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라는 용어는 19세기 중엽에 블랑키나 마르크스와 같은 사회주의자들이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폄하하기 위해 만든 조어이다. 남의 노동을 착취해야 생존하는 자본가들의 체제라는 점에서 욕설이나 다름없다. 때문에 자유주의자들은 자유시장경제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자본주의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자유시장경제의 우수성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자본주의를 찬양하는 모순적 모습은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본문 중)

백종국 (경상국립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수입 언어의 바벨탑

 

한국의 정치 용어는 마치 심판 이후의 바벨탑과 같다. 같은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나 뜻은 서로 다르다. 심각한 소통의 장애가 발생하고 있으나 용케도 서로 한 탑 안에서 살고 있다.

 

한국의 정치 용어가 바벨탑처럼 자주 소통 장애에 처하게 되는 데는 역사적 이유가 있다. 용어의 대부분이 수입된 것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서구의 원어에서 일본식 한자어로, 그리고 다시 한국어로 번역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중역(重譯)의 문제에 봉착해 있다. 대표적 사례로 ‘nation’의 번역을 들 수 있다. 일본의 민족(民族)이란 한자어 조어 번역이 그대로 수입되어 우리말로 정착했다. 이 번역을 쓰면 혈통에 따른 정체성이 강조되어 결국 다종족 국가들의 민족주의는 이해하기 힘들게 된다. 이러한 점을 무시하고 일본식 한자어로 파자(破字) 놀이를 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참 난감한 일이다.

 

용어의 토착화 과정에서 발생한 의도적 뒤틀림으로 용어의 생성 과정과 단절되는 사례들도 발견되고 있다. ‘humanism’이 대표적이다.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왔을 때 주로 인문주의(人文主義) 혹은 인도주의(人道主義)라는 번역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humanism을 “인본주의”(人本主義)로 번역하는 예는 일찍이 중국의 사회주의 자료에서 자주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중세의 상황을 “신본주의”(神本主義)라는 조어로 공격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일부 개신교 근본주의자들이 자신의 신앙을 신본주의라 지칭하면서 humanism을 그 대립항인 인본주의(人本主義)라 부르며 적대시하고 있다. 자신들을 중세적이고 반인도주의적인 기독교인들로 낙인찍고 있는 셈이다. 이는 1990년대 말에 운동권의 PD 계열이 NL 계열을 공격하기 위해 만들어낸 ‘종북’(從北)이란 신조어의 운명과 유사하다. 이 용어는 현재 보수 진영에서 자신의 적대 세력을 공격하는 용어로 광범위하게 오용되고 있다.

 

정치 용어의 혼란 피하기

 

정치 용어의 혼란을 피하는 방법 중 하나는 각 용어의 대립 항을 정리해 보는 일이다. 정치 체제를 지배자의 수에 따라 지배자가 1인이면 왕정, 몇 사람이면 귀족정, 시민들 다수면 민주정으로 나누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방법이 대표적이다.

 

민주정의 반대는 독재정이다. 한국 개신교 내에서는 가끔 민주주의의 반대로 신주주의라는 이상한 조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자신의 독재 혹은 무지를 신의 이름으로 미화하려는 의도일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로 정파의 특성에 따라 좌파, 중도파, 우파라는 용어가 생겼지만, 진보, 중도, 보수라는 정치 성향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좌파 중에도 보수가 있을 수 있고 우파 중에도 진보가 있을 수 있다. 자유주의라는 용어는 매우 인기가 좋아서 정치 체제의 분류에서 권위주의의 대립 항으로 사용할 때도 있고, 경제 이데올로기로서 자본주의를 의미할 때도 있다.

 

<정치 용어의 대립 항>

민주정(polity)

귀족정(aristocracy)

왕정(monarchy)

공화정(republic)

왕정(monarchy)

민주정(democracy)

독재정(dictatorship)

좌파(leftist)

중도파(centrist)

우파(rightist)

진보(progressive)

중도(middle)

보수(conservative)

자유주의(liberalism)

권위주의(authoritarianism)

자유주의(liberalism)

민족주의(nationalism)

사회주의(socialism)

자본주의(capitalism)

혼합 경제(mixed economy)

사회주의(socialism)

 

 

가장 복잡한 것은 정치경제적 이데올로기이다. 이데올로기란 정치적 목적을 위해 동원되는 허위 의식인데 크게 자유주의(아담 스미스), 민족주의(프리드리히 리스트), 사회주의(칼 마르크스)로 분류할 수 있다. 이들의 이데올로기가 허위 의식인 이유는 산업혁명으로 인간의 능력이 한껏 고무되던 시기에 개발되어 자신의 주장을 따르기만 하면 온 세계의 평화와 풍요가 동시에 가능하다는 실현 불가능한 비전을 선포한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현실에서는 많은 시행착오가 발생하기에 이들의 주장과 정책을 혼용하는 게 최근의 추세이다.

 

자본주의라는 용어는 19세기 중엽에 블랑키나 마르크스와 같은 사회주의자들이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폄하하기 위해 만든 조어이다. 남의 노동을 착취해야 생존하는 자본가들의 체제라는 점에서 욕설이나 다름없다. 때문에 자유주의자들은 자유시장경제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자본주의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자유시장경제의 우수성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자본주의를 찬양하는 모순적 모습은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경제 체제로서 자본주의의 대립 항은 사회주의이지만 현실의 국가에서는 이 둘을 실용적으로 섞어 쓰는 혼합 경제를 채택하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한국의 경제 체제가 대표적인 혼합 경제라 여기고 있다.

 

 

민주정을 운영하는 방법

 

민주정(民主政) 혹은 민주주의(民主主義)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시대에 대세가 되었다. 심지어 분명히 독재정을 운영하는 나라임에도 이 명칭을 사용하여 혼란을 초래하고 있는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나 콩고민주공화국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민주주의란, 대한민국 헌법 1조 2항에서 선언한 바와 같이, 국민이 주권을 가진 체제이다. 대체로 주권재민과, 국가 권력의 절차와 제한을 명기한 기본법인 헌법을 가지는 헌정주의(憲政主義)와, 입법-사법-행정의 형태로 권력을 분립하는 삼권분립(三權分立)을 구비하고 있다.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방법에 따라 간접 민주주의와 직접 민주주의로 분류할 수 있다. 간접 민주주의는 대의 민주주의라고도 하는데 각종 정치 단위에서 대표자를 선출하여 주권자들의 의사를 실천하게 한다는 뜻이다. 직접 민주주의를 참여 민주주의라고도 하며 국민들이 주요 국가적 사항을 직접 결정하는 국민 투표, 구체적인 정책을 직접 제안하는 국민 발안, 그리고 선출된 대표자가 주권자의 의사 반영에 실패하는 경우 그 직을 거두는 국민 소환 등이 대표적인 제도로 활용되고 있다. 전자 체계의 발달로 말미암아 직접 민주주의의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 형태에 따른 분류로는 단일 정부제(한국), 연방 정부제(미국), 국가 연합제(러시아) 등이 있다. 정부 구성은 좀 더 복잡하다.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대통령제(미국), 다수당 국회의원들 중심으로 내각을 구성하는 의원내각제(영국), 이 두 제도를 결합한 이원집정제(프랑스), 만장일치와 임무 순환을 기초로 하는 집단합의제(스위스) 등이 대표적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국민의 대표자들을 선출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우선 선거구 획정의 방법에 따라 해당 선거구에서 1인만 뽑는 소선거구제, 2∽3인을 뽑는 중선거구제, 4인 이상을 뽑는 대선거구제로 분류된다. 현실에서는 선거구의 사정에 따라 숫자가 달라지기 때문에 2인 이상을 뽑는 중대선거구제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유권자의 선택 방식에 따라, 무조건 1표라도 많으면 이기는 단순다수결제, 먼저 선거인단을 뽑고 이 선거인단이 모여 최종 투표를 하는 선거인단제, 후보들이 3명 이상일 경우 최종 후보 2명을 두고 한 번 더 투표하는 결선투표제, 후보자 개인이 아니라 후보자의 정당을 선택하는 비례대표제, 아예 처음부터 자신이 선호하는 후보들에 순위를 매기는 선호투표제 등이 활용되고 있다. “해당자 없음”의 기표 방식은 선호투표제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대의제 민주주의를 돕는 기구로 의회(국회)와 정당을 들 수 있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은 납세와 입법을 다루는 국민 대표자 기관, 즉, 의회를 설치하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단일한 합의체를 가지면 단원제, 상·하원으로 나누어 업무를 분장하면 양원제라 한다. 현대 정당들은 법제화되었다는 점에서 과거 역사 속 당파들과 다르고, 국가 권력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시민 단체와 다르다. 이념 지향성이 강하면 이념 정당, 권력 획득이 주요 관심사면 포괄 정당이라 한다. 북한처럼 한 정당만이 권력을 독점하면 일당 독재라 하고, 한국처럼 두 정당이 번갈아 가며 집권하면 양당제, 독일처럼 여러 정당이 권력을 분점하면 다당제, 그리고 일본처럼 한 정당이 장기 집권하고 어쩌다 한 번 다른 당도 권력을 잡는 경우는 일점반정당제라 부르고 있다. 향후 직접 민주주의가 더욱 발달했을 때 이러한 기구들이 여전히 유용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용어와 문화

 

정치 용어는 그 사회의 정치·문화적 맥락에서 이해되기 마련이다. 원어의 본 용법이야 어찌 되었든 토착화의 과정을 통해 용어의 내용이 재구성되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인들은 해방 이후 주로 교과서를 통해 민주주의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교과서 밖에서는 30여 년 동안 개인/군사 독재가 지속되었다. 당연히 “군사 독재자가 정의 사회 구현을 선언하는” 식의 극심한 문화적 오용과 소통 부재가 발생했다. 이제 민주정의 시대로 접어들었으니 더욱 치열하게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문화적 기반을 다져서 우리 자손들에게 안정된 민주 체제를 물려 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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