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을 감안하면, 신기술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상상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적어도 자율 주행차처럼 실현 가능성이 비교적 높은 미래 기술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발전 방향을 알아보고,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연습 삼아, 자율 주행차의 미래에 대한 시나리오 하나를 살펴보자. (본문 중)
손화철(한동대 글로벌리더십학부 교수, 기술철학)
우리가 신기술을 생각할 때 흔히 저지르는 오류 중 하나는 그 기술이 우리의 일상에 툭 떨어져서 작동하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작은 기술의 경우 그런 경우가 없지 않다. 예를 들어, 몇 년 전에 등장한 전동휠은 그냥 기존 일상에 더해져서 차츰 안착되고 있다. 그러나 큰 규모의 주요 기술은 시작부터 기존의 체제를 흔들고, 그 여파도 엄청나다.
대표적인 예가 자율 주행차다. 최근 대부분의 거대 자동차 기업들이 자율 주행차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좁은 골목길과 복잡한 시내를 쌩쌩 달리는 자율 주행차를 생각하면 곤란하다. 일단 좁은 골목길을 없애고 복잡한 시내 도로를 정리한 다음에 자율 주행차가 다닐 공산이 더 크다.
기술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을 감안하면, 신기술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상상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적어도 자율 주행차처럼 실현 가능성이 비교적 높은 미래 기술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발전 방향을 알아보고,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연습 삼아, 자율 주행차의 미래에 대한 시나리오 하나를 살펴보자.
0. 먼저 기본 개념. 자율 주행과 관련해서 사람이 운전하는 0단계부터 완전 자율 주행을 의미하는 5단계까지를 구분하는데, 현재의 기술력은 3단계 정도라고 한다. 3단계란 자율 주행이 가능하지만 시스템이 요청하면 운전자가 곧바로 개입해야 하고, 일정 시간마다 운전대에 손을 얹는 등 완전히 운전에서 주의를 뗄 수 없다. 4단계는 악천후 등 특정 상황 이외에서는 자율 주행이 가능한 정도를 말하고, 2단계는 차선 유지나 앞차와의 간격을 자동 조절하는 크루즈가 동시에 작동하는 경우로, 비싼 자동차에는 이미 장착되어 있다. 1단계는 보통 차에도 달려 있는 크루즈 기능 정도다.
1. 기본적인 수준의 자율 주행차 기술은 모두 개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도로에 눈이 덮여 차선이 식별되지 않는 경우, 사소한 왜곡에 의해 이미지 인식이 안 되는 경우, 통신 지연, 자율 주행자 중심의 교통 체제 전환기 문제, 탑승자의 멀미 문제, 운전자 숙련도 저하, 도덕적 딜레마 이슈 등 크고 작은 기술적, 비기술적 이슈들이 남아 있다.
2. 흔히 자율 주행차를 개발하는 이유를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라 한다. 인간 운전자는 너무 약점이 많아 사고를 많이 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먼 훗날의 이야기이고, 자율 주행차가 처음 사용될 영역은 물류가 될 가능성이 크다. 자율 주행 승용차의 개발은 혁신의 인상을 주려는 자동차 회사의 판매 전략이지 단기 프로젝트가 아니다.
3. 자율 주행 트럭도 기존 도로보다는 미국의 동서 횡단 고속도로처럼 일자로 죽 뻗어있는 도로나 자율 주행차 전용 도로를 이용하게 될 것이다. 자율 주행차와 사람이 모는 자동차가 같은 길에서 운행하는 것을 상상하기 힘들다. 변덕과 실수, 불법 행위가 잦은 인간 운전자와 규칙을 지키는 자율 주행차를 같은 길에 두면 엄청난 운행 지연이 일어날 것이다.
4. 자율 주행차는 독립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외부 사물을 인지하고 도로에 대한 정보를 계속 주고받아야 하므로 엄청난 연산 자원과, 통신 지연 시간이 짧은 5G 혹은 6G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자율 주행차가 도로나 주변 시설물, 신호등과 연동되는 것이 가장 좋기 때문에 자동차 자체뿐 아니라 자동차가 운행하는 도로 전체가 일종의 인프라다.
5. 이동 거리가 길수록 자율 주행 트럭의 효율과 이익이 높아진다. 그런데 긴 전용 도로에 통신 인프라를 갖추는 것도 비용이다. 이런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대의 트럭이 기차처럼 열을 지어 달리는 군집 주행이 제안되었다. 선두에 있는 차량은 사람이 운전을 하고, 나머지는 앞에 있는 차와의 거리를 유지하며 자율 주행을 한다. 이러면 연산과 통신 인프라 소요가 적다. 3단계인 자율 주행 트럭에는 운전자가 탑승하되, 운전은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들은 군집 주행을 하다가 행선지 방향이 갈라질 때 대열을 빠져나와 목적지로 운전해 가면 된다. 군집 주행을 하는 전용 도로는 일반 고속도로를 이용하되 특정 시간대에 자율 주행차만 다니게 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6. 이 시나리오는 자율 주행차 뒷자리에서 책을 읽으며 가는 광고의 모습과 큰 차이가 있지만, 가까운 미래에 실현될 가능성은 더 높다. 그런데 이 정도의 변화로도 예상되는 파장은 크다. 작년 5월 미국의 자율 주행 트럭 회사가 시험 운행을 한 결과 사람이 몰면 24시간이 필요한 1500여 km를 14시간 만에 주파했다고 한다. 자율 주행차는 휴식도 잠도 필요 없기 때문이다. 관련 기술과 규정이 완비되면 미국의 350만 트럭 운전사 중 장거리 운행을 하는 일부는 직업을 잃게 될 것이고, 미국의 대륙 횡단 고속도로변에 있는 주유소와 모텔들은 망할 것이다.
우리가 아는 질서를 흔드니 자율 주행차를 거부할 것인가? 그럴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어떤 일이 펼쳐지고 예상되는지를 파악하고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내가 운전해 다니던 길을 운전자 없는 자동차 뒷좌석에 앉아 가면 참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순진할 뿐 아니라 지나치게 초연한 발상이다. 그 사이에 우리 일상과 환경이 바뀌고, 나와 이웃의 직업이 바뀌며, 누군가는 피해와 유익을 본다. 그 변화와 발전이 조금이라도 평화롭고 덜 고통스럽게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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