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삶을 유쾌하게 재배열하는 예술이다. 시는 혼란스러운 생각이나 감정을 깔끔하게 정리해준다. 물론 시를 몇 편 읽는다고 해서 얼마나 달라질까, 싶지만 그래도 조금은 나아지는 걸 느낀다. 시는 우리가 평소에 잘 살펴보지 않거나 잊고 사는 걸 보게 한다. 일례로 불이 꺼지면 안다. 전깃불이 얼마나 큰 어둠을 감추고 있는지를. (본문 중)

이정일(작가, 목사)

 

삶에는 모순이 많다. 물이 범람하면 홍수가 생기는데 그땐 정작 마실 물이 없다. 친절한 사람이 좋지만 친절하다고 진실한 사람은 아니다. 가까운 사람이 있으면 좋지만 가깝다고 해서 믿음이 가는 건 아니다. 인간관계는 기본적으로 ‘기브앤테이크’이지만 이게 꼭 물질적인 것은 아니다. 그래서 세상엔 별스러운 일이 많이 일어난다.

아흔아홉 번 좋았어도 한 번의 오해로 관계가 달라질 수 있다. 이게 조직에서도 개인에게도 일어난다. 음식 리뷰가 죽어가던 가게를 살리기도 하지만 진상 리뷰가 멀쩡한 가게를 문 닫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과 부대끼다 보면 이렇게 사는 게 옳은지 확인하고 싶을 때가 있다. 스스로 확신이 필요할 때, 이때 시가 도움이 된다.

시는 삶을 유쾌하게 재배열하는 예술이다. 시는 혼란스러운 생각이나 감정을 깔하끔게 정리해준다. 물론 시를 몇 편 읽는다고 해서 내가 달라질까 싶지만, 그래도 조금은 나아지는 걸 느낀다. 시는 우리가 평소에 잘 살펴보지 않거나 잊고 사는 걸 보게 한다. 일례로 불이 꺼지면 안다. ‘전깃불이 얼마나 큰 어둠을 감추고 있는지’를1).

 

울림

 

요즘 웃을 일이 없지만 좋은 시를 읽게 되면 절로 미소 짓게 된다. 유안진의 시 「밥 해주러 간다」에서 “취직 못한 막내 눔 밥해주는 거/ 자슥 밥 먹이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게 뭐여?”를 읽으며 웃은 적이 있다. 시는 분명 웃음이 나는 상황인데 구경꾼들 표정 사뭇 엄숙해진다. 나는 이런 감정을 이정하의 시 「참 사랑의 모습」을 읽을 때도 느낀다.

시인이 어렸을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시골의 공원묘지에 묻히셨다. 이듬해 시인은 방학 때 할아버지와 함께 친척 집에 가게 되었다. 시인은 묘지 입구를 지날 때 우연히 보게 된 할아버지의 모습을 시에 담아냈다.

 

할아버지와 나는 뒷좌석에 함께 있었는데

할아버지는 우리가 아무도 안 보는 줄

아셨는지 창문에 얼굴을 대시고

우리들 눈에 띄지 않게 가만히 손을 흔드셨다

 

그때 나는 사랑이

어떤 것인지 처음 깨달았다

 

 

소소한 일상에 사랑이 녹아 있다. 나는 이런 감정을 시바타 도요의 시를 읽을 때도 느낀다. 92살에 처음 시를 배웠고 99살에 첫 시집을 냈다. 그가 쓴 시마다 굴곡진 인생을 살면서 얻은 삶의 지혜가 녹아 있다. 「비밀」이란 시에선 “98세라도/ 사랑은 하는 거야/ 꿈을 꿔/ 구름을 타고 싶은 걸”이라고 썼다. 시 「약해지지 마」에서 시인이 주는 위로이다.

 

있잖아, 불행하다고

한숨짓지 마

 

햇살과 산들바람은

한쪽 편만 들지 않아

 

꿈은

평등하게 꿀 수 있는 거야

 

나도 괴로운 일이

많았지만

살아 있어 좋았어

 

너도 약해지지 마

 

흉터

 

산다는 건 상처나 흉터가 생기는 일이다. 마음에 생길 때도 있고 몸에 생길 때도 있다. 어느 쪽이건 잘 치료해야 한다. 하지만 기억할 게 있다. 상처나 흉터는 절대로 흉이 아니라는 것. 상처는 아팠다는 것이고 흉터는 그 아픔을 견뎌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그건 인생이 주는 훈장인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상처가 나아도 그 흔적은 남는다. 이게 나무의 옹이처럼 보이지만 그게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상처는 아프지만, 흉터는 아프지 않다. 이겨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이 말세인 것 같아도 그렇게 빨리 망하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상처를 이겨낸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시를 읽는다는 건 지혜를 얻는 것이다. 지혜는 상처가 준 아픔이 흉터로 굳어질 때 얻어진다. 불과 몇 마디로 정리된 단어로 그 과정을 듣는 것인데 그게 놀랍다. 흉터가 있는 사람은 안다. 대추 한 알도 태풍, 땡볕, 무서리를 견디며 붉어졌다는 걸. 때로 힘들 땐 손을 내밀어준 사람들에게 순수하게 기대는 것도 용기라는 걸.

 


1) 이연주의 시, 「신생아실 노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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