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뉴스’ 현상은 탈진실 사회의 대표적인 현상 중 하나이다. 언론 미디어 환경에서 잘못된 정보를 보도하는 경우는 이전에도 있었다. 실수로 그럴 수도 있고 사실 확인을 충분히 하지 못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의도성을 가지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본문 중)

김상덕(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1)

 

“진실은 죽었는가?”(Is Truth Dead?) 다소 도발적인 문구가 2017년 4월 3일 자 <타임> 지의 표지를 장식했다. 그 배경에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이 있었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결과여서만은 아니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대해 ‘진실의 죽음’이라는 도발적인 수식어를 붙인 것은 그가 미디어를 상대한 방식 때문이었다. 대통령 선거 기간 중 다수의 주류 언론들은 당시 트럼프 후보에 대해 부정적인 기사들을 내고 있었다. 이에 그는 자신의 소셜 미디어 계정을 적극 활용하였는데 크게 두 가지 전략을 사용하였다. 먼저, 자신에게 불리한 언론의 기사들을 모두 ‘가짜 뉴스’로 폄하하였다. 그리고 사실 확인이 되지 않거나 잘못된 정보들을 마치 진짜인 것처럼 말하였다. 특별히, 미국 백인들의 경제적 어려움이 민주당의 다민족주의에 기반한 이주 정책 때문이라는 단순한 프레임을 때로는 단호하게, 때로는 농담처럼 가볍게, 반복적으로 주장했다. 여론은 움직였고 그 결과는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으로 이어졌다. 당시 언론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단어가 바로 ‘가짜 뉴스’(fake news)였다.

 

사실 ‘가짜 뉴스’란 좋은 표현이 아니다. 사실을 기반으로 해야 하는 뉴스 보도 가운데 어떤 뉴스는 진짜이고 어떤 뉴스는 가짜일 수 있다고 암시하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사실이 아닌 뉴스는 뉴스가 아니라 거짓 정보일 뿐이다. 그럼에도 ‘가짜 뉴스’는 단지 하나의 개념을 넘어 사회 현상을 낳고 있다. 특히, 언론 미디어를 중심으로 나타나는 정치적 편향성, 양극화된 집단주의와 배타적인 소통 방식, 그에 따른 혐오와 차별의 사회적 갈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사회 현상을 가리켜 ‘탈진실’(post-truth)이라고 한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2016년에 ‘탈진실’(post-truth)이란 단어를 새로이 추가하였다. 탈진실이란 “여론을 형성할 때 객관적인 사실보다 개인적인 신념과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상”을 말한다.2) 한국어 번역이 ‘후기-진실’ 대신 ‘탈진실’이라고 한 것은 현대 사회에서 진실의 개념이 퇴색했다는 본래 의미를 잘 표현하고 있다. ‘가짜 뉴스’ 현상은 탈진실 사회의 대표적인 현상 중 하나이다. 언론 미디어 환경에서 잘못된 정보를 보도하는 경우는 이전에도 있었다. 실수로 그럴 수도 있고 사실 확인을 충분히 하지 못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의도성을 가지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리 매킨타이어는 거짓 진술의 세 가지 경우를 (1) 실수, (2) 검증되지 않은 주장(무책임), 그리고 (3) 의도적 거짓 진술로 나누어 설명한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고,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쉽게 주장하는 것은 게으름과 무책임한 일이라는 비판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경우는 의도적으로 거짓 진술을 하는 것인데, 메킨타이어는 “진실이 아닌 말을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믿게 만들려는 의도가 개입하는 순간, 단지 다른 해석을 내놓은 사람이 아니라 사실을 왜곡한 사람이 된다. 탈진실 역시 이러한 선상에서 이해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3) 가짜 뉴스 현상은 언론이 정치적으로 편향되었다는 비판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거짓 진술을 생산, 유포하는 언론과 더불어,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유통하는 소비자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편향된 주류 언론 및 종합 편성 채널, 인터넷 및 포탈 채널, 나아가 소셜 미디어를 이용한 다양한 뉴스 매체들이 객관적 사실보다 개인의 신념이나 감정에 더 호소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탈진실 현상은 이미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와 있으며 이를 분별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가짜 뉴스는 전체가 아닌 일부 사실만을 제시하며 왜곡하는 특징을 갖는다. 또한, 자극적인 소재와 언어들로 감정이나 확신 등을 표현하여 특정한 감정을 부추기기도 한다. 처음에는 단순히 궁금증에서 귀를 기울이게 되고 내가 원하던 이야기를 단호하고 확정적인 말로 표현하는 방식에 동질감과 감정적인 시원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매체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자신의 생각과 다른 입장을 거북하게 여기게 되고, 더 이상 사실관계에 기반한 언론 보도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한 편의 입장만 절대적으로 옳다고 확신하게 되는데, 이를 가리켜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대로만 믿게 되는 것이다. 이는 성숙한 신앙이나 신념과는 구분되어야만 한다. 성숙한 기독 시민이라면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을 차별하거나 혐오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치적 편향성, 자극적인 기사와 가짜 뉴스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눈과 귀를 헷갈리게 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첫 번째 제안은, 좋은 언론/미디어를 향한 기대를 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한국 사회 속에서 언론에 대한 깊은 불신을 가질 만하다는 말에 공감한다. 권력과 자본에 기생한 언론, 그리고 권력이 된 언론을 향한 비판과 감시는 여전히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언론 자체에 대한 냉소와 무관심으로 이어진다면, 언론의 부패는 오히려 심화될 것이다. 좋은 언론을 향한 기대와 관심이 높아질수록 언론이 권력으로부터 독립되고 사회적 책임을 수행할 가능성이 커진다.

 

두 번째 제안은, 뉴스를 읽고 해석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미디어 리터러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며, 특히, 탈진실 상황 속에서는 필수적인 능력이다. 알랭 드 보통은 오늘날 뉴스가 온갖 흥미롭고 이례적인 사건들을 밝히는 데 힘을 쏟으면서도 정작 뉴스가 우리 삶에 미치는 지배적 영향력만큼은 교묘히 숨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뉴스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력에 비하여 우리가 뉴스를 읽고 해석하는 법에 대해 너무 무관심하다고 의아해한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뉴스가 매시간 제공하는 언어와 이미지에 대해서는 좀처럼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오셀로』의 플롯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뉴욕 포스트> 1면을 해석하는 법을 배우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간주된다.4)

 

이런 맥락에서 언론 미디어 환경을 이해하고 뉴스를 해독하는 능력은 민주 시민 교육의 필수 요소가 되었다. 따라서 이 시대를 분별하고 이 땅 가운데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고민하고 실천하는 기독 시민들에게도 미디어를 읽고 해석하는 능력을 기르는 일은 가장 우선적인 과제가 되어야 한다. 교회와 지역 사회를 이끄는 목회자의 자질로서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도 거의 모든 신학교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관련 과목이 없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다.5)

 

비단 목회자뿐 아니라 기독 시민으로서 우리는 언론 미디어 환경의 복잡한 속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정치적 의도를 숨긴 채 일부의 사실을 가지고 그럴듯하게 여론을 흔드는 언론의 구태적 방식에 더 이상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불필요한 불안과 공포의 감정 등을 부추겨 세력을 규합하고 갈등을 야기하는 시도를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언론이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양한 사회 구성원의 공존과 미래를 고민하는 것인지 따져 물어야 한다. 그리고 교회가 그런 질문과 토론을 위한 안전한 공간을 제공할 수는 없는 것일까?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4개월 정도 앞둔 현재, 언론은 연일 주요 대통령 후보들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기울이고 기사화하고 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선출하는 일이니 중요성이야 더할 나위가 없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뉴스 보도의 상당수를 여기에 할애하여 선거 외에도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사안들이 사뭇 묻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각 후보자의 비전과 가치, 구체적 정책과 실효성 등이 아니라, 상대 후보를 향한 네거티브 기사들이 주를 이루는 것은 아닌지 묻게 된다. 언론이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하고 공정한 보도를 잘 할 수 있도록 기독 시민의 비판적 역할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우리의 눈과 귀를 열고 비판적 감시와 능동적 해석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하여, 좀 더 나은 언론 미디어 환경을 만들어 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1)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연구실장, 명지대학교 객원교수.

2) 리 매킨타이어, 『포스트트루스: 가짜 뉴스와 탈진실의 시대』, 김재경 옮김 (서울: 두리반, 2019), 19.

3) 위의 책, 23.

4) 알랭 드 보통, 『뉴스의 시대: 뉴스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 최민우 옮김 (파주: 문학동네, 2014), 12.

5) 미디어 관련 과목이 있다고 해도 주로 목회에 미디어를 활용하는 도구적 접근이 주를 이룬다. 언론 미디어를 읽고 해석하는 능력을 기르는 목적을 이루는 데는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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