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난민들에 대한 한국 사회의 책임은 391명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도 참여한 전쟁의 기간 중에 생겨난 수많은 난민들, 한국은 이들의 피난과 재정착을 위한 노력에도 함께해야 한다. ‘한국에 기여한’ 사람들의 인권만 소중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본문 중)

이일(변호사, 공익법센터 어필)

 

평화를 찾아 한국에 도착하다

 

391명의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이 특별 기여자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도착했다. 이들은 왜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해야만 했을까? 이들이 전부일까? 아니다. 1997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이후, 그리고 미국이 2001년 비극적인 9·11 테러에 반격한다는 이유로 주범인 알카에다를 지원하는 탈레반 정권을 축출하기 위해 침공한 이후, 해외로 평화와 안전을 찾아 피난한 난민들이 계속 생겨났다. 현재까지 약 250만 명이 해외로 피난했다. 그중 1/7만이 유럽까지 피난할 수 있었고, 대부분은 파키스탄에 약 144만 명, 이란에 약 78만 명, 타지키스탄에 약 5천 명 등 인근 국가에 머물며 오랫동안 불안정하게 살고 있다.

 

20년에 걸쳐 진행되는 전쟁 중에 미군이 통보한 철군 기한이 되자 각국은 비행기를 띄워 자국과 관련 있는 ‘현지인 조력자’들을 대피시키기 시작했다. 오랜 전쟁 및 지역 재건 활동 속에서 현지인들은 통역 등 다양한 도움을 주며 외국인들과 협력했는데, 그들은 탈레반에게는 ‘외세와 손잡은 부역자’로 여겨져 즉각적인 살해 위협을 비롯해 여러 가지 위험에 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과 깊숙하게 연관을 맺고 나토군 소속으로 지역 재건 활동에 참여했던 우리나라도 병원 등의 기관을 운영해 왔고, 한국인들과 함께 동료로 일하던 통역사, 의사, 직원 등이 위험에 처했기에,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이들을 대피시키는 전례 없던 작전을 수행했다. 391명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불안과 피로 속에서 한국으로 평화를 찾아 떠나왔다.

 

난민들을 맞이하는 한국 사회의 모습

 

이들은 국제적인 구분으로는 ‘재정착 난민’의 범주에 포함된다. 박해의 위험이 피난국 정부에 조력했다는 이유로 생겼기에 피난국 정부가 이들을 대피시키고 보호할 특별한 책임이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특별 기여자’라는, 법에도 없는 표현을 쓰면서 여론의 향배를 살폈다. 그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난민들에 대한 거부가 예전처럼 또 거세게 발생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기억하는가? 2018년 여름, 전쟁터를 피해 한국으로 피신한 500여 예멘 난민들에 대한 한국 사회의 ‘낯섦’의 광풍이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와 피난 배경, 한국 사회와의 공통점, 사람들의 개인 정체성은 사라졌다. 오히려 말할 권리가 없던 소수자들처럼, ‘집단’으로 뭉뚱그려지고 그 집단에 대한 일련의 사회적 편견이 여과 없이, 고정불변의 것인 양 쏟아졌다.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존엄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그냥 ‘난민’, ‘무슬림’, ‘남성’이 뭉뚱그려진 어떤 불안한 물건들 같이 인식되었다. 일부 한국 교회, 그리고 주로 이주민들의 한국 사회 속 자리를 부인하는 몇몇 그룹들이 강경하게 반대했고, 극소수지만 그럼에도 난민이 한국으로도 피난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 일부 시민들 역시 그 불안에 먼저 손을 들어주었다. 난민들을 적극적으로 도왔던 교회들도 많았지만, 일부 교회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앞장서서 난민 추방을 외쳤던 그룹에 속했다. 강도 만난 자를 길에서 만난 교회의 역할은 과연 무엇이어야 했는지, 지극히 작은 자, 갇힌 자, 주린 자로 나타나시는 주님의 얼굴에 대한 반응은 어떠해야 했는지…. 돌아보면 지금도 마음이 무겁다.

 

다행히도, 정부의 우려와 달리 아프가니스탄 난민들과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게 생겼다. 애매한 입장을 표명하는 사람도, 여전히 날 선 목소리로 공격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예멘보다 아프가니스탄은 덜 낯설었고, 탈레반이 만들어내는 박해와 차별이 부당하다는 공감대는 더 컸다. 391명 중 반 이상이 10살 이하의 어린이라는 점, 그리고 한국 정부를 돕고 함께했던 사람들이라는 사실도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3년 전의 경험을 지나면서, 우리 사회의 주요 주제로 떠오른 난민 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태도가 조금 더 성숙해진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여러 난민 그룹들의 필요와 우리의 역할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에 대한 한국 사회의 책임은 391명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도 참여한 전쟁의 기간 중에 생겨난 수많은 난민들, 한국은 이들의 피난과 재정착을 위한 노력에도 함께해야 한다. ‘한국에 기여한’ 사람들의 인권만 소중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캐나다, 영국 등은 이미 4만 명 정도의 난민 재정착 계획을 밝혔다. 여성, 언론인, 인권 활동가 등 현재 더 시급한 위협에 처한 난민들을 자국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이고, 여러 나라가 같은 취지의 계획을 밝히고 있다. 한국 정부는 ‘난민’이 아닌 ‘특별 기여자’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한국에 기여하지 않은 그냥 ‘난민’에 대한 보편적 책임을 국민들에게 설명할 기회를 잃어버렸지만, 결국 우리도 난민들에 대한 국제 사회의 책임을 분담해 나가야 한다.

 

이미 우리를 찾아온 이들을 위해서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과제가 놓여 있다. 391명의 난민 가족들은 6개월 동안 언어, 사회, 문화 등 사회 통합 교육을 받은 후에는 각자 어디론가 일터와 머물 곳을 찾아 떠나야 한다. 난민 인정을 받은 것과 다름없는 거주(F2) 비자를 받아 한국에서 사실상 영주하며 살아갈 수 있기에 다른 난민들보다는 안정적인 미래를 꿈꿀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아무 관계도, 경험도, 자산도 없는 상태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녹록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6개월 이후에는 이들에 대한 책임에서 멀어져 갈 것이다. 대부분 전문 기술도 있고 영어도 능숙한 이들이지만, 한국어를 할 수 없기에 전문 기술을 활용하는 직업을 얻기가 매우 어렵다. 저렴한 지역에 임대를 얻어 거주하고, 아이들을 한국 학교에 보내는 것 등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말도 안 통하고 관계도 없는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 결국 누군가가 이들의 ‘곁’이 되고, 이야기를 나누고, 급할 때 전화를 받아 주며, 웃음과 고통을 함께할 이웃이 되어 주어야 한다.

 

한국 정부가 데려온 391명만 있을까? 아니다. 그 전부터 한국에서 이미 살아 온 아프가니스탄인들도 있다. 그들은 유학생, 사업가 등으로 체류하고 있다가 갑자기 모국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사람들이다. 한국 정부는 우선 비자를 연장하지는 않고 추방을 유예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취업 허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결국 평생 살아갈 수밖에 없는 한국 사회에서 법적 신분도, 사회적 관계도 없는데 미래마저 불확실하다.

 

우리 사회가 3년 전보다 조금 더 성숙해졌다고 믿고 싶다. 우리의 책임과 성숙의 정도는 6개월이 지난 이후, 391명이 한국 사회로 깊숙이 진입할 때부터 드러나기 시작할 것이다. 그때 과연 그들 곁에 누가 있을까. 그들이 차별받지 않고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리 잡고 살아갈 수 있을까. 지금은 대부분 10살 이하인 어린 자녀들이 10년 후에는 한국 사회의 평화에 익숙해지고 희망과 꿈을 가지고 미래를 설계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어필을 통해 난민 지원 사역을 해 오면서, 난민들이 한국 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하는 것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친구’다. 옆에서 대신 목소리를 내고 이야기를 나눠 줄 친구, 어려운 시기에 함께 웃으며 동행해 줄 친구가 있느냐 여부다. 친구가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우리 사회의 얼굴은 매우 다르게 느껴진다. 더욱 많은 시민들이 그들의 친구로, 삼촌과 이모로, 동네의 이웃으로 나타날 것을 기대해 본다.

 

공익법센터 어필(APIL)은

 

난민, 무국적자, 구금된 이주민, 인신매매 피해자, 해외의 한국 기업에 의한 인권 침해 피해자의 인권을 옹호하는, 시민들의 풀뿌리 후원으로 운영되는 비영리 NGO 공익 변호사 단체입니다. 더 자세한 정보는 홈페이지(www.apil.or.kr) 및 유튜브 공익법센터 어필채널을 방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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