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공동체가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 가장 당혹스러운 순간은, 성폭력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매우 크다는 것을 발견할 때이다. 단순하게는 특정한 언동이 성폭력인가 아닌가를 규정하는 문제에서부터 시작해서, 이후 성폭력 사건의 발생 원인에 대한 진단에 이르기까지 인식의 차이는 계속 드러난다. (본문 중)

박신원(기독교반성폭력 센터)

 

필자가 일하는 ‘기독교반성폭력센터’의 이름을 소개할 때마다 상대편 얼굴에서는 묘한 불편함이 떠오르는 것을 보게 된다. 기독교와 성폭력, 얼마나 부자연스럽고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가? 그 모순적인 단어의 연결에서 오는 불쾌감은 시간이 지나도 도저히 익숙해질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현실에는 이런 모순적인 일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우리 센터는 2018년부터 2021년까지 260건 이상의 교회 성폭력 사건을 접수하였으며, 미디어와 언론에서도 계속해서 교회 성폭력 사건이 폭로되고 있다. ‘우리 교회에서 설마…’, ‘그분이 그럴 리가…’, ‘나는 절대로…’라는 확신이 깨어질 때마다 우리는 절망하게 되며, 순수했던 우리의 신앙은 조금씩 더 냉소적으로 변해 간다.

 

기독교 내의 성폭력 사건을 마주할 때, 우리가 쉽게 택하는 길은 둘 중 하나를 버리는 것이다. ‘교회가 그렇지 뭐’라며 기독교에 환멸을 느끼거나, 성폭력을 가해자와 피해자 개인의 문제로 돌리며 사건 자체를 부인함으로써 충격을 최소화하려 한다. 그러나 이미 일어난 성폭력 사건을 회피하고 감춘다고 해서 교회의 순결함이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공동체가 함께 그 문제를 직면하고, 아파하며, 성숙하게 대처하는 과정에서 교회는 더욱 온전함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교회 공동체가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 가장 당혹스러운 순간은, 성폭력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매우 크다는 것을 발견할 때이다. 단순하게는 특정한 언동이 성폭력인가 아닌가를 규정하는 문제에서부터 시작해서, 이후 성폭력 사건의 발생 원인에 대한 진단에 이르기까지 인식의 차이는 계속 드러난다. 『개신교 성인지 감수성 여론 조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성폭력의 발생 원인에 대해, 여성은 ‘남성 중심의 문화나 조직 내에서의 여성의 낮은 지위’를 선택한 비율이 높은 반면, 남성은 ‘피해를 당한 사람의 개인적인 태도’를 발생 원인으로 보는 비율이 높았다.1) 원인에 대한 이런 인식 차이는 자연스럽게 예방과 사후 대처에 대한 의견 차이로 이어진다. 성폭력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비단 성별뿐만 아니라 세대, 개인의 경험, 폭력과 성에 대한 감수성 등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며, 공동체 내에서 사건의 조사와 심의, 징계와 사후 대처가 이루어지는 해결 과정 내내 공동체에 갈등과 분열을 유발한다. 공동체 안에서 인식의 차이를 좁히고 해결의 방향을 잡지 못하게 되면, 갈등과 2차 피해만 반복하다가 결국 자체 해결은 불가능해지고 ‘법대로 가자’만 남게 된다.

 

 

성폭력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 먼저 현행법 기준의 성폭력의 정의, 구성 요건과 적용법의 범위 등을 살펴보자. 성폭력은 여성 폭력, 젠더 폭력, 성범죄, 성적 괴롭힘 등의 용어와 혼용되어 사용되기도 하며, 성폭력에 해당하는 행위인지를 규정하는 범위 역시 다양하게 이해되고 있다. 성폭력은 성과 관련된 모든 폭력을 포함하는 포괄적 의미로도 사용되지만, 현행법에서는 성폭력과 성희롱을 아래와 같이 구분하여 정의하고 있다.

 

 

즉, 현행법에서 성희롱은 상대방이 느낀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형사 처벌 대상은 아니지만, 성폭력은 폭행, 협박, 위계, 위력 등을 구성 요건으로 하고 있고 형사 처벌의 대상이다.

 

그런데,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성폭력 사건은 진공과 같은 상태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 안에서만 일어난 문제는 아니다. 그들을 둘러싼 상황과 환경, 관계, 맥락 아래에서 일어난 사건이기에, 이러한 상황과 공동체의 특수성을 잘 고려하여야 사건의 진실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며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특히, 서로를 형제, 자매로 부르는 친밀함 때문에 쉽게 경계 침범이 일어날 수 있는 문화, 사랑·용서·화해 등의 신앙 교리로 고소나 공론화가 어려운 분위기, 목회자의 권력이 친절, 선의, 신앙심의 모습을 하고 있어 위력을 판단하고 경계하기 어려운 상황 등이 성폭력이 일어나는데 악용되지는 않았는지가 주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공동체적 해결 과정을 겪으며 많이 하는 말 중에 하나는, “교회가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이다. 피해자들은 공동체 안에서 성폭력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성폭력 사건에 못지않은 고통과 트라우마를 호소하기도 한다. 세상보다 높은 기준의 윤리를 가졌다는 교회가 차별과 폭력에 대해 세상의 법보다 더 둔감하고 무감한 모습을 보여 준다면, 그것을 경험하고 지켜보는 사람들이 교회는 과연 무엇인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교회에 성폭력이 존재한다는 것도 불편한 일이지만, 발생한 성폭력 문제를 공동체가 정의롭게 해결해 나가지 못한다는 것은 더욱 고통스러운 일이다. 반면, 교회 성폭력 사건을 지혜롭게 해결해 나가는 과정은 피해자뿐만 아니라 모든 구성원들이 공동체에 대해 안전감과 신뢰를 느끼게 해 준다. 또한 이런 경험을 통해 공동체의 윤리성과 신앙의 현주소를 확인하게 된다.

 


1) 2021년 본 센터가 지앤컴리서치와 함께 개신교인 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개신교 성인지 감수성 여론조사”에 따르면, ‘성희롱은 남성 중심의 문화 때문에 발생한다’라는 문항에 여성은 70.5%, 남성은 49.5%가 동의하였으며, ‘성희롱은 교회, 학교, 회사 등에서 여성의 지위가 낮기 때문에 일어난다’는 문항에 여성은 41.0%, 남성은 26.5%가 동의하였다. 반면, ‘성희롱은 피해를 당한 사람의 태도 때문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는 문항에 여성은 12.8%, 남성은 23.6%가 동의하였다. 기독교반성폭력센터, 『개신교 성인지 감수성 여론 조사 결과 발표』(2021. 11. 18), 7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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