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에 대한 과도한 맹신도, 각 영역의 고유성을 무시한 획일적 공정도 경계하며, 갈수록 양극화로 치달으며 사회적 갈등과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파편화된 승리의 조각 대신 서로의 수고와 안녕을 기반으로 하는 공동의 식사를 마련하는 비전이 필요함을 <스우파>는 즐기며 깨닫게 했다. <스우파>는 공공성과 공동체에 대한 논의가 결국 공동의 이익을 산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대중문화의 영역에서 가시적으로 보여준 사례이다. (본문 중)

스우파, MZ세대1), 그리고 한국 교회

 

성현(목사, 필름포럼 대표)

 

2021년 가장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킨 방송 프로그램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Mnet에서 하반기에 방영된 <스트릿 우먼 파이터>(이하 <스우파>)일 것이다. <스우파>는 무대에서 가수를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맡는 백업 댄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경연 프로그램이다. 처음 출발할 때 <스우파>는 각종 트로트 오디션이 범람하며 대중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피로감을 느끼던 차에 등장한, 또 하나의 아류작처럼 보였다. 더구나 <스우파>를 방송한 Mnet은 이전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순위 조작이라는 범죄로 인해 가장 공정해야 할 부분에서 신뢰를 잃어버린 상태였다. 그러나 첫 회가 방송된 후 이러한 부정적인 요소들은 일시에 사라지고, 새로운 오디션이 탄생했음을 대중들은 직감했다. MZ세대로부터 시작된 인기가 전 국민적인 관심과 지지를 받게 돼, <스우파>의 출연자들은 유명 연예인 못지않은 스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 글에서는 <스우파> 현상의 원인과 특징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한국 교회가 MZ세대를 어떻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이해하고 동행할 수 있는지에 대해 제언하고자 한다.

 

<스우파>, 대중문화의 중심에 서다

 

​‘스트릿’(Street)은 열린 공간이다. 어느 곳으로도 통할 수 있고, 누구나 다닐 수 있다. 용기만 있다면, 그곳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 스트릿 댄스는 그러한 정신을 기반으로 한 대중문화다. 이미 정해진 안무를 어떻게 해석하고 정교하게 재현해 내는가에 초점을 맞춘 고전 무용과 달리, 스트릿 댄스는 즉흥성과 창의성을 토대로 얼마나 상대를 순식간에 압도하며 청중의 호응을 얻어낼 수 있는가에 중점을 둔다. 이러한 스트릿 댄스의 특성은 유튜브와 틱톡의 문법에 익숙한 MZ세대의 문화적 취향에 적격이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프로게이머, 유튜브 크리에이터나 각종 온라인 강좌의 강사는 학력보다는, 자기 분야에 대한 실질적인 노하우와 자신만의 성공 스토리를 갖춘 이들이다. 이것은 정형화된 삶의 유형에 진입하기 위해 장기간의 준비 과정을 거치고 그 노력의 보상으로 그 세계에 진입이 허용되었던 부모 세대의 패턴과는 그 목표와 기준이 달라진 것이다. 특별히 MZ세대의 선배들이 ‘스펙’이라 부르는 각종 경력을 쌓기 위해 10대와 20대의 대부분을 보내면서 획득한 사회적 성취가 그다지 안정적이지 않고 그 유효 기간도 짧다는 것을 목격하면서, 성공에 대한 정의가 달라진 것이다. 그래서 같은 시기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위해 보장되지 않은 길을 걸어간 스트릿 댄서가 자기 삶의 당당한 개척자로 보이며, 이들이 보여주는 완성형 퍼포먼스는 진정성이 결합된 성공의 열매로 인식된다.

 

<스우파>의 경연 참가자는 ‘여성’(Woman)이다. 그렇다면 <스우파>의 성공은 ‘여성’의 승리로 보아야 할까? 그렇지 않다. 대중은 이들을 단지 ‘여성’이 아닌 ‘인간’으로 바라보았고, 이들의 무대는 젠더 이슈에서 어느 한쪽의 목소리만 편파적으로 부각시킨다는 논쟁과는 다른 결로도 충분히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음을 보여 줬다. 이것은 2019년 개봉 당시 작품성과 무관하게 평점 테러를 당했던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36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것을 시작으로, 2020년 20대에서 50대 언니만으로 예능의 중심을 채웠던 <환불원정대>, 남성 중심의 스포츠 예능의 시선에서 점차 벗어나 제작진과 출연진 모두가 여성으로 구성됐던 <노는 언니>, 여기에 대중적 인기까지 더해진 2021년 <골 때리는 그녀들>까지 이어져 온 여성의 서사가 <스우파>를 통해 보다 보편적 경험으로 확장됐음을 의미한다. <스우파>의 출연진이 대결 속에서 보여준 우정과 리더십은 연령과 세대를 뛰어넘는 감동을 주었다.

 

<스우파>는 분명 ‘파이터’(Fighter)들의 경연 프로그램이었다. ‘허니제이’라는 최종 우승자가 있었고, 패자가 있었다. 그러나 <스우파>를 제대로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도 이 과정을 흔히 말하는 경쟁 사회의 그림자인 ‘승자독식 게임’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배틀’에서 지고도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댄서들의 무대는 계속 유튜브에서 회자되고 화제가 됐다. 출연자들의 실력이 기본이 되지만, 출연자들이 매회 자신의 실력과 매력을 드러낼 수 있는 충분한 기회가 주어졌고, 자신의 속내를 보여 주며 수많은 명언이 쏟아지게 한 인터뷰도 효과적으로 대중들에게 전달됐다. 여기에, 유튜브에 올라온 각 팀별 영상의 조회 수와 좋아요 수를 합산해 평가에 반영함으로써 일부 팬덤의 동원력이나 제작진의 조작 가능성에 대한 불신을 줄였다. 경쟁을 피할 수 없는 사회이지만, 건강한 경쟁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2) ‘라떼는 말이야’로 대변되는 기성세대의 옛날이야기를 MZ세대가 거부하는 까닭은, 그것이 현시대에 적용되기에는 외부적 환경과 조건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3)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로 환원시키며 MZ세대의 나약함을 지적하려고 하기 전에 이들이 제대로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려고 노력하는 것이 기성세대의 중요한 책무임을 <스우파>는 말해 주고 있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 9회 공식영상 캡처, 엠넷

 

<스우파>, 공정을 원하는 세대에게 말을 건네다

 

‘노오력’에 배신당했다는 대한민국 20대 남성이 강조하는 담론은 ‘공정’이다. 많은 90년대생 남성들에게 ‘취업’에서 여성 할당제 및 우대 정책은 과정과 절차의 평등을 담보하지 않고 결과적 평등만을 강조하는 기계적 평등으로 이해되었다. 이것은 ‘노력’을 최상위 가치로 여기고 다른 요소에 의해 노동 시장에 진입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그릇되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4) 2021년 6월, 대한민국 정당 역사상 최초로 30대가 당 대표로 선출되며 ‘이준석 현상’으로도 일컬어지는 이준석에 대한 20대 남성의 전폭적 지지 역시 ‘능력주의’를 기반으로 한 공정에 대한 갈망의 표출이다.

 

그렇다고 ‘공정’의 문제가 단지 90년대생 남성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2021년 1월, SK하이닉스에서 성과급에 불만을 품은 입사 4년 차 직원이 성과급 산정 방식을 공개하라는 이메일을 CEO를 비롯한 2만8천 명 전원에게 보냈다. 회사의 임원진이나 선배 입장에서는 당황스럽고 도발적인 사태였을 것이다. 그러나 MZ세대는 이에 동조했고, 결국 최태원 회장이 자신의 2020년 연봉 전액을 반납했고, 기본급 200%에 해당하는 추가 보너스가 지급되었으며, 성과급 산정 기준도 영업 이익과 연동되게 하는 변화를 끌어냈다. 이로 인해 다른 대기업에서도 성과급을 둘러싼 불만 제기와 그에 대한 개선책이 나오게 되었다. 연차가 쌓이고 서열이 높은 기성세대는 자신이 불합리한 구조나 기울어진 분배 방식의 수혜자가 되기에 관행을 문제의식 없이 수용했지만, MZ세대는 가변적인 미래의 보장보다는 절차적 정당성의 보장을 요구하고 그 결과를 수용하고자 한다.

 

<스우파>는 바로 이러한 MZ세대가 요구하는 공정을 다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 백업 댄서라는 기존 프레임 안에서 철저히 보조적 역할에만 머물러야 했던 실력자들에게 기획 단계부터 선택적으로 기회를 준 것이다. 이러한 기획이 선행되지 않았다면, 대중은 늘 익숙한 대로 가수 중심의 무대에 서는 백업 댄서로만 이들을 인식했을 것이다. 더욱이 경연 후반부에는 평소 이들이 백업했던 가수들이 노래로 이들을 백업하며 댄서의 무대에 대중이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무대까지 선사했다. 이로 인해 조명이 가수에게만 집중됐던 무대는 관객의 다채로운 경험을 제한하고 편중하였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소수의 가수를 위해 가려졌던 다수 댄서들의 출중한 퍼포먼스의 향연이 카메라의 초점 이동을 통해 비로소 대중에게 부각된 것이다. 그렇게 주어진 무대에서 이들은 자신이 가진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경연에 임했고, 결과에 깨끗이 승복했다. 그리고 승자와 패자가 아닌, 각각 자신의 서사를 확보한 단독자로서 대중에게 인정받으며 <스우파>를 전쟁터가 아닌 축제의 놀이터로 승화시켰다.

 

이로 인해 대중은 기회의 공정이 무엇인지를 확연히 경험했으며, 개인의 능력을 강조하기 전에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 위해 조직과 사회 그리고 국가가 해야 할 공공의 영역이 있음을 체감하며 학습하게 되었다. 능력주의에 대한 과도한 맹신도, 각 영역의 고유성을 무시한 획일적 공정도 경계하며, 갈수록 양극화로 치달으며 사회적 갈등과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파편화된 승리의 조각 대신 서로의 수고와 안녕을 기반으로 하는 공동의 식사를 마련하는 비전이 필요함을 <스우파>는 즐기며 깨닫게 했다. <스우파>는 공공성과 공동체에 대한 논의가 결국 공동의 이익을 산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대중문화의 영역에서 가시적으로 보여준 사례이다.

 

MZ세대가 교회의 리더가 되는 날을 꿈꾸며

 

<스우파>의 경연 무대 동영상을 보고 거기에 달린 응원 댓글들을 읽다 보면, 청년이 한 가지 일에 열정적으로 몰입하는 데에서 오는 역동성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과연 교회는 이러한 MZ세대가 가진 가능성과 힘을 담아낼 역량을 가지고 있는가?

 

사실 대중문화에서 스타라는 이름을 얻는 성공은 소수에게만 주어지는 기적이다. 기획사의 팬덤 마케팅은 갈수록 정교해져서 <스우파>의 경우처럼 오랜 기간 보조자의 역할에 머무르던 이들이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는 일은 극히 드물고 예외적인 현상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스우파>의 성공은 우연이라기보다는 그간 여러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쌓인 경험과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는 안목이 만나면서 발생한 사건이다. 시기를 예측하지 못했을 뿐, 언젠가는 빛을 발하게 될 시도였던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교회는 다양한 시도를 권장하기보다는 검증된 프로그램을 답습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중‧장년층 중심의 교회 문화가 MZ세대에게 교회 내에서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찾기 어렵게 만들고, MZ세대와 소통하며 그들의 역량을 끌어낼 멘토나 리더도 부재하다. 그래서 MZ세대와 교회는 갈수록 접점을 잃어가고 있다.

 

더불어 <스우파>의 성공에는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다양한 통로가 있었음도 주목해야 한다. OTT 플랫폼인 티빙을 통해 라이브와 다시 보기로 방송하고, 짧은 분량으로 편집된 경연 영상을 유튜브에 노출했다. 개인이 선호하는 댄서의 영상을 반복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초기에 <스우파>를 접하지 못했던 대중이 유튜브를 통해 <스우파>의 세계로 초대될 기회가 많았다. 한편, 교회의 소통 채널에는 목회자의 설교나 잘 알려진 찬양팀의 예배 영상 외에는 콘텐츠가 부족하고, 그나마도 공급자 중심의 콘텐츠로서 활발한 쌍방향 소통을 이어가기가 어려운 한계가 있다.

 

MZ세대 성도 수가 줄어든다며 우려하고 있는 교회는 <스우파>를 보며, 무엇에 초점을 맞춰야 하고 어떻게 변화를 맞이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배울 필요가 있다.5) 교회는 MZ세대에게 단순히 일회성 행사의 담당을 맡기는 수준을 넘어 공동체의 중요한 구성원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해 주어야 한다. MZ세대 속에서 살아 역사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신뢰하며, 모든 성장에 동반하기 마련인 실패와 시행착오에도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물론 그런 시선이 교회 안으로만 향해서도 안 될 것이다. 이전 세대가 공동체를 형성하며 터전을 마련해왔다면, 이제는 MZ세대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며 변화를 이루어갈 때이다. 세상은 <스우파>를 통해 그 주도권을 기꺼이 MZ세대에게 내주었다. 이젠 교회가 응답할 차례다.

 


1) 밀레니얼 세대(1981-1996년생)와 Z세대(1997-2012년생)를 합하여 부르는 말(편집자 주).

2)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우리가 리스펙하니 세상이 리스펙했다” ‘스우파최정남PD”, 조선비즈, 2021.11.13.

3) 앤 핼랜 피터슨은 이와 관련해 MZ세대가 ‘번아웃’됐다고 진단한다. 부모 세대보다 가난하며, 경제 성장기가 아닌 시기에 태어나 직업을 구해야 하고, 초연결 시대로 인한 디지털 피로가 만연하며, 결혼 및 육아를 기피하는 이유는 그것이 옳지 않아서가 아니라 피곤하기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요즘 애들』(알에이치코리아, 2021).

4) 김석호 외 10명, 『공정한 사회의 길을 묻다』(시공사, 2021), 254-257.

5) 서울의 MZ세대는 지난해 기준 약 343만 명으로 전체 서울 인구의 35.5%를 차지한다. 서울에서 가장 큰 세대 집단이다. 서울시, “서울시 MZ세대 첫 분석시민 셋 중 한 명, 서울에서 가장 큰 세대 집단”(2021.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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