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에 맞섰던 이들의 중요한 정체성은 설교자였다. 이 다섯 설교자는 현 상황을 진단하고, 말씀에 입각해 해석하며, 공동체가 서야 할 자리를 정의했다. 그들의 말은 행동의 근거이자, 원동력이었고, 행동을 관통하는 핵심이었다. (본문 중)

박예찬(IVP 편집자)

 

[책 소개] 디트리히 본회퍼 외 지음 | 딘 G. 스트라우드 엮음 | 『역사의 그늘에 서서』

감은사 | 2022년 8월 16일 | 256면 | 16,800원

 

저항하는 이야기는 순응하는 이야기보다 언제나 인상적이다. 일제에 저항한 독립운동가가 그렇고, 나치에 맞선 신학자가 그러하다. 그들은 불굴하는 정신으로 맹렬하게 부딪힌다. 그러나 저항한 자들을 ‘거침없이 돌진하는 투사’로만 여기는 것은 위험한데, 그들을 비현실적인 영웅으로 만들고 현실의 맥락에서 분리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절대 악과 싸우는 영웅’이라는 이미지는 선악이 혼재된 세상에서, 평범한 삶을 사는 이에게는 너무도 아득하다. 이 간극 때문에 저항하는 이들의 역사는 이내 대리 만족을 위한 수단에 머물고 만다.

 

우리에게는 분명 영웅 신화 말고 다른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들의 이야기에서 현실 가능성을 발견해야 하고, 오늘의 상황과 연결할 다리를 찾아야 한다. 이러한 지점에서 이 책은, 나치에 저항한 이들에게서 행동하는 투사가 아닌 다른 면모를 발견하도록 해 준다.

 

행동가가 아닌 설교자

 

행동은 늘 말보다 중요하게 여겨진다. 말은 가식을, 행동은 진심을 가리키는 말로 통용되곤 한다. 이 책의 설교자인 디트리히 본회퍼, 카를 바르트, 헬무트 골비처, 게르하르트 에벨링, 루돌프 불트만 역시 행동하는 자들이었다. 본회퍼는 히틀러 암살에 가담했고, 바르트는 히틀러를 향한 충성 맹세를 거부함으로 독일에서 추방되었다. 불트만은 유대교 집안 출신 목사를 내쫓는 일을 반대하는 성명서에 참여했다. 그들의 행동은 그들이 말만 하는 자가 아님을 입증했으며, 그럼으로써 그들이 하는 말을 권위 있게 했고 완성시켰다.

 

그러나 나치에 맞섰던 이들의 중요한 정체성은 설교자였다. 이 다섯 설교자는 현 상황을 진단하고, 말씀에 입각해 해석하며, 공동체가 서야 할 자리를 정의했다. 그들의 말은 행동의 근거이자, 원동력이었고, 행동을 관통하는 핵심이었다. 그들에게 말은 행동만큼이나 중요했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일은 교회 밖의 일만큼이나 긴급”한 것이었다. 좀 더 생각해 보면, 사실 말과 행동은 구분하기 어렵다. 당연하게도 말하는 것은 행위이고, 특히 검열과 탄압의 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언론, 출판 등 말하는 집단은 늘 진압의 대상이었다. 그들이 ‘말’이라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말을 한다는 것은 때로는 강력한 행동이 된다. 다섯 설교자 역시 말로써 저항한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은 그들이 가진 신념의 총체인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박고 있었다.

 

『역사의 그늘에 서서』 표지, ⓒ감은사

 

무모함이 아닌 섬세함

 

그들의 설교는 책을 읽기 전 예상했던 것과 달랐다. 나치에 저항한 이들의 메시지가 얼마나 강렬할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지만 설교에는 ‘나치’ ‘히틀러’라는 단어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불꽃같은 예언자적 메시지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냥 읽어서는 이 설교가 왜 나치에 저항하는 메시지인지 알 수 없었다. 이 책을 엮은 딘 스트라우드의 꼼꼼한 설명을 따라가야지만 설교의 진정한 의미가 보이기 시작한다. 책의 구성을 잠깐 언급해야겠는데, 이 책은 단순한 설교 모음집이 아니다. 책은 1, 2부로 구성되어 있고, 1부(“역사적 배경”)에서 스트라우드는 당시 독일 상황을 충분히 설명한다. 히틀러가 기독교를 어떤 방식으로 악용했는지, 그리고 독일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충성했는지, 혹은 저항했는지 살펴본다. 즉, 설교를 둘러싼 맥락을 독자에게 보여 주고 있다.

 

또한 본격적으로 설교가 나오는 2부에서 스트라우드는 각 설교의 서문마다 그 말씀이 선포된 상황을 설명했고, 본문에는 충실하게 주석을 달아 두었다. 주석 하나를 예로 들면 본회퍼는 설교 끝부분에서 “기드온이 이깁니다. 교회가 이깁니다. 우리가 이깁니다. 왜냐하면 오직 믿음이 이기기 때문입니다”라고 선포한다. 이 문장만 놓고 보면, 별다른 의미를 찾기 어렵다. 어느 교회 설교에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말이다. 그러나 스트라우드는 ‘이기다’라는 독일어(siegen)가 거룩한 승리(Sieg heil)라는 나치의 슬로건으로 전유된 단어였다고 덧붙인다. 이처럼 그들의 설교는 맥락 없이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다시 말해 동시대에 깊이 뿌리내린 사유의 결과물이었다. 그들은 현재를 섬세하게 진단하고, 청중에게 지혜롭게 설명했다. 한 단어 한 단어를 신중하게 선별하고 고심해서 본문에 담았다. 그들은 ‘섬세한’ 설교자들이었다.

 

섬세하게 말한다는 것

 

신중하게 판단하고 섬세하게 말하기, 이것이 다섯 설교자가 혼란 속에서 보인 태도다. 그들의 삶에서 확인할 수 있듯, 이러한 태도는 그들이 시대에 휩쓸리지 않고 꿋꿋하게 신념을 지킨 원동력이 되었다. 꺼지지 않는 불씨와 폭발하는 불꽃이 되어 주었다. 미루어 생각해 볼 때, 오늘날 기독교가 되찾아야 할 모습도 행동하는 용기만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끝까지 고심하고 섬세하게 말하는 태도가 더 절실하지 않을까? 적어도 이러한 태도가 기독교 저항의 역사에 거대한 자취를 남긴 다섯 설교자의 공통된 특징이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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