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정당 공천의 제한 조치가 필요하다. 전국 선거와 지방 선거를 나누는 게 한 방법이다. 정당 공천은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와 같은 헌법 기관의 전국 선거에서만 가능하게 하자. 지방 선거에도 정당들이 후보를 낼 수 있지만, 후보자 공천을 명분으로 후보자와 당 사이에 금전과 이권을 거래하는 행위는 금지된다. 정당의 횡포를 제어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다. (본문 중)

백종국 (경상국립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8회 지방 선거 유감

 

올해는 정치의 해이다. 3월에 20대 대통령 선거가, 6월에는 8회 지방 선거가 있었다. 대통령을 포함하여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를 이끌어갈 4천 2백여 명의 대표자들을 선출했다. 앞으로 몇 년 동안은 이분들이 우리를 이끌어 갈 것이다. 우리는 한 표라도 많이 얻는 사람을 선출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니 선거 기간 중에는 격렬히 반대했던 사람일지라도 일단 선출되었으면 ‘우리’의 대표로 인정해야 한다. 승자에게는 축하를, 패자에게는 위로를 보낸다.

 

아쉽게도 제8회 지방 선거는 우리에게 한국의 지방 정치가 중앙 정치의 들러리로 전락하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여기에는 한국의 정당들이 큰 역할을 했다. 각 정당의 이해타산이 민주정치라는 정당 본연의 목표를 훼손하고 있었다. 정당이라는 정치의 매개자가 정치의 본질을 휘두르고 있다. 개 꼬리가 개를 흔들고 있는 셈이다.

 

불법으로 진행된 선거구 획정이 한 예이다. 2018년 헌법재판소는 인구 비례에 알맞은 선거구 재획정을 판시했었다. 국회는 무려 4년을 허비한 끝에 지방 선거를 한 달 반 남겨둔 2022년 4월에서야 선거구 획정을 마무리 지었다. 어떤 선거구에서 누가 출마하고 누구를 찍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선거가 진행되었다. 광역의원 선거구와 지방의원 총정수는 선거일 120일 전에 확정하도록 규정한 법률을 어긴 불법 행위이다. 정당의 이해타산 때문이었다.

 

무투표 당선자의 급증이 또 다른 예이다. 8회 지방 선거의 무투표 당선자는 무려 509명으로 7회의 89명에 비하면 5배를 넘고 있다. 양대 정당의 나눠먹기 때문이다. 무투표 당선된 충청권 4개 시・도 지역구 기초의원의 60%가 전과자라는 보도가 있다. 정당의 횡포로 인해 유권자들이 미처 선택할 틈도 없이 전과자들이 우리의 대표자가 되고 있다.

 

중도 사퇴는 민주주의의 적이다. 이번에 7명의 국회의원이 지방 선거를 위해 국회의원직을 사임했다. 이는 해당 선출직에 나설 때 지역구민들에게 한 공적 약속을 어기는 행위이다. 또한 무려 280억 원 가량의 혈세가 보궐 선거 비용으로 낭비되었다. 지방 선거의 판세를 유리하게 이끌어 보려는 정당들의 이해타산이 빚어낸 촌극이다. 공무담임권1) 주장은 터무니없는 견강부회이다. 우리가 아무 때나 쉬를 할 자유가 있지만 아무 데서나 쉬를 하는 게 아니지 않는가.

 

혐오의 정치: 정당정치인가 당파싸움인가

 

정당들의 도 넘은 이전투구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피로도가 심해지고 혐오의 정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자칫하면 파시즘으로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 2022년의 양대 선거에서 후보자들은 자신의 정책으로 유권자를 설득하기보다는 상대방에 대한 혐오를 부추김으로써 반사적 이익을 얻으려는 전략을 사용했다. 과거의 업적과 미래의 비전이 아니라 혐오를 유발하는 이미지와 선전술로 상대방을 덧씌우고 있었다. 민주 선거가 합리성에 근거를 둔 근대적 정당들의 경쟁이 아니라 극히 감정적이고 몰상식한 방식에 의한 당파들의 싸움으로 변질되고 있었다. 이는 마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서도 상복 입는 문제로 서로 죽이고 죽고 했던 조선왕조의 어리석음과 유사하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자유가 아니라 방종, 포용이 아니라 혐오에 기초를 둔 정치가 횡행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2021년 국민의 70%가 혐오 표현을 겪은 바 있는데, 지난해에 비하면 6%가 증가한 것이다. 바이마르공화국을 붕괴시킨 나치의 혐오 캠페인 전략에서 잘 드러나듯이 혐오 캠페인의 대상은 언제나 사회적 약자를 향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결국은 사회적 약자만의 파멸이 아니라 그 공동체 전체의 파멸로 보응을 받게 되어 있다.

 

대의 정치의 당사자인 정당들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우리나라 정당법에서 정당은 “국민의 이익을 위하여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에 참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국민의 자발적 조직”이다. 그러나 한국리서치의 2021년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88%가 정당의 역할에 불만족이라 답하고 있다. 그 이유로서 응답자의 71%가 정당이 “국민의 이익”이 아니라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라 말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정당들에만 정치를 맡길 수 없는 때이다.

 

시민들의 직접적인 정치 참여를 늘리는 참여 민주주의가 강화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고등교육 수준이 높고 전자정부 체계가 잘 발달되어 있다. 대학 진학률과 고등교육 이수율이 단연코 세계 1위이며 디지털 정부 평가에서도 1,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시민단체 활동과 SNS의 발달로 미루어 보아도 한국 시민들의 직접적인 정치 참여 가능성을 잘 알 수 있다. 세계에서 한국은 참여 민주주의 실행에 가장 적합한 나라이다.

 

 

 

우선 정당 정치의 개선을

 

우선 정당 공천의 제한 조치가 필요하다. 전국 선거와 지방 선거를 나누는 게 한 방법이다. 정당 공천은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와 같은 헌법 기관의 전국 선거에서만 가능하게 하자. 지방 선거에도 정당들이 후보를 낼 수 있지만, 후보자 공천을 명분으로 후보자와 당 사이에 금전과 이권을 거래하는 행위는 금지된다. 정당의 횡포를 제어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다.

 

정당 설립 기준을 간소화해야 한다. 현행 정당법은 5개 이상의 시도당을 가져야 하는 전국 정당만을 정당으로 인정하고 있다. 수도권 중심의 낙후된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역 정당을 인정하여 전국 정당과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 말로는 지방 선거가 지역 주민의 축제라고 한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보았듯이 서울에 똬리를 틀고 있는 정치 모사꾼들이 낙점한 후보를 지역 주민이 억지로 떠맡는 노릇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정당 보조금을 공정하게 배분해야 한다. 교섭단체 몫을 먼저 배분하는 현재의 특권적 정당 보조금 체계는 군사독재의 잔재이다. 현재 국회 의석수가 1인 정당과 171석인 정당의 경우 의석수 비율은 1:171인데, 정당 보조금 비율은 1:1177이다. 웃기는 일이다. 국고의 정당 보조금은 마땅히 정당의 총득표수에 비례하여 지출해야 한다. 각자에게 그의 것을 주는 게 정의가 아니겠는가.

 

중도 사퇴로 인한 임기 중단은 비윤리적이며 정치 경제적 비용을 초래하고 있다. 윤리성 여부는 유권자가 판단할 일이지만 발생한 비용은 사태 유발자가 담당해야 한다. 따라서 여타 선출직에 출마하기 위해 중도 사퇴하는 사람은 현 직책의 보궐선거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정당의 전략적 필요에 의해 발생한 일이라면 정당이 대납하는 게 마땅하다.

 

지방 의회에서는 대선거구제를 채택하는 게 바람직하다. 2인 선거구제는 양대 정당의 독점 체계 존속을 의미한다. 3인 선거구도 이와 유사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어있다. 4인 이상의 대선거구를 채택하여 지방정치의 양대 정당 독점을 막고 다양한 정치세력이 성장하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대선거구제는 헌법재판소가 우려했던 “표의 등가성” 문제도 해결해 준다.

 

정당의 횡포를 막고 유권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손쉬운 방법이 있다. 투표용지에 “해당자 없음”을 추가하면 된다. 후보자들이 기호 1번에서 6번까지 있으면 7번이 “해당자 없음”이다. 만일 “해당자 없음”이 1위가 되면 해당 선거구는 공석이 되어야 한다. 대선거구제일 경우 “해당자 없음” 표수 이하의 후보자는 당선될 수 없다. 직접민주주의가 충분히 가능한 시대에 구태여 무자격자를 대표자로 선출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결국은 시민의 책임

 

만일 누군가 여러분에게 정치적 혼란 때문에 현 정당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는 무지하거나 뻔뻔한 사람이다. 현 정당 체제가 바로 그 혼란의 원인이다. 물론 어떤 제도라도 완벽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현 정당 체제가 유발하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정치적 위험이 관찰됨에도 불구하고 현 체제의 유지를 고집한다면 그 의도를 의심하는 게 합당하다.

 

직접민주주의는 이미 우리 문 앞에 와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제도 정비가 마무리된 주민조례발안제와 주민소환제가 대표적 사례이다. 주민조례발안은 주민들이 정책을 제안할 수 있는 방법이고 주민소환은 주민의 기대를 저버린 선출 공직자를 해임하는 방식이다. 도시 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다. 필자가 사는 진주시를 예로 들면, 정책 제안은 4,182명의 서명으로, 대표자 소환은 43,367명의 서명으로, 진주시 가호동 경우 2,892명의 서명으로 시의원을 주민투표에 회부할 수 있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어떤 나라의 정치 수준은 그 나라 국민들의 수준이다. 국민들이 가짜뉴스에 쉽게 현혹당하고 혐오의 정치에 쉽게 휘둘린다면, 그 나라의 민주주의 정착은 요원하다. 국민들로 하여금 민주주의 피로감을 느끼게 만들려는 자들의 작전에 넘어가면, 그다음에 오는 것은 파시스트 독재와 공동체의 파멸이다. 이 파시스트들은 권력을 오롯이 유지하기 위해 독재를 선호하고,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국내외에 적을 양산하며, 마침내 감당할 수 없는 전쟁을 유발시켜 국민과 함께 파멸하게 된다.

 

지금 우리 앞에는 우리의 미래를 향한 선택들이 놓여있다. 정치학자로서는 우리 시민들이 좋은 방안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헤매는 모습이 안타깝다. 그리스도인으로서는 하나님의 공의를 구현할 기회를 놓치게 될까 봐 두렵고, 그래서 그의 진노를 초래하게 될까 봐 더욱 두렵다. 우리 모두 함께 힘을 내보자.

 


1) 국민 누구나 공무원이 될 수 있는 권리(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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