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이 K콘텐츠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인은 그 우수함이다. 세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K콘텐츠의 힘은 독창적이거나 전통적인 것이라기보다 혼성화 또는 융합 능력에서 기인한다. 한류는 온전히 한국적인 콘텐츠로만 채워진 것은 아니며, 지역과 수용자의 취향에 맞게 글로벌하면서도 동시에 지역적인 요소를 배합하고 뒤섞은 이종교배(hybridization)를 통해 탄생한 것이다. (본문 중)

윤영훈(성결대학교 교수, 문화신학)

 

2021년 K콘텐츠의 성과는 놀랍다. BTS는 “다이너마이트”(Dynamite)로 처음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에 오른 2020년 7월부터 올가을까지 피처링한 곡을 포함해 총 6곡의 1위를 기록했다. 이는 팝 역사에서 비틀즈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특히 “버터”(Butter)는 10주간 정상을 차지하며 올해 가장 긴 기간 1위를 차지한 곡이 되었다. 여기에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American Music Award)에서 ‘올해의 아티스트’로 선정되었고, 코로나 이후 재개된 로스앤젤레스 공연에서 4회 공연을 모두 매진시키며 그 위상은 최고조에 달했다.

 

영화계는 어떤가? 한국인 가정의 미국 이민기를 다룬 영화 <미나리>에서 윤여정 씨가 아카데미 여우 조연상을 수상하며 소위 ‘K-할매’ 신드롬을 일으켰다. 영화뿐 아니라 팬데믹 상황에 활성화된 OTT 사업의 물결을 타고 K드라마는 <킹덤>과 <DP>로 주목을 받았고 이어서 <오징어 게임>에선 전 세계 시청률 1위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최근에 <지옥>이 다시 가장 빠른 속도로 전 세계 1위를 기록하며 이제 K드라마는 전 세계 문화 산업의 최고 우량주로 떠오르며 집중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음악과 드라마에 가리어 있지만, 세계 e스포츠 시장에서 한국 게이머들의 활약도 두드러진다. 또 전 세계 100개국 이상에서 웹툰 앱 수익 1위를 기록한 라인 웹툰(네이버 웹툰의 글로벌 서비스명)과 한국인의 외모 우월론이 등장할 만큼 유행하는 K뷰티도 중요한 사례이다. 손흥민의 FIFA 푸스카스상 수상과 서커스 쇼에 가까운 태권도 공연의 매력에 대한 열광, 그동안 세계화가 어렵다는 전망에도 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K푸드와 여기저기 한국어 공부에 빠진 사람들까지, 이제는 거의 모든 일상에 ‘K’를 붙여도 될 만큼 한국 문화가 전방위로 세계화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과거 필자 세대가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AFKN을 시청하던 시절처럼, 오늘날 많은 세계인들은 인터넷을 통해 생소한 언어로 만들어진 K콘텐츠를 소비한다. 이수만은 “우리는 칭기즈칸도 하지 못한 역사적인 일을 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많은 평론가들이 예술의 산업화를 추구하는 그의 방식에 대해 비판했다. 하지만 결국 이수만이 옳았던 걸까? 아이돌을 비웃던 언론과 평단은 자신들의 지난 과오를 참회라도 하듯이 요즈음은 KPOP에 대한 찬사만 쏟아놓고 있다.

 

한편에선 내셔널리즘에 대한 비판적 냉소도 있지만, 이 모든 성과들을 돌아본다면 모두가 내심으로는 ‘국뽕’에 젖어 대리 만족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한국 대중문화는 경제 못지않게 압축 고도성장을 이루어냈다. 굳이 김구 선생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오늘날 한국 문화의 힘은 변방의 약소국이었던 한국인들의 위대한 성취이며, 좋건 나쁘건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대중문화 공화국’에 살고 있다.

 

왜 세계인들은 K-콘텐츠에 열광할까? 최근까지 K-콘텐츠는 미학적 측면에서, 그리고 반자본주의적 시선에 의해 종종 비판받아 왔다. BBC는 한류는 문화 현상이라기보다 기업과 정부의 산업적 돈벌이 수단이라고 혹평했다. ‘스노비시’한 서구인들의 눈에는 여전히 미국 상업 문화의 ‘짝퉁’ 정도로 보이기도 한다. 한국인들 자신도 자조 섞인 비판을 늘 내놓았다. 한국 치킨에 대한 한 맛 칼럼니스트의 혹평이 논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 뉴저지와 필라델피아에 성업 중인 한국식 치킨집에 가보면 이런 논쟁이 무의미함을 알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고객이 백인들일 뿐 아니라, 이들은 한국식 치킨 요리에 찬사를 보낸다. 수십 년 한결같은 KFC 할아버지네 닭튀김에서 느낄 수 없다는 ‘단짠맵’의 조화가 인상적이라고들 한다. 처음에는 미국식 닭튀김을 모방했지만 부지런한 융합 시도로 매년 신메뉴를 쏟아내는 한국 치킨이 성공한 것은 무엇보다 맛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K콘텐츠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인은 그 우수함이다. 세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K콘텐츠의 힘은 독창적이거나 전통적인 것이라기보다 혼성화 또는 융합 능력에서 기인한다. 한류는 온전히 한국적인 콘텐츠로만 채워진 것은 아니며, 지역과 수용자의 취향에 맞게 글로벌하면서도 동시에 지역적인 요소를 배합하고 뒤섞은 이종교배(hybridization)를 통해 탄생한 것이다. 특히, 동남아시아에서 한류는 우리가 재빨리 복사하고 습득한 미국식 생활 방식과 문화에 대한 체험을 전달한 것 아니겠는가? 20년 전에 한국은 일본을 베꼈지만, 이제 K콘텐츠의 일본 수출은 수입의 100배에 달한다.

 

유럽인들이 KPOP에 빠지는 이유를 현지인 인터뷰에서 알아보자. 한 프랑스 소녀는 프랑스 음악은 가창력이 아니라 가사 중심이라 재미가 없는데, KPOP 스타들은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고 얼굴과 몸매도 좋아 완벽하다고 말한다. 뮤직비디오도 잘 만들어 중독되었다고 말한다. 유럽을 사로잡은 KPOP의 많은 곡들은 제작 과정에 유럽 작곡가들이 참여하는 ‘송 캠프’ 시스템에서 나온다. 한때 기획사들의 공장식 산물로 평가절하되기도 했지만, KPOP은 그 콘텐츠 자체에 놀라운 매력이 있다는 분석도 상당하다. 넷플릭스의 KPOP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한 평론가는 KPOP은 한 곡에 적어도 3-4개 이상의 다양한 장르들이 절묘하게 ‘컨버전스’(통합)를 이루고 있다고 분석한다. 더 나아가 BTS의 경우는 메시지에서도 진화해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일종의 자기 계발서와 같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지금까지의 한류 드라마는 독특한 한국적 정서로 참신함에서 호응을 얻어 왔다. 하지만 최근 K드라마는 이전 전형에서 벗어나고 있다. 그 흔했던 구태의연한 러브 라인도 보이지 않고, 장르적 미학에도 충실하다. 최근에 선풍을 일으킨 <킹덤>, <오징어 게임>, <DP>, <지옥>의 경우에도 주인공들의 연애 에피소드는 전무하다. K드라마의 최근 인기는 이런 변화된 추세와도 관련이 있다.

 

 

K콘텐츠 성공의 두 번째 요인은, IT 기술력과 디지털 세계화 환경이다. 이전에는 보아부터 원더걸스의 사례처럼 우리 콘텐츠를 알리기 위해 현지에서 발품을 팔아야 했지만, 2010년 이후의 한류는 SNS가 가져다준 선물이다. 연예 기획사들은 공격적으로 IT 기술을 최대한 활용한다.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을 최대한 활용하여 해외 팬덤을 창출하고 관리하는 데에 사활을 건다. 한국 아이돌들은 팬들에게 직접 트윗하고 브이로그를 통해 자신을 보여주고, 다양한 팬 서비스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온몸을 다 바쳐 팬들의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애쓴다. BTS의 경우처럼 KPOP의 성공은 해외에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팬덤이라는 끈끈한 공동체 형성을 통해 이루어졌다.

 

더 나아가 적극적인 한국의 1인 방송과 유튜버들의 활약은 K콘텐츠 저변 확산에 공헌했을 뿐 아니라 그 콘텐츠도 자체로 세계화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특히, 최근의 팬데믹 사태도 K콘텐츠의 폭넓은 세계화의 큰 계기가 되었다. K드라마는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 서비스가 팬데믹 시기에 호황을 누리게 된 흐름을 타고 전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켰다. 세계 최고의 디지털 국가로서 K콘텐츠는 유통 가능한 디지털 파일로 세계에 공급된 것이다.

 

세 번째로, K콘텐츠 열풍의 가장 중요한 요인은, 산업화 이후 지속되어 온 한국인들이 흘린 ‘피, 땀, 눈물’이다. 60년대 산업화 당시 인프라와 자원 없는 최빈국 한국의 놀라운 성장 동력은 인적 자원, 즉, 몸뚱이와 시간이었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열심히 일한 한국인들의 치열한 삶의 DNA는 문화 산업에서도 고스란히 힘을 발휘한 것 같다. 풍부한 인적 자원의 힘은 다른 의미로 가장 싼 가격에 고효율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에서 그 가성비의 중심은 사람이다. <오징어 게임>의 성공 이면의 한국의 빠른 제작과 저렴한 제작비가 화제가 된 것이 이런 상황을 대변해 준다.

 

구글이었던가? 놀이처럼 즐기는 환경에서 창의적인 인재가 배출된다고…. 그러나 즐기면서, 놀면서 창의력을 발휘하는 것은 일부 선진국의 사례일 뿐, 한국에서는 치열한 경쟁 가운데 생존을 위해 창의성을 쥐어 짜낸다. 창의적이지 못한 사람은 낙오될 수밖에 없는 그 절박함을, 즐기며 일하는 사람들이 어찌 당해 내겠는가? 타의가 아닌 자원해서 참여하는 ‘오징어 게임’이 우리의 문화적 탁월함의 원천은 아니었을까? 클리셰의 지뢰밭인 <오징어 게임>의 유일한 고유함은 <배틀 로얄>과 <헝거 게임> 등 다른 생존 영화들과는 달리 참여자들이 절박함 속에 게임에 자의로 참여했다는 점이다. 씁쓸하다.

 

치열한 경쟁으로 인한 세계 최고 수준의 스트레스 지수를 나타내는 한국 사회에는 오락이 넘쳐난다. 입시 전쟁, 취업 전쟁, 문화 전쟁, 모든 것이 전쟁터로 비유되는 한국 사회는 문화인들의 육성 시스템마저 일련의 군사적 훈련을 방불케 한다. 그 많은 오디션에 수백만 명이 몰리는데, 이런 아이돌 고시를 통해 배출된 KPOP 스타들의 경쟁력은 만능 엔터테이너로서 최고의 전사들이다. 60-70년대 산업 전사들은 이제 문화 전사들이 되어 세계를 누비는 것이다. 강준만은 전쟁 상황에서는 생존의 공포로 인해 엔터테인먼트가 발달한다고 말한다. 그 치열한 경쟁 속에 삶이 전쟁화하면서 역설적으로 문화 산업의 발전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한국의 트렌드 변화 속도는 K콘텐츠가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경쟁력을 부여했다. 사람을 지루하고 싫증 나게 만드는 것은 거의 죄악으로 여겨진다. 한국은 이런 속도전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고 있다. 속도감과 단숨에 사로잡는 훅(hook, 강한 인상을 주는 후렴구)를 전면에 배치하는 KPOP, 호흡이 짧고 빠른 한국의 드라마, 6개월이면 새롭게 바뀌는 거리 상점들의 풍경, 매일 쏟아져 나오는 신제품들…. 그러나 동시에 그 속도의 폭력에 치이는 사람들도 생겨난다. 왜 이처럼 창의적인 문화의 나라에서 수많은 청년들이 공무원이 되기를 희망할까? 밖에서 보면 ‘다이내믹 코리아’일지 모르지만, 안에서 우리는 말 그대로 생지옥을 사는지도 모르겠다.

 

속도에 기반한 한국의 문화 산업은 현대 사회에선 최고의 경쟁력이다. 창의성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의 융합이라는 것도 디지털 시대에 나타난 새로운 정의이다. 우리 민족이 원래 속도감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조선 말 선교사들의 증언에 의하면, 한국인들은 매우 느긋하고 게을렀다. 그걸 보면 우리의 속도감은 선천적이라기보다는 산업화 과정에 생성되고 개조된 슬픈 아비투스(habitus)인 듯하다. 하지만 이 치열한 경쟁과 속도가 앞으로도 한국인이 살아가야 할 운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K콘텐츠가 지향하는 가치가 기독교 복음의 근본정신과 부합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국의 문화적 상황은 교회가 복음을 효율적으로 소통해야 할 중요한 무대이다. 교회가 무조건 트렌드를 쫓을 필요는 없다. 트렌드에는 늘 그 흐름에 역행하는 역트렌드가 따르니까. 탈세속화 시대에서 종교는 문화적 트렌드의 질주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역트렌드로 주목받고 있다. 이 시대에 90년대의 열린 예배와 같은 문화적 세련됨의 시도가 다시 답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대중문화 공화국에서 교회가 보여줄 수 있는 문화적 세련됨은 한계가 있고, 또, 교회가 까다롭고 변덕스러운 대중의 입맛을 맞추며 따라가긴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가 불편함을 느끼는 치열한 한국 사회 분위기와 정신없이 쏟아지는 문화 홍수 속에서, 교회는 복음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추구해야 한다. 솔직함은 창의성의 원천이다.

 

2021년 K콘텐츠 열풍은 절대 일회적인 것이 아니다. 내년에도 KPOP 히트곡들과 또 다른 <오징어 게임>이 등장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해서 바쁘고 치열할 것이다. 이런 문화적 질주 가운데 사람을 살리는 노래와 이야기가 필요하다. 우리가 그런 콘텐츠를 만들어 내고 그런 콘텐츠가 다시 세계화되길 바란다. 창의적인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콘텐츠를 생산하고 교회 울타리를 넘어서 복음의 가치와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 이 글은 문화선교연구원(원장: 백광훈)이 진행한 포럼 <2021 문화포럼: 대중문화 키워드로 살펴보는 대중의 열망과 한국교회의 과제 ESG감수성, K콘텐츠, ..>(2021.12.2.)에서 발표된 내용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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