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가 정치권의 비선 종교인을 비판하려면 제대로 알고 비판해야 한다. 한국 교회는 한국의 전통 종교나 타종교를 배타시하고 깊이 연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당수 목사나 교인이 무교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무교를 무속 미신으로 비하하며 비판하고 있다. 그래서 2,800년 전 구약 이사야 시대 미가서에 나오는 마술 금지 구절을 가지고 와서 한국 무교를 비판한다. (본문 중)

옥성득(UCLA 한국기독교학 교수)

 

2016년 미국 대선 때 기독교 우파 카리스마 그룹에서 예언을 이용하여 트럼프를 지지했다. 그가 선출되어 동성애자와 사탄의 무리를 제거하고 이 땅에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들은 트럼프가 선출되자 한층 고무되었고, 2021년에 다시 지지했지만 실패했다. 가짜 예언의 무리였다.

 

지금 한국 대선에서 무교를 문제 삼고 기독교 측에서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는데, 오해가 있다. 김건희 씨가 접촉한 중요 인물로 거론되는 인사를 보면, 불교에서 나온 건진 법사와 역학인 서대원 씨로 모두 남성이며, 천기누설과 같은 정치적 예언으로 후보에게 접근하는 이들로, 여성 무당과 다른 부류이다. 한국의 무당은 대부분 여자이므로, 이 남자 종교인들은 무교/무속 계열이라기보다는 조선 시대로 치면 민간 도교와 연관된 풍수도참, 역술, 구마(축귀) 계열이다. 그래서 김건희 씨는 무당보다 한 수 위에 있는 도사들과 논다고 말했다.

 

삼국 시대 이후 한국 정치사에서 왕조 교체나 정권 변화, 개벽이나 혁명과 연관된 종교 전통은 무교가 아니라 예언이었다. 불교의 말법 시대에 나타날 미륵불 사상은 후백제의 궁예가 이용했고, 이성계는 ‘목자위왕’(木子爲王)과 같은 파자 예언을 이용하고 도선의 도참사상을 이용하여 한양을 새 왕조의 수도로 삼았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정감록과 같은 비기서의 도참 예언서들이 묵시론적 파국 상황에서 새 시대를 갈망하는 민중의 희망을 움직이는 혁명의 예언서가 되었기 때문에 금서로 지정되었다. 최제우의 개벽 사상은 정감록에 나오는 구원의 방도인 ‘궁궁을을’(弓弓乙乙)을 기반으로 궁을가를 짓고 궁을 부적을 동학교도들에게 주어 태워 마시게 하여 치병의 수단으로 삼았다. 그러나 궁을 부적은 일본군의 총탄은 막지 못했다.

 

새 시대를 희구하는 예언 도참 전통은 현재 한국 종교 지형에서 분류하자면 여성 무당의 무교가 아니라, 정치권과 연결되어 활동하는 남자 도사/법사/역술인들에게 닿아 있다. 그들은 선거철만 되면 유력 정치가에 빌붙어 혹세무민하는 ‘천기누설’의 대가로 돈과 권력을 얻고, 정치가는 그런 용한 예언가들을 이용하여 민중의 마음을 얻는 형국으로 은밀한 거래가 이루어져 왔다. 그들 일부는 음택 풍수로 후보 조상의 묘를 이장하게 만들어 돈을 벌었고, 일부는 청와대 이전설이나 모모 부처나 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하겠다는 공약으로 유권자의 마음을 솔깃하게 했고, 혹은 상대 후보를 제압하는 신통력을 준다는 부적을 몰래 지니게 하기도 했다. 만일 이런 후보가 국가 대사를 결정할 때 역술인의 도움을 받거나, 장관 등 중요 인사를 관상으로 결정하거나, 국가의 재난을 물리치기 위해 정부 지원으로 굿판을 벌인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도참사상에는 예언과 풍수 외에도 파자와 부적 두 요소가 더 들어있다. 조광조의 정치 파동에도 등장한 파자(破字, glyphomancy) 전통을 보자. 6.25 전쟁 때 정감록을 믿는 이들은 한국을 구원해 준 트루먼(Truman) 미국 대통령을 정감록이 예언한 구세주인 진인(眞人, true man)으로 영어 파자까지 했다. 용문산의 나운몽 목사는 정도령의 ‘정’(鄭) 자를 파자하여 팔내서천(八乃西天) 도령, 곧 팔레스타인에서 온 예수가 정감록에서 예언한 정도령, 곧 구세주라고 해석했다. 2017년 박근혜 탄핵 때에도 “123456789” 상징적 파자가 등장했다. 정감록의 ‘궁궁을을’이나 ‘십승지지’와 같은 암호를 파자로 푸는 종교적 천재가 정치와 종교 판을 흔들었다. 이번 대선에서 예언과 풍수는 나왔지만, 아직 파자는 등장하지 않았다. 아마 곧 나올지도 모른다. 도참사상의 네 번째 요소는 부적이다. 도교 계열인 도참의 부적은 원래 질병과 악귀를 물리치는 수단이었는데, 동학, 원불교, 증산교 등도 이용했다. 부적과 축귀는 원래 무교보다 도교 전통이다. 손바닥 ‘왕’자도 일종의 부적으로 볼 수 있다.

 

한국 정치권에서 문제가 되는 “예언, 풍수, 파자, 부적”의 집합체인 도참 예언 사상은 무교와 거리가 있는 한국 민간 신앙의 한 갈래이다. 물론 무교나 민간 신앙은 혼합되어 있으므로 한 종교인이 이것저것을 섞어서 다양한 의례를 행할 수 있다. 무교는 다른 종교와 혼합, 기생하여 생존하는데, 풍수 도참 예언도 분별하지 않으면 기독교 카리스마 운동, 예언 운동, 종말론과 쉽게 혼합된다. 곧 희생과 용서의 십자가가 정치적 힘과 세속적 복을 지향하는 십자기(旗)나 십자군으로 변질된다.

 

기독교가 정치권의 비선 종교인을 비판하려면 제대로 알고 비판해야 한다. 한국 교회는 한국의 전통 종교나 타종교를 배타시하고 깊이 연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당수 목사나 교인이 무교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무교를 무속 미신으로 비하하며 비판하고 있다. 그래서 2,800년 전 구약 이사야 시대 미가서에 나오는 마술 금지 구절을 가지고 와서 한국 무교를 비판한다. 만일 미가 선지자 시대 마술이 오늘 한국의 무교와 동일하다면, 한국인은 수천 년 된 고고학적 종교를 실천하고 있는 고대의 미개인일 것이다.1) 한국 무교는 구약이나 신약에서 말하는 마술과 다르며, 19세기 말 서양 종교학자들이 연구했던 만주 시베리아의 남자 샤먼이 의례를 주도하는 샤머니즘과 다르며, 120년 전 내한 선교사들이 깊이 연구했던 때의 무교에서도 진화 발전했다. 최소한 초기 선교사들의 무교 연구부터 공부하면서, 21세기 현재 한국 무교가 어떠한지 공부해야 한다.

 

현 야권 후보 주변 비선 종교인은 무교 쪽이라기보다는 도참 역술 쪽이다. 무교, 무당, 무속 비하에는 여성 비하와 혐오도 들어있으므로 조심할 일이다. 박근혜 탄핵 때에도 기독교와 민주당은 최순실의 무교를 비판했는데, 그 역시 비판의 화살을 잘못된 좌표에 둔 경우였다. 최태민은 무교 계열이 아니라 계룡산의 도참 역술 전통과 기독교 카리스마 예언 운동과 반공 이념을 혼합한 계열이었다. 역시 작금의 남자 역술인 계통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굿하는 무당이 아니라, 정치권력을 탐하는 가짜 예언자의 무리였다.

 

정치권력 교체와 연관된 비선 종교인에 무교보다 예언 사상이 있는 것은 전광훈 일파의 파동에서도 확인된다. 그들은 미국 기독교 우파의 친트럼프 예언 운동을 벤치마킹하여 한국 정치계와 기독교계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트럼프 재선 실패 후에 미국과 한국에서 가짜 예언 운동이 힘을 잃은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혹세무민하는 가짜 예언 운동은 종말론의 옷을 입고 또 나타날 것이다.

 

한국 개신교는 성경 공부도 중요하지만, 한국사, 한국 종교사, 한국의 타종교를 제대로 연구하고, 현실을 바로 분석해서 제대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정치 바람에 휩쓸리지 않는다. 동시에 정교분리 원칙에서 흔들리지 말고, 비선 목사의 존재나 대통령 조찬기도회 등을 폐지해야 할 것이다. 목사나 신부가 청와대에 들어가는 것은 괜찮고 불승이나 역술인이 들어가는 것을 반대한다면 내로남불이다. 그동안 한국 정치를 혼탁하게 한 기독교의 잘못을 회개하고, 정교분리의 정신을 재확립할 때이다.

 

한국은 다종교 사회이다. 기독교가 대사회 발언을 할 때 기독교적 관점은 유지하되, 기독교 교리나 성서를 근거로 주장하는 일은 설득력이 떨어지므로 삼가야 한다. 자유, 평등, 정의와 같은 보편적 가치에 입각하고, 헌법 정신에 기반하여 발언하되, 한국인의 다종교성과 청년들의 무종교성을 과학적으로 연구한 결과를 근거로 논지를 전개하는 이성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기독교 종말론과 예언이 자칫 혹세무민하는 거짓 예언 운동가들에게 이용당할 수 있으므로, 영을 분별하는 영성을 길러야 할 것이다.

 


1) 이것이 바로 일제 식민사관에서 주장한 한국 문화, 종교, 경제의 정체성론이었다. 일본은 진화하여 서양과 같은 문명국인데, 한국은 원시 미개사회로 정체되어 있으며, 그 한 증거가 수천 년간 변하지 않는 미신적인 무속이라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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