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미국의 여론 조사 기관 퓨리서치센터가 한국을 포함한 17개 선진국 성인 19,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하였는데, 그중 한 항목의 결과가 화제가 되었다. “삶을 의미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는데, 이에 대해 14개국 사람들이 ‘가족’이 가장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가족을 1순위로 꼽지 않은 나라 3개국 중 스페인은 ‘건강’, 대만은 ‘사회’라고 답했다. 그런데 한국인만 유일하게 ‘물질적 풍요’(Material well-being)를 1순위로 꼽았다. (본문 중)

정병오(오디세이학교 교사,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공동대표)

 

지난달 미국의 여론 조사 기관 퓨리서치센터가 한국을 포함한 17개 선진국 성인 19,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하였는데, 그중 한 항목의 결과가 화제가 되었다. “삶을 의미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는데, 이에 대해 14개국 사람들이 ‘가족’이 가장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가족을 1순위로 꼽지 않은 나라 3개국 중 스페인은 ‘건강’, 대만은 ‘사회’라고 답했다. 그런데 한국인만 유일하게 ‘물질적 풍요’(Material well-being)를 1순위로 꼽았다.

 

한국인들의 이러한 물질 우선의 가치관은 다른 여러 통계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대표적으로 1980년대 초반에 시작돼 지금까지 5년 주기로 행해지는 ‘세계 가치관 조사’(World Values Survey)가 있다. 이 조사는 ‘전통·종교 중시’ 대 ‘세속·이성 중시’를 한 축으로, ‘생존 중시’ 대 ‘자기표현 중시’를 또 다른 축으로 진행된다. 대체로 많은 국가들은 국민 소득이 높아질수록 전통과 종교에서 벗어나 세속과 이성의 세계로 넘어가며, 동시에 생존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줄어들고, 자기표현과 관용, 자선 등의 가치를 중시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 ‘전통·종교 중시’ 대 ‘세속·이성 중시’ 축에서는 세계적인 추세와 비슷하게 전통과 종교가 약화되고 세속화와 이성 중시로 나아가고 있다. 그런데 유독 ‘생존 중시’ 대 ‘자기표현 중시’ 축에서는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생존을 중시하며, 자기표현이나 관용, 자선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1)

 

이는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국민소득은 높아졌지만 여전히 미래에 대한 불안이 높고, 이 불안에서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은 물질뿐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 사회가 개인의 소득은 높아졌지만 사회적 안전망은 여전히 미비하고 개인의 불안을 부추겨 경쟁하게 하는 그 힘으로 사회를 유지하는 ‘승자독식’, ‘각자도생’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 더 많은 물질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노동 소득만으로는 안정을 보장할 만큼의 물질을 확보할 수 없기에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불로 소득에 혈안이 되어 있으며, 이렇게 물질을 얻더라도 물질을 과시하는 데만 머무르고 이를 사회적 가치나 기여로 전환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러한 불로 소득의 흐름에 올라타지 못한 사람은 극심한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린다. 그러다 보니 물질을 많이 가진 자나 그렇지 못한 자나 물질에만 매달려 있을 뿐 물질 이외의 다른 가치를 따라 자신의 삶을 펼치고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풍성함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물질주의의 덫 아래서 빈곤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물질 중심의 가치관과, 물질적으로는 풍요해지지만 전체적인 삶은 더 빈곤해지는 현상은 교육 현장에서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우리가 모두 인정하듯이 한국의 과도한 교육열은 명문 대학 진학열의 다른 이름이다. 그래서 대다수의 부모들은 자녀가 좋은 대학을 나와 안정된 사회적 지위와 풍부한 물질을 누리며 살도록, 입시 경쟁에서 앞서기 위한 반복 학습과 점수 획득으로 아이들을 몰아넣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의 가치관도 급속도로 물질주의화하고 있다.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 윤리연구센터가 실시한 “2019년 청소년 정직 지수 조사 결과”에서 “10억이 생긴다면 잘못을 하고 1년 정도 감옥에 들어가도 괜찮다”라는 항목에 대해 초등 23%, 중등 42%, 고등 57%, 20대 53%가 ‘그렇다’라고 응답하고 있다.2) 부모나 교사 누구도 이렇게 가르친 적이 없지만, 청소년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다른 친구와의 성적 경쟁에서 이겨야 물질적 풍요를 누리며 살 수 있다는 교육을 받으면서, 이러한 극단적인 물질주의 가치관을 형성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살아가는 아이들이 행복할 리가 없다. 인생에는 다양한 행복의 요소들이 있고 각자의 삶에도 다양한 은사와 재능이 주어져 있는데도, 오직 물질적 풍요만이 인생의 행복의 조건이라고 생각하고 성적이나 물질로 표현되지 않는 것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많은 것을 잃고 있다. 그리고 너무 어려서부터 성적과 물질의 경쟁을 하다 보니 이러한 삶의 다양한 요소를 찾고 개발하고 누릴 여유가 없다. 더군다나 이러한 좁은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무한 경쟁은 아이들로 하여금 학년이 올라갈수록 자신감을 잃게 하고, 질문하고 생각하는 힘을 약화시키고, 실제 삶에서 부딪치는 다양한 문제를 스스로 직면하여 풀어가는 문제 해결력과 자신감을 상실하게 한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고3이 되어 대학과 전공을 선택할 때가 되면, 교사와 이런 대화가 이루어진다. “네 꿈이 뭐야?” “돈 많이 버는 거요.” “그래서 어떤 대학과 전공을 선택하려고 하니?” “돈 잘 버는 과요.”

 

물질이 우리 인생을 좌우한다고 믿고 어찌하든지 이를 좀 더 확보하기 위해 달려온 삶의 결과가 우리의 삶 전반을 빈곤하게 하고 있듯이, 풍요한 물질만이 자녀의 행복을 위한 최우선 조건이라고 믿고 이를 위한 성적 경쟁에만 몰입하게 함으로써 우리는 아이들의 풍성한 삶을 빼앗고 그들을 불행으로 몰아넣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물질주의를 어느 정도 제어하고 정신적이고 사회적인 가치를 고양해야 할 종교까지도 세속화되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때로는 오히려 종교의 이름으로 물질주의를 부추기까지 하여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러기에 한국의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오늘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물질주의 가치관의 영향력을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오늘 우리 시대의 신이 되어 버린 물질을, 하나님의 피조물의 자리로 돌아가게 하고, 우리 삶의 한 부분에서 적절한 역할만 하도록 만드는 싸움을 해야 한다. 나아가 하나님이 주신 창조 세계의 다양하고 풍성한 요소들을 누리며, 우리 삶에 주어진 다양한 은사들을 소중히 여기고 나누는 운동을 같이 해야 한다. 이는 우리 삶을 보다 풍성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한 길일 뿐 아니라, 우리 사회와 다음 세대의 행복을 위한 초석이 될 것이다.

 


1) 노정태, “‘코리아 미스터리한국인 19%, 가족보단 돈이 중요’”, <신동아>, 2021.11.28.

2) 한상형,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 2019년 대한민국 성인 정직지수 조사 결과 발표”, <한국강사신문>, 2019.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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