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법은 기독교와 관계가 없는가? 아닙니다. 헌법은 우리가 믿는 기독교 신앙과 관계가 아주 많습니다! 이제 성경의 핵심 계명과 원리를 중심으로, 헌법과 기독교의 연결점들을 하나씩 찾아보려고 합니다. 이는 세속의 용어와 개념을 사용하는 헌법을 성경적 원리와 개념으로 이해하는 번역작업의 일종입니다. 또한 하나님 뜻이 어떻게 땅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는지, 주기도문 제3청원(마 6:10)에 대한 현실적 해석작업이기도 합니다. (본문 중)
이병주(기독법률가회 대표, 법무법인 디라이트 변호사, 청소년기후소송 헌법소원 진행 중)
1. 제헌절에 던지는 질문: ‘기독교인에게 헌법의 의미란?’
7월 17일은 제헌절입니다. 오랫동안 법정공휴일로 사랑을 받아 왔으나, 2007년 이후 공휴일에서 빠져서 조금 아쉬운 날이기도 합니다. 이제 제헌절을 맞이해서, 과연 ‘대한민국 헌법이 기독교 신앙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하는 문제를 성경의 핵심 계명과 원리를 바탕으로 함께 풀어 보고자 합니다.
‘헌법’은 세상의 모든 법 가운데 가장 ‘으뜸가는’ 법입니다. 세상의 법에는 3가지 기둥 같은 법이 있는데, ‘헌법’ ‘민법’ ‘형법’입니다. 그중 헌법은 ‘민법’과 ‘형법’보다도 우위에 있어서, 헌법에 위반되는 민법과 형법 규정은 그 효력을 잃고 무효가 됩니다. ‘민법’은 일용할 양식을 얻는(마 6:11) 일을 비롯하여 개인의 권리와 재산 문제 등을 다루는 법이고, ‘형법’은 세상의 칼로 사람의 죄와 벌을 심판하는(롬 13:4) 법입니다. 민법과 형법의 핵심 내용이 모세 율법(출 20장 이하)과 함무라비 법전에 이미 기록되어 있으니, 두 법은 4천 년 정도의 오랜 역사를 지닌 셈입니다.
헌법의 역사는 비교적 짧은데, 근대 헌법은 미국 독립혁명(1776년) 및 프랑스혁명(1789년) 이후로 약 250년 정도에 불과합니다. 헌법의 골자는 ①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 ②‘기본적 인권’의 보장, ③‘권력분립’에 의한 정부의 구성, 3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국가 공동체의 ‘주권(主權)’이 모든 국민에게 있다는 것은, 근대 ‘민주주의(民主主義)’ 헌법의 기초입니다. 왕조와 식민 시대와 독재를 거친 우리 민족에게 주권재민(主權在民)의 헌법은 오랜 눈물과 피땀의 산물입니다(헌법 제1조 제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둘째, 헌법 제2장은 인간의 존엄성(제10조), 평등권(제11조), 신체적 자유(제12조), 양심과 종교의 자유(제19조, 제20조), 환경권(제35조) 등 국민의 기본권을 열거하며 보장하고 있습니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는 헌법 제10조의 인권선언은 근대 입헌국가에서 ‘개인(국민)과 공동체(국가) 관계’의 기본 성격을 보여 줍니다.
셋째, 헌법 제3장에서 제8장까지 국회, 정부(대통령과 행정부), 법원, 헌법재판소, 선거관리, 지방자치로 이어지는 79개 조항은 ‘권력분립’을 정부 구성의 기본 원리로 하고 있습니다. 근대 이전 왕정은 권력을 나누지 않고 왕이 모든 권력을 독점했습니다. 그러나 근대 이후의 우리 헌법에서는 입법권은 국회, 행정권은 대통령, 사법권은 법원과 헌법재판소에 나눠 놓고 있으며, 그 분산된 권력조차도 다시 선거제도와 임기제로 유한한 시간 아래 묶어 놓고 있습니다(단 6:26-27).
헌법의 강령 중 ‘국민주권’과 ‘기본적 인권’은 국가의 절대권력을 부정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기본 정신으로 하고 있습니다. ‘권력분립’은 인간을 신뢰하지 않고 인간의 권력에 한계를 부과합니다. 글머리에서 던진 물음, 대한민국 헌법은 기독교와 관계가 없는가? 아닙니다. 헌법은 우리가 믿는 기독교 신앙과 관계가 아주 많습니다! 이제 성경의 핵심 계명과 원리를 중심으로, 헌법과 기독교의 연결점들을 하나씩 찾아보려고 합니다. 이는 세속의 용어와 개념을 사용하는 헌법을 성경적 원리와 개념으로 이해하는 번역작업의 일종입니다. 또한 하나님 뜻이 어떻게 땅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는지, 주기도문 제3청원(마 6:10)에 대한 현실적 해석작업이기도 합니다. 땅의 모든 일을 다루는 헌법의 성경적 의미를 이 짧은 글에 다 담을 수는 없겠지요. 그래서 이 글에서는 일단 요점만 제시하고, 나머지 답변들은 앞으로 독자 여러분과 함께 채워 나가기를 기대합니다.
2. ‘헌법’의 기독교적 의미 짚어보기
① 인간의 존엄성과 천부적 인권(헌법 제10조) : 하나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창 1:27)
창세기 1장 27절에서 하나님은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법’으로 노래한 프랑스혁명의 인권선언(1789년) 이후 인간의 존엄성과 천부적 인권은 대한민국 헌법(1948년)과 모든 나라 근대 민주주의 헌법의 핵심 내용이 되었습니다. 왕정/식민지 하의 신민(臣民)은 존엄한 자유인이 아니라 왕과 외세의 주권에 복종하지 않으면 반역자로 몰려 쫓겨야 하는 법적 노예의 신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와 평등에 대한 권력과 국가 공동체의 존중, 이것은 헌법의 기본권 조항을 통해서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뜻의 실현입니다.
② 국민의 주권(헌법 제1조) : 세상을 다스리는 사람의 권세(창 1:28)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후 사람에게 땅과 바다와 하늘의 모든 생물을 다스릴 권한을 주셨습니다. 헌법 이론에서는 국가 공동체의 3대 요소를 국토, 국민, 주권이라고 합니다. 헌법 제1조가 국민(‘사람’)에게 국토(‘땅과 바다와 하늘’)를 다스릴 주권(‘권한’)을 부여한 것은 창세기 1장 28절이 인간의 역사에서 실현된 내용입니다. 오랫동안 땅을 다스리는 사람의 권한은 왕 한 사람에게 주어져 왔습니다. 사무엘 선지자에 의하면 하나님은 왕의 통치를 썩 마땅하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삼상 8:11-18). 그런데 이제는 헌법을 통해 땅을 다스리는 권한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돌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유롭고 평등한 국민의 주권, 이것은 사무엘상 2장 한나의 기도가 완전치는 않으나 부분적으로 이 땅에 이뤄진 하나님 뜻의 역사적 실현에 해당합니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삼상 2:8).
③ 국민의 기본권과 그 제한(헌법 제2장) :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이중계명의 제도화)
예수님은 모든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으뜸 계명과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는 버금 계명의 두 계명에 다 들어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마 22:37-40). 헌법 제2장(국민의 권리와 의무)은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버금 계명을 우리가 제도적으로 실천하는 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헌법의 기본권 조항들에는 ‘자기 사랑의 자유’와 ‘이웃 사랑의 필요’ 이 둘 사이의 긴장이 함께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중계명 중의 ‘이웃 사랑’을 내가 가진 것을 쓰고 나머지를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정도의 사적 구제활동으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이웃 사랑은 ‘나와 이웃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어서, 사적이기보다는 공적인 성격이 더 강합니다. 헌법은 나의 자유와 권리만큼 타인(이웃)의 자유와 권리도 동등하게 존중할 것을 요구합니다(제11조 평등권, 제19-20조 사상과 양심의 자유 등). 이것은 예수께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가르치신 황금률(마 7:12)의 헌법적 실현입니다. 헌법은 ‘나’의 재산권을 보장하지만(제23조 제1항), 나의 권리는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국가안전․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법률로써 제한될 수 있습니다(제37조 제2항 전단). 그러나, 이웃을 위한 나의 권리 제한 또한 내가 가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없습니다(제37조 제2항 후단). 이렇게 헌법은 ‘자기 사랑의 자유’와 ‘이웃 사랑의 필요’, 그리고 자기 사랑과 이웃 사랑 사이의 긴장을 모두 알고 그 긴장을 해결하는 ‘균형’을 찾기 위해 치열한 노력을 기울입니다. 이 점은 우리 기독교인들이 이웃 사랑의 진정한 이해와 실천을 위해서 헌법에서 진지하게 배워야 할 내용입니다.
④ 국민의 의무(헌법 제2장) : 자기부인, 그리고 이웃 사랑의 십자가(마 16:24)
헌법 제2장에는 국민의 권리뿐 아니라 국민의 의무도 함께 규정되어 있습니다. 납세의 의무(제38조)와 국방의 의무(제39조)가 대표적이며, 근로의 의무(제32조 제2항), 교육의 의무(제31조 제2항)까지 합해서 국민의 4대 의무라고 합니다. 이것은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기 위한 개인의 의무입니다. 누구나 세금은 내기 싫어하지요.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의 상당한 금액을 국가에 내는 것은 아깝기도 하고 부담이 됩니다. 그러나 세금이 없으면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의 관리와 유지가 어렵고, 우리 주변의 이웃,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도와주는 복지제도가 굴러갈 수 없습니다. 헌법의 납세의무는 이기적인 우리로 하여금 강제에 의한 ‘자기부인’과 ‘이웃 사랑의 십자가’를 지게 합니다(마 16:24). 이러한 헌법을 통한 공적 이웃 사랑의 제도화는, 아주 묘하게도 ‘법’이 ‘사람’들보다 하나님 뜻에 더 충실한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⑤ 권력분립(헌법 제3-8장) : 선악과의 독과 해독제(창 2-3장)
하나님은 사람에게 동산 가운데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을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창 2:7). 아담과 이브는 뱀의 꼬임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었고, 이후 인류는 실낙원의 운명에 빠졌습니다(창 3:6). 세상의 권력은 사람에게 선과 악을 심판하는 권한을 줍니다. 선악을 심판하는 권한은 황홀한 독과 같아서, 권력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탐하고 그 힘으로 사람들을 해치게 합니다. 분산되지 않은 국가권력은 선악과의 폐해를 극대화합니다. 왕정 국가가 그랬고, 권력의 독점과 집중을 추구한 공산주의와 파시즘 또한 선악과의 비극을 낳았습니다. 근대 헌법이 절실하게 추구하는 ‘권력분립’은 인간의 이성과 선의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을 기초로 합니다. 공동체를 유지하고 관리하려면 정부의 구성은 불가피합니다. 그래서 근대 헌법은 입법-행정-사법 권력의 삼권분립을 만들어냈습니다. 권력 집중으로 향하는 욕망은 선악과의 유혹입니다. 답답하거나 다소 비효율적이더라도 선악과를 쪼개서 여러 조각으로 나누는 헌법의 ‘권력분립’은 인간의 세상이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선악과 계명의 역사적 실천방법입니다.
⑥ 헌법이 제한하는 ‘칼’의 권세 : 하나님의 칼 vs 사탄의 칼(롬 13장)
바울 사도는 로마서 13장에서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라고 했습니다(롬 13:1… 4). 권력을 행사하는 자들은 곧 ‘하나님의 사역자’로서 하나님의 진노를 집행하는 ‘칼’을 지닌다고 한 이 본문은, 이후 2천 년 동안 전 세계 왕과 독재자들에게 바이블처럼 숭상되면서 자유를 위한 투쟁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인간은 모두 죄인이요 악한데(롬 3:9-18), 세상의 권력은 우리가 무조건 복종해야 할 만큼 거룩하고 온전하단 말인가(롬 13:1-7)?” 하는 질문이 자연스레 제기됩니다. 그럴 리는 없겠지요. 그래서 요한 사도는 요한계시록 13장에서 사탄(“용”)의 권세를 받은 세상 권력인 두 짐승을 하나님의 심판대상이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권력과 칼은 로마서 13장처럼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하나님의 칼’이 될 수도 있지만, 어느 순간 권력에 취하고 악과 교만의 유혹을 받으면 하나님이 만드신 사람들을 해치는 ‘사탄의 칼’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칼의 권세(정부)를 규율하고 제한하는 것이 바로 헌법의 ‘권력분립’과 ‘기본적 인권’입니다. ‘권력분립’은 다름 아닌 칼의 권세(정부)를 조직하는 원리에 해당하는 것으로, 권력분립이 없다면 로마서 13장의 칼이 사탄의 칼로 전락하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권력분립은 칼이 스스로를 억제하여 하나님이 쓰시는 칼로 남아 있게 해 주는 근대 헌법의 처방전입니다. ‘기본적 인권’은, 로마서 13장의 칼이 사탄의 칼로 전락하여 세상을 지옥의 구렁텅이로 몰고 가는 비극을 막기 위한 자유와 진리의 방패이자 창에 해당합니다(엡 6:13-14).
⑦ 민주공화국, 정당과 선거제도 : 원수를 사랑하라(마 5:43-48)
예수님은 산상설교에서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고 하셨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일도 쉽지 않은 우리에게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 말씀은 도저히 따라가기 힘든 말씀입니다. 영화 <밀양>에서 아들의 살인범을 용서하러 면회 갔다가 시험에 빠진 여주인공의 사례처럼, 우리가 원수까지 사랑하려고 너무 애를 쓰는 것은 조금 위험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원수 사랑’의 필요성과 가능성은 헌법 속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헌법 제1조 제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규정합니다. 여기에서 공화국이라는 말은 국민주권의 민주주의를 전제로 국민의 대표자를 통해 다스리는 대의제 국가를 의미합니다. 왕정에서는 왕의 아들이나 친족들이 대대로 권력을 이어받지만, 민주공화국에서는 선거로 뽑힌 국회의원과 대통령 등이 국민의 권력을 일정 기간 대행합니다. 이 권력을 두고 정당과 다양한 의견을 가진 그룹 사이에 굉장한 논쟁과 싸움이 벌어집니다. 이 싸움은 겉으로 보면 의견의 차이지만, 속으로 더 깊게 보면 이해관계의 대립까지 연결되어 있어서 대체로 평화롭지 않고 전투적이며 상당한 미움을 유발합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정치적 원수’가 가득합니다. 이 원수는 우리 집 안에도 있고, 교회 안에도 있으며, 직장의 옆자리에도 있습니다. 헌법은 ‘정치적 원수’의 존재를 인정합니다. 다행히도 헌법은 보수보다 크고 진보보다 큽니다. 헌법은 정치적 원수들 간의 경쟁이 가능하도록 정당 제도를 인정하고(제8조), 정당 간의 선거제도를 운영하기 위해서 헌법 한 장을 할애하고 있습니다(제8장).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 말씀은 이렇게 헌법을 통해 이 땅을 유지하는 삶의 원리로 살아 움직이고 있는 셈입니다.
3. 결론
헌법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중계명의 제도적 실천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선악과(권력 집중/독점)의 위험과 세상의 칼에 대한 고민, 하나님 형상으로서 인간 존엄에 대한 찬송(인권선언)과 인간의 악에 대한 불신(권력분립)도 헌법의 제도 속에 깊이 녹아 있습니다. 주기도문 제3청원을 따라 하나님의 뜻이 이 땅(우리 인생과 세상) 위에서 온전히 이루어지도록, 헌법의 기독교적 의미에 대한 묵상과 토론과 실천적 모색이 더욱 활발하게 일어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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