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 영화가 주는 기쁨은 평소 접하기 쉽지 않은 ‘비주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온다. 살다 보면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 만나기가 쉽고 나와 다른 삶을 살거나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깊게 들어볼 기회가 많지 않다. 그래서 돌아보면 내가 경험한 다양한 삶의 8할은 다양성 영화를 통해서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본문 중)

최주리(기윤실 청년활동가)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점차 해제되면서 영화관에는 다시금 많은 관객들이 몰리고 있다. 스크린이 크고 시설이 좋기로 유명한 어느 영화관에 걸린 어느 영화의 인기 있는 포맷(4DX, 스크린X, 아이맥스, 돌비시네마 등)은 2만 원이 넘는 입장료에도 불구하고 평일 새벽이나 밤늦은 시간대까지 매진이 되기도 할 정도였다. 코로나 시국에 타격을 입었던 영화관에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내가 주로 찾는 영화와 영화관은 늘 그렇듯 찾는 사람이 많지 않다. 내가 주로 찾는 영화는 ‘다양성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만들어진 목적에 따라 크게 ‘상업 영화’와 ‘다양성 영화’로 구분할 수 있다. 상업 영화는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영화로, 제작비나 매출액이 막대한 ‘블록버스터 영화’(전 세계 흥행 수입 4억 달러 이상의 영화)나 텐트를 지지해주는 기둥처럼 흥행 성공이 보장된 유명 감독, 배우, 거대 자본이 투입된 영화를 뜻하는 ‘텐트폴 영화’를 비롯해서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고 자주 접하는 영화의 대부분이 상업 영화에 해당한다. 한편, 다양성 영화는 이윤 추구보다는 창작자의 의도 등이 우선시되는 영화인데, 영화진흥위원회는 “극장에서 쉽게 관람하기 어려운, 주류 장르 영화가 아닌 다양한 국적, 장르, 저예산 등의 소수성을 표방하는 범주를 담고 있는” 영화로 설명한다.1) 여기에는 독립 영화, 예술 영화, 다큐멘터리 영화 등이 포함된다. 상업 영화와 다양성 영화는 일반적으로 서로 반대되는 개념으로 볼 수 있지만, 정의와 구분이 확실한 것은 아니다. 투자자나 제작사의 자본에 크게 의존하지 않고 만드는 영화를 ‘독립 영화’라고 부르지만,2) 다양성 영화는 적은 예산으로 만들어진 영화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예술 영화이면서 큰 흥행을 거둔 영화를 ‘아트버스터’(아트+블록버스터)라고 하는데, 그중 하나인 제작비 260억 원의 <비긴 어게인>(2014)은 예술 영화로 분류되었다.3)

 

물론 이러한 분류가 영화의 의미와 가치 등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아니다. 관객들이 영화를 보며 만나게 되는 매력은 영화의 개수만큼, 관객의 숫자만큼 다채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다양성 영화에게 더 많은 애정과 관심을 보이는 것은 다양성 영화만이 줄 수 있는 독특한 매력들을 발견하는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가버나움> 스틸컷.

 

다양성 영화가 주는 기쁨은 평소 접하기 쉽지 않은 ‘비주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온다. 살다 보면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 만나기가 쉽고 나와 다른 삶을 살거나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깊게 들어볼 기회가 많지 않다. 그래서 돌아보면 내가 경험한 다양한 삶의 8할은 다양성 영화를 통해서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소년 아메드>(2019)를 통해 순수한 신앙과 맹목적인 믿음의 차이에 대해 고민했고, <다시 태어나도 우리>(2016)를 통해 티베트 불교의 살아 있는 환생한 부처인 린포체가 되기 위해 어린아이가 이별과 고난, 이해되지 않는 고통을 겪어내는 것을 알게 되었고, 주인을 떠난 반려견의 마음을 <환상의 마로나>(2019)를 보며 알 수 있었다. 또한 가난 속에서 태어나 죽음의 위협과 마주하는 어린아이들의 마음을 <가버나움>(2018)과 <호랑이는 겁도 없지>(2017), <천국의 아이들>(1997)을 보며 경험했고, 성소수자 가족들의 삶은 <너에게 가는 길>(2021)을 통해서, 임신 중절을 선택하거나 하지 않는 여성들의 마음을 <레벤느망>(2021)과 <십개월의 미래>(2020)로 들여다보았고, <성혜의 나라>(2018), <혼자 사는 사람들>(2021)을 보며 청년의 외롭고 부서질 것만 같은 삶을 보았으며, 장애를 가진 이들의 삶을 <블랙>(2005), <스탠바이 웬디>(2017)를 통해 경험해 볼 수 있었다.

 

상업적 수익성이 높지 않기 때문에 다양성 영화는 일반적으로 관객이 2만 명이 넘으면 선방했다고 보고, 5-10만 명이 넘으면 매우 흥행했다고 본다. 시장이 워낙 작기 때문에 오히려 다양성 영화를 만드는 이들은 비교적 하고 싶은 말이 분명하고 이를 자유롭게 표현한다. 그래서 재미와 볼거리가 확실한 상업 영화들도 좋지만, 영화의 만듦새가 투박할지라도 날카롭고 솔직함이 빛나는 메시지를 전하는 다양성 영화들을 찾아다니고 발견해내는 즐거움도 그에 못지않다.

 

나에게 다양성 영화는 유명인의 멋진 영웅담보다는 이웃에게 듣는 사소하고 소소한 이야기에 가깝다. 그러한 영화들을 통해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타인의 삶을 경험하고, 생각을 듣고, 보지 못했던 삶의 이면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다양성 영화를 본다는 것은 세상에 울려 퍼지는 많은 목소리들 속에서 작지만 용기 있게 울리는 그 작은 목소리들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1) 영화진흥위원회, “다양성 영화란?

2) 우리나라 독립 영화 역대 흥행 1위는 480만 명의 관객을 모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2014)이다.

3) 참고로 독립 영화와 예술 영화는 영화진흥위원회에 각각 신청을 하면 심사 기준에 따라 분류해주며, 분류된 후에 영화진흥위원회의 해당 지원 사업에 지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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