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사람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수많은 경험의 스펙트럼이 단순화되고 명료화되어 자신과 상대를 이해하는 방법이 간소화된다면 더 할 나위 없이 감사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비전문가들이 편리하게 정보를 얻게 한다는 측면에서 심리 검사가 남용되는 것은 심히 염려스러운 일이다. 모든 심리 검사에는 인간 이해를 돕는 유익함이 있지만 그 결과를 사용하고 해석하는 데에 책임이 따른다. (본문 중)

곽은진(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상담학 교수, 기윤실청년상담센터WITH 공동소장)

 

며칠 전, 점심 약속 때문에 사무실이 밀집한 광화문에서 어느 빌딩의 지하 식당가를 돌다가 복도에서 한 무리 젊은이들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식당의 순번을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직장 동료들 같았고 서로를 보며, “김 대리님, P지요? 과장님 J이고….” “그게 뭐야? 다른 사람이 나 E라는데?” “아닌 것 같은데요, 자기는 뭐야?”라며 대화를 이어갔고, 또 다른 직원에게도 유형을 물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서로의 대화 주제가 성격 유형 검사인 MBTI로 이어지고 있었다. MBTI를 가르치는 강사이기도 한 나로서는 이들의 대화가 무엇을 말하는지 쉽게 알아차렸다. 그리고 같은 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또 한 무리의, 보다 어린 MBTI 열렬 관심자들을 만났다. 하굣길의 한 고등학생이 친구들에게, 자신은 무조건 ‘너 어디 살아?’와 ‘MBTI 뭐야?’ 두 가지를 묻는다고 하면서, 옆 친구들에게도 그 두 질문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시간 차를 두고 보게 된 두 상황에서 순간이지만 당황스러웠고 놀라웠다. 얼마 전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MBTI를 다루는 것도 보았던 터라, 잠시 이 상황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당황스러웠던 것은, MBTI는 융 심리학 이론에 근거한 것이며 분명한 전문적 지식을 가지고 이해해야 하는 쉽지 않은 영역인데, 그것을 일반인들이 염려스러울 정도로 간단히 해석하는 점이었다. 모바일 사이트에서 정보를 검색해 가며 거침없이 나누는 그들의 대화는 대학원에서 심리 검사를 가르치는 나로서는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시에, MBTI가 마치 ‘너 혈액형 뭐야?’라고 묻는 것처럼 쉽게 받아들여지고 적용될 만큼 대중화되고 보편화되었다는 점이 놀라웠다, 내가 MBTI 강사 자격을 얻은 지도 20여 년이 넘었으니, 시대에 맞게 연구진들이 노력하고 발전시킨 것 같아 반갑기도 했다.

 

심리 검사는 인간의 성격, 지능, 적성, 정서, 병리 등 다양한 심리적 특성들을 파악하고자 도구를 활용하여 측정하고 평가하는 과학적인 절차이다. 한 개인을 이해하기 위해 진단하고 평가하는 도구이면서 동시에 학문적 성격을 지닌다. 많은 심리 검사들 중 MBTI는, 실제 병리를 측정하거나 심리적 특성을 측정하는 검사 군에서 제외되기는 하지만, 성격 검사로 분류되고 상담 현장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검사이다. 나는 이 글에서 MBTI의 16가지 유형이 인간 유형을 모두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거나 한 개인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주장을 굳이 또 하려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검사는 한계가 있고 제한된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검사가 이렇게까지 대중화되고 확장 된 배경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이 검사가 나온 지 수십 년이 된 지금에 와서, 갑자기 이렇게 폭발적인 관심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관계 문제를 단순화하고 정보화하여 소통하고자 하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지 않았나 싶다. 흔히 MZ 세대라고 하는 지금의 젊은 층은 트렌드에 민감하고, 온라인을 통한 소통과 공통 주제 발견에 능하며, 즉각적 결과를 보여 주는 일에 집중한다. 이들은 인간관계에서도 시간을 들이고 갈등을 겪으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줄일 방법이 있다면 기꺼이 그 길을 선택할 것이다. 대인 관계에서 상대를 힘들고 어렵게 알아 가며 정서 에너지를 낭비하기보다는, 쉽게 상대를 규정할 수 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효율적인 일이 어디 있겠는가!

 

둘째로,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인간관계 경험은 대면을 통한 직접 경험의 시간을 대신할 다른 신뢰할 만한 방법을 찾게 했을 것이다. 비대면 상태에서 상대를 파악하고 정보를 얻고 이해할 수 있는 명료한 정보 말이다. 그것도 심리학의 이론에 따른 과학적 근거를 갖춘 도구라면 신뢰도 역시 높아질 수 있었을 것이다.

 

셋째로,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시대에 MBTI가 갖는 코드나 유형 분류가 대중에게 다가가기 쉽고 이해하기 편하게 작동했을 것이다. MBTI의 분류 기호는 젊은이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자신을 보도록 할 뿐 아니라, 타인의 성격에 대해서도 관심과 흥미를 불러일으켜 알아보고자 하는 동기를 제공한다.

 

이렇게 MBTI는 비대면 시대에 적절한 디지털 정보적 성격을 띄고 간편한 유형 분류만으로도 대면하지 못한 상대를 마치 만나고 알고 있는 것처럼 느끼도록 해 주었다. 디지털 정보 활용에 최적화되어 있는 신세대에게 이 방법은 이미 상대를 이해하는 데 편하고 익숙한 수단이 되고 있다.

 

코로나는 우리 삶의 많은 부분에 변화를 일으켰다. 인간 이해의 측면에서도 전문가 영역으로만 여겼던 심리 검사가 보편적 도구로 사용될 만큼 말이다. 인간은 소통하는 존재이다. 소통의 방법 측면에서 인간은 지금까지 대면을 통해 상대를 이해하고 아는 데 많은 에너지를 들이며 정보를 얻어 왔다. 대면 중심의 아날로그 시대에는 상대를 직접 만나 알아가는 과정이 중요했고, 관계를 통해 갈등을 최소화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든지 아니면 관계의 욕구를 충족해 왔다. 문화와 문명은 늘 변화하며 발달하는데, 이 시대는 인간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방법도 과학적 정보를 통해 단순 코드화하여 접근하려고 하는 변화가 일어나는 시대이다.

 

물론 사람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수많은 경험의 스펙트럼이 단순화되고 명료화되어 자신과 상대를 이해하는 방법이 간소화된다면 더 할 나위 없이 감사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비전문가들이 편리하게 정보를 얻게 한다는 측면에서 심리 검사가 남용되는 것은 심히 염려스러운 일이다. 모든 심리 검사에는 인간 이해를 돕는 유익함이 있지만 그 결과를 사용하고 해석하는 데에 책임이 따른다. 잘못 사용될 경우 한 개인에 대한 왜곡과 오류를 낳기 때문이다. MBTI가 강조하는 개인의 선호도도 개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오해되거나, 남에게 보이기 위해 스스로를 속이는 도구로 오용되기 쉽다.

 

각 사람은 우리가 아는 그 어떤 존재보다 창의적이고 독특하며 무한한 잠재력과 가능성을 지닌다. 심리 검사라는 도구를 통해 사람의 한 부분을 이해하는 통로를 마련할 수는 있어도 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심리 검사가 오용되어 사람에게 낙인을 찍는 수단이 된다면, 우리는 인간이 갖는 무한한 변화 가능성과 미래의 잠재력을 무시하고 제한해 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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