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회에 박물관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나, 살아 있는 역사의식이 더 필요하다. 불교 신자가 사리 숭배가 아니라 해탈 추구에 정진하듯이, 그리스도인에게는 냄새나는 유골의 세습 대신 구원과 평화의 새 시대를 추구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본질이다. 과거의 뼈를 탑에 넣고 모시는 신앙이 아니라, 그들의 순교 신앙을 이어받고 선교 정신을 이어받는 뼈대 있는 신앙이라야 혹한의 쇠퇴기를 이기고, 유혹의 혼란기를 극복할 수 있다. (본문 중)
옥성득(UCLA 한국기독교학 교수)
남방 소승 불교의 경전인 열반경에 나오는 붓다와 아난의 대화이다. 아난이 “세존이시여! 여래의 시신(屍身)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하고 질문하자 붓다는 대답했다. “아난아! 너희들은 여래의 사리(舍利, 유골) 숭배에 관해 염려하지 말라. 너희는 참된 해탈을 향해 정진해야 한다.” 사리 숭배는 승려와 같은 진정한 수행자에게는 권장되지 않고, 일반 재가 신자들에게 기복 신앙의 일부로 권장되었는데, 탑 신앙과 함께 사리 신앙으로 발전되었다. 한국에도 붓다의 진신 사리를 모신 양산 통도사가 불교 3대 보물인 불‧법‧승(佛‧法‧僧) 중 불(佛)사로 유명하다.1)
가톨릭에서는 성인(대부분 순교자) 숭배의 유산으로 순교자의 유물이나 유골을 숭앙한다. 유럽처럼 한국 천주교회도 순교자 숭배가 강하다. 초기 75년(1791-1866) 동안의 순교 역사로 인해 순교 성인과 복자가 역사의 중심이 되어 있다. 그들을 높이기 위한 순교지 성역화 작업은 놀라운 규모를 자랑한다. 가톨릭은 성인 유골 신앙이 강하다. 순교자의 무덤을 단장하여 그 신앙을 따라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도록 권하는 것은 좋지만, 유골 자체를 신성시하는 것은 비성서적이다. 유대교에는 모세의 무덤이 없고, 성막의 법궤는 사라졌으며, 성전도 무너졌다. 기독교에는 예수의 무덤이나 뼈가 없으며, 예수와 제자들이 마지막 유월절 때 사용한 포도주잔은 없으며, 그의 시신을 싼 세마포도 존재하지 않는다. 유골(遺骨)과 성물(聖物)과 성지(聖地)가 없어야, 산 제물인 나를 드리고, 물건 대신 마음을 드리는 산 신앙이 되고, 현재 이곳을 성지로 만드는 선교적 신앙이 된다.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다.
9월 2일 자 중앙일보에 실린 “‘피의 역사’ 한국 천주교 첫 순교자 유해 찾았다”라는 기사를 보니, 1791년 신해 박해 때 전북 완주에서 처형된 한국 교회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尹持忠·1759-91)과 권상연(權尙然·1751-91)의 유해(뼈)가 230년 만에 발견되었다. 조사 결과 참수형과 능지처참으로 처형된 흔적도 나왔다. 천주교 전주교구장 김선태 주교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을 보내는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놀라운 선물을 베푸셨다. 유해 발견은 놀라운 기념비적 사건”이라고 말했다. “순교자들의 피를 밑거름 삼아 성장해 온 우리 교회가 순교 역사에서 첫 자리를 차지하는 분들의 유해를 비로소 찾았기 때문”이라고 의미를 설명했다.
한국 가톨릭은 1926년, 병인박해(1866) 60주년을 크게 기념했고, 그것을 본받아 개신교도 1926년 토마스 목사 순교 60주년 기념행사를 성대하게 치렀다. 평양에 토마스기념교회도 세웠다. 두 교회 모두 그때부터 쇠락하기 시작했다. 산 신앙 대신 죽은 신앙으로 교회를 내세우려고 했기 때문이다. 개신교는 해방 이후 신사참배 반대 투쟁을 한 이들을 선양하고 순교자 기념관을 세우고 순교 신앙을 강조했다. 그러나 일제 말에 대부분의 교회는 신사에서 참배했으며 전쟁을 지지하고 배교했다. 그 역사를 엄정하게 참회하는 대신, 참배 반대로 고생하고 순교한 이들을 높임으로써 마치 자신들이 그 후예인 양 내세우고 순교자들을 이용했다. 외국인 묘지도 선교사 묘원으로 단장하고 그 역사를 소유하거나 장사하는 자들도 나왔다.
한국 개신교는 1926년부터 동상을 세우기 시작했고(1928년 연희전문학교의 언더우드 동상과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의 에비슨 동상 제막), 1933년부터 교회 안에 흉상(평양남산현감리교회 홀 의사 흉상)을 붙이기 시작했으나, 교회 종과 함께 1942년 태평양 전쟁 때 미군 폭격용으로 헌납했다. 다시 배가 불러진 개신교회는 1984년 백 주년 때부터 곳곳에 동상을 세우고, 대형 예배당을 건립하기 시작했으나, 지금은 녹슬고 텅텅 비었다. 2007년 평양부흥백주년 때에는 성지인 ‘조선의 예루살렘 평양’ 재점령의 꿈을 꾸었으나 부흥의 불씨조차 없다. 부동산이 쇠퇴 사이클로 하강하기 직전에 앞날을 내다보지 못하고 꼭짓점에서 아파트를 매수하듯, 교회는 개교회나 교단의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유물 신앙, 유골 신앙, 성지 신앙을 강화하고 마구 돈을 뿌렸으나, 몇 년 앞을 내다보지 못한 헛된 투기에 불과했다.
1995년 이후 교회가 정체되고 교단의 세력이 쇠퇴하기 시작하자, 이를 감추고 양들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영역 울타리를 치듯이 반OO, 반XX 등 혐오와 안티테제를 구호로 내세우는 한편, 교회나 교단은 경쟁하듯이 역사실을 마련하고 박물관을 건립했으며, 기독교 역사 유적지 지정에 나섰다. 100년이 넘은 교회들은 왜곡까지 하면서 자기 교회 역사를 거룩하게 미화했다. M 교회는 원로 목사 역사실을 만들고, 등신상을 만들어 포토존을 꾸미는 우상화 작업도 했다. 역사실마다 보여줄 게 죽은 사진, 죽은 책뿐이라 그것들을 역사실 유리 박스 안에 모셔 놓고 조명만 밝혔다. 그러나 문을 잠그고 불을 끄면 박물관은 흑암뿐이다. 개신교회에 박물관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나, 살아 있는 역사의식이 더 필요하다. 불교 신자가 사리 숭배가 아니라 해탈 추구에 정진하듯이, 그리스도인에게는 냄새나는 유골의 세습 대신 구원과 평화의 새 시대를 추구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본질이다. 과거의 뼈를 탑에 넣고 모시는 신앙이 아니라, 그들의 순교 신앙을 이어받고 선교 정신을 이어받는 뼈대 있는 신앙이라야 혹한의 쇠퇴기를 이기고, 유혹의 혼란기를 극복할 수 있다.
1) 한국의 불‧법‧승 3보를 각각 지닌 사찰은 불보(진신 사리)의 양산 통도사, 법보(팔만대장경)의 합천 해인사, 승보(승려 교육)의 순천 송광사이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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