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이 오커스 동맹이 새로운 냉전의 출발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지난날 미국과 소련이 조성한 냉전으로 세계는 불필요한 긴장과 갈등 속에서 지내며 무자비하고 비참한 일들을 겪었다. (본문 중)

백종국 (경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오커스 동맹의 출발

 

2021년 9월 15일, 미국과 영국과 호주는 새로운 안보 동맹을 결성하였다. 이 국가들의 이름 약자를 조합하여 오커스(AUKUS) 동맹이라 부르고 있다. 이 동맹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외교, 안보, 국방 협력 심화를 목적으로 오스트레일리아의 8척 이상의 핵잠수함 건설에 협조하고, 장거리 유도 미사일을 비롯한 각종 미사일, 인공지능, 양자 컴퓨팅 등 사이버 분야의 기술 협력과 공유를 진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동맹의 출범에 대해 세계는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프랑스는 자국과 호주 사이에 진행되던 잠수함 사업을 미국이 가로챈 데 대해 격앙된 반응을 내놓았다. 한국이 요청한 핵잠수함 건설 협조를 거부했던 미국이 갑자기 호주의 핵잠수함 건설을 허락한 것은 앵글로색슨족 우위의 인종주의적 태도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중국은 이 동맹이 지역 평화를 심각하게 해칠 위험이 있으며 핵무장과 군비 경쟁을 강화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이 오커스 동맹이 새로운 냉전의 출발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지난날 미국과 소련이 조성한 냉전으로 세계는 불필요한 긴장과 갈등 속에서 지내며 무자비하고 비참한 일들을 겪었다. 1991년 소련 해체 후 냉전이 끝나자 이제는 군사력의 경쟁이 아니라 체제적 복지의 경쟁을 통해 세계적 평화와 번영이 이루어지는 시대가 왔다는 기대가 생겼다. 만일 오커스 동맹의 출발로 새로운 냉전이 시작된다면, 인류는 또다시 불필요한 갈등으로 몸서리를 쳐야 한다.

 

냉전의 최대 피해국인 한국은 특히 이 상황에 민감하다. 한국은 냉전 강대국의 이해관계 때문에 강제로 분단을 당했고,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겪었다. 돌이켜 보면 우리가 국제 정세에 정말 무지했고 냉전의 틈바귀를 돌파하는 역량이 전무했기 때문에 당한 비극이다. 따라서 한국인들에게는 국제 정세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제1차 냉전의 시작과 붕괴

 

1945년까지만 해도 미국과 소련은 독일-일본-이탈리아의 군국주의자들에 대항하는 동맹국이었다. 미국은 무기대여법을 통해 1941년부터 5년간 무려 109억 불 어치의 군사 물자 1,750만 톤을 소련에 무상으로 제공할 정도로 관계가 긴밀하였다. 영국에 313억 불어치 물자를 제공한 데 이어 군사 물자 공여 2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미국 군수 지원을 받은 소련은 무려 860만 명의 군인과 1,600만 명의 민간인 희생을 무릅쓰면서 연합국의 승리에 기여했다.

 

전쟁이 끝나자 세계의 재편성을 두고 미국과 소련의 견해가 엇갈렸다. 미국은 자본주의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선호했고, 소련은 공산주의에 바탕을 둔 전체주의 국가를 추구했다. 특히 소련은 제정 러시아의 주변 국가들을 흡수하여 방대한 소련 제국을 만들었으며, 소련군이 진주하였던 동유럽 국가들에게도 공산주의 체제를 강요하는 악수를 두었다.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 사이에서, 소련의 공산주의가 이론의 성격상 팽창을 추구하므로 힘을 합쳐 봉쇄해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했다. 그래서 미・소가 직접 군사적으로 충돌하는 열전(熱戰)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양 진영의 국가들이 서로를 괴롭히는 냉전(冷戰)이 시작되었다.

 

소련과 그 위성국들을 봉쇄하기 위해 1950년대에 미국은 일련의 안보 조약 망을 설치하였다. 유럽의 NATO(1949), 오세아니아의 ANZUS(1951), 일본과의 J-US(1952), 한국과의 K-US(1953), 동남아의 SEATO(1954), 중동의 CENTO(1955) 등의 안보 조약이 체결되었다. 그러나 소련을 봉쇄하는 안보 조약 망은 별 효과가 없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한미안보조약(K-US)을 제외한 대부분의 조약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효력이 종료되거나 유명무실해졌다. 군사적 긴장감 조성은 도리어 빈번히 여기저기에서 군사적 충돌을 야기할 뿐이었다. 한국전쟁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군사적 수단은 큰 역할을 하지 못했으나 경제적 수단은 냉전에 큰 공헌을 했다. 미국은 두 차례의 세계 대전에서 축적한 막대한 자본을 활용하여 미국이 주도하는 자본주의 세계 체제를 수립하는 데 성공했다. 브레튼우즈 협정을 통한 미국 달러의 기축 통화화, 국가 파산을 관리해 주는 국제통화기금(IMF) 설치, 유럽 경제 회복을 지원하는 170억 달러의 마셜플랜 시행, 국제개발은행(IBRD)과 같은 각종 개발 원조 기관 구성, 미국 시장에의 접근과 자유 무역을 관리하는 무역 협정(GATT) 운영 등은 자본주의 국가들이 공산주의 국가와의 체제 경쟁에서 승리하게 된 원동력이었다.

 

1970년대에 진행된 미국의 데탕트 전략은 냉전적 긴장을 늦추고 상호 교류를 촉진함으로써 공산주의 국가의 국민들이 자본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엿볼 기회를 제공하였다. 미・중 화해와 뒤이은 헬싱키 회담은 먼저 공산주의 국가의 존재를 수용하고 국경선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긴장 완화의 기반을 제공했다. 이와 동시에 경제적 협력 강화와 보편적 인권의 강조는 공산주의 체제하의 국민들에게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의문을 가져다주었다. 공산 국가들은 자본주의 국가들의 침략 위협을 강조하면서 군사력 확충에 몰두한 나머지 민생을 위한 경공업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먼저 동유럽 공산 국가들이 붕괴했고 마침내는 소련 자체가 붕괴하게 되었다. 햇볕 정책의 획기적 승리라 할 수 있다.

 

 

오커스 출범과 제2차 냉전

 

미국과 중국의 관계 개선은 미・소 간의 냉전 종식에 큰 역할을 하였다. 1970년대에 소련과 중국은 공산주의 종주국 지위와 국경선 획정을 두고 갈등에 휩싸여 있었다. 이러한 때에 키신저의 중국 방문으로 시작된 미・중 간의 화해와 경제 협력 증대는 국제 공산주의 진영에 커다란 분열을 초래하였다. 특히 중국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라는 실용주의 노선을 바탕으로, 방대한 인구, 낮은 임금, 풍부한 천연자원과 미국의 경제 지원을 활용하여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룩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른 시일 내에 세계 제2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함으로써 교조주의적인 정치 노선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증명해 주었다.

 

문제는 중국의 성장이 너무 빨랐다는 점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아테네의 지나치게 빠른 성장에 대한 스파르타의 우려 때문에 발생했다”라는 투키디데스의 말처럼, 중국의 지나치게 빠른 성장은 미국에는 위기감을 중국에는 자만심을 동시에 초래하였다.

 

경제적 성공이 촉발한 중국의 자만심은 최근에 발표된 “일대일로”(一帶一路) 실크로드 계획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일대(一帶)는 육지를 지나는 실크로드, 일로(一路)는 해상을 지나는 실크로드를 의미한다. 중국의 시안(西安)에서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에 이르는 실크로드를 150년에 걸쳐 건설한다는 장대한 계획으로서, 세계인구의 63%와 세계 GDP의 29%를 하나의 경제권역에 엮겠다는 구상이다. 이 계획을 지원하기 위해 중국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신개발은행(NDB), 실크로드 기금 등을 설치하고 있다.

 

경제적 성공에는 당연히 군사력 증강도 따른다. 무역을 통한 경제 성장에 성공할수록 중국은 상품 교역로와 원유 공급망 확보를 중시할 수밖에 없다. 중국은 효율적인 해상 운송로의 확보를 위한 대양 해군 육성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일대일로(一帶一路) 자체가 경제적 계획임과 동시에 군사적 계획이 되는 이유이다. 일대일로(一帶一路)는 넘쳐나는 무역 흑자를 사용하여 중국 중심의 경제적・군사적 국제 진영을 구성하려는 시도이다.

 

오커스 동맹의 출범은 중국의 세력 확장에 대한 대응책이다. 지속적인 대중 무역 적자와 달러화의 기축 통화 지위에 대한 위안화의 도전이 중국에 대한 미국의 태도를 경화시키고 있었다. 남중국해의 영유권 분쟁에서 보여준 중국의 강압적 태도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수에 따른 후유증이 미국의 중국 봉쇄를 서두르게 만들고 있다. 이미 결성한 인도・태평양 국제기구(일명 Quad) 내의 인도와 일본이 중국 봉쇄에 미온적 태도를 지속하자, 미국은 앵글로색슨의 동질성을 가진 영국과 호주를 끌어들여 보다 확실한 군사 동맹을 추구한 것이다.

 

따라서 오커스 동맹은 제2차 냉전의 출발이라 볼 수 있다. 제1차 냉전의 대상이 소련이었다면 제2차 냉전의 대상은 중국이다. 미국의 위기감과 중국의 자만심이 이러한 냉전의 핵심 요인이다. 그러나 군사적 요소가 최우선이었던 제1차 냉전 때와는 달리, 제2차 냉전에서는 경제적 측면이 더 강하고 미국의 힘도 제1차 냉전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다. 따라서 제1차 냉전 때와는 달리 갈등의 강도가 낮고 타협의 여지도 있다.

 

한국의 능동적 대응 찾기

 

한국이 제2차 냉전에서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당연히 능동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 현재 한국은 정치 경제적으로 미국과 중국 어느 쪽도 포기할 수 없는 처지이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갈등에 빠지면 한국의 국익은 심각히 훼손될 것이 뻔하다. 상황이 악화될 대로 악화된 뒤 어쩔 수 없었다고 한탄하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상황을 선점하고 상호 평화와 번영을 위한 창조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능동적인 대응책을 가지려면 다음 세 가지 측면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첫째는, 국익 중심의 이해관계를 이해해야 한다. 미국의 위기감과 중국의 자만심은 구조적으로 불가피한 결과이다. 이데올로기적 접근은 절대 삼가야 한다. 둘째는, 다양한 해결책에 대한 믿음이다. 인간이 만든 문제라면 반드시 해결책이 있다. 창조적 역량이 있는 지도자나 그룹을 육성하면 그만큼 더 나은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 셋째는, 냉전적 세력을 국가 권력에서 최대한 배제해야 한다. 냉전을 권력 쟁탈에 활용하려는 자들이 냉전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낼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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