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기억해야 할 것은, 지금까지 개발 완료된 소형모듈원전이 극히 소수이고, 그나마도 일종의 시제품이어서 아직 상용 운전에 들어간 경우는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지금 집중해야 할 것은 소형모듈원전의 생산과 사용 체계가 다 완성된 후의 미래 모습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그 단계까지 가는 과정에 대한 자세한 논의이다. (본문 중)

손화철(한동대학교 글로벌리더십학부 교수, 기술철학)

 

탈원전 정책은 문재인 정권 내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큰 이슈 중 하나다. 원자력 발전의 부인할 수 없는 약점인 핵폐기물 처리와 안전 및 안보 위험을 더 심각하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지만, 원자력이 값싸고 질 좋은 핵심 에너지원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입장 차이에 따라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성, 경제성, 환경친화성 등에 대한 평가도 정반대로 제시된다. 누군가는 우리나라의 원자력 발전소가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의 원전에 비해 훨씬 더 안전하다고 하고, 누군가는 원자력 전기가 저렴해 보이지만 막대한 건설 비용과 유지 비용, 나아가 핵폐기물 처리 등 사후 비용까지 고려하면 결코 싸지 않다고 주장한다. 탄소중립과의 양립 가능성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온실가스가 나오지 않는 친환경 발전이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원자력 발전을 잠재적인 재앙의 근원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사실 이런 대립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이런 논란의 와중에 소형모듈원전이 원자력에 대한 여러 우려를 불식하는 새로운 시도로 제시되고 있다. 소형모듈원전은 1,000~1,600MW 수준의 전력을 생산하는 일반 원전에 비해 훨씬 적은 300MW 안팎의 전력을 생산하며, 주요 기기를 하나의 용기에 일체화하여 소형화한 것이다. 다양한 컨셉과 크기의 모델이 제시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개발 단계에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원자로의 소형화, 모듈화를 통해 기대하는 유익은 여러 가지다. 다양한 방법의 원자로 냉각 방법이 제시되면서 원자로를 굳이 바닷가에 설치하지 않고 내륙에 둘 수 있어 지역별로 설치할 수 있다고 한다. 일체화되어 있기 때문에 지진 같은 긴급 상황에서도 대처가 용이하며, 공장에서 대량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설치가 간단하고, 가격도 저렴하다는 이점도 제시된다. 이미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나라가 다양한 형태의 소형모듈원전을 만들고 있으며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00MW급의 SMART라 하는 소형 원전을 자체 개발하여 사우디아라비아에 수출하고 상용화하는 과정이 이미 일정 정도 진행되었다.

 

원자력계에서는 소형모듈원전을 향후 에너지 시정의 핵심 산업, 탄소중립을 위한 대안으로 적극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도가 성공하기까지 극복해야 할 여러 가지 현실적인 난제들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서 균형 잡힌 토론이 일어나기 힘든 상황이다.

 

우선 기억해야 할 것은, 지금까지 개발 완료된 소형모듈원전이 극히 소수이고, 그나마도 일종의 시제품이어서 아직 상용 운전에 들어간 경우는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지금 집중해야 할 것은 소형모듈원전의 생산과 사용 체계가 다 완성된 후의 미래 모습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그 단계까지 가는 과정에 대한 자세한 논의이다.

 

원전이 개발되어도 곧장 사용할 수 없는 이유는, 현재의 원자력 발전소 안전 규제가 대용량 발전소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이어서 소형모듈원전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원자력 안전 규제는 하루 이틀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소형모듈원전은 기존의 원전과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사실상 새로운 안전 규제 체계와 기술 표준을 만들어야 한다. 이런 면에서 소형모듈원전의 개발은 기존의 원자력 발전소와는 다른 새로운 기술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원전을 한 곳에서 생산하여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면, 그 운송 과정에 대한 안전 규제를 만들어야 하고, 공장에서 대량 생산을 한다면 그 공장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기술적, 제도적 장치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보면 몇 년 안에 몇천 기의 소형모듈원전 시장이 열릴 것이라 하는 언론의 예측은 섣부르다. 원자력 공학자들이 원전을 안전하게 개발하기 위해 얼마나 조심하는지를 안다면, 원전을 대량으로 만드는 공장이 몇 년 안에 만들어져 원자로를 대량으로 만들어 낼 것이라 예측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원전의 안전 문제는 안보와 직결되어서 한 나라에서 규제를 만들고 허가를 한다 하여 바로 세계에 통용되는 것도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원전을 수출했다 했지만, 상용화를 위한 노력이 몇 년째 계속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역시 얼핏 매우 긍정적으로 들리지만 대량 생산 그 자체가 실상 소형모듈원전의 아킬레스건이다. 소형모듈원전은 기존의 대형 원전에 비해 단위 에너지양에 비해 생산 단가가 높을 수밖에 없다. 이 비용은 향후 공장식 생산을 통해 상쇄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대량 생산에서는 항상 일정한 하자를 감안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자동차 리콜 사태들에서 보듯이 매우 일반적인 일이지만, 원자력 발전에서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상황이다. 결국 다양한 지형과 기후에서 작동할 수 있으면서도 절대 하자가 나지 않는 대량 생산을 추구해야 하는데, 이렇게 하려면 비용이 다시 올라갈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진다.

 

소형모듈원전을 가동해도 발전 후에 남는 사용 후 핵연료 혹은 핵폐기물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핵연료를 주입하기 위해 원전을 다시 공장으로 가지고 가든, 아니면 그 자리에서 처리하든, 핵폐기물을 이동시켜야 한다는 것도 부담이다. 언론들은 소형 원자로를 곳곳에 세워서 지역 에너지를 담당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하지만, 많은 지역으로 원자로 및 핵폐기물을 운송하는 것은 그 자체로 심각한 안전/안보 문제를 야기한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투자가 요구된다. 미국처럼 민간 자본이 투자를 감행하고 그 수익도 챙긴다면 또 다른 문제이겠으나, 우리나라처럼 국가 재정의 투입이 필요한 경우는 계산이 복잡하다. 아직 미래가 불투명한 기술에 투자하는 것은 일정한 위험 부담이 따른다. 한 번 큰 투자가 들어가면 중간에 발을 빼기도 어렵다. 원자력계가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며 늘 제기하는 문제가 “지금까지 투자를 그렇게 많이 했는데 이제 와서 그만두면 낭비”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어떤 문제든 늘 가던 방향으로 계속 가야 한다는 현상 유지의 논변일 뿐 아니라, 소형모듈원전처럼 신규 투자를 해야 할 경우 오히려 더 조심하게 만드는 역효과를 낳는다.

 

이처럼 여러 가지 장애물이 있는데도, 원자력 전문가들의 적극적인 대응은 찾아보기 힘든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 소형모듈원전이 탄소중립과 미래 에너지의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하면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 대신 외국의 사례들을 단편적이고 일방적으로 제시하거나 비판적 입장을 무식한 주장으로 비난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 탈원전 정책의 부당함을 지적하면서 이를 섣불리 이념 투쟁의 문제로 만들어 버리는 실수도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원전에 대한 우려가 전 세계적으로 커지고 있는 만큼, 소형모듈원전 같은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정보를 공유하고, 문제점들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며 국민을 설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시도 없이 남들이 다 투자하니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국민을 협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원자력 사용은 단순히 과학기술의 문제도 아니고, 이념의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높은 위험과 많은 유익을 동시에 가져다주는 기술이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정책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다. 좀 더 합리적이고 열린 대화와 합의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관련 이슈에 대한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정보들이 모두 취합되어야 한다. 나아가 소형모듈원전의 개발은 이미 가동하고 있는 기존 원전의 지속 여부와는 약간 성격이 다른 새로운 기술에 대한 투자의 문제다. 기존의 의견 차이에 집착하지 말고, 전문가와 정치가들, 시민이 함께 새로운 고민을 시작할 계기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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