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이번 대선판에서 정책 경쟁은 사라졌다는 말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지금도 각 후보와 캠프에서 연일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정책들 가운데 많은 부분은 장기적인 연구와 실행을 통해 검증된 것들이 아니고, ‘아니면 말고’ 식의 즉흥적인 것들이 많다. 장기적인 국가의 발전이나 미래 세대가 감당해야 할 부담 등을 고려하지 않고, 당장의 필요에만 응답하는 인기 영합주의 정책들도 많다. (본문 중)
정병오(기윤실 공동대표)
20대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언론 보도나 수사 기관의 편향성으로 인해 아직 실체가 다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주요 후보나 그 가족을 둘러싼 도덕성 문제는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나고 있다. 사람은 하루아침에 변하는 것이 아니므로, 그 사람이 살아왔던 삶의 궤적은 그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어떤 통치 능력을 보여 줄지에 대한 가장 중요한 지표가 된다. 그러므로 대통령 후보와 가족들의 도덕성과 가치관을 둘러싼 검증은 지금보다 훨씬 더 치열하게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하나님, 각 후보들이 자신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외치고 있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아는 분이오니 각 후보의 장단점이 보다 더 분명하게 드러나게 하시고, 국민들에게 이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라고 날마다 기도드린다.
하지만 대통령제 민주주의 국가에서 5년에 한 번 돌아오는 대통령 선거의 의미는 단지 ‘어떤 인물을 대통령으로 뽑을 것인가’ 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대선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방향과 비전을 정비하고 합의하는 기회이며, 현재 우리 사회가 처한 위기의 본질이 무엇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우리 구성원들의 고통 분담과 상생의 방안이 무엇일지에 대해 숙의하고 의견을 모아갈 기회이기도 하다. 따라서 대선 과정에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들, 즉, 남북한 전쟁 위협 해소와 평화 증진, 미·중 갈등의 위기 속 균형 외교, 저출생과 고령화 문제, 양극화와 불평등 문제, 부동산 투기와 불로소득 문제, 입시 고통 문제 해결과 기후 위기 대응 등에 대해 깊이 있는 원인 규명과 해결 방안에 대한 치열한 숙의와 토론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대선 국면에서는 국민과 언론이 후보자와 그 가족에 대한 도덕성 검증 문제에 지나치게 관심을 기울이되 정책 공약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상황이다.
20대 대선의 분위기가 이렇게 흘러가게 된 원인은, 우리 사회가 이념적으로 과도하게 분열하고 대립하고 있어서 합리적인 대화와 타협의 분위기가 실종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국민들의 관심이 ‘누가 우리 편이냐’에 쏠려 있고, 우리 편이 하는 일이라면 그 어떤 잘못이라도 대충 넘어가고 옹호하면서도, 상대편의 일이라면 좋은 것이라도 흠집을 내고 가짜 뉴스를 만드는 일도 서슴지 않고 있다. 여기에 분열된 국민들의 마음을 통합으로 이끌어야 할 정치권은 오히려 분열 상황을 자신들의 정치적 자산으로 이용하며 이를 더 부추겨 권력 쟁취를 위한 도구로 삼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러한 전국민적 편 가르기에 정치권뿐 아니라 언론, 종교, 시민 단체까지 가세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대선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에 대한 대안과 방향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토론하고 논쟁하며 합의를 해 나가는 모습이 나올 수가 없다. 그리고 후보의 도덕성 검증도 상대방에 대한 흠집 내기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대선판에서 정책 경쟁은 사라졌다는 말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지금도 각 후보와 캠프에서 연일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정책들 가운데 많은 부분은 장기적인 연구와 실행을 통해 검증된 것들이 아니고, ‘아니면 말고’ 식의 즉흥적인 것들이 많다. 장기적인 국가의 발전이나 미래 세대가 감당해야 할 부담 등을 고려하지 않고, 당장의 필요에만 응답하는 인기 영합주의 정책들도 많다. 전체 국민들의 공익을 고려하지 않은 일부 이익 집단이나 지역 토호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개발 정책들도 많이 있다. 이런 부분들을 공론의 장에서 충분히 토론하고 근거를 제시하며 국민들 각자가 져야 할 부담에 대해서도 합의해 나가는 과정이 없다 보니, 후보들은 숙성되지 않은 정책을 내던지고 국민들은 이를 신뢰하지 않고 흘려버리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렇게 온 사회가 이념에 따른 대립과 반목, 편 가르기에 몰입해 있는 상황에서도 누군가는 중심을 잡고 있어야 한다. 대선 후보에 대한 도덕성 검증을 철저히 하되, 내가 지지하지 않는 후보를 검증하는 그 잣대로 내가 지지하는 후보를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도덕성 검증을 빙자해 상대 후보의 흠집을 찾는 일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한 위기와 문제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 대안을 내놓으라고 후보들에게 요구해야 한다. 각 분야의 전문가 집단들은 자신의 분야가 이익 단체의 주장에 휩쓸리지 않도록 공동선에 기반한 합리적인 정책들을 내놓고, 이를 공론의 장에서 토론하며 합의를 이끌어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나온 합의들을 대선 후보들이 공약으로 채택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나아가 대선을 통해 누가 당선되든, 그 당선자와 그가 속한 정당이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 대안을 만들고 실천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정책을 제시하고 압박하고 감시해 나가야 할 것이다.
기윤실은 20대 대선을 맞이하면서 그동안 선거 때마다 지속적으로 해 오던 공명선거 운동에 더하여 정책 운동을 본격적으로 실시했다. 먼저 20대 대선을 맞는 현재 한국 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를 찾는 작업을 했다. 그래서 최근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된 ‘공정’을 제대로 실천하기 위한 방안을 찾아보고, 기윤실이 현재 한국 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했던 ‘불평등과 양극화 문제’, ‘사회통합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을 찾아보고,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도록 정치권에 촉구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각 영역에서 신실하게 활동해 왔던 기독 시민 단체들과 연대하여 100대 공약을 만들어 이를 공론화하고 각 대선 캠프에 전달했다.1) 이러한 일은 많은 수고를 요구했지만, 그에 비해 대선 정국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했다. 정치권에 미치는 영향은 고사하고 한국 교회에 미치는 영향도 크지 않았다.
하지만 기윤실은 대선 이후에도 이념에 따른 편 가르기에 휩쓸리지 않고 한국 사회가 직면한 근본 문제와 그 대안을 찾기 위한 공론의 장을 만들고, 이를 통해 제시된 정책 대안들을 정부가 받도록 압박하고, 국회를 통한 입법 활동을 하려고 한다. 정부 차원의 큰 정책 외에도 지방 자치 단체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지역 밀착형 공약과 대안들도 개발해 지방 선거를 계기로 제시하고 압박하는 작업을 지속하려고 한다. 무엇보다 이러한 노력들을 한국 교회와 함께 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려고 한다. 다수의 국민들이 예상하듯, 대선 이후에도 우리 사회의 이념적 분열과 편 가르기는 더 심해지겠지만, 그럴수록 뜻 있는 기독교인들부터 이념에 휩쓸리지 않고, 공동선에 기반하여 우리 사회의 문제를 직시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실천하는 노력들을 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들이 한국 사회는 물론이고 한국 교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길일 것이다.
1) “기독시민단체연대, 교장 직선제·돌봄청 ‘100대 대선공약’ 제안” <연합뉴스>, 2021. 12. 22.
[대선공약기독연대] 8개분야 107개 정책 요약 보기!
기독시민단체 및 전문가 연대는 우리 사회를 바르고 깊이 있게 바라보고 이웃과 약자를 위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8개 분야(교육, 노동, 생태환경, 이주난민, 청년, 토지부동산, 한반도, 장애인), 107개의 정책을 개발하고 정리하여 공약집과 질의서로 엮었습니다. 이를 지난 12월 15일(수), 대통령선거에 나선 후보들의 캠프에 방문하여 전달했습니다. 이런 정책 제안들은 또한 기독 시민들이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장차 우리나라가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들에 대해 숙고하고 분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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