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얼마만큼 계단을 올랐는지를 보면 힘이 빠지고 그만 쉬고 싶어졌다. 하지만, 당장 다음 한 걸음만 생각하며 계단을 오르다 보면 어느새 9층에 도착해 있었다. 그렇게 계단을 오르면서 조급한 마음도 많이 사라졌다. 9층을 빨리 올라야겠다고 생각하면 더 힘이 들고 지치게 되었다. 그렇지만 다음 걸음, 다음 계단만 바라보며 걷게 되면 조급한 마음이 많이 사그라들었다. (본문 중)
조윤솔(오디세이학교 학생)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물질주의 혹은 물질 만능주의, 모두가 이것의 문제점을 알고 있지만,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물질이 주는 ‘편리함’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빠져 있으면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잃기 쉽고, 나의 편리함이 타인에게 주는 피해에 대해 무관심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절제’ 혹은 ‘금욕’을 통해 스스로 존엄을 지키면서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으로, 한 달 동안 각자 자발적 불편 과제를 정하고 실천해 보면 어떨까 해요.”
자발적 불편? 처음 듣는 생소한 말이었지만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호기심이 생겼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여러 고민 끝에 ‘집에 돌아갈 때 1층에서 9층까지 계단으로 올라가기’로 정했다. 쉽지 않은 과제였지만 운동을 통해 건강도 챙기고, 에너지도 절약할 수 있고, 엘리베이터라는 편리한 수단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나의 절제력을 확인할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한 달 동안 스스로 정한 ‘자발적 불편’에 도전을 했다. 물론 중간에 지키지 못한 경우도 있었지만 대체로 잘 실천했고 내게 많은 유익을 주었다.
계단을 오르면서 내가 얻은 것들은 육체적인 것보다 오히려 정신적인 것이 더 많다. 오래전부터 좋아하던 『모모』라는 책이 있다. 그 책 속에 나오는 인물 중에 거리를 청소하는 청소부 베포 할아버지가 있다. 할아버지가 하는 말 중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한꺼번에 도로 전체를 생각해서는 안 돼, 알겠니? 다음에 딛게 될 걸음, 다음에 쉬게 될 호흡, 다음에 하게 될 비질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계속해서 바로 다음 일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중략) 한 걸음 한 걸음 나가다 보면 어느새 그 긴 길을 다 쓸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도 모르겠고, 숨이 차지도 않아.”
자발적 불편, 나 자신의 재발견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무슨 일을 할 때는 반드시 큰 그림을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일도 당장 다음에 집중하기보다는 이 모든 일을 끝내는 순간에 집중해야 한다 여겼다. 하지만 계단을 오르며 나는 이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얼마만큼 계단을 올랐는지를 보면 힘이 빠지고 그만 쉬고 싶어졌다. 하지만, 당장 다음 한 걸음만 생각하며 계단을 오르다 보면 어느새 9층에 도착해 있었다. 그렇게 계단을 오르면서 조급한 마음도 많이 사라졌다. 9층을 빨리 올라야겠다고 생각하면 더 힘이 들고 지치게 되었다. 그렇지만 다음 걸음, 다음 계단만 바라보며 걷게 되면 조급한 마음이 많이 사그라들었다.
또한 계단 오르기는 나 자신을 잘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가령 록 음악처럼 신나는 노래를 들으면서 오르면 내가 좀 더 활동적으로 움직인다는 사실, 계단을 올라갈 때 느끼는 몸의 힘듦보다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느껴지는 죄책감을 내가 더 괴로워한다는 사실 등이 그렇다. 또한, 내가 얼마나 휴대폰에 의존하며 살아왔는지도 새삼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그 몇 초마저도 휴대폰을 사용했고, 계단을 오르면서도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보다가 끈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뿐 아니라 계단을 오르는 시간이 나에게는 집에 들어가서 어떤 일을 할지 계획하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가족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 상상해 보거나, 문을 열고 들어가서 무슨 말을 건네며 대화를 나눌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자발적 불편’ 과제를 끝낸 지금, 아쉬운 게 너무나도 많다. 첫째, 과제 기간에도 종종 엘리베이터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초반 4일 동안에는 과제를 아예 잊고 지내다 엘리베이터를 사용하다가 뒤늦게 깨달았었다. 중간에 3일 정도 몸이 너무 좋지 않아 계단 오르기를 하지 못한 순간들도 후회가 된다. 물론 당시 몸 상태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무리를 해서라도 계단으로 올라갔으면 평소 때와는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주말에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아 과제를 실천하지 못한 점도 뒤늦게 후회로 남는다. 다음에 과제를 설계하게 된다면 ‘하루에 한 번은 반드시 밖에 나가야 한다’는 조항을 넣고 싶다.
계단 오르기 과제를 통해 나는 의외로 많은 것을 얻게 되었다. 다음 계단 하나씩만 생각하며 나아가는 법을 알게 되었고, 나 자신을 더 잘 알게 되었다. 이 과제가 절대 쉽지는 않았다. 몇 번씩이나 포기하고 싶었고, 계단을 오르다가 주저앉은 적도 많았다. 그런데도 끝까지 해낸 나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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