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0에 발송된 웨이브레터 24호의 1부에서 이어집니다!
심리테스트와 자기 정체성 그리고 민족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요즘 젊은 이들에게 인기 있는 마케팅 아이템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바로 ‘심리테스트’입니다. MBTI와 수 많은 심리테스트로 내가 누구인지 알아보려고 합니다. 저희 팀도 그래서 얼마 전에 ‘한국 신화 여신 심리테스트‘라는 콘텐츠를 만들었습니다.
심리테스트가 하도 인기가 많아서 어떤 스타트업은 심리테스트로만 돈을 버는 웹사이트를 만들었습니다. 장사가 될까 싶지만 아주 장사가 잘 되고 있고요. 투자도 받고 대기업 러브콜도 받고 있습니다. 그럼 요즘 젊은 사람들은 왜 심리테스트를 좋아할까요?
제가 미래학자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확신하는 메가트렌드가 있습니다. 바로 ‘정체성 찾기’입니다. 요즘 같이 혼란스럽고 내가 누구인지를 정의하기 어려운 이 시기에, 사람들은 더욱 더 자기 정체성이 무엇인지 찾기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자기 정체성을 찾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심리테스트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간단한 심리테스트에 유형을 구별하고 내가 그 유형 안에 속해있으면 묘한 소속감이 듭니다. 그리고 나와 같은 유형의 사람에게 친근감이 느껴집니다.
정체성과 소속감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민족’입니다. 한민족, 한국인 어릴 때 부터 자주 듣던 말 아닙니까? 물론 어떤 사람은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이고, 허황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게 중요할까요? ‘민족’이란 개념이 지금 사회에 상식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과 그 그릇 안에 무엇을 담고 있느냐가 중요하겠죠.
외국인에게 왜 한국인은 밥을 먹고, 냉면과 삼겹살을 먹는지를 설명하려면 너무나 오래걸립니다. 하지만, ‘한국인은 이래’, ‘한국인이라면 이래야 해.’라는 민족성에 빗대어 당위를 말하면 한 두 문장에 끝납니다. 이런 모습은 한국사람들끼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라는 배달의 민족 광고카피를 생각해보세요. 류승룡이 고구려 벽화 ‘수렵도’를 패러디 하면서 철가방을 들고 말한 한 문장에 우리가 배달음식을 시켜먹는 이유가 재미있게 설명되지 않나요?
지금 우리는 ‘한국인’이라는 그릇 안에 무엇을 담고 있을까요?
니콜라이 그룬트비가 말하는 기독교와 민족
니콜라이 그룬트비의 사상이 한국까지 영향을 미친 이유는 이 ‘민족’이라는 키워드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룬트비는 미운오리새끼, 인어공주, 눈의 여왕과 같은 작품을 쓴 안데르센과 같은 시대에 덴마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덴마크 국교인 루터교회의 목사였죠.
한국에서는 안데르센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만, 그룬트비는 덴마크가 오늘날의 덴마크가 될 수 있도록 교육, 경제, 정치, 사회 전 영역에 걸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입니다. ‘덴마크’라고 하면 요즘에는 UN행복지수가 높고 복지가 좋은 나라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그룬트비가 살던 19세기 덴마크는 어두웠습니다.
1803년까지 중립을 지키며 아이슬란드를 포함한 덴마크-노르웨이 왕국으로 남아있었지만, 나폴레옹과의 전쟁해서 패배하고 노르웨이를 스웨덴에 넘겨줍니다. 그러다가 독일과의 전쟁에서도 패해 막대한 배상금과 함께 유럽대륙 북부의 곡창지대인 슬레스빅 홀슈타인 지역까지 넘겨줍니다. 국가 토지의 면적과 부가 40%나 줄어든 상황에서 덴마크 국민들은 좌절했고 나라 전체에 슬픔이 가득했습니다.
덴마크는 절대왕정이 민주주의 형태로 바뀐 상태였습니다. 평민들이 정치참여를 할 수 있었지만 그동안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정치참여에 한계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지도층들도 어려운 나라를 국민들과 함께 나라를 이끌어간다는 생각보다는 그동안 해왔듯이 지배체제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소수의 엘리트를 키우는데 집중했습니다.
지식인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로마제국의 라틴 문화에 심취해 있었고, 모국어 보다는 라틴어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룬트비는 농민과 일반 대중을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시민교육 운동을 시작합니다.
그룬트비 시대의 덴마크의 교회는 권력을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교회는 전 사회영역에서 복음이라는 이름으로 교리와 국가에 충성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많은 지식인들이 ‘인간성’이나 ‘정신적 자유’는 복음 아래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룬트비는 달랐습니다. 루터교 목사였던 당대 지식인의 주장에 오류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기독교와 인간성은 상호 보완적인 관계라고 말했죠.
예를들어 갈라디아서 5장에는 성령의 열매를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라고 말합니다. 사도행전 2장에는 자기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나누어 주어서 모든 사람에게 호감을 샀다고 말하죠. 예수를 안믿는 사람들이 보기에도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적으로 매력이 있는 인간성이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룬트비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어라 (A human being first, a Christian later)”
그룬트비의 ‘인간성’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민족의 삶’으로 이어집니다. 덴마크에서 ‘어떻게 좋은 기독교인으로 살 것인가?’라는 과제는 덴마크 기독교인이 관계맺고 있는 덴마크 민족의 삶을 떼어 놓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룬투비는 민족과 기독교인의 관계를 간결하게 나타냅니다.
“민족의 삶은 살아있는 기독교의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다.”
‘민족의 삶’과 ‘살아있는 말’
그럼 민족의 삶이란 무엇일까요? 그룬트비는 두 가지 골자가 민족의 삶, 민족성을 이루는 골자라고 말합니다.
첫번째는 ‘모국어’입니다. 모국어는 한 나라 민족이 사용하는 고유한 언어입니다. 종교개혁이후 루터는 모국어를 성경을 쉽게 읽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그룬트비는 모국어를 민족의 정신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보았습니다. 그룬트비는 일상에서 “자연스럽고 명확하며 쉽고 즐겁게 말하고 쓸 줄 아는 법”을 익힐 수 있도록 모국어를 교육했습니다. 라틴어나 독일어를 배우기 위한 보조수단이 아니라, 삶을 위한 교육이었습니다.
두번째는 ‘신화’입니다. 민족신화는 한 민족의 기원과 정체성을 말해줍니다. 여기서 덴마크의 신화는 어벤저스 ‘토르’로 유명한 북유럽 신화를 말합니다. 이런 민족신화는 성경에서 나오는 역사와 설화와는 달리, 그 민족만이 지닌 특수한 정체성입니다.
그룬트비는 성경의 기독교 세계관이 인간의 삶과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넓게 영향을 미친다면, 북유럽 신화는 북유럽 지역에서 탄생하고 성장했기 때문에 각각 다른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둘을 모두 알아야 덴마크 인의 역사적인 삶과 하나님이 주신 우주의 뜻을 알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성경에서는 인류의 초월적인 근원을 말해주지만, 이 세계 안에 특정한 지역에서 지금을 살아가는 한 사람 한사람과 민족의 정체성과 특징은 말해주지 않기 때문에 각 민족과 신화에 역사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관계에 대해서 그룬트비는 기독교를 해와 달로, 북유럽 신화를 구름과 별로 비유했습니다. 지상의 인간들에게는 해와 달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구름과 별도 필요하다고 말한 것이죠.
그룬트비는 모국어와 신화를 포함한 민족의 언어와 역사, 문화유산을 통틀어서 ‘살아있는 말’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살아있는 말’을 가지고 일상에 정말 필요한 ‘삶을 위한 교육’을 할 때, 모두가 함께 좋은 나라를 이룩하는 ‘위대한 평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룬트비는 무너진 덴마크를 모든 국민들이 함께 재건할 수 있도록, 말 그대로 잘 살기 위한 교육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덴마크어와 덴마크 신화, 문화를 가르치고 지키도록 했습니다. 현실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도록 농업과 상업을 더 잘 할 수 있는 실제적인 과목을 가르쳤죠. 요즘 말로 하면 인문학과 이공계를 결합한 융복합 인재를 길렀다고 해야될까요?
여기까지 이야기 하면 한국사에서 어떤 장면이 떠오를 겁니다. 맞습니다. ‘잘 살아보세!” 한국의 새마을 운동은 덴마크 그룬트비의 시민교육과 농촌운동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새마을운동에는 없고 그룬트비 시민교육에는 있는 것. 바로 ‘민족의 삶’입니다.
왜 지금 한국 신화인가?
존경하는 목사님이 돌아가신 이후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저는 목회자도 아니고, 기독교 활동가도 아닙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으로써, 한국인으로써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할까? 부모님이 물려준 재산도 없고, 벌이도 대단치 않고, 장기려박사님이나 그룬트비 목사님 같이 뛰어난 엘리트도 아닌 평범한 내가 할 수 있는 일.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질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국 땅에서 한국인으로 태어나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끊임없이 질문합니다. 한국을 알기위해 한국신화와 설화, 문화유산을 만납니다. ‘살아있는 말’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흔적을 만납니다.
여기까지가 한국신화로 다시 생각한 저의 신앙이야기였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어떤 신앙의 모습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으신가요? 함께 신앙의 여정을 나눌 수 있는 날을 기대하겠습니다.
♦도움 받은 글
◊ 논문
- 근대 기독교 민족운동에서 기독교와 민족 간의 관계 해명 -함 석헌과 그룬트비(N.F.S. Grundtvig)의 관점에 비추어-, 송순재
- N. F. S. GRUNDTVIG의 살아있는 말(Living Word)에 대한 교육학적 고찰, 김애진
- 덴마크의 자유교육, 송순재
- 그룬트비 교육사상의 유아교육적 함의 ‘살아있는 말’을 중심으로, 김은주, 김정미
◊ 사이트
[역사를 바꾼 크리스천] 그룬트비…(Nikolai Frederik Severin Grundtvig, 1783∼1872)-국민일보
“김교신의 무교회주의 아직도 오해… ‘진정한 교회’에 대한 염원 담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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