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규제 완화, 세제 완화, 대출 규제 완화 등의 공약을 내세운 윤석열 후보가 당선된 이후 재건축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고, 하향 안정화되던 전국 아파트 가격도 방향을 틀어 다시 상승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 와중에 민주당은 수도권 곳곳에 ‘보유세를 깎아 주겠다’는 현수막을 붙이고 있다. 금리가 올라가고 있지만 인플레이션의 속도가 더 빨라 부동산 가격이 한 번 더 뛸 수 있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위태위태한 상황이다. (본문 중)

이성영(희년함께 상임대표)

 

0.73%, 역대 대선에서 가장 근소한 차이다. 승패의 결정적인 요인으로 부동산 정책 실패를 꼽는다. 부동산 정책 실패를 원인으로 두더라도 해석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집값이 폭등해 유주택자들의 세금이 많이 올라 유주택자들의 민심이 돌아섰다는 해석도 가능하고, 집값이 폭등하면서 임차인들의 주거 불안이 가중되고 자산 격차로 인한 박탈감으로 무주택자들이 정권 심판 투표를 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승자인 국민의힘과 패자인 민주당 모두 주택 소유자들 입장에서 정권 승리와 패배의 요인을 해석하고 있다. 집값이 높은 지역일수록, 공시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종부세를 많이 내는 지역일수록 윤석열 당선인의 지지가 높았다는 데이터가 언론과 시중에 회자되면서, 민주당 정치인들은 역시 세금을 많이 낸 사람들이 화가 나서 윤석열 후보를 찍었다고 결론을 내리며 수도권 곳곳에 ‘보유세를 깎아 주겠다’는 현수막을 붙여 두었다. 지난 3월 24일 발표한 국민의힘 서울정책연구원의 보고서에서도 구별 아파트 공시 가격과 국민의힘 득표율에 강한 상관관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진보 진영은 집값과 국민의힘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근거로 욕망의 정치라 비판하거나, 세금을 깎아 주어야 민심을 돌이킬 수 있다고 판단하고, 보수 진영은 ‘역시 세금이구나’, ‘세제 완화가 보수 진영의 살길이구나’라고 판단한다.

 

하지만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는 다르다. 평당 가격, 공시가 상승률, 종부세 부과 대상과 윤석열 후보의 지지율 사이에 상관관계는 있지만, 상관관계가 곧바로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울러 집값과 지지율의 비례 현상은 역대 선거에서 늘 동일했으므로 이번 대선의 표심 변화로 해석하기 어렵다. 2020년 4월 총선에서도 집값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비례했다. 더 나아가 손낙구 보좌관이 2010년에 쓴 『대한민국 정치 사회 지도』에도 집값이 높은 지역일수록 보수 정당에 대한 지지가 높다는 사실이 이미 다 정리되어 있다. 2020년 4월 총선과 2022년 3월 대선에서 똑같은 결과가 나오는 데이터를 놓고, 더 나아가 2000년대 이후 반복되는 동일한 현상을 놓고, 2022년 대선의 승패 요인으로 분석하는 것은 번지수를 한참 잘못 짚는 것이다.

 

민심이 돌아선 이유는 유주택자의 분노가 아닌 임차인의 분노

 

서울 민심 변화의 원인 분석을 위해 먼저 2020년 총선과 2022년 대선 사이의 구별 득표율을 비교해보자. 2020년 총선 대비 2022년 대선에서 강남 3구, 용산구 외에 양천구, 성동구, 마포구 등 서울 중심 지역들이 많이 돌아섰다.

 

 

<2020년 총선과 2022년 대선 서울 자치구별 선거 결과>

 

윤석열 후보의 득표율이 높은 지역의 집값은 이재명 후보가 우세한 지역보다 집값이 상대적으로 높다. 집값이 높으니 보유세도 많이 낼 것이다. 그러나 과연 세금 때문에 지지가 돌아섰을까?

 

다른 데이터를 살펴보자. 아래 그래프는 서울시 자치구별 자가 점유율과 윤석열 후보와 이재명 후보의 승리 지역을 나타낸 그래프이다. 자가 점유율은 해당 지역에 자기 집에 사는 사람의 비율을 나타내는 지표이다. 투표는 본인 소유 주택이 있는 지역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임차하건 소유하건 본인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서 하기에 자가 점유율이 낮은 지역은 임차인이 많이 산다는 의미이다.

 

 

그래프의 특이한 점은 관악구를 제외하고는 강남구, 용산구, 송파구, 마포구, 광진구 등 자치구별 평당 주택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임차인 거주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2020 총선에서 민주당이 이겼다가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이 진 마포구, 성동구, 중구, 광진구 등의 지역은 모두 집값은 높고 자가 점유율은 낮은 지역이다. 관악구를 제외하고는 자가 점유율이 낮은 대부분의 자치구에서 윤석열 후보가 승리를 거두었다. 해당 지역들은 2020년 이후 임차인들의 전월세 가격이 급등한 지역들이다. 자가 점유율이 낮은 지역, 즉 임차인이 많이 살고 2020년 이후 전월세 가격이 급등한 지역에서 윤석열 후보가 이겼는데, 세금을 많이 내서 민심이 돌아섰다고? 임차인들이 보유세를 내나?

 

문재인 정부의 1주택자를 위한 재산세, 종부세 완화 등 섬세한(?) 배려를 감안하면, 집 가진 사람들 중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집값이 올라도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규제가 기분 나빠 국민의힘을 지지했을 테고, 민주당 지지자들은 세금에 비해 집값이 많이 올라 세금 때문에 마음이 돌아섰을 가능성은 낮다. 오히려 집값 높은 지역에 많이 사는 임차인들이 2020년 하반기 이후 급등한 전월세 가격으로 인한 주거 불안과 급등하는 집값을 보며 느끼는 박탈감으로 인해 정권 심판 투표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

 

차기 정부의 정책과제 : 임차인의 주거 불안과 자산 격차 해소와 부동산 시장 안정

 

집단 간의 상관관계로 민심 변화를 찾는 방식은 한계가 많다. 집값과 여야 지지율의 상관관계나 임차인 비율과 여야 지지율의 상관관계만으로 인과관계를 찾아내는 것은 한계가 있다. 제대로 된 원인을 찾으려면 세밀한 여론 조사를 해야 하지만, 제한된 데이터로 원인을 찾겠다면 가급적이면 주류와 기득권이 아닌 입장에서 해석할 필요가 있다. 지난 5년간 자산이 2배 가까이 늘어난 유주택자의 입장이 아니라, 졸지에 벼락 거지가 되고 급등한 전월세 가격으로 주거 불안에 시달리는 임차인들의 입장에서 대선 패배의 원인을 분석하는 정치 세력이 없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비극이다.

 

재건축 규제 완화, 세제 완화, 대출 규제 완화 등의 공약을 내세운 윤석열 후보가 당선된 이후 재건축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고, 하향 안정화되던 전국 아파트 가격도 방향을 틀어 다시 상승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 와중에 민주당은 수도권 곳곳에 ‘보유세를 깎아 주겠다’는 현수막을 붙이고 있다. 금리가 올라가고 있지만 인플레이션의 속도가 더 빨라 부동산 가격이 한 번 더 뛸 수 있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위태위태한 상황이다.

 

해당 글과는 관련없는 이미지 입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2년 연례협의 보고서”에서 한국의 가계 부채와 높은 집값에 대한 위험을 강조하며 재산세 등 보유세를 높이고 대출 규제를 강화할 것을 주문했다. 윤석열 당선인의 공약과 민주당의 반성과는 정반대 주문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없고, 세계 8위의 무역 대국인 대한민국 경제가 견실하게 성장해야 자신들에게도 유리한 국제통화기금(IMF)이 하는 말이기에 귀담아들어야 한다.

 

윤석열 당선인의 공약인 보유세 완화, 대출 규제 완화, 민간 재건축 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 임대차 3법 폐지 및 수정은 현재 당면한 시급한 과제인 부동산 시장의 안정적인 관리와 임차인의 주거 불안 해소와는 거리가 멀 뿐 아니라 오히려 부동산 가격 거품을 키우고 임차인의 주거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드는 정책이다.

 

다시 상승세로 돌아선 한국의 부동산 시장과, 집값을 자극할 수 있는 인플레이션 국면은 고가아파트 소유주의 입장에서 대선 승리/패배 원인을 분석하여 보유세를 완화하고 대출 규제를 완화할 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 재집권 실패의 상당 부분은 부동산 가격이 너무 높아졌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 집권 초부터 부동산 시장 안정화 실패 및 부동산 가격 거품이 커진다면 정권 재창출은커녕 정권 조기 종식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부동산 시장을 자극하는 정책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든 민주당이든, 20대 대선에서 집권 여당의 0.73% 격차 패배는 임차인의 관점으로 주거 불안과 자산 격차로 인한 박탈감을 해소해 달라는 민심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임차인들도 살고, 윤석열 정부도 살고, 대한민국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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