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의 에너지 자립도는 42%로 나머지 58%의 에너지를 수입하고 있다. 이 해외 수입의 거의 절반을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천연가스와 석탄의 절반, 그리고 원유의 1/4을 러시아에서 들여오고 있다. 천연가스는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길게 연결된 파이프라인을 통해 쉴 새 없이 유럽으로 흘러들고 있다. EU는 러시아에서 제공하는 에너지 없이는 제대로 살기 어려운 형편이다. (본문 중)
성영은(서울대학교 화학생물공학부 교수)
지난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전면적인 침공을 개시함으로 시작된 전쟁이 러시아의 기대와 달리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세계 각국은 이 전쟁에 대해 러시아를 규탄하고 러시아에 대해 각종 경제 제재 조치를 하고 있다. 이 전쟁으로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 같다. 사상 최대 규모의 피난민들이 발생하고 러시아 군의 만행 소식이 연일 전해지고 있다. 70여 년 전 우리도 겪었던 전쟁의 처참함을 지금도 보고 듣는다는 것은 무척 슬픈 일이다. 게다가 전쟁 중에 있는 사람들의 고통과는 무관하게 이 세상의 나라들은 각기 자국의 정치, 외교, 경제적 이익에 따라 이 전쟁을 대하는 것 또한 가슴 아프다.
에너지 분야를 전공하는 필자는 에너지 부분에서 유럽연합(EU)이 이번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와 얼마나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지 잘 알고 있다. EU의 에너지 자립도는 42%로 나머지 58%의 에너지를 수입하고 있다. 이 해외 수입의 거의 절반을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천연가스와 석탄의 절반, 그리고 원유의 1/4을 러시아에서 들여오고 있다. 천연가스는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길게 연결된 파이프라인을 통해 쉴 새 없이 유럽으로 흘러들고 있다. EU는 러시아에서 제공하는 에너지 없이는 제대로 살기 어려운 형편이다. 러시아는 전 세계 원유의 12%와 천연가스의 17%를 공급하는 화석 에너지 대국이다.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액이 국가 예산의 40%에 이를 정도이다. 그 금액의 절반 정도가 EU에서 오는 것이다. 이 돈이 지금 고스란히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비용으로 사용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미국은 EU에 러시아 에너지 수입 중단을 요구했고, 우여곡절 끝에 원칙적 합의를 했다. 수입 중단을 위한 입법 절차도 시작되었다. 그러나 EU 각국은 당장 러시아 에너지 수입 중단으로 자국민의 삶에 미칠 불편과 경제 성장률 하락을 염려하여 제각각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도 이런 EU의 사정을 알기에 여전히 기세등등하다. 일부 국가들에 대한 수출 중단을 선포하기도 했다.
사실 EU는 이미 오래전부터 신재생 에너지로의 에너지 전환 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해 오고 있다. 온실가스에 의한 기후 변화를 줄이려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다. 그러나 이런 정책의 한편에는 이번 러시아 사태와 같은 경우를 대비하기 위한 에너지 자립의 목표도 들어 있다. 이 정책 덕분에 2020년 EU의 총에너지 소비량의 20% 이상을 신재생 에너지가 충당하게 되었다. 전력의 1/3 이상이 풍력, 태양광 등 신재생 에너지에서 생산되고 있다. 해가 갈수록 그 비중은 높아질 것이다. EU 각국은 이 목표를 더 분명히 달성하기 위해서 EU 택소노미(녹색 분류 체계)를 법제화하는 등 적극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2050년 탄소 중립을 위해 전체 에너지의 20%를 수소 에너지가 차지하는 ‘수소 경제’도 발표했다. 그런데 몇 국가는 이보다 더 빠른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영국은 수소 에너지를 20%보다 훨씬 높은 35%까지 늘려 보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이를 위해 이미 풍력 발전에서 만들어진 전기를 이용한 수소 생산 등에 많은 투자를 시작했다. 전력의 40% 이상을 신재생 에너지에서 생산하고 있는 독일은 2035년에는 전체 전력을 신재생 에너지로 생산할 계획이다. 이런 에너지 전환으로 기후 변화를 줄이면서 자연스레 에너지에 대한 대외 의존도를 낮출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그 목표를 향해 나가는 와중에 갑자기 이루어진 이번 러시아 에너지 수입 중단 조치가 당장 러시아에 타격을 주어 전쟁 종식에 도움이 될지, 그리고 EU의 에너지 전환 정책을 더 가속화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이번 러시아 에너지 수입 제재를 보면서 에너지의 93%를 수입하는 우리나라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에너지 절대 빈국인 우리는 어떤 에너지 정책을 펴야 할까? 러시아 에너지 수입 제재로 국제 유가가 요동치면서 벌써 유가와 각종 원자재가 폭등 영향이 우리 실생활까지 파고들기 시작했다. 70년대의 석유 파동을 거론하기까지 한다. 우리의 에너지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 같다. 우리도 기후 변화 문제를 계기로 2050년 탄소 중립 목표를 선언하고 대외 의존도가 높은 화석 에너지를 줄이고 신재생 에너지로 전환하면서 에너지 자립도를 높일 에너지 정책을 세웠다. 그러나 우리의 에너지 정책은 논란이 많고 정책적 일관성도 부족하여 신뢰하기가 어려운 형편이다. 예를 들어, 신재생 에너지는 완성된 기술이 아니기에 많은 기술적 개발과 시행착오가 필요하므로 이에 대한 국민적 이해와 합의가 중요한데, 그런 과정이 별로 없다. 무엇보다 에너지 절대 빈곤 국가에서 벗어날 비전과 목표를 잘 제시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우리도 땅이 넓은 나라에 우리 기술과 자본으로 많은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소를 세워 전기를 생산하고 그 전기로 물에서 수소를 분해하여 그 수소를 국내로 가져와 에너지로 써서 에너지 자립도가 높은 국가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하나님은 우리로 에너지가 전무한 나라에 태어나 살게 하셨다. 우리 시대에 에너지는 의식주만큼 필수적인 것으므로 에너지 문제를 푸는 것은 국가의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이다. 이 나라에 사는 신자들도 관심을 가지고 힘쓸 일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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