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자란 연어가 자신이 태어난 개울을 찾아가는 게 신기하다. 연어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갈 때 몸에 해부학적 변화가 일어난다. 연어가 겪는 변화가 문학을 읽을 때 일어난다. 좋은 문장에 자극받고, 따뜻한 감성에 심쿵하고, 때론 내가 가진 고정관념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면, 가끔씩 놀랍도록 큰 희열을 경험하게 된다. 이걸 경험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문학을 읽게 된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연어를 닮았다. (본문 중)

이정일 (작가, 목사)

 

세상의 변화가 너무 빠르다. 아찔하다 못해 당혹스럽다.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뒤처질까 노심초사한다. 늘 느끼는 거지만 급할수록 백 년 뒤에도 변하지 않을 가치를 붙잡고 살아야 한다. 변하지 않는 가치를 붙잡지 못하면 변화에 휘둘리기 쉽고, 자기 자리를 지키려는 마음에 조급해져서 부질없는 것으로 마음을 채우게 된다. 그래서 나는 아마존 CEO 제프 베이조스(Jeff Bezos)의 말이 놀랍다.

 

전략은 변하지 않는 것에 토대를 두어야 한다. 사람들은 나에게 5년 후나 10년 후 무엇이 변할 것인지는 묻지만 무엇이 변하지 않을 것인지는 묻지 않는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고객이 원하는 가치를 제공한다면 고객은 외면하지 않는다.

 

세계 최고의 사업가가 문학이나 예술에서 말하는 ‘변하지 않는 것’을 토대로 경영 전략을 짠다는 게 신기하다. 그는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땐 80세가 된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고 말한다. 흔들의자에 앉아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삶의 마지막을 기다리는 노인이 되었을 때, 무엇을 후회하게 될까? 다들 짐작하듯이 성공하지 못한 걸 후회하는 사람은 없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시도조차 안 했던 것을 후회한다.

 

유럽엔 대성당이 여럿 있다. 수 세기에 걸쳐 만들었고 아직도 진행 중인 것(스페인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도 있다. 그런 성당을 짓는 첫 삽을 뜰 때를 상상해 보라. ‘이제 300년 후엔 이 성당이 완성될 거야.’ 이런 생각을 하고 주춧돌을 놓았는데, 그 비전이 얼마나 어마어마한가? 건축은 나와 그 시대를 들여다보는 창문이다. 과거의 누군가는 300년 뒤에나 이루어질 일을 시작했다. 그게 가치를 붙드는 삶이다.

 

가치가 소중함에도 그걸 붙들고 살지 못하는 건 이게 밥을 먹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김훈 작가는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밥벌이가 급해서 적성에도 안 맞는 회사를 꾸역꾸역 다닌다고 말한다. 베이조스처럼 탁월하면 문제가 없지만 그런 사람은 몇 안 된다. 가치보단 먹고사는 게 중요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면 각자가 나아져야 한다는 말이 배부른 소리 같다. 그래서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는 주님의 물음이 찌릿하다.

 

우리가 꿈꾸는, 도달하고 싶은 삶이 있다. 사도행전에서 잠시 경험한 물질을 나누는 공동체(2:46〜47)와 요한계시록 속 천년왕국을 우리는 꿈꾼다. 작가는 문학작품을 통해 세상에는 부당함이 있고 나쁜 사람도 있지만, 누군가는 인간의 선함을 지키며 살길 원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누군가가 ‘나’일 때 변화가 시작된다. 지금은 한 사람이지만 그게 언젠가 사회적 기준이 되는 선순환의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바다에서 자란 연어가 자신이 태어난 개울을 찾아가는 게 신기하다. 연어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갈 때 몸에 해부학적 변화가 일어난다. 연어가 겪는 변화가 문학을 읽을 때 일어난다. 좋은 문장에 자극받고, 따뜻한 감성에 심쿵하고, 때론 내가 가진 고정관념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면, 가끔씩 놀랍도록 큰 희열을 경험하게 된다. 이걸 경험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문학을 읽게 된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연어를 닮았다.

 

 

지금 우리에겐 나와 교회를 바꿀 생존 전략이 필요한데, 나는 그걸 문학이라고 생각한다. 성경과 문학은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이 둘이 연결되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그것을 성경적 표현으로 바꾸면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잠언 27:17)이 된다. 세상은 다듬지 않은 원석이 가득한 광맥과 같다. 문학은 그 광맥을 찾아내고 제련하여 쓸 수 있는 물질을 만드는 과정을 가르치는데, 그 결과물이 관점이다.

 

지성소와 성소에 들어가는 성물(聖物)은 모두 ‘쳐서’ 만들었다(출애굽기 25:31). 관점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베이조스처럼 10년 후에도 변하지 않을 가치를 찾으려면 나만의 판단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게 관점이다. 이게 중요해도 배우긴 쉽지 않다. 진짜 중요한 관점은 유통되지 않고 진짜 노하우는 매뉴얼을 통해 배울 수 없기 때문이다. 답을 도출하는 과정을 만드는 힘을 알아야 관점이 생긴다. 그래서 문학이 필요하다.

 

관점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모세가 살던 시대 이집트는 피라미드를 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후손들은 피라미드 관광으로 먹고산다. 로마도 한때 도로와 신전과 콜로세움을 정복지마다 건설했지만, 그런 호시절은 오래전에 사라졌다. 역전은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우리도 까딱 잘못하다간 하나님을 외워서 알게 된다. 이제 나를 지키고 교회를 지키려면 백 년은 버틸 가치를 추구하고 믿음의 눈에 상상을 더해야 한다.

 

나에게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이 세상에서 최고의 일은 벽에다 문을 내는 것이다. 다들 안된다고 할 때 누군가는 그 일을 시작한다. 이걸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고 말하는데 그 미련한 사람 덕분에 세상은 살 만해진다. 좋은 문장은 나를 위로하고 빚어줄 뿐 아니라 사고의 전환을 불러일으켜서 벽에 아주 작은 생각의 문을 만든다. 그 문을 열고 나간 경험이 쌓이면 융합, 소통, 공감 능력이 몸에 밴다.

 

톨스토이가 단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보여주었듯이, 하나님은 우리 마음속에 천국을 조금 넣어두셨다. 우리가 천국보다 못한 것에 만족하는 일이 없게 하려고. 하지만 영적으로 어두워지면 시야가 좁아진다. 문학은 조금이라도 진리에 눈을 뜨게 하려고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천사 미하일이 그랬듯이 일상의 작은 행위 하나하나를 기독교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만이 천국의 이야기를 찾아낼 것이다.

 

구원은 선물로 주어지지만 배움은 아니다. 열심히 갈구하고 찾을 때 얻어진다. 성경은 그것을 목마름이라고 말한다(시편 42:1-2, 마태 5:6). 나는 내 삶을 변화시키는 아이디어를 문학에서 얻는다. 문학은 C. S. 루이스가 말하는 ‘다른 세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그 이야기를 문학 버전으로 읽으며 새로운 뭔가를 배우고 깨달았다. 그 기쁨은 경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다. 문학적 상상력 없이 우리는 변화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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