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된 노동 현장을 대하며 그리스도인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 사실 고된 노동의 문제는 그저 관리자나 노동자, 또는 고객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가 택한 사회 체제와 시스템의 문제다. 자본주의 체제는 이윤과 영리 추구를 최적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그 과정에서 사람의 생명도, 심지어 하나님까지도 얼마든지 상품이 될 수 있다(출 5:7-9). 그렇다면, 하나님의 청지기인 우리는 우리의 사회 체제가 하나님의 마음을 반영하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가 될 수 있도록 힘쓸 필요가 있겠다. (본문 중)

구교형(십자가로교회 목사)

 

한 달 전쯤 신학대학원 동기 단톡방에 생계 현장에서 일하던 어느 목사와 사모가 사고사했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동기들은 모두 슬퍼하며 코로나 시대 이후 생존에 내몰린 목회자들의 힘겨운 현실에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 모르는 게 있었다. 목회자들이 별안간 노동 현실의 심각성을 느끼게 되기 훨씬 이전에도 현장에서는 산업 재해, 노동 재해가 늘 일어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목회를 하던 2015년, 7개월 동안 택배 기사로 일을 했고, 작년 5월부터 올해 6월까지 1년 2개월 정도 다시 택배 기사로 일했고, 지금은 목회 재개 후 야간 대리운전 일을 하고 있다.

 

택배 기사

 

택배 일을 하면서 내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육체적 고단함보다 ‘사람값’에 대한 경시였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노랫말과는 다르게, 택배 기사보다 물건이 더 소중하다는 취급을 받을 때 몹시 화가 난다. 작년에는 억수 같은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이 유난히 많았다. 빗속 배달로 몸도 가누기 어려울 정도였지만 몇몇 고객들은 예정 시간보다 배송이 늦어지면 물에 흠뻑 젖은 기사의 모습을 뻔히 보면서도 시간이 늦고 물건이 젖은 것에 화를 냈다. 그럴 때는 물건을 던져버리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다.

 

사실 택배 기사들은 의외로 할 일이 많다. 아침 6시 50분에 물품 분류 작업을 시작하여 오전을 보내고, 자주 식사를 거른 채 배송 현장으로 출발한다. 배송 전후에 각종 문의와 민원을 처리하고, 반품을 받고, 기사에 따라서는 대량 물건을 받아오는 집화(集貨)를 하기도 한다. 이동 중 복잡한 도로나 골목에서 주차할 곳을 찾는 것은 제법 숙달된 기사에게도 힘든 일이다. 이런 일과를 빠르면 저녁 6시 안팎, 늦으면 밤 10시 전후로 마치는데, 매주 6일 동안 일을 해야 하니 늘 피곤에 절어 있고, 잠은 항상 부족하다. 힘든 현실에 비해 택배 물품 하나의 배송 단가는 700~800원으로 몹시 낮다. 회사와 대량 거래 계약을 맺은 물품들은 그보다도 낮은 수수료가 책정되지만 택배 기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택배 기사의 한 해는 물량이 몰아치는 전쟁의 연속이다. 지금 같은 가을에는 곡물과 각종 과일, 김장 배추와 무 등 농산물이 엄청나게 몰려든다. 설과 추석 명절에는 한두 주 전부터 물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명절이 끝난 후에는 연휴를 며칠 쉰 죄로 여러 날 밀린 물량을 소화해야 한다. 여름에는 내내 택배 기사들이 가장 꺼리는 음료 종류가 몰아닥친다. 코로나로 택배 물량이 전체적으로 늘어난 데다가 거의 모든 것을 택배로 보내는 택배 만능 시대가 되어 예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1인 가구의 이삿짐까지 가져가는 경우도 생긴다. 냉동식품을 담은 스티로폼 포장은 철을 가리지 않고 갈수록 늘어난다. 다른 물품들은 때에 따라 하루 정도 늦게 배달해도 큰 문제가 없지만, 농수산물, 냉동 식품류 같은 ‘생물’은 당일 배송이 원칙이라 매우 신경이 쓰인다. 그런 생물들을 한꺼번에 싣고 다니다 보면 ‘신선도가 떨어지는데 왜 빨리 오지 않느냐’는 독촉을 받는다. 그럴 때면 ‘그렇게 소중한 물건을 왜 택배로 주문하느냐’며 오히려 따지고 싶다. 그런 날들이 계속되다 보면, 언제 누가 과로사해도 이상할 게 없다는 것을 택배 기사인 우리는 자주 느낀다.

 

 

대리운전

 

올해 나는 목회 활동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6월 말로 택배 일을 마치고, 지금은 대리운전을 하고 있다. 대리운전은 자신이 원할 때 선택하여 일할 수 있어서 교회 사역을 다시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떠올랐던 일이다.

 

가장 큰 어려움은 택배 기사 일에 비해 수입이 너무 적다는 점이다. 대리운전은 유료 플랫폼을 이용해 음주한 운전자의 차를 대신 몰아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는 것이다. 대개 직장 일을 마친 고객의 귀가를 돕는 것이기에 일을 시작하는 시간은 빨라도 저녁 6시 반 이후이다. 그렇게 첫 일과를 시작하면 대개 하루 평균 4~5개 정도의 차를 운전할 수 있다. 귀가할 때는 나도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니 밤 11시면 일을 끝내야 한다. 콜을 받아 이용할 때 건마다 플랫폼 프로그램 이용료 20%가 공제되므로 하루 평균 6~10만 원 정도의 수입을 얻게 된다. 자동차 보험료는 월 14만 원 정도다. 나는 목회 사역 등을 겸하기 때문에 주당 3~4회 정도 밖에 일을 나가지 못한다. 게다가 10월 초 발목을 삐어 한 달 이상 일을 하지 못했는데, 그럴 경우 수입은 없고 치료비는 부담해야 했다. 이 일로 살아가는 것이 매우 불안정함을 새삼 느꼈다.

 

대리운전 중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은 역시 운전이다. 최근 들어 차종이 다양해졌고, 차마다 기기의 배치나 기능이 각각이라 탈 때마다 긴장이 된다. 더구나 외제 고급 승용차가 늘어나 사고에 대한 부담도 적지 않다. 코스에 대해 불평하거나 취한 김에 횡설수설 소란을 피우며 신경을 돋우는 진상 고객도 가끔 있지만, 요즘에는 만취 고객이 거의 없어 대체로 무난하게 일을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오토바이를 이용한 음식 배달은, 음식이라는 특성상 신속한 배달이 필요해 훨씬 서두르고 상대적으로 덜 안전한 운송 수단을 이용하므로, 일하는 사람들이 그 누구보다도 위험하게 일하고 있음을 실제로 느낀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고된 노동 현장을 대하며 그리스도인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 사실 고된 노동의 문제는 그저 관리자나 노동자, 또는 고객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가 택한 사회 체제와 시스템의 문제다. 자본주의 체제는 이윤과 영리 추구를 최적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그 과정에서 사람의 생명도, 심지어 하나님까지도 얼마든지 상품이 될 수 있다(출 5:7-9). 그렇다면, 하나님의 청지기인 우리는 우리의 사회 체제가 하나님의 마음을 반영하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가 될 수 있도록 힘쓸 필요가 있겠다.

 

포도원 품꾼의 비유(마 20:1~16)를 읽으며 우리는 영리 이전에 사람들의 일자리와 일용할 양식을 염려하는 은혜를 베푸는 경영자를 생각할 수 있고, 눈앞의 이해관계를 넘어서서 우리에게 진짜 주인이 계심을 명심하는 노사 관계(엡 6:5~9)도 기억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리스도인 중에는 택배 기사, 대리운전 기사도 있고 고객이나 소비자도 있다. 물건이 총알같이 빨리 온다고 우리 인생이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니, 가급적 독촉하지 말자. 가능하면 일회용품, 스티로폼을 쓰지 말자. 땀 흘리는 현장 노동자들을 만나면 무조건 인사하고, 물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면 하늘의 상이 클 것이다. 무거운 물건을 배달시키지 않을 수는 없으나 가능하면 미리 연락하여 양이 많을 경우 기사와 함께 올려 주면 복을 받을 것이다. 선한 청지기의 마음을 실천하는 지혜를 다양하게 개발하면 좋을 것 같다.

 

일꾼으로서 배우는 것

 

사실 목사로서 나는 현장 노동을 하며 참 많이 느끼고 배운다. 우선, 고객들과의 만남을 통해서는 보통 사람들의 생각과 삶을 직접 보고, 듣고, 느끼게 된다. 아무래도 고객들은 거의 남성인데, 세간의 통설처럼 중년 남성들의 관심은 정말 돈 아니면 (혼외) 여자들인 경우가 참 많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부동산 대박 경험을 늘어놓으며 늘 골프 일정을 잡느라 분주하다고 은근히 자랑을 한다. 또, 기사를 앞에 두고도 투명인간 취급하며 외도하는 남녀가 서슴없이 대화를 즐기기도 한다. 그래도 신호를 지키며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모시면 적지 않은 분들이 운전을 참 편안하게 잘한다며 칭찬해 준다. 그럴 때는 참 보람되다. 경우에 따라 슬쩍 목사임을 밝히며 신앙생활을 권하기도 하는데, 자신들을 염려하는 마음을 느끼는지 지금까지는 모두 기쁘게 들어주었다.

 

또, 많이 회개한다. 현장 노동, 특히 택배 일은 함부로 취급받는 때가 많다. 그런데 그동안 그럴 듯한 생활 교훈을 많이 떠들었던 내가 그럴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 ‘그래도 내가 목사인데’ 하는 엉뚱한 자존심이 발동하곤 한다. 익명의 “아저씨”라는 호칭을 거부하는 마음속 싸움은 고객들을 퉁명스럽게 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퇴근 후 어느 고객과 통화하는 내 모습을 본 딸이 한마디 했다. “아빠는 지금 배달 기사야. 인정해! 그리고 아빠가 열심히 일해서 가족 먹여 살리는 것이 얼마나 멋있는데!” 이 글을 쓰는 중에 예전 동료 택배 기사로부터 보고 싶으니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는데 마음이 뿌듯하다. 교만한 목사가 자기를 부인하는 데 현장 일이 크게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도, 더욱 어려워진 목회 환경 속에서 목회자의 이중직은 성도들의 부담을 덜고, 그들과 마음으로 더 가까워질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또한, 여러모로 교회와 목회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더욱더 깊어진 한국 현실에서, 목사들이 자신들과 똑같은 대우를 받으며 힘든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동료와 고객들에게도 적지 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우리 현장 노동의 현실이 비록 힘들기는 하지만, 이 자리에 있게 하신 그분의 뜻을 스스로 깨달으며 배우고, 더 나아가 노동 현실을 개선할 수 있도록 증언자가 되는 일은 결코 사소하지 않은 소중한 일터 신앙의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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