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접종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그동안 억눌렸던 생활에 대한 보복 소비(pent-up demand) 때문에도 물가 상승 압력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글로벌 공급망(global supply chain) 붕괴가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미·중간의 패권 경쟁으로 공급 애로(supply bottleneck)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은 중국을 제외한 새로운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으며, 한국이 그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본문 중)

이윤재(숭실대 교수, 경제학)

 

최근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인플레이션이 미국인들의 주머니 사정에 타격을 주고 있다”라고 하며 “이러한 물가 상승 추세를 뒤집는 것이 나에게는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했다. 정책의 우선순위를 일자리 창출에서 인플레이션 퇴치로 급선회한 것이다. 그만큼 인플레이션이 심각함을 보여 주는 말이다.

 

인플레이션이 올 것이라는 경고는 이미 작년(2020년) 초부터 있었다. 작년 상반기 중국을 시작으로 코로나 확진자가 세계적으로 빠르게 퍼져 나가기 시작할 즈음에, 코로나19 여파로 인플레이션이 높게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한 경제학자들이 있었다. 런던정경대(LSE)의 저명한 화폐경제학자인 굿하트(Charels Goodhart) 명예교수, 뉴욕대의 루비니(Nouriel Roubini) 교수, 서머스(Lawrence H. Summers) 전 미국 재무부 장관 등이다. 당시 경제 상황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하여 침체 국면에 빠져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디플레이션이 더 우려되는 때라서 인플레이션이 일어날 것이란 예측은 다소 의외였다. 그런데 이런 의외의 예측이 현재는 세계 도처에서 현실화하고 있다.

 

올해 초부터 미국을 위시한 유럽 선진국들에서는 백신 접종 덕택에 경기 회복세가 예상보다 빨라지면서 인플레이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금 각국은 높고 빠른 물가 상승률이 일시적인 현상인지 지속적인 현상인지를 두고 논쟁 중이다. 정부 쪽 인사들은 일시적인 현상이고 조만간 진정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설령 인플레이션이 지속적이라 해도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대표적인 사람이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미국의 중앙 은행) 의장을 역임한 재닛 옐런(Janet Yellen) 미국 재무부 장관과 제롬 파월(Jerome Powell) 연준 의장이다. 반면에 학계나 민간 업계의 인사들은 현재의 인플레이션이 지속적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람이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를 거쳐 총장까지 역임하고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부 장관을 역임한 서머스이다. 그는 코로나19로 인한 “대규모 경제 부양책으로 한 세대 내에 경험치 못한 인플레이션 압력이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이제 주요국의 인플레이션 현황을 살펴보기로 하자. 금년 10월에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대비 6.2% 상승했는데, 이는 지난 30년 만에 최대치이다. 미국 생산자물가지수(PPI)도 전년 대비 8.6%나 상승하여 2010년 이래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10월 기준으로 중국의 CPI도 13.5% 치솟아 1995년 이후 26년 만에 최대로 상승했다.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중국에 비하면 완만하지만, CPI 상승률이 10월 기준으로 3.2%를 기록하여 2012년 1월(3.3%) 이후 최대 상승률을 보였다. 우리나라의 10월 생산자 물가도 8.9% 상승하여 인플레이션율이 한동안 고공행진 할 것임을 예고한다.

 

이런 높은 물가 상승률은 물류비용 증가와 깊은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최근 요소수 부족 사태로 물류난과 물류비용 상승에 대한 걱정이 태산 같다. 화물차 운송에 필요한 요소수의 대부분(90% 정도)이 중국에서 수입되고 있는데, 중국이 언제 또 요소수를 통제할지 몰라서 불안하다. 또한, 구리, 망간, 텅스텐, 원유 등 각종 원자재 가격도 가파르게 치솟아 생산자 물가를 끌어 올리고 있다. 게다가 구인난으로 임금 상승률도 심상치 않다. 이런 모든 요인이 생산 원가를 상승시켜 종국엔 높은 인플레이션을 초래한다.

 

 

게다가, 백신 접종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그동안 억눌렸던 생활에 대한 보복 소비(pent-up demand) 때문에도 물가 상승 압력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글로벌 공급망(global supply chain) 붕괴가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미·중간의 패권 경쟁으로 공급 애로(supply bottleneck)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은 중국을 제외한 새로운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으며, 한국이 그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중국은 이런 움직임에 대항하기 위하여 희토류 등 각종 광물 자원을 무기화하려 하고 있다. 최근 벌어진 요소수 부족 사태도 자원 무기화에 대한 테스트 성격이 짙다. 우리나라는 각종 원자재에 대한 중국 의존도가 너무 높아 전략적인 다변화가 필요하다. 날로 치열해지는 미·중간의 패권 경쟁으로 공급망 불안정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한국이 취할 전략적 선택지가 점차 줄어들고 있어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여기에 기후 변화로 농수산물의 공급망도 불안하다. 기후 변화로 농수산물 공급 애로가 생기면 바로 식탁 물가가 급등하여 서민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밥상 물가가 급등하여 백성들의 고통이 극한에 달했던 이야기가 성경에 등장한다. 예수님 탄생 800~900년 전인 북이스라엘에서 일어났던 사례이다. 열왕기하 6장과 7장에 초고속으로 물가가 폭등한 하이퍼인플레이션(hyperinflation) 이야기가 나온다. 아람 왕이 북이스라엘 사마라아를 공격하여 성을 포위한다. 성이 포위되니 외부에서 식량 및 생필품 공급이 끊기고 비축된 물자가 소진됨에 따라 물가가 폭등하게 된다. 성경은 물가가 얼마나 치솟았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언급하고 있다. 유대인이 불결하다고 여겨 평소에는 먹지 않는 나귀 머리 하나에 은 80세겔, 비둘기 똥 1/4갑에 은 5세겔에 달했다. 나귀 머리 하나를 오늘날의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대략 3,200만원으로 하이퍼인플레이션에 해당한다.1)

 

백신 접종과 위드코로나로 경기는 회복되고 있지만, 이에 따른 수요 증가로 물가가 상승하는 국면에서 공급 애로가 인플레이션 상승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지출이 급증할 경우 총수요를 증대시켜 인플레이션 압력이 한층 더 높아진다. 높은 인플레이션은 구매력을 감소시켜 실질 소득이 줄어들고, 그렇게 되면 경제적 취약자들이 가장 큰 고통을 받는다. 따라서 안정적인 물가 관리는 경제적 취약자들의 생활 안정에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이유에서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도 치솟고 있는 인플레이션 상승 추세를 뒤집으려고 정책 우선순위를 바꾼 것이다.

 

내년(2022) 대선을 앞두고 각종 선심성 돈 퍼주기 정책들이 난무할 가능성이 크다. 한동안 현재의 공급 애로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돈 풀기 선심성 포퓰리즘 정책은 인플레이션을 가속시켜 실질소득 감소를 초래한다. 근시안적인 달콤한 포퓰리즘 유혹에 빠지지 않는 지혜로운 냉철함이 필요한 시기이다. 영국의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셜(A. Marshall, 1842-1924)의 유명한 경구, “따뜻한 가슴과 냉철한 머리”(warm heart and cool head)라는 말을 되새기며, 성경 말씀처럼 뱀같이 지혜롭게(shrewd) 행동해야 할 때이다(마10:16). 우리나라는 지난 1997년 외환 위기 때 나라의 외환 보유고가 바닥났다고 하니 국민들이 금 모으기에 자발적으로 나섰고, 나라에서 돈을 준다는데도 반대하는 여론이 높은 나라이기에 희망이 있다.

 


1) 은 한 세겔은 노동자 4일치 품삯에 해당하므로 일당을 10만원으로 하면 80세겔은 3,200만원이 된다. 역사적으로 1920년대 독일에서 일어난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유명하다. 빵 하나에 30억 마르크까지 치솟고 1조 마르크짜리 지폐까지 발행되었다. 최근 베네수엘라 및 짐바브웨의 인플레이션도 하이퍼인플레이션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이들 나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은 무분별한 정부의 포퓰리즘 정책과 관련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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