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14년 만에 5개월 연속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2배 가까이 오른 원유와 천연가스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화석 연료 가격이 다시 내리기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미국이나 EU처럼 기후 위기도 해결하면서 장기적으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대책이 논의되면 좋겠다. (본문 중)

성영은(서울대학교 화학생물공학부 교수)

 

지난 8월 8일 폭우에 필자가 사는 28가구의 공동 주택도 지하 주차장이 잠겨 많은 차들이 폐차되는 일이 있었다. 다 함께 복구 작업을 하고 입주자 회의를 하면서 주민들 입에서 나온 키워드 중 하나가 ‘기후 위기’였다. 기후 위기라는 말이 이제 일상 언어가 된 것이다. 역대급 태풍 힌남노가 우리나라를 지나는 날, 필자가 속한 학회의 회의에서 기업 CEO 한 분이 기업들이 국제 추세에 따라 ESG(Environmental, Social, & Governance의 약자로 지속 가능 발전을 위한 환경, 사회, 투명 경영을 의미한다)와 같은 기후 위기 예방 대책을 쉴 새 없이 논의하지만 이미 늦은 것 같다는 발언을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엄청난 양의 화석 연료를 계속 사용하다가 결국 파멸에 이르고 말 것이라는 뜻이었다.

 

우리나라는 현재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면서 그 토대가 되는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강국이다. 그러나 국제 사회에서 그 위상에 맞는 책임 의식은 아직도 많이 부족한 것 같다. 기후 위기와 관련한 과학기술 정책에 국한해서 보면, 책임감 있는 지속적인 정책의 부재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지난 7월 5일 발표된 ‘새 정부 에너지 정책 방향’을 보면, 원전 건설 재개나 수명 연장으로 원전 비중을 30% 이상으로 올리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우리나라의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7% 정도로 OECD 국가 중에 꼴찌인데, 이에 대한 대책이나 비중 확대와 같은 언급은 없었다. 다수 언론들도 연일 해외 원전 재개와 수명 연장 사례나 태양광이나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하여 이 정책에 동조하는 듯 보였다. 다분히 이전 정부와의 차별화를 위한 정치적 태도인데, 이를 넘어서는 국가적 비전 제시와 국제적 책임의 부재는 무척 아쉽다.

 

 

8월 16일, 미국은 바이든 대통령의 서명으로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을 발효하였다. 국내 언론은 이 법에 대해서 보조금 축소로 전기차의 대미 수출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측면만 부각해서 보도했다. 그러나 사실 이 법의 주요 입법 목적은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한 포괄적인 지원 정책이다. 청정 신재생 에너지 산업 발전을 통해, 국제 사회에 약속한 대로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량 40% 감축을 달성하여 2005년 수준으로 되돌리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산업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미국 가계 소득을 안정시킨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풍력, 태양광 등 청정에너지 산업과 보급에 480조 원 정도의 예산을 투입한다는 내용을 담은 법이다. 이 법으로 전 세계 신재생 에너지 첨단 산업이나 기술이 미국으로 몰려들 것이다. 미국은 이런 법이나 정책을 통해 기후 위기라는 인류의 당면 과제에 책임 있는 태도를 취하면서 관련 산업에서 세계 최고의 선도 국가의 위치를 지키려는 것이다.

 

유럽연합(EU) 의회는 작년에 상정된 그린 택소노미(Taxonomy, 녹색분류체계)를 7월 6일 가결 처리했다. 11월 EU 상원에 해당하는 각료이사회에서 승인하면 내년 1월 1일부터 발효된다. 국내 주요 언론들은 이 법안에 대해 원전(원자력 발전)이 녹색분류체계에 포함된 사실만 부각하여 보도했다. 그러나 사실 이 법의 핵심 역시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한 정책 설정이라는 데 있다. 물론, 입법 과정에서 원전을 포함하느냐 마느냐는 치열한 논쟁거리였지만, 핵심은 신재생 에너지의 획기적 확대에 있다. 이 법으로 유럽의 신재생 에너지 비중은 더 급격히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원전이 포함된 건 사실이지만 과도기적 에너지로 승인되었고, 엄격한 기준과 각종 제약이 들어 있어 실제적으로 원전 확대는 쉽지 않게 되어 있다. 이 택소노미가 EU 의회를 통과한 며칠 뒤인 7월 13일, EU 의회 에너지 위원회는 2030년 신재생 에너지 비중을 45%로 올리는 신재생 에너지 지침(Renewable Energy Directive)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9월 14일 EU 의회의 승인을 받았다. 이 지침은 현재 EU 전체를 볼 때 22%인 신재생 에너지 비중을 2배 이상 늘리면서 이를 통해 2027년까지 러시아산 화석 연료 사용을 중단해도 EU의 에너지 수급에 문제가 없도록 한 정책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 에너지 공급에 문제가 생겨 에너지 가격이 폭등했다. 이로 인해 EU 국가 일부에서 원전 수명 연장 등을 거론하지만, 오히려 미국이나 EU는 더 크게 이 사태의 해결을 기후 위기와 결부하여 신재생 에너지 비중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방향으로 풀어 보려는 정책을 채택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14년 만에 5개월 연속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2배 가까이 오른 원유와 천연가스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화석 연료 가격이 다시 내리기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미국이나 EU처럼 기후 위기도 해결하면서 장기적으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대책이 논의되면 좋겠다. 경제 대국과 기술 강국의 위상에 맞는 일관성 있고 책임 있는 지속 가능한 정책을 세우면 좋겠다. 인류와 지구 환경을 지키는 일은 우리 기독교인들도 크게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이다. 우리 신자들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 정도의 부국이 되게 하신 이유를 생각하면서 이런 국가 정책 수립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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