맞나요?

영수: 예 맞아요.

교사: (영수에게) 더 할 말이 있나요?

영수: 예, 할 말은 많지만 좀 있다가 더 이야기할게요.

교사: 그럼 철수는 이 상황과 관련해서 할 말이 있나요?

철수: 영수가 제 발에 걸려 넘어진 것은 맞지만, 저는 영수가 지나가기 전부터 발을 옆으로 뻗고 있었을 뿐이에요.

교사: (영수에게) 무엇을 들었나요?

영수: 제가 지나가기 전부터 철수는 발을 옆으로 뻗고 있었고, 거기에 제가 걸려 넘어진 것이라고 들었어요.

교사: (철수에게) 이 말이 맞나요?

철수: 예

교사: (철수에게) 더 할 말이 있나요?

철수: 예, 영수가 제 발에 걸려 넘어졌을 때 당황하긴 했지만, 그 모습이 너무 우스워서 잠시 웃었는데 비웃은 건 아니에요.

교사: (영수에게) 무엇을 들었나요?

영수: 제가 철수 발에 걸려 넘어졌을 때 철수가 당황했고 제 모습이 너무 우스워서 잠시 웃었지만 비웃은 건 아니라고 들었어요.

교사: (철수에게) 이 말이 맞나요?

철수: 예 맞아요.

교사: 더 할 말이 있나요?

철수: 예, 그때 영수가 넘어졌을 때 ‘괜찮니?’라고 물어보려고 했었는데, 영수가 화를 내는 바람에 이야기하지 못했어요.

교사: (영수에게) 무엇을 들었나요?

영수: 제가 넘어졌을 때 철수가 ‘괜찮니?’라고 물어보려고 했었는데, 제가 화를 내는 바람에 이야기하지 못했다고 들었어요.

교사: (철수에게) 이 말이 맞나요?

철수: 예 맞아요.

교사: 더 할 말이 있나요?

철수: 지금은 더 없어요.

교사: 그럼 영수가 더 이야기할래요?

영수: 철수가 조금만 더 빨리 ‘미안해’라는 말을 해 주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저는 다른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넘어진 것이 창피해서 마음이 힘든 상황인데 철수가 비웃는 모습을 보니, 철수가 지난번 축구 시간에 나에게 태클을 해서 다칠 뻔했던 상황이 겹쳐 떠올랐고, 철수가 이번에도 나를 일부러 넘어뜨리기 위해 발을 걸었다는 생각이 들어 화가 폭발했던 것 같아요.

교사: (철수에게) 무엇을 들었니?

 

이렇게 대화는 계속 이어진다. 이 대화에서 당신은 무엇을 느꼈는가? 우선 주목할 것은, 사람들은 한자리에 있어도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있고 자기가 할 말만 생각하고 있다. 혹 듣는다고 하더라도 그 말을 있는 그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듣고 싶은 말만 듣거나 자기식으로 해석해서 듣는다. 모든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대화, 특별히 갈등 상황에 있는 사람들 간의 대화에서는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을 수 있게 해 주고, 상대방이 내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확신을 줄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위의 대화에서 교사는 “무엇을 들었나요?”, “이 말이 맞나요”, “더 할 말이 있나요”를 반복한다. 단순한 말 같지만, 이 말들을 통해 상대방이 한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려주기 위해 말하는 사람의 말에 세심하게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했던 이야기가 상대방에 의해 그대로 반복되는 것을 들으면서 상대방이 내 이야기를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듣고 있음을 확신하게 된다.

이렇게 대화를 계속 진행해가면서 두 사람은 그 갈등 상황에서 자신이 느꼈던 감정, 그리고 그 상황에서 자신에게 중요한 가치, 상대방이 어떻게 해 주면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느끼고 마음이 편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 서로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그대로 듣게 된다. 이런 대화의 과정이 잘 진행되면, 결론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과정 속에서 문제가 해결된다. 아니, 단지 갈등이 해결될 뿐 아니라, 두 사람이 성장하게 되고, 이후 이와 유사한 문제에 부딪힐 때 중재자 없이도 스스로 혹은 당사자끼리 문제를 해결하는 역량이 길러진다.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과 공동체에 대한 신뢰를 형성하게 된다.

어떤 이는, 이 사례가 가벼운 갈등 상황이기 때문에 서로의 이야기를 듣게 해주는 장치를 통해서 문제 해결이 가능하지만, 누적된 갈등이나 심각한 폭력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질 것이다. 또 어떤 이는, 이러한 방법은 아이들 간의 문제나 학교 사례 해결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어른들의 갈등이나 사회 다른 기관에서 일어나는 갈등 해결에는 과연 도움이 되겠느냐 물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이는, 좀 더 근본적으로, 갈등이 생기기 전에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예방하는 일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가질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좀 더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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